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4.3사건이란 낯설고도 낯설다.
2018101234 강창우
우리가 '낯설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낯설다는 것은 낯(얼굴)이 설다(익숙하지 않다)라는 것으로 항상 봐오지 않고 어쩌다 한번 마주치는 어떠한 것을 볼 때 낯설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람이 100년 남짓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던 것도 자주 보지 않으면 잊어버려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낯선 것에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방어기제로 피하는 것이다.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 25년 남짓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철학을 전공하지만 그 이전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문헌들에 관심을 가졌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아쉬운 점은 내가 그 역사의 한장면에 있지 않았기에 책으로, 자료로 그 사건을 재구성하며 공부하기에 제대로 그 사건을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며 4.3사건이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해야했던 국가폭력의 과정이자 결과이며 제주 사람들에게 있어서 애환이자 지워지지 못하는 흉터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75년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제주 사람들에게는 흉터로 남아있건만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저 역사교과서에 잠깐 나오는 사건이며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기에 낯선 것이다. 심지어는 제주 사람들조차 이젠 잊혀져가고 모르는 사건이 되어간다.
나는 4.3사건이 일어난지 50년이 넘은 다음에 태어났기에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도 4.3사건은 낯선 사건이다. 그저 책으로, 미디어매체로, 구전으로 들었던 사건이기에 나도 4.3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3년 전 이맘때에 곤을동에 가서 학살현장을 보았고, 4.3사건 추모식에 참석했으며 당시에 4,3사건을 겪었던 어르신들과 유족들을 인터뷰했었다. 그러면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전에는 그저 4.3사건은 나에게 있어 딱히 중요한 사건은 아니고, 내가 살아가면서 겪었던 사건이 아니기에 무관심했었다. 하지만 현장답사를 다녀오고 진상보고서를 읽어보고, 주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인터뷰도 해보며 나에게 있어 4.3사건은 하나의 족쇄이자 숙명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낯선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다가가기보다는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나 또한 4.3사건을 보며 다가가지 않고 피했었다. 하지만 제주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4.3사건에 천천히 다가가니 지금껏 제주를 보았던 시선이 달라보였다. 매트릭스(matrix)에서 벗어나 눈이 뜨인 것이다. 4.3사건은 그저 역사책에 한줄로 그여진 사건이 아니라 나의 피에 흐르는 족쇄였고, 훗날 4.3사건의 당사자들이 모두 소천해도 4.3사건의 의미와 과정, 결과를 후대에 전승하게끔 하는 숙명이다.
나는 바란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4.3사건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낯설지 않고 잊혀지지 않으며 훗날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첫댓글 제주 43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각양각색으로 상상하던 때에 때마침 구축되던 냉전체제에 편입되기를 요구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력입니다. 아직 국가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 폭력이라고 부르기에는 곤란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만, 결국은 그렇게 해서 권력을 잡아 출범한 국가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국민국가 대한민국입니다. 이 근대국민국가 대한민국 출범 당시에 행해졌던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대규모 폭력에 대해서 국가차원의 진상조사가 있었고, 그에 따라 국가 수반인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5주기를 맞이한 올해 북한 공산당 지령설, 반국가 세력의 전복 음모 등 해묵은 냉전이데올로기의 방령이 되살아나는 듯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우리는 낯선 것에 대해서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앎, 그리고 그 영역이 커질수록 한데 섞여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명료하게 깨닫게 됩니다. 제주43 해결이 우리 문명화, 포스트 모던, 포스트 휴먼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