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라는 숫자는 달리기에 관심이 있는 이는 마라톤 풀코스의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42.195 금반지’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입니다.”
경상대학교 예비군연대장인 구청회(57)씨가 마라톤대회에서 인연을 맺은 30대 아가씨들과 부녀의 연을 맺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구씨와 인연을 맺은 딸들은 대구에 사는 최진영(30) 김주하(34)씨. 구씨의 부인 허호선씨도 “배 안 아프고 낳아서 더 예쁘고 귀한 딸”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온 가족이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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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 예비군연대장 구청회 씨와 부인, 아들, 두 딸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좌로부터 아들인 자경, 구청회씨와 부인, 최진영, 김주하씨) |
| 구씨와 두 딸의 만남은 2004년 서울동아마라톤대회에서 이루어졌다. 구씨는 호흡조절을 하면서 뛰는 도중 곁에서 같은 속도로 뛰고 있는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42.195㎞ 내내 이어졌다.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인지 토크쇼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대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여섯 형제들과 자란 구씨는 자신도 아들만 둘을 두어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딸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최씨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라톤하다 대화 나눈 30대 여성과 ‘부녀의 연’
그날부터 두 ‘부녀’는 전국 마라톤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늘 같이 다녔다. 대략 30여 회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구씨의 부인과 두 아들도 함께했다. 김주하씨는 최진영씨와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으니 ‘당연히’ 구청회 씨의 큰딸이 되어버린 것. 주위 마라토너들의 시샘이 생길 만큼 구청회 씨의 여섯 가족은 재미있게 산다.
지난해 통영 대회에서는 먼저 골인한 김주하(여자풀코스 2위) 씨가 뒤이어 들어오는 아빠를 위해 마지막 1㎞ 정도를 함께 뛰어주었다. 그런 장면이 마라톤 전문 사진작가에 의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구청회 씨는 지난 2003년 창립한 경상대 마라톤클럽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이런 인연으로 두 딸도 경상대 마라톤클럽 준회원이다. 준회원은 회원의 가족에 한해 주어지는 자격인데, 구씨의 딸들을 진짜 가족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두딸도 대회에 나갈 때마다 경상대 유니폼을 입는다.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를 홍보해 주기 위해서란다.
최진영 씨는 “친아버지와 똑같아요. 대회 때마다 늘 함께 이야기하고 달리다보면 이게 정말 가족이다 싶기도 해요”라면서 “5월에 대구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 때는 ‘두 아버지의 대면식’도 계획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30회 정도 함께 대회 출전…돈독한 애정 과시
지난 2일 끝난 합천대회에서 최씨가 풀코스 1위, 김씨가 하프 2위를 차지하는 등 두 딸의 실력이 만만찮다.
최진영 씨는 지난해 9월 안동대회에서 우승 부상으로 반지교환권을 하나 받았는데 구씨에게 선물로 드렸다. 구씨는 42.195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빛 반지를 2개 만들어 부인 허씨와 같이 끼고 있다.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반지의 아빠다”라면서 웃음을 감출 줄 모르는 구 씨는 “인생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구씨의 최고 기록은 풀코스 3시간 03분 07초. 경상대 교직원과 학생을 통틀어 가장 좋은 기록이다. 이를 두고 동료들은 “전국대회 우승권에 있는 두 딸과 같이 뛰기 위해 연습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가능한 기록 아니겠냐”고 말한다. 연말쯤엔 3시간 이내 기록에 도전한다는 구씨는 그런 신기록에 대한 열정보다 두 딸을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이 더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