밤배 / 이승희
그는 배를 타고 온다
밤으로부터 밤으로만 건너가는
강의 이쪽과 강의 저쪽처럼
그의 생에 나의 생을 이어 붙인 것 같다
흐르는 것들은
흐르는 것들에 붙잡혀 있고
붙잡힌 것들만 흘러갈 수 있다
이미 여기는 저기처럼 멀고
저기는 내 이마에 빗방울처럼 떨어진다
외로운 건 마음의 일이라
몸을 두고도 참 멀리까지 가는 것이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물속을 젓는다
누구에게든 다정하게 굴어보는 것
지금은 이것이 전부다
그가 두고 간 것들을 먹으며 살았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위태로움도
쓸쓸함도
이만큼 살았으니 되었다 생각할 때도
그가 몰라볼까 봐 두려웠다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은 사람의 마음이 자꾸 만져졌다
배를 기다린다
그가 배를 타고 올 것이다
몇 번씩 휘어진 골목을 지나
한참씩 쉬고 오르던 계단 위를 둥둥 떠서 올 것이다
물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켜진
집을 보면 조금 우는 것처럼 머물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여기 두지 않았으므로
나는 지금 물결처럼 고요하다
한 점처럼 버드나무가 멀어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고 있다
물고기들이 버드나무 가지 속으로 숨어들어
고단한 잠에 들고 있다
ㅡ 계간 《문예바다》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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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시인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7년 《시와 사람》 등단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2019년 전봉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