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가 북쪽으로 5도 기운 비밀 - 첨성대
희붐한 새벽길. 월성에 올랐다가 계림을 지나 첨성대에
닿는다. 동녘에선 어느새 해가 돋는다. 초록 칠을
한 쇠 울타리로 둘러막아 남쪽에다 낸 문을 살그머니
밀고 마사토로 곱게 다져진 흙을 밟으며 둥글게 한바퀴
돌고 나오다 마당 쓰는 지킴이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첨성대에 올라가 봤능기요?”
“올라갈 수도 없고, 해나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말릴라꼬 안 있능기요.”
예전에만 해도 첨성대 꼭대기에 올라가본 사람도 더러
있었다. 문화재 보호나 훼손에 별 관심이 없던 30년
전만 하더라도 첨성대도 올라가고, 봉황대도 올라갔다.
무릎 높이의 편편하고 네모난 밑돌 위 남쪽에서 조금씩
줄어든 열두 계단을 손으로 붙들고 올라가 네모 구멍으로
기어들어 자갈과 흙으로 메운 바닥에서 허리를 펴고 서서
위로 쳐다본다. 바깥에서 보면 가지런하고 둥그스레 굽은
돌이 속에서 보면 울퉁불퉁 들쑥날쑥하다.
튀어나온 돌을 잡고 오르면 열아홉째 단과 스무째 단이
모나고 판판하게 가로질러 있어, 바깥에서는 곧은 금으로 된 돌로 보인다.
여길 딛고 다시 위로 오르면
스무다섯째와 스무여섯째 단이
또 가로질러 다른
돌을 억세게 누르고 있다.
거길 딛고 올라서면 마지막 단위에 오르는데, 그곳에는
동쪽으로 반을 차지하며 편편하고
길쭉한 돌을 얹어놓았다.
여나믄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다.
맨 위 두겹은
네모난 긴 돌로 귀틀을 짜맞혀 얹어,
이른바 우물정(井)자 꼴로 마감했다.
높이는 약 9.1m인데 허리쯤 오는 가장자리 돌을
난간삼아 내려다보면 아찔하지만, 남쪽으로 계림과
월성 만디, 금오산의 게눈 바위[蟹目嶺]가 차례로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론 작은 산만한 무덤과
선도산이며, 멀리 단석산이 보인다.
북쪽에는 경주 시가지의 집들이 보이고, 하늘이
맞닿은 데는 야트막한 소금강산과 금학산이 잇대어 있고,
동으로 돌아가며 보문 못뚝, 명활산, 이리뫼[狼山],
그 뒤로는 토함산의 웅장한 모습이, 가까이는
달못[月池, 雁鴨池]이 보인다.
첨성대를 왜 여기 세웠을까? 632~647년 신라 27대
왕을 지낸 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짤막하게 씌어 있을 뿐,
『삼국사기』에는 천문에 대한 일은 연대별로
기록했지만, 첨성대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비치지
않지만, 현재 동양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국보 3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남쪽에 난 네모난 구멍까지
사다리를 놓은 흔적이 돌 홈으로 남아있지만,
허리를 구부려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속도 좁아
오르내리기 불편하고, 위에서 어떤 장치를 해
무엇을 어떻게 관측했는지 알 수 없다.
경주 하동에 있는 민속공예촌에 있는 신라역사과학관에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천문도며, 관측하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첨성대의 역할을 어떤 이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이라고 하고, 국방과 관련하여 봉화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혹은 상징적인 달력 건축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단 열두 개의 돌이 1년 열두 달과 같고, 아래에서
위까지 30단은 한달 30일 수와 같고, 모서리 출입구
3단을 뺀 모서리 돌이 24단이니 1년 24절기와 같고,
1단에서 27단까지 쌓은 돌이 362개로 음력 1년 날
수와 같고, 26단에 보조로 짠 돌이 4개(혹은 3개 반)이니
양력 365-366일과 같다고 한다.
워낙 기록이 빈약하고 돌 축만 덩그렇게 남아있으니
연구하기 어렵지만, 누군가 꾸준히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67년 전 사진과 지금
모습은 비슷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1920년대 일본
사람들이 신작로를 낼 때 첨성대 바로 북쪽으로 길을
닦았다.
그런데 민족의 비극 6.25동란 때 동해안에 착륙한 미군
자동차며 장갑차들이 지축을 울리며 꼬리를 물고 북으로
오르락내리락했으니, 그 진동으로 그만 북쪽으로 10도
가량 기울어져 버렸다. 건축 당시 땅 밑을 여물게
다졌기에 그 정도로 기울고 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휴전이 되고 몇 년 지난 뒤 굵은 밧줄타래를 동여맨
군용 짐차를 동원하여 남쪽에서 잡아당겨 바로
세운다고 한 것이 지금 상태이니, 피사의 탑처럼
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70년대 들어 북쪽 길을 뭉개고,
부근 인가도 헐어, 땅을 고루고, 둘레에 꽃나무도 심고,
남쪽에 좀 떨어진 곳에 길을 새로 냈다.
앞으로는 쇠 울타리도 없애고, 아스팔트도 걷어내,
걸어다니며 첨성대, 계림, 월성 궁궐터를 둘러보게
한다니 옛 정취를 한껏 맛보리라 믿는다. 첨성대는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병 모양 형태로 조화가 잘 돼
안정감이 느껴지고, 비가 와 돌이끼가 물을 머금었을 때
보면 13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첨성대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첫댓글 노래가~ 좋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