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추억의 길목들
2020년 2월 6일 목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오후 2시 반쯤에 문득 한 생각을 일으켰다.
내 고향땅 문경 점촌으로 내달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이날 오전에 내 귀에 얹혀든 풍문 때문이었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점촌역전에서 ‘김약국’이라는 상호로 약국을 개업하고 있는 김지수 친구가 몇몇 술친구를 초대해서 술판을 벌인다는 풍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친구는 두어 해 전에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헬리콥터에 실려 안동의 대형종합병원까지 가야했을 정도로 건강을 해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음을 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 낯빛을 유심히 살폈었다.
친구의 병세가 호전이 되는지 아닌지 그 기미를 챙겨보고 싶어서였다.
언뜻 느낌에, 최근 들어 부쩍 그 낯빛이 밝아지는 듯했다.
내 그렇게 친구의 얼굴에서 생기를 읽었었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감히 만드는가 하는 짐작에까지 이어졌다.
사연이야 어떻든지, 또 내 짐작이 어떻든지,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함께 한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들 사이에 엮어놓았던 추억의 길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는 것도, 그 친구의 건강회복에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남들 일인 양, 그저 태무심할 수가 없었다.
불현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전철 2호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달렸고, 거기에서 오후 3시 40분 발 점촌 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딱 2시간을 달려 점촌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했고, 여분의 시간이 있어 거기서부터 걸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에, 김지수 친구의 부인이신 정기숙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인 김지수 친구가 이날 저녁으로 술친구들 몇 몇을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하는지 여부도 확인을 했고, 왜 그러는지 그 사연도 확인을 했고, 그 때가 저녁 6시고 그 곳이 같은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홍희 친구의 ‘금곡송어장’이라는 사실까지 확인을 했었다.
그 가는 길 온통이 추억의 길목들이었다.
모전교 다리를 넘으면서 한 갑자 세월 전으로 거슬러 국민 학교 다니던 그 시절에 ‘반재이’라고 불렀던 그 개천에서 반들반들 닳은 흑연을 주워 모으면서 거머리한테 물려 피 흘리던 추억도 떠올렸고, 일부러 중신기 고개 만댕이의 우리들 모교인 점촌국민학교를 찾아 교문 앞에서 동무들과 뛰어놀던 추억도 떠올려봤고, 시장통을 지나면서 그 시장통 어느 술집에서 김지수 친구를 비롯한 몇 몇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고 그 자리에서 ‘안고’(雁高)라는 호를 얻어 받던 추억도 떠올렸다.
그렇게 추억의 길목들을 지나쳐 ‘금곡송어장’으로 들어선 시각은, 이날 오후 6시를 막 넘어서는 그 순간이었다.
이미 판은 벌어져 있었다.
“네가 어쩐 일이고?”
내가 그 자리에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모르는 김지수 친구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그리 묻고 있었다.
“풍문으로 들었다. 지수 네가 밥 술 산다는 소식 말이다. 나도 좀 낑겨 얻어먹을라꼬 왔지, 어쩐 일은 무슨 어쩐 일.”
내 청승스럽게 그리 답하며, 일부러 그 친구의 앞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헌신적 마음에서 시작된 친구의 이날 저녁 초대에 대한, 내 나름의 예우였다.
권커니 잣거니 술잔은 수도 없이 오갔고, 우리들 우정의 대화는 식을 줄 모르고 뜨겁게 타오르기만 했다.
“나 이젠 가야 해. 마누라한테 8시 버스를 타고 올 거라고 했거든.”
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정치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는 그 순간이었다.
우정 어린 지금까지의 대화가, 자칫 저질의 정치이야기로 오염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대화를 끊는 것은 내가 후딱 일어서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싶었다.
카톡!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에, 내 핸드폰으로 그렇게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바로 정 여사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지였다.
장문이었다.
그 한 통 메시지로, 나는 김지수 내 친구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고, 정 여사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또 읽고 했다.
읽는 내내 콧잔등이 시큰해져야했고, 눈시울은 뜨거워져야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오늘 어려운 걸음 하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일부러 오셨다구 고마워 하시네요. 남편이 오랜 휴식년을 털구 이제서야 친구 분들 만나 흡족해 하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죠. 늘 작은 것도 잊지 않으시고, 함께 해 빛을 나게 하시는 마력을 지니신 친구 분께, 아내로서 눈물 나도록 감사합니다. 13동기 친구 분들 모두에게도 무한 감사드립니다. 지수 처’
하룻밤을 새운, 오늘 아침에도 또 읽었다.
“뭘 그리도 열심히 들여다보세요? 저도 좀 봅시다.”
그러면서 아내가 내 옆자리에 자리 차지를 하고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읽었다.
“당신, 어제 참 장한 일을 하셨네요. 제가 다 고마워요.”
읽은 끝에, 아내가 내게 해준 한마디 칭찬이 그랬다.
그래서 아내의 그 칭찬을 보태서, 정 여사께 답을 드렸다.
다음은 그 답 전문이다.
‘이 아침, 감동의 메시지 한 통을 접했습니다. 여사님께서 지난 밤 늦은 시각에 보내주신 메시지가 바로 그 메시지였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 끝에 쓰신 글이겠다 싶었습니다. 마치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 같은 생각들 말입니다. 그리고 쓴 메시지를 현실로 띄워 보낼까 말까 주저하는 순간의 그 조심스러운 마음까지도 읽었습니다. 제 작은 발걸음 하나가 저와는 평생 친구일 수밖에 없는 부군에게 그렇게 흡족함을 줬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여사님의 메시지를 읽는 제 모습을, 아내도 곁에 붙어서 쭉 같이 지켜봤습니다. 그 끝에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당신, 어제 참 장한 일을 하셨네요. 제가 다 고마워요.’ 흔치 않은 칭찬을 해준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그렇게 칭찬 받을 수 있게 해주심이, 저로서는 또 감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이 아침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여사님께서 귀히 들으신다는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을 선물로 붙여드립니다. 그리고 불편하시지 않으시다면 이렇게 주고받은 우리의 메시지 대화는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이 온라인으로 어울리는 Daum카페 ‘문중 13회’에 한 편 글로 엮어 공개하겠습니다. 앞으로 살아생전 우리 주위의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어울려 갈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늘 건승하시고, 또 오늘도 복되시고, 내일도 복되시고,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날들이 복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첫댓글 오성과 한음인지?
관포지교인지? 그 이상 같은 우정이시네.
그기다 훌륭히신 두 마님들의 사랑 가득하신 배려의 마음이...
우리 싸이트를 온통 훈훈하게 만드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