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음 주 수요일에 이사를 한다.
그래서 요즘 딸 집은' 난장판 '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예전 연속극에서 나왔던 말이 생각이 난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
한국에서 돌아온 후 여독이 가시지 않은 채로
며칠간 딸 집을 드나들며 손자들을 돌보았다.
사위가 출장이 잦은 직업이다 .
사위가 하는 집안 일의 1/3도 내가
해 줄 수 없지만 사위가 집을 비울 때는
언제나 미리 나에게 부탁 겸 통보를 한다.
토요일 출장 간 사위가 화요일 밤 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자마자 내 집으로 왔다.
어둠과 고요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내 집이 제일 편하고 좋다.
이사를 하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냥 보고 있으려니 안타깝고 손을 댈려니 엄두도
안 나고 보는 내 마음은 산란하기만 하다.
그래서 더 빨리 집으로 도망치듯 오고 싶었나 보다.
나는 이삿짐 정리에 손을 안 대기로 맘을 정했다.
어디를 어디서부터 도와줘야 할지 도통 엄두가 안 난다 .
어쩌면 도와 준다고 하면 더 부담스러워 하면서
엄마가 왜? 이러면 내가 무안하지 않을까?
나도 살면서 여러번의 이삿짐 싸고 정리하는것을
나 혼자 했었다.
힘이 들어도 그게 맘이 편했다 .
다섯 살 터울의 두 손자의 많고도 많은 장난감은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네식구 옷도 버려야 할 것과 이삿짐으로
가야 할 것의 구분이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릇조차도 내가 사준 것들은 이번에 다
엄마가 갖다 쓰라고 챙겨줬다.
아마 제 취향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
결혼 생활 9년째인가?
손자가 둘이 생겼지만 그동안 살림도 많이 늘었다.
딸은 절대로 살림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계획성 없이 사들이고 거기에다
정리정돈도 잘 못한다고 늘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나의 의견을
말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자신들의 살림이니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라고생각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잘 가르쳐야 하는일이 엄마의 책임이라
잔소리를 좀 했었지만 그것은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나랑 살 때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다가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
애들은 정성을 다해 키우니 그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나는 딸을 대견해 한다 .
정리정돈 잘하고 깔끔한 성격의 사위가
그동안 딸한테 적응하느라고 힘들었을게
뻔하다.
이제는 부창부수인지 같이 어지르고, 서로 사들이면서
그렇게 별 탈없이 잘 살고 있다.
가끔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딸에게
내 일상 중 일 순위가 너를 돕는 일이니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가능한 딸과 사위는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며 아주 가끔은 도움을 청한다 .
그럴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나의 기쁨이고
또 보람 된 일이다 .
집을 사러 다닐 때는 같이 봐 달라 해서 함께
다녀 주면서 조언을 해 주기는 했다.
그러나 결정은 그 애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맘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경제적으로
좀 무리가 되서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다.
그 결정에 내가 용기와 도움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
집이 어수선해서 짐정리가 잘 안 되면 우리 집에다
갖다 놔도 된다는 말을 내가 했었다.
사위가 그렇게 하자는 말을 했더니 딸이 괜히
두 번 일 하는 것이고 엄마 귀찮게 하는 일이니
하지 말라고 했단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위가 나한테 이르길래
그 애는 참 웃기는 애라고 내가 사위 편을
들어주었다.
오늘 아침에 아주 중요한 서류와 깨지면 안 될
물건은 사위가 우리 집에 갖다 놓고 갔다.
나는 딸 둘이 있다 .
그런데 우리는 경계선이 너무 선명한 것 같다.
어쩌면 정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우리 셋은 서로 참견하거나 질못을 지적 하거나
섭섭함을 표시하지 않는다 .
남들에게 하는것 처럼 좋은 말만 하고 칭찬만
하는 편이다 .
그래서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내거나
삐지는 일이 거의 없다 .
나는 그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옷도 자기들이
입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좀 커서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조언 정도는
했을 테지만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다.
대학 결정과 전공 그리고 결혼도 자신들의
선택에 맡겼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선택에 왈가왈부를 했다면
아마 딸들과 나의 관계가 나빠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애들을 믿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고 고집도 세서
그 경계선을 내가 일찌기 파악한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포기 인지 현명함인지 모르겠다 .
이제는 딸들이 다행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고 배우자도 생겼다 .
해가 갈수록 내가 그 애들의 보살핌의 대상으로
점점 뒤바꿈 되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나도 나의 경계선을 잘 아는지라
웬만하면 내 처신을 잘 알아서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딸들과의 관계가
경계선 안에서는 좋은 편이다.
서로 넘나 들지 않고 각자 잘 살고 있다 .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
이번 이사에 적지 않은 내 돈이 꾸어주는 명목으로
가야 하는데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처럼 '차용증'을 공증문서로
작성하자는 말을 했더니 딸이 그러자 했다.
가능한 빨리 엄마돈은 꼭 갚겠단다.
기한은 정하지 말고 그냥 빌려 간 것으로
증빙 서류만 남기자 했다.
딸과 나의 경계선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앞일은 나도 모르겠다 .
첫댓글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딸이라면,
아녜스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정 많은 한국의 어머니들,
결혼한 자녀를 언제까지라도 품에 끼고 살려고 한답니다.
가끔, 법륜스님이나 황창연 신부의 말씀에도
부모의 의무는 18세 까지는 도와주고 보살펴 주지만,
그 이후는 각자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고요.^^
마음씨 고운 아녜스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제가 느낀것도 한국과는 조금 다른 정서 같습니다 .
개개인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자식들의 부모에게 의존하는것이 좀 심하다고
느껴지더군요.
근데 준다는데 싫다는 자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ㅎㅎ
저는 좋은 엄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어서
꾸어준다고 했는데 좀 걱정이 되긴 해요 .
저를 지지해주시는 콩꽃님 감사 합니다 .
현명하신 아녜스님~^^
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은
본인 건강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 계시죠?ㅎ
저는 여러모로 현실적인 도움은 크게 못 주는 터라
그저 내 한 몸 건강히 지내는 것도 자식들에게 도움 주는 거다 싶어
노력하며 살고자 애씁니다.^^
제가 있고 자식도 있는것이라 제 건강이 우선임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둥실님댁은 자녀에게 좋은 기둥이 되시고
계신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
가까이 살고 있어 서로를 위해 도움이
되고 있는 모녀 사이 입니다 .
손자들도 너무 예쁘고요 .
그것도 한 때라 말들 해서 저도 그렇게
될것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ㅎㅎ
재미있고
우습습니다
이 한글을 통해
아녜스님의 집안의 분위기를
아니
모든 이의 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방송인 엄앵란 님이
하신 말 씀
101호나 201호나
거기서 거기라고
혼자 사는 삶이
그리 나쁘진 않네요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글에서 저의 냉정함이 좀 보이죠 ? ㅎㅎ
제가 살면서 알게 된것은 사는 모습이 다
다르다는것입니다 .
하지만 자신의 삶은 자신의 몫이니
책임도 잘 져야 하고요 .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것은
결국은 같은것 같기도 하지만요.
혼자 사는 삶이 나쁘지 않다는것에
완전 동의 합니다 .
모녀지간이라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적절하게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사는 관계가
참 좋아보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보고 참고하라며 권하고 싶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계시지만
우리집은 약간은 더 심할 정도로
자신만의 테두리를 지키는것 같습니다 .
아마도 제 성격인듯 싶어요 .
제가 선 긋기를 좋아하거든요 ㅎㅎ
글 타이틀이 좋아요
시집 간 딸과 친정아버지 외의
경계선 은 ....
Nobody can take it
제목을 너무 거창하게 했지요?
부녀 관계도 집집마다 다르더군요.
아버지의 성품에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
아녜스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딸 아라와 경계선을 긋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아녜스님 덕분에 딸들도 자립심이 강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잘 적응하고 있군요.
나도 조금씩 선긋기를 해야겠습니다
나를 일깨우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에서 느낀 푸른비님과 따님의 관계가
저랑은 좀 다른 느낌은 있었습니다 .
아마 함께 살고 있어서 정이 더 돈독 할 것입니다 .
우리 애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집을 떠났습니다 .
아뇨 ~~ 모녀지긴의 정겨움도 보기 좋아요 .
그래도 딸과는 다툼이 있더라도
같이 나눌 수 있게시리 품에 들어와 있잔아요?
결혼한 아들들은 이제는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있어서인지, 뭐 도와주겠다
해도 그리 원치 않더군요.
당연 며느리 살림에 관여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고요..ㅎ
고백하자면 남들이 많이 부러워 합니다 .
아직도 한국 이시죠?
완전한 가을을 느끼고 계시겠네요 .
계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일 마무리
잘 하시고 돌아 오시길 바랍니다.
딸과의 경계선.
아녜스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합니다.
저도 두 딸과의 경계선이 분명한
편입니다. 딸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 주려고 하지요.
소소한 생활을 글로 잘 표현하시는
아녜스 님.
글을 읽으며 늘 잔잔한 감동을 느낍니다.
어제는 전동, 전의를 지나
아산에 있는 피나클랜드수목원에
다녀왔더니 피곤을 느끼지만,
이렇게 정든 분의 글을 읽으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글, 감사드리면서 잘 읽었습니다.
제 고향 근처에 다녀 오셨네요 .
피나클랜드 수목원은 잘 모르고 아산 현충원 (사)는
학챵시절에 가본것 같아요 .
시골 마을 전동 전의를 아시는 이베리아님을
알게 되었다는게 정말 신기 합니다 ㅎㅎ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
오늘도 잠시 딸네 가서 손자랑 놀고 왔습니다 .
정신없는 집에서 빨리 도망 왔어요 .
그러게요 딸과도 경계선을 분명히
하면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고 좋아요.
저는 딸아이 하나 뿐인데요.
딸이 둘이면 더 좋았겠다 이런 생각은 해요.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
서로 고맙단 말은 자주 하고요 .
제 딸 둘은 성격이 많이 달라서 키우는
재미가 있었어요 .
나무랑님은 따님과 친구처럼 잘 지내실것
같습니다
우리집 가훈은 <각자 잘 살자> 입니다만 이게 뜻대로 지켜지지 않는게 부모마음입니다. 도울수 있으면 도와주며 살아야 겠지요..
저의 가정도 그런편입니다 .
각자 잘 살자 ..그렇죠 아직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
그런데 저는오늘도 두살반 손자랑 6시간도 넘게
자동차 놀이 하고 왔습니다 .
우리나라같은 포장이사가 거긴 없는가 봐여~
꺼내 놓으면 산더미 같고 어마 무시해지는
이삿짐이라는 괴물~~
걍 일단 다 싸서 가져간 다음 풀어서 정리하는데
열흘, 아니 한달이 걸리는 이사지요!
글세요!!
경계선이라^^
알듯하고도 모를듯 하군요!!
포장 이사도 있는데 워낙 비싸서 엄두를
못 내죠 . 박스 사서 때로는 얻어서
이삿짐 꾸립니다 .
그것도 시간당 페이를 해야 하니
최대한 본인들이 하는게 돈 절약 입니다 .
오늘도 딸네는 이사한 집에 풀지 않은 박스가
널려 있지만 저는 절대 손 대지 않습니다 .
그게 저의 경계선을 넘는 일이라 ...ㅎㅎ
잔소리 안 하는 단정한 엄마 하면, 아녜스 님을 꼽고 싶네요.
아녜스 님 글과 이미지를 단풍으로 치면 어떤 모습일까요.
설악산 주전골 단풍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
잔소리가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것일지도 몰라요.
해도 소용 없다는것을 일찍 알았거든요 .
아...저를 단퐁에 비교 하시면요?
저는 아마 단풍이 들지 않는 상록수일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