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등장하는 '중립지대'와 도덕경 속 '중도'>
세계는 갈등과 투쟁으로 만연하다, 그중 가장 이분법적이고 명확한 대립으로 나타나는 선과 악의 구도는 어느 콘텐츠에서나 작용하며 이야기가 된다. 최근에 다시 찾은 영화인 '콘스탄틴'에서 주인공이자 작중 유명한 퇴마사인 존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이 악마와의 대결 중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은 천사와 악마의 중립지대에서, 그리고 클럽의 모습을 띈 그곳을 운영하는 파파 미드나이트(전 퇴마사)의 중립적인 태도에서 나는 '중도'의 모습을 엿보았다. 그것을 영감으로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에 대한 팬심으로 이후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인 영화 3가지 '매트릭스' , '존 윅', '콘스탄틴'에 등장하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중립지대'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양한 작품 속 선과 악의 투쟁적인 세계관에는, 양자의 극단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균형을 이룬 세계가 늘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균형 또한 위아래를 전제로 위치를 특정한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중립지대' 또한 결국 선과 악의 틀 안에서 존재할 뿐일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입장에 대한 규정이 그저 상대적인 견해라고 치부한다 쳐도 어딘가 모르게 '중도'를 지키는 존재들은 늘 지혜롭게 비치곤 한다. 국내 판타지 장르에서 만년을 사는(작가의 설정마다 다르지만) '드래곤'이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사는 중간계의 '균형의 수호자'처럼 등장하는 일은 매우 흔하지만 인상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이런 중립을 자처하는 존재들은 대개 강력하고 다양한 형태의 힘(지식, 도덕성, 무력 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평화가 지켜지는 과정엔 폭력이 늘 수반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의식의 흐름상 문득 '진보적 폭력'에 대한 노자의 견해가 궁금해지지만 가히 필사의 노력으로 본 주제로 넘어가보자.
1. 매트릭스 속 등장하는 중립지대 '클럽 MT'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중립지대인 클럽 MT (Metropolis Club의 약자)는 등장인물들이 모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요한 장소로 작동한다. MT 내부는 분위기 있는 조명과 음악, 그리고 유명한 DJ들이 활동하는 클럽으로 이곳에서 영화 캐릭터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행적을 이어간다. 특히 메타폴리스 클럽은 주인공 네오와 모피우스가 만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하고 이곳에서 모피우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진실과 현실을 설명하기도 했으며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그렇게 메타폴리스 클럽은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장소이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의해선지 몰라도 클럽 MT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자들이 많다, 또한 현실과 가상(매트릭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중간지점으로서 작용하고 매트릭스 세계의 지배자인 A.I('에이전트')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독자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2. '존 윅'에 등장하는 중립지대 호텔 '컨티넨탈'
영화 '존 윅'의 세계관에는 각종 흥미로운 설정들이 등장한다, 작중에서 히트맨들이 사용하는 은어와 용어, 대치 구도에 있는 각종 집단들 등 하지만 개중에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 경찰들, 암살자들 마저도 그간의 원한을 뒤로하고 규칙을 적용받아야 하는 중립지대인 호텔 '컨티넨탈' 이다. 이곳에서는 무기의 반입이 금지되고 어떠한 경우의 살인도 용납되지 않는다. 혹여나 누군가 이 룰을 어긴다면 그는 즉시 추방되거나 이곳에서 단 한 번이라도 보호를 받았던 모든 집단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주인공 '존 윅'또한 이곳에서 종종 보호를 받고 있다.
3. '콘스탄틴'에 등장하는 중립지대 '미드나잇 라운지'
콘스탄틴 세계관에서는 진짜 천사와 악마는 천국과 지옥에 묶여있어 인간이 사는 세계에는 직접 올 수 없지만, 혼혈 천사(내 생각엔 선인)와 혼혈 악마(마찬가지로 악인)가 인간들에게 영향을 준다. 콘스탄틴은 인간의 영혼을 탐해 인간계로 올라오는 악마들을 막아내는 전문 퇴마사이고, 활개치는 악마들과 이를 막으려는 전문 헌터들 사이 평안한 날 없는 이곳에도 중립지대가 존재하는데 그곳이 바로 콘스탄틴(주인공) 이전 세대에 활동했던 강력한 퇴마사인 '파파 미드나잇'이 운영하는 라운지 바(bar), '미드나잇 라운지'다. 파파 미드나잇은 영화에서 악마와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죄와 벌, 선과 악의 이중주를 벗어나 모든 것을 중립적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는 '도덕경'에서 말하는 '중도'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며
이 같은 중립지대는 도덕적인 가치와 연관이 있다, 이곳에선 자신의 이익이나 가치관보다는 타자 혹은 세계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는 나아가 상호 이해와 존중을 촉진하여 관계를 개선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구심점이 된다. 이는 ‘도덕경’에서 말하는 ‘중도’의 추구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했다. 또한 양 극단에서 벗어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스러운 내맡김(적극적 의미의)으로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중요한 가치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ps - 한편 도덕경은 진보적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물론 도덕경엔 폭력에 대한 서술보다는 상호 존중과 조화로운 공동체 형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책이 쓰여진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폭력이 완전히 금지되거나 용인되는 것은 아닐 거 같고 적절한 상황에서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공동선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책임’에 대한 상시적인 상기만 이루어진다면 그 길은 결코 폭력이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첫댓글 게시글에서 논의한 중립지대에 대한 이야기는 "헤테로토피아"로 검색해보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거랍니다. 물론 중립지대는 중첩되는 공간으로서 동시에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장소가 되지요. 사회철학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예외공간이라고도 합니다. 예외공간은 여기에 속해 있지 않은 이들에게 예외적으로 여기의 규칙과 처벌을 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추방 되기 전의 난민을 수용하는 수용시설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답니다. 게시글에서는 그런 면보다는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일종의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듯해요. 덧글에서 이야기한 "공동선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책임'에 대한 상시적인 상기만 이루어진다면 그 길은 결코 폭력이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이 중립지대에서 폭력에 대한 기존 정의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