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1 남산 헌병대 대좌실
지난 회와 연결된다. 헌병대 대좌가 무서운 눈길로 두한을 노려보고 있다.
두한 부하들을 풀어달라고 했소. 당신들이 찾는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오? 내 부하들은 이 일과 전혀 상관이 없소.
대좌 부하들을 구하고자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좋다. 소원대로 부하들은 풀어주지. 하지만, 황군을 위해한 너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두한 고맙소. 하지만 나는 죄를 짓지 않았소.
대좌 뭐라....?
두한 나는 단지 무고한 살인을 막았을 뿐이오. 당신 부하들은 사소한 시비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소. 당신들은 입만 열면 우리 조선 사람들도 천황폐하의 적자라고
그 대목에서 차렷자세를 취하는 대좌와 부관들..
두한 ...떠들어대면서 천황 폐하의 적자를....(조소하고)함부로 죽여서야 되겠소?
부관 닥쳐라! 감히 뉘 앞에서...
두한 사실이 그렇지 않소?
대좌 제법 사내다운 놈이로구나. 그 기개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황군에게 저항한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 너는 그 댓가를 이 곳에서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각오는 돼 있겠지?
두한 .......
대좌 (부관에게)데려가라.
부관 하이..
헌병들이 두한을 끌고 밖으로 나간다. 대좌가 김두한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
대좌 참으로 당돌한 조센징이구나.
부관 저 자 하나 때문에 지금 우리 헌병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장교가 셋씩이나, 그것도 니뽄도까지 들고 조선인 건달 하나를 해치우지 못한 것은 헌병대의 수치라며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대좌 애석한 일이다. 위대한 천황폐하의 군대를 관리 감독하는 우리 헌병대의 위신이 그렇게 되었다니.....
부관 일부 혈기왕성한 병사들은 명예를 되찾기 위해 저 자와 결투를 하게 해달라고 건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대좌 결투?
부관 사기진작을 위해 한번쯤 고려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대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황군에 저항한 자는 단 하나의 처리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부관 ......
대좌 목숨을 받아내는 것.....그것 뿐이다.
부관 하이..
대좌의 표정은 단호하다.
씬 산사 암자 마당
설향이 와 있다. 주지와 마주해 있는 설향의 눈이 동그래져 있다.
설향 떠, 떠나....다니요?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습니까?
주지 오고 가는 것이 거침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새벽에..바람처럼 또 그렇게 떠났답니다.
주지가 합장을 하고 사라져 가면...
설향 (불안해) 설마... 설마 두한씨가...?
가져온 옷보따리를 놓치고 마는 설향. 그 당혹스런 표정에서..
씬 헌병대 고문실
김영태가 의식을 잃은 채 천장에 매달려 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 명의 헌병이 들어와 김영태를 풀어준다. 김영태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신음한다. 헌병들이 김영태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다.
헌병1 (발로 툭툭 치며)정신 차려라.
김영태가 의식을 되찾으며 헌병들을 본다. 헌병들이 김영태를 일으켜 세운다.
김영태 어...어디로....가는거요?
헌병 석방이다.
김영태 서..석..방이라니..?
김영태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멍하게 헌병들을 쳐다본다.
씬 동 복도
김영태가 헌병들에 의해 넓은 복도로 끌려나온다. 그곳에는 이미 문영철과 김무옥을 비롯한 우미관패들이 모두 풀려나 있다. 문영철이 김영태를 보고는 달려가 부축한다.
김영태는 벌써 상황파악을 한 듯 절망적인 표정이다. 그 때 모두들 놀라며 2층을 쳐다본다. 두한이 헌병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개코 두한아...? 두한아...
모두들 두한에게 다가가려는데, 헌병들이 거칠게 가로 막는다.
두한 ...........
헌병장교 모두 밖으로 쫓아버려.
헌병들 하이..
헌병들이 우미관패들을 두한과 반대 방향으로 밀어낸다. 저항하던 우미관패들의 모습도 두한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헌병들이 다시 두한을 끌고 어디론가로 간다.
씬 동 정문
김영태와 부하들이 헌병들에 밀려 문밖으로 쫓겨난다. 모진 고문 탓인지 그들은 이제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인다. 헌병 하사관 하나가 하얀 보자기에 싼 번개의 유골을 건넨다.
하사관 받아라..
그들 ........?
하사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연고자가 없더군. 여기서 죽은 너희들 동료다.
그들 .........?
개코 버, 번개야....(유골을 받아 껴안고 운다) 번개야...
하사관 (돌아서려다가)그리고...쓸데없이 입을 놀리면 좋지 않아. 그런다고 소용도 없을테지만..
하사관과 헌병들이 싸늘하게 돌아서 가버린다.
김무옥 저런...개같은.....
개코 (울며)번개야...번개야...
문영철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헌병대 쪽을 노려본다. 김영태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외면하며 하늘을 본다. 그 모습들에서...
씬 종로서 고등계
미와와 형사들이 모여 있다.
미와 긴또깡이 제 발로 나타났다? 그래...그리될 줄 알았어...
오무라 예상을 하셨단 말씀입니까?
미와 나는 십년이 넘도록 긴또깡을 지켜보았다. 이제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을 할지 훤히 보인단 말이야.
문달영 헌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지....?
미와 나는 놈이 도망치다가 체포되기를 바랬다. 헌데 놈은 제 발로 헌병대에 걸어 들어갔어. 긴또깡의 그런 당당함이 나를 불쾌하게 한단 말이다.
형사들 .....(끄덕인다).....
오무라 하지만 그 때문에 긴또깡은 죽음을 자초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잡지 못했다면...
미와 물론 잘 된 일이지...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도 예감이 썩 좋질 않아.
형사들 .....?
미와 ...........
씬 헌병대 고문실
한 줄기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그곳에 보기에도 섬뜩한 고문기구들이 널려 있다. 한쪽 구석의 두한은 이미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헌병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는다.
헌병1 저런 놈은 처음이야. 비명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않다니 말이야..
헌병2 정말 지독한 녀석이야..
그 때 문이 열리며 헌병대 대위가 안으로 들어온다. 두 헌병 취조관은 부동자세를 취한다.
대위 이런..벌써 시작을 한 건가?
헌병2 대위님께서 오시기 전에 미리 손을 좀 봐뒀습니다.
대위 (웃으며)그래도 절차는 거쳐야지. 데려와.
대위가 한 쪽에 있는 책상에 앉으면 헌병들이 두한을 일으켜 데려다 그 앞에 앉힌다.
대위 이름....?
두한 ..................
대위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네 이름을 묻고 있지 않은가? 어서 대답해라.
그러나 두한은 대위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는다.
대위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반항을 해보겠다는 것인가? 응?
두한 .........
대위 (취조관들을 향해)다시 한 번 제대로 돌려라. 아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으란 말이다.
헌병1 하이..
헌병들이 두한을 끌고가 천장에 매단다.
대위 긴또깡, 우리 천천히 놀아보자꾸나. 네 부하들이 당한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너는 그 천배 만배의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두한 ..........
대위가 턱짓을 하면 헌병들이 물에 담가 두었던 채찍으로 사정없이 두한을 후려친다. 대위는 즐기기라도 하듯 담배를 꺼내 물며 징그럽게 웃는다.
씬 강변
개코가 번개의 유해를 뿌리고 있다. 흰 가루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있다. 김영태와 문영철, 김무옥, 정진영, 와싱턴, 삼수, 털보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다.
씬 동 방안
김영태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듯 벽에 기대어 있다. 정진영이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김영태 번개의 희생이 헛되이 되고 말았구만..그리 당부를 했건만..
정진영 면목 없습니다. 영태 형님.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두한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김영태 자네 탓이 아닐세..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었겠는가?
정진영 .........
김영태 어떻게든 두한이를 살려야 하네..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정진영 우선 종로서 마루오까 경부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 분이라면 두한이의 구명에 발벗고 나서줄 것입니다.
김영태 종로의 유지들도 만나봐야 할걸세. 진영이 자네가 약속을 잡아놓도록 하게..
정진영 예, 형님..
김영태 이번엔 정말 쉽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시간이 너무 없어..두한이가 잘 버텨줘야 할텐데..
정진영 ..........
김영태 ......(도리질을 치며 한숨을 쉰다)......
씬 종로 거리
종소리를 내며 전차가 다가와 선다. 최동열이 천천히 전차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든다.
씬 동 골목길
상인들이 서넛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상인1 소문 들었나? 김두한이 어제 헌병대에 제 발로 찾아갔다네..
상인2 나도 들었네..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죽을 자리를 찾아 간게야..
상인3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도망치다 말고 다시 돌아온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최동열이 지나치다가 얼어붙듯 그 자리에 선다. 최동열의 당혹스런 얼굴 위로 상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상인2 부하들 때문에 그랬겠지..부하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칠 수 없었던 거겠지..그게 바로 사내들의 의리라는 것일세...
상인1 그렇지만...너무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내 목숨도 있고 부하들도 있는 것이지..
상인2 그러니까 김두한이지...
상인1 또 아까운 인물 하나가 사라지겠구만.
절망적인 최동열의 표정에서......
씬 권번 방안
설향은 생각이 많다. 애란이 그 옆에 앉아 있다.
애란 어쩐다니 설향아? 두한 오라버니 말이야...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설향 .........
애란 내 입이 또 방정이구나..미안하다, 설향아..
설향 ......두한씨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애란 (한숨)...이럴 줄 알았으면 총독부 손님들 방에 자주 들어갈 걸 그랬다. 그 사람들이라면 이럴 때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
설향 .........?
애란 그렇잖아? 잘은 모르지만 총독부의 높은 사람이라면 두한 오라버니를 구할 수도 있을 거야..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설향 누가 있을까? 그 총독부 사람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 말이야..
애란 글쎄...옥련 언니 정도가 아닐까?
설향 옥련 언니...?
씬 다방
문이 열리고 마루오까가 안으로 들어선다. 정진영이 한쪽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루오까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진영 여깁니가, 마루오까 경부님.
마루오까 (다가와)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정진영 어서 오십시오.
마루오까 앉게.(사이)이야기는 들었네. 자네들..걱정이 아주 크겠구만..
정진영 지금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마루오까 그렇겠지.
정진영 저희들을 도와 주십시오, 마루오까 경부님.
마루오가 물론 그럴 생각이었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도무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나 역시 감이 잡히지 않는군.
정진영 ...........
마루오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내게 너무 큰 기대를 갖지는 말게.
정진영 도움을 주시겠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마루오까 ...........
씬 헌병대 고문실
고문이 계속되고 있다. 두 헌병이 천장에 매달린 두한을 계속 채찍으로 내려 친다. 두한의 몸둥아리는 불에 달군 듯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대위 그만...그만...
헌병들이 한 발 물러선다.
대위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두한 ..........
대위 아직도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매가 부족한 모양이군.
두한 ..........
대위 이런...그렇게 나를 노려보면 안되지. 내 성미를 돋구면 너도 네 부하 놈처럼 저 세상으로 보낼 수가 있어.
순간 두한이 멍한 눈으로 대위를 본다.
두한 그게.....무슨.....?
대위 아직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소매치기 전과가 있는 네 부하놈 말이다.
두한 ......(충격)....
대위 보기보다 허약한 녀석이더군. 그 정도 고문에 숨을 놓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말이야.
두한 (미친 듯 발버둥치며)이 죽일........
그러자 두한의 뒤에 서 있던 헌병 취조관의 채찍이 몇 차례 사정없이 두한을 후려친다.
대위 좀 안되기는 했어. 네 놈이 조금만 빨리 나타났더라도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말이야.
두한 이....개만도 못한...
두한이 다시 매달린 몸을 버둥거린다. 헌병 취조관이 다시 채찍을 휘두른다. 대위가 손을 들어 제지한다. 그리고 두한의 얼굴에 바짝 다가가 위협적으로 이야기한다.
대위 잘 들어라 긴또깡. 네 놈이 반병신을 만들어 놓은 그 스즈끼 대위가 누구인줄 아나? 나와는 사관학교 동기로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다. 우린 대일본 제국의 장군이 되기로 맹세를 했다. 헌데 너란 놈 때문에 스즈끼 대위는 모든 걸 잃었다. 한창의 나이에 불구의 몸으로 전역을 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는 말이다.
두한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본다).........
대위 그래서 난 결심했다. 내 벗을 그렇게 만든 놈을 똑같이 만들어 주겠다고 말이야. (두한의 얼굴 가까이 가며) 아니....그 이상의 대우를 해줘야겠지. 널....서서히 죽여주마. 아주 고통스럽게 말이야. 재판까지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넌 죽을 테니까. 우리 헌병대는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곳이다.
씬 헌병대 면회실
그 헌병대원과 대위가 들어서자 마루오까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마루오까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겠지만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마루오까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르게 부드럽다.
대위 당신이 나를 보자고 했소?
마루오까 그렇습니다. 나는 종로서에 근무하는 마루오까 경부라고 합니다.
대위 .....(보다가)어디서 본 듯도 한데.........아, 이제보니 혹시 (차렷을 하며) 천황 폐하배 유도 대회에서 일곱 번이나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바로 그....?
마루오까 ..........?
대위 하하하..그렇구려...당신 같은 유도 영웅이 나를 찾아주다니 이거 영광이오. 자, 자 앉으시오. (앉으며)헌데 나에게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온 것이오?
마루오까 실은 대위님께 부탁을 드릴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대위 부탁이라...?
마루오까 그렇습니다.
대위 일단 들어나 봅시다.
마루오까 지금 대위님께서 김두한이라는 조선 사람을 취조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위 그렇소만....
마루오까 그 김두한이라는 사람은 나와 의형제를 맺은 아우입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위 뭐요? 의형제? 아우? 내가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오?
마루오까 내가 알고 있는 김두한은 절대로 의롭지 않은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마루오까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대위 그만...그만하라! (벌떡 일어서며) 그런 조센징 불량배를 두둔하다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마루오까 .........(감정을 누르며)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대위 닥쳐라!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정신 나간 작자 같으니라구. 더 듣기 싫으니 당장 돌아가라.
대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한참 동안 서 있던 마루오까가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에서...
씬 권번 방안
설향이 옥련이라는 기생과 마주해 있다.
설향 도와주세요, 옥련 언니...제발...이렇게 간청을 드립니다.
옥련 .....그 사람 처지가 꽤나 딱하게 되었구나..하지만 그건 아니될 말이다. 그 분들은 손님일 뿐, 사적인 부탁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설향 옥련 언니.....?
옥련 미안하다, 설향아..너도 기생이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설향 ........
옥련 하지만...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설향 ..........?
옥련 그것이 통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설향 무엇입니까? 두한씨를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옥련 그 김두한씨를 잊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
설향 ....? 그게 무슨....?
옥련 .............
설향 ..............?
씬 관철여관 외경 (밤)
정진영(E) 마루오까 경부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씬 동 방
김영태가 손으로 턱을 고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김영태 그렇겠지. 유지들도 그러더군. 총독부의 웬만한 고관이 나선다고 해도 두한이를 빼내기는 힘들거라고 말이야.
정진영 마루오까 경부는 하야시를 찾아가 보라고 하더군요.
김영태 .........하야시라..하야시...
정진영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영태 하지만 두한이가 원치 않을 걸세..혼마찌와 화해를 했다고는 하나 두한이는 아직도 그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정진영 두한이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입니다. 그런 저런 이유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형님...어떻게든 두한이를 살려놓고 봐야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김영태 나도 하야시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닐세..하지만 총독부의 고관들이 어렵다면 하야시 역시 헌병대를 움직이기는 어려울 거야.
정진영 하야시는 몰라도 그 사람의 장인인 고노예는 가능할 겁니다. 마루오까 경부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김영태 고노예? 허....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고노예라면 두한이와도 만난 적이 있고 또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지. 고노예라면 희망이 있어. 고노예라면 말이야.
끄덕이며 얼굴이 환해지는 김영태의 모습에서..
씬 잡지사
모두들 퇴근한 사무실에 최동열이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다.
최동열 (E) 두한이가 돌아오다니...결국 그럴 수 밖에 없었단 말인가? 그래, 어쩌면 그 아이는 종로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종로가 두한이를 원하고 있고, 두한이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다.
최동열은 한숨을 쉬며 돌아선다. 최동열의 책상 위에는 두한을 위해 준비해놓은 신분증과 열차표가 놓여져 있다.
최동열 (E)헌데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일본에 짓밟힌 조국의 현실 앞에 나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정녕 두한이는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최동열이 신분증과 열차표를 집어 가만히 책상 속에 집어 넣는다.
최동열 (E)삼청동 어른들께는 또 이 사실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한단 말인가....?
씬 삼청동 마당(밤)
오씨와 조모가 서있고 낯선 사내들이 쌀가마를 내려놓고 버티고 있다.
조모 글쎄....어서들 가져가래두...
사내1 마님..제발 이놈들의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조모 마음은 충분히 알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네들도 형편이 어려울텐데 도로 가져가게...
사내1 아닙니다, 마님...옛 상전께서는 이토록 어렵게 살고 계시는데 소인들이 어찌 이를 알고도 모르는 척 할 수 있겠습니까요? (무릎을 꿇고) 제발 받아주십시오, 마님..
사내들 (모두 무릎 꿇으며)받아 주십시오, 마님...
조모 어허....이 사람들 고집하고는......
사내1 서방님, 아니 장군님께서 소인들을 면천시켜주신 그 은혜에 비한다면 이것들은 티끌만도 못한 것입니다요. 소인들이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제발 받아주십시오..
오씨 .....
조모 .....알았네. 그럼 아주 고맙게 받겠네. 하지만 다시는 이런 것들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약속하게.
사내1 정말이십니까, 마님?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어쨌든 이것은 부엌에 들여놓겠습니다. (사내들에게) 아 뭐하고들 있는가? 마음 변하시기 전에 어서 갖다 놓게. 어서...
사내들이 부지런히 쌀가마를 부엌으로 가져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시울이 뜨거운 오씨와 흐뭇하게 끄덕이는 조모의 모습에서...
씬 혼마찌깡 마당 (아침)
김영태와 정진영이 미우라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영태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다리를 절뚝거린다.
미우라 괜찮으시겠습니까?
김영태 괜찮소...
미우라 자 그럼 이 쪽으로...
그들 그렇게 안으로 향하면..
씬 동 거실
하야시가 김영태, 정진영과 마주해 있다. 시바루와 미우라가 그 옆에 앉아 있다.
하야시 아직 몸이 좋지 않을텐데 어려운 걸음을 하셨구려..
김영태 ...........
하야시 이곳에 온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소. 내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소?
김영태와 정진영은 다소 놀랍다는 표정이다.
하야시 우린 이제 형제와 같은 사이가 아니오? 말씀해 보시오.
김영태 그러시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야시 오야붕께서 아시다시피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저희들 생각이지만 고노예 어른이라면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야시 장인어른이라...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만. 허허허...
김영태 ........
하야시 하지만 잘 보셨소. 그 어른이라면 능히 김두한 오야붕을 헌병대에서 빼내실 수 있으셨을 거요. 헌데..애석하게도 장인어른은 지금 조선에 계시지 않소.
김영태 .........?
정진영 그럼...?
하야시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본토로 건너가셨소.
정진영 ....(실망하는)...
하야시 김두한 오야붕은 지금 한시가 급한 걸로 알고 있소. 장인어른께서 계시지 않으니 나라도 한 번 나서보도록 하겠소. 괜찮겠소?
김영태 그렇게 해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야시 나 역시 김두한 오야붕에게 빚이 있소.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김영태 ......
씬 관철 여관 방 안
김무옥과 문영철, 개코, 삼수가 앉아 있다. 다들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가 않다.
김무옥 두한이가 참말로 걱정이다. 지금쯤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을텐데 말이여..
문영철 고생 정도겠냐? 우리도 다 겪어 봤잖냐?
삼수 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구요.
개코 .........
김무옥 근디...와싱턴 성님은 으째 안보이냐? 으디 나갔냐?
개코 어젯밤에 잠깐 바람 쐬러 나간다고 혔는지 아직까지 안들어 왔구만이라우.
김무옥 그려...?
문영철 그렇다면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다. 종로가 지긋지긋해진 거겠지. 원래 한 군데 오래 머물 사람은 아니었어..
김무옥 ....(끄덕인다)...
개코 그나저나 우리 두한 오야붕은 어떻게 될꺼라우? 아무 죄도 없는 번개도 죽인 놈들인지 말입니다..
그들 ....(한숨만)....
문영철 진영이하고 영태 형님이 하야시한테 갔으니 곧 무슨 이야기가 있을 거다. 다들 차분하게 앉아서 기다려 보자. 지금으로선 우리가 조용히 있는 게 두한이를 돕는 거야.
그 때 밖에서 여관 주인의 소리가 들려 온다.
여관주인 (E) 무옥이, 무옥이 안에 있나?
김무옥 예...여그 있는디요...삼수야, 문 쪼까 열어 봐라잉.
삼수가 문을 열면 여관주인과 함께 순이가 서 있다.
여관주인 웬 아가씨가 자넬 찾아왔어..
순이 ...........
삼수 그 때 그 아가씨가 왔는데요. 무옥이 형님 아버님과 함께 온 아가씨 말입니다.
김무옥 그려...?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봐야 쓰겄다. (일어서려는데...)
문영철 앉아 있어라..우리가 자리를 비켜줄게..
김무옥 아니여...나가 나가 봐야제...
김무옥이 밖으로 나간다.
씬 다방
김무옥과 순이가 마주해 있다.
김무옥 고향으로 가겄다고?
순이 야...
김무옥 그려..잘 생각혔어..근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이여?
순이 참말로 여그 눌러살 생각은 아니었구만이라우. 인자 무옥 오라버니가 무사히 풀려나왔은께 내려가야제라우.
김무옥 그려...그러더라고...
순이 참말로 다행이구만이라우. (울먹이며) 지가 을매나 걱정을 혔는지 아시요?
김무옥 ...(보다가 손을 잡아준다)...
순이 ........?
김무옥 미언허다, 순이야..니도 봐서 알겄지만 나가 지금은 너한티 마음 쓸 틈이 읎다.
순이 잘 알고 있구만이라우..
김무옥 조심히 내려가라.. 여그서 나한티 있었던 일은 우리 엄니, 아부지헌테 절대 야그하지 말고...알겄냐?
순이 야...
씬 종로 거리
김영태와 정진영이 한산한 종로 거리로 들어선다.
정진영 하필이면 이런 때, 일본으로 들어가다니요. 하늘도 우릴 도와주지 않는가 봅니다.
김영태 글쎄.....길이 보이는가 했는데 너무 안타깝구만...
정진영 종로 유지들의 탄원서도 헌병대에 보냈고...할 일은 다 해본 것 같습니가.
김영태 하야시가 나서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세. 지금으로선 하야시를 믿어보는 수 밖에.....
그러나 김영태도 정진영도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씬 혼마찌
미우라가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하야시 앞에 앉는다.
하야시 그래, 알아보았는가?
미우라 하이, 오야붕. 김두한이 끌려간 곳은 헌병대 사령부로 담당 지휘권자는 다이호 대좌입니다.
하야시 어떤 인물인가?
미우라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군수뇌부의 신망이 대단히 높다고 합니다.
하야시 음.....다이호 대좌라....
미우라 ........
하야시 지금 즉시 전화를 넣어 약속을 잡고 차를 준비시키도록 하게.
미우라 알겠습니다. 더 지시하실 사항은 없으십니까?
하야시 자네가 그 쪽 부관과 통화해서 김두한의 상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게..
미우라 하이..
하야시 그 사이 김두한에게 큰 변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야..
하야시의 그 모습에서...
씬 헌병대 취조실
전기 고문 의자에 앉아 있는 두한은 정신을 붙잡고 있기조차 쉽지 않은 듯 동공이 흐려져 있다. 헌병 취조관들이 피곤한 듯 잠시 쉬고 있다.
헌병1 죽을 맛이로군...이쯤했으면 그만 끝을 보는 게 좋을텐데 말이야..
헌병2 참으라구. 대위님 명령을 잊었나? 함부로 죽일 수도 없는 귀한 몸이 아닌가?
헌병1 나라면 빨리 죽여달라고 애원이라도 할텐데......한 마디도 하지 않는군.
헌병2 물건은 물건이야. 조선의 주먹계를 휘어잡은 놈이라더니....
두한은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보려 애쓴다.
두한 (E) 눈을 떠야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여기서 이렇게 무너져선 안된다. 김두한...눈을 떠라. 어서 눈을 떠라.
핏발이 선 두한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씬 헌병대 앞
하야시의 차가 그 앞으로 달려와 선다. 앞좌석의 미우라가 내려 뒷문을 열어주면 하야시가 천천히 내린다. 하야시가 헌병대 건물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안으로 향한다.
씬 동 헌병대 대좌실
헌병대 대좌가 너무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하야시를 바라본다.
대좌 지금 긴또깡을 풀어달라고 하셨소?
하야시 초면에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결례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조용히 말씀드렸어야 하는 것인데 워낙 시급한 일이다 보니 말입니다. 대좌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대좌 .........
하야시 김두한군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종로 상인들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내선일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대좌 허허...너무도 뜻밖이라...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내가 긴또깡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긴 하오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소.
하야시 ........
대좌 이번 일은 우리 헌병대의 명예와 부하들의 사기에 직결되어 있어서 말이오..
하야시 그러실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대좌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드리지 못한 것 같소이다.
하야시 일어나기 전에 한번만 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김두한을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이번 일을 도와주시면 이 하야시가 대좌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입니다.
대좌 .....
하야시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좌 예....부관!
시바루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오야붕?
하야시 글쎄...아직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반반이라고 해야겠지.
시바루 오야붕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야시 ........
미우라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뇌물을 써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기왕에 김두한의 구명을 위해 나서셨는데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오야붕의 체면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야시 뇌물이 통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우라 ......
하야시 지금으로선 다이호 대좌의 마음이 바뀌기를 바랄 수 밖에 없을 것 같가. 기다려 보는 수 밖에...
하야시의 승용차가 그렇게 사라져 간다.
씬 헌병대 대좌실
대좌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옆으로 부관이 들어와 서 있다.
대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부관 ...........
대좌 도대체 긴또깡이 어떤 자이기에 한다 하는 종로의 유지들이 탄원서를 내고 하야시라는 거물까지 그 자의 구명을 요청한단 말인가?
부관 ,........
대좌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부관 하야이 상은 총독부도 움직일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인물의 청탁이라면 긴또깡에 대해 재고해 보시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좌 ......
부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조만간 조선인에 대한 징용이 더욱 확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 된다면 긴또깡 역시 징용대상에 포함될 것입니다.
대좌 그래서.....?
부관 굳이 죽이기 보다는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대좌 징용이라...어차피 징용에 끌려갈 것이다......?
부관 그렇습니다, 대좌님...
대좌 .........생각을 해봐야겠군. (사이) 참, 저녁에 약속이 잡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부관 하이...(시계를 보고는) 이제 일어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대좌 명월관이라고 했던가? 아니, 총독부에서 학무국장이 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인가...? 그것 참.... 준비하라.
부관 하이..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대좌 그래...
부관이 나간 뒤에도 대좌는 쉽게 결정이 서지 않는 듯 잠시 서성거리다가 외투를 집어든다.
씬 우미관
김영태가 하야시의 전화를 받고 있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김영태 ......예...예...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하야시 오야붕께도 그리 전해 주십시오. 그럼....
김영태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모두들 침을 삼키며 김영태를 쳐다본다.
정진영 뭐라고 하던가요? 일이 잘 됐답니까?
김영태 아직은 뭐라 딱 부러지게 말을 할 수가 없다는구만..
김무옥 그것이 뭔 소리다요?
김영태 최선을 다했으니....하늘에 맡겨 보자는 말 뿐이었다.
개코 그럼 다 틀려분 것이 아닙니까요?
김영태 ......
정진영 하야시가 나선 이상 두한이를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그 안에 고노예 그 사람이 온다면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김영태 ...........
김영태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답답하기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의 무거운 표정에서...
대좌가 지배인의 안내를 따라 어디론가로 향한다. 설향이 한 쪽에서 옥란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옥련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구나..마음의 준비는 되었느냐?
설향 예....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한다.
씬 동 어느 방
문이 열리고 지배인과 대좌가 안으로 들어온다. 그곳에는 술상이 덩그렇게 놓여져 있을 뿐 아무도 없다. 대좌의 표정이 굳는다.
대좌 내가 너무 일찍 온 것인가?
지배인 그, 글세올습니다...제가 국장님께 연락을 드려볼까요?
대좌 아닐세. 놔두게..조금 기다리면 오시겠지.
대좌가 성큼성큼 자리로 간다.
지배인 그럼 전 잠시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요.
대좌 그리하게...
지배인이 밖으로 나가고 대좌는 정좌를 하고 앉은 채 잠시 시간이 흐른다. 그 때 설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향 (E)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대좌 ,,,,,,,?
대좌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설향이 들어온다.
대좌 아직 사람이 다 오지 않았다. 조금 뒤에 부를 것이니 나가 보거라.
그러나 설향은 아랑곳 않고 대좌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리며 앉는다.
대좌 (의아) 무엇이냐? 내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설향 학무 국장님께서 조금 늦으실 거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홀로 기다리시에 적접하실 것 같아 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대좌 그래?
설향 한 잔 올리겠습니다.
대좌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설향의 잔을 받는다.
씬 동 대문 밖
지배인이 서성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다.
지배인 도대체 어떻게 되신 거야? 이렇게 늦으실 리가 없는데...
연신 시계를 보는 그 모습에서...
씬 다시 방 안
대좌가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설향이가 술을 따라 올리려 하자 대좌가 제지를 한다.
대좌 그만 됐다. 벌써 연거푸 석 잔이나 마시지 않았느냐? 취해서 기다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설향 ..........
대좌 이상한 일이로구만..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나가서 지배인을 좀 불러오거라.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아야겠다.
설향 .........
대좌 뭐하고 있느냐? 지배인을 불러오라 하지 않느냐?
설향 .......죄송합니다. 대좌님께서 기다리시는 그 분은 오시지 않습니다.
대좌 ......?그게 무슨 소리냐?
설향 대좌님을 뵈올 길이 없어 학무국장님의 핑계를 드렸던 것입니가.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대좌 뭐, 뭐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향 용서해 주십시오.
대좌 용서....?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네가 나를 불렀다는 것인가?
설향 그렇습니다, 대좌님.
대좌 허허...이런 무례한 아이를 보았는가...?
설향 대좌님....?
대좌(너무도 기가 막히다)도대체 이유가 뭐냐? 나를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 말이다. 이런 심한 장난을 한 이유.......그 결과가 어찌될지 모르고 하였단 말인가?
헐향 죽을 각오를 하고 감히 이런 일을 꾸몄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대좌 뭐라?
설향 대좌님께서는 지금 제 목숨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부디 한 말씀만 들어주십시오. 이 미천한 것의 간청입니다.
대좌 요시...말해보거라. 그토록 간절한 청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설향 감사합니다. 혹 지금 헌병대에 잡혀 있는 김두한이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대좌 긴또깡....? 또 그 자의 이야기인가?
설향 그 분은 제게 목숨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 분이 죽는다면 저 또한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좌 그래서....(사이, 한참 보다가) 긴또깡을 풀어달라는 것인가?
설향 그렇습니다.
대좌 (어이가 없는 듯)그야말로 기가막히는군. 허허허..
설향 가진 것은 천하디 천한 몸둥아리 하나지만 제 청을 들어주신다면 대좌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평생 대좌님의 종이 되어 살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대좌 (싸늘하게) 기생년의 몸둥아리야 어느 사내나 살 수 있는 것...네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보아하니 너는 긴또깡이라는 그 자의 계집인 모양인데..
설향 예. 한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모두 드려서 저의 주인으로 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제가 결정한 일이지 그분께서 하신 일이 아니십니다. 저는 아직 남정네를 뫼신 적이 없습니다. 대좌님께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대좌 ........? 아직 남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헌데 내가 원한다면 그리할 수도 있다...? 긴또깡에 관한 생각이 대단하구나. 역시 조선의 기생들은 절개가 대단하다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로군.
설향 ......
대좌 하하하. 계집의 첫정이라...거래를 할 만하군.
설향 ..............
대좌 좋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네 뜻을 사겠다. 그래도 되겠는가?
설향 .........
대좌 왜....? 갑자기 두려운 겐가?
설향 .............
대좌 그런 것인가? 하하하....역시 말뿐이었는가?
설향 그럴 리가 있습니까?
설향은 서서히 일어나 한거풀 한거풀 옷을 벗어내린다. 대좌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진다. 설향이 막 속치마를 걷어내려는 즈음....
대좌 그만.....(사이) 그만해라. 요시....쓸만한 아이로구나.
설향 ........?
대좌 (일어서며) 좋다. 계집에게 있어서 정조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일평생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너의 뜻은 알았다.
설향 ........
대좌 긴또깡에게 한번 기회를 주겠다. 어서 옷을 입어라...(방문을 나가다 말고) 너와 같은 계집의 사랑을 받다니...긴또깡, 그 자는 아주 운이 좋은 녀석이다.
대좌가 나가면 설향은 자신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흐느끼는 설향의 얼굴에서....
씬 대좌의 차안
대좌가 생각이 많다. 한참만에 대좌가 입을 연다.
대좌 부관..
부관 하이..
대좌 긴또깡, 그 자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부관 .....?
대좌 헌병대에 도착하는 즉시 긴또깡을 일반 감방으로 옮기도록 하라. 그리고 우리 헌병대에서 가장 무술 실력이 출중한 군인 셋을 차출해놓도록 하라.
부관 알겠습니다.
대좌 다시 말하지만 우리 헌병대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군인들이어야 한다. 알겠나?
부관 하이..
대좌 ............
씬 남산 헌병대 외경(밤)
대위 (E)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씬 동 대좌실
대위가 대좌의 책상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위 소관의 짧은 생각으로는 대좌님의 조치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대좌 건방지구나, 대위. 감히 내게 항명을 하려는 것인가?
대위 긴또깡은 우리 헌병대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대좌 결정은 이미 내린 것이다. 돌아가라!
대위 대좌님?
대좌 귀관도 긴또깡이라는 자가 두려운가? 우리 헌병대 최고의 군인 셋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래도 두려운가?
대위 ........
대좌 고문이나 목숨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당한 승부에서 우리 군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본관은 생각한다. 귀관은 어느 것이 대 일본 제국의 군인 정신에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사이) 할말 있는가?
대위 .........?
대좌 무얼 하는가? 돌아가 명령을 시행하라.
대위 (절도 있게 부동자세를 취하며) 하이, 대좌님.
씬 동 헌병대 영창 복도
두한이 헌병대원들에게 의지해 질질 끌려오고 있다. 어느 감방에 이르러 한 헌병이 문을 열면 두한을 부축해온 헌병들이 두한을 감방에 밀어넣는다. 쓰러져 신음하는 두한의 모습에서....
하야시 김두한에게 살 길이 열린 것 같구나.
미우라 그렇습니까?
하야시 헌병대에서 가장 뛰어난 군인들 세 명을 물리쳐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지만 말이다.
시바루 무술 시합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럼....?
하야시 그렇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게야. 사흘간 몸을 추스릴 시간을 준다기는 하지만 과연 그 때까지 회복을 할 수 있을지...그게 관건이 될 것 같구나.
시바루 ..........
하야시 사흘 후다. 사흘 후면 김두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하야시의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헌병대 외경
씬 동 헌병대 체육관
대좌를 중심으로 장교들이 포진해 있고, 수많은 사병들이 둘러싸고 있다. 출입문이 활짝 열리며 헌병대원들과 함께 도복을 입은 두한이 쩔뚝거리며 들어온다. 두한을 향한 헌병대원들의 눈길이 매섭다. 헌병들이 대좌의 앞에 두한을 데려와 세운다. 침묵이 흐른다. 두한을 고문했던 데위가 날카롭게 두한을 보고 있다.
대좌 긴또깡...우리는 너를 단죄하기보다는 헌병대의 명예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너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두한 ........
한 쪽에 정좌해 있던 도복 차림의 세 사람이 일어선다.
대좌 저들은 우리 헌병대에서 뽑은 최정예 군인들이다.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만약 네가 저들을 이긴다면 이곳에서 내보내 주겠다. 하지만 네가 쓰러진다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다.
두한은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다.
두한 좋소. 그렇게 하겠소.
대좌 ......시작해라.
대좌의 말이 떨어지자, 먼저 거구의 사내가 나선다. 유도로 단련된 듯한 그는 두한과 잠시 탐색전을 벌인다. 어느 순간 무뎌진 발놀림 때문에 두한이 거구의 사내에게 붙잡히고 만다. 거구의 사내가 두한을 낚아채 그대로 던져버린다. 두한이 나가 떨어졌다가 힘겹게 다시 일어난다. 거구의 사내가 다시 두한을 향해 덤벼들면 두한은 계속해 나가 떨어진다. 대위를 비롯한 헌병들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 그러나 대좌는 실망한 표정이다. 공격과 방어는 계속된다. 두한이 거푸 나가떨어져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도 다시 버티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일전일퇴를 거듭하다가 거구의 사내가 몰리기 시작한다.
두한의 주특기인 발차기가 상대의 턱을 강타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치열한 접전...
결국 거구의 사내가 두한의 발차기에 고목나무 쓰러지듯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체육관 안에는 무거운 신음이 흐른다. 대위는 주먹을 쥐며 분해한다.
그리고 대좌는 아직은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헌병들이 거구의 사내를 끌고 나간다.
대위 (낮고 강하게)요시모토 소위.. 나가라. 반드시 명예를 회복하라.
요시모토 하이.
대위 놈은 지쳤어.
곧바로 눈매가 날카로운 두 번째 상대가 앞으로 나온다. 역시 태산처럼 거한이다.
대좌가 고개를 끄덕여 시합을 속개하라는 표정을 보낸다. 양쪽이 자세를 취한다.
다시 두 번째 사내가 두한을 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내던지면 두한이 공중으로 날아가 매트에 내려꽂힌다.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사내가 다가간다. 그대로 두한을 다시 집으려 드는데 그대로 일어나며 역시 턱과 가슴을 내려찍는다. 그 사내가 비틀하며 뒤로 물러선다.
모두 우 하며 본다.
두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 사이에 결과를 점칠 수 없는 무서운 접전이 벌어진다. 동시에 서로의 급소를 가격하고 쓰러지는 두한과 상대. 사내가 먼저 일어선다.
두한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시선이 어지럽다. 이대로 쓰러질 것인가?
대위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대위 이겼어....이겼다구....대좌님, 끝난 것 같습니다.
대좌 글쎄.....
대위 보십시오...저기....
하다가 대위는 그만 입을 다문다. 두한이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두 번째 사내가 다시 공중을 날며 두한을 치고 넘어선다. 두한은 다시 뒹군다.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대좌도 이번에는 실망의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두한은 또 일어서고 있다. 주먹을 쥐며 그렇게 섰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렇게 마주한 두 사람. 그리고 또 다시 두 번째 사내의 공격이 시작되는데 빈틈이 보였다.
두어 번 헛 공격을 하다가 김두한의 결정적 발차기에 목이 꺾인다. 그리고 그대로 육중한 소리와 함께 매트에 나가 떨어진다.
독오른 김두한의 표정이 쓰러진 사내를 보며 돌고 있다. 우 하는 사람들의 표정.
대좌는 특히 충격이 컸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위가 악을 쓰듯 소리친다.
대위 요이, 하세가와.....
하세가와 하이.....
대좌 ..........?
세 사내 중 가장 큰 거구였다. 몸집으로도 그는 김두한을 압도할 듯 다가서며 바라보고 있다. 지친 김두한이 그를 보고 있다.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시선에 불꽃이 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