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5부 징 12회
골재를 운반하는 덤프 기사인 두 명은 윤목현과 박태식이었다. 그들은 24번국도 확장 공사 현장에 골재 운반을 하고 있었으며 그 중간에 박달수가 사는 마을이 있었고 이 두 사람은 이 길을 오갔다.
오 형사는 두 사람이 몰고 다니는 차 오른쪽 뒷바퀴에서 뼛조각 하나를 빼냈다. 덤프트럭 뒷바퀴는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바퀴 두 개를 끼우는데 그 바퀴와 바퀴 사이에 간혹 이물질이 끼이는데 박경일 사건의 경우 차가 지그재그로 주행을 해 앞바퀴로 치이고 뒷바퀴로 깔아뭉개는 끔찍한 사고였다.
“사고난지가 3일이나 지났는데 그 뼛조각이 아직도 끼여 있다는 게 이상하군.”
“회사 기록을 보니까 3일 동안 일을 안했더라고요.”
“기사가 안 나오면 회사 차가 쉬나?”
“지입이니까요. 그러니까 개인 사업자인 샘이죠.”
반장은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인육을 먹는 노파와 인육을 가져다 준 사람을 오른쪽 사람들 이라고 하자 또 인육살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을 왼쪽 사람들 이라고 하자. 오른쪽 사람들은 인육살인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음으로(그 이유는 아직 모름)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먹는 사람들로 지목된 박경일 이라는 사람이 드러나자 꼬리를 자르듯 서둘러 박경일을 살해했다. 그런데 외쪽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예상 하고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놓았고 그래서 인육살인 사건보다 오른쪽 사람들이 부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면?
“반장님….”
“응-?”
“윤목현과 박태식이 자수를 했습니다.”
“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하자 그 자리에서 112로 자수를 했답니다.”
“음……, 결국엔 또 꼬리가 잘렸군.”
두 사람은 항상 조를 이루어 탕 띠기 운행(한번 실어다 주는데 얼마씩의 운임을 받는 지입 기사들의 운행 형태)을 했는데 그 전날 과음을 한 관계로 졸음운전을 하다가 앞서가던 윤목현 이가 피해자를 차로 받았단다.
“어제 냉면집에 갔었지?”
“예!”
“일은 안하고 냉면집은 왜 갔었나?”
“연 이틀 술만 먹었더니 속이 쓰려서 냉면으로 속 좀 풀려고요.”
“마주 앉는 게 둘은 왜 나란히 앉았지? 둘이 사귀나?”
“사귀다니요. 천만에요. 제가 하도 죽는다고 그러니까 태식이라는 친구가 그래도 살아야 된다고 위로하면서 옆에 앉은 것입니다.”
‘아- 이자들은 이 부분까지 심문을 준비해 왔다. 도대체 이자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반장이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 저들의 뒤를 캘 여지는 없어져 버렸다. 연이가 조사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을 심문 실 창문을 통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백 형사가 물었다.
“어제 일어난 흥신소 직원 교통사고와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까?”
“모르겠어요. 그 부분은. 하지만 확실한 건, 인육연쇄살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거예요. 그들이 관련 있었다면 제가 알았을 거예요. 아마도….”
“치매 할머니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
“지금 노인 병원에 입원 시켜 놨습니다. 지능이 모자라는 손자는 장애인 시설에 들어갔고요.”
“누가 그런 결정을 했나요?”
“마을 사람들이 읍사무소에 민원을 넣어서…. 어제 그렇게 됐답니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왜?”
“글쎄요-.”
마을의 누군가 누구의 사주로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치매 할머니가 어떤 식으로든 인육살인 사건에 영향을 줄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연이가 백 형사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 간 때는 점심 시간이 다 돼서 였다. 고일령은 서울 본사에서 특파된 기자들과 사건 전반을 취재 하느라 연이랑 동행을 못했다.
“고기자가 없어서 좀 외롭겠습니다.”
“저희 연인 사이 아녜요.”
“연이씨 혼자만 그러고 고기자는 아닌 것 같던데…”
노인 병원은 보절면으로 들어가는 초입쯤에 있었다. 소나무 숲속에 있는 분홍색 병원 건물이 따스해 보였지만 연이는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치매 할머니는 침대에 묶여 있었다. 발광을 하고 사람에게 가해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담당 간호사가 변명하듯 말했다.
“할머니…”
“……괴기줘? 괴기! 이 잡것이 내 괴기를 뺏어갔어.”
“할머니 이치만씨 아세요? 제가 그 딸이에요. 연이.”
초점 없이 흐려지는 치매 할머니의 눈, 백 형사는 그 눈에서 이슬을 보았다. 분명 이슬 이었다. 그런데 치매 할머니가 그 이슬을 감추고 있었다. 치매 할머니는 이치만 이종 동생을 기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종 동생을 안다고 해서 이상할 일이나 의심할 일이 없는데도 노인은 왜 치매를 가장해서 외면할까?
연이가 할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구구한 삶이 스치듯 지나간다. 일본 순사, 인민군, 국군, 빨치산, 시위자, 죽음, 새마을 운동, 대통령 선거. 그리고 삿대질 하는 악다구니…
‘아- 이 노인의 어깨에 어찌 이리 많은 질곡의 삶이.’
“이년아. 밥 줘- 밥, ”
할머니가 연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머리를 맡긴 채 뜯기는 연이…. 그 눈에 눈물이 고이고 눈물이 고인 만큼 할머니의 눈엔 광기가 찼다. 간호조무사들이 달려와 할머니를 제지하고서야 연이는 풀려날 수 있었고 한줌의 머리카락이 뜯겨있었다.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백 형사가 연이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화단이 있는 마당에 때 이른 코스모스가 몇 송이 피었는데 빨강 분홍 그리고 검붉은 색이 섞여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할머니가 연관되어 있지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할머니가 연이씨를 모른 체 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연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뜯겨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백 형사의 차를 탔고 차는 운봉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나며 가히 오래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곳 열 곳이 정감록에 있는데 그곳은 영월의 정동 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 합천가야의 만수동 동북 쪽, 부안 호암 아래, 보은 속리산의 증항 근처, 남원 운봉의 동점촌, 안동의 화곡,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이 그곳이다. 지금 그 말을 믿는 일가가 연재를 넘어 운봉으로 들고 있었다.
“아버님. 아직 멀었남요?”
“아직 하루해는 더 가야 할 것 같구나.”
“배가 땅겨서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못 걷 것 그만요.”
“그래 좀 쉬자.”
이윤봉 이라는 영감이 살길을 찾아 운봉을 찾아 든 때는 철종 때였는데 쇠락한 왕권에 세상은 더더욱 살기가 곤궁하여 지고 살기가 힘든 만큼 혹세무민 감언이설이 난무하였는데 특히 정감록이 그러하였다. 혹자는 퇴계 이황이 지었다 하기도하고 혹자는 이지함이 지었다 하기도 하고 혹자는 신선이 지었다 하기도 하는 이 책에 운봉이라는 지명이 일곱 번이나 언급 되며 일신을 안위하고 난세를 넘길 길승 지라고 하였다.
“아버님, 참말로 운봉으로 가면 난세를 넘기고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 곳이 있나요?”
“아가야. 정감록이라는 예언서가 틀린 적이 없단다. 우리가 임금을 믿고 살겠냐? 나라를 믿고 살겠냐? 아니면 저 도적놈 같은 관리들을 믿고 살겠냐? 우리가 믿을 것은 오로지 우리 스스로가 재난을 피하고 살길을 찾는 것이란다.”
“우리 애가 배곯지 않고 난리 피하고 살 곳이 있다면야 산속인들 어떻고 바닷간들 어떻겠습니다. 그저 무식한 저는 아버님이 가잔 대로 따라 갈랑 만요.”
청상인 며느리 윤 씨가 턱밑을 치받고 올라오는 배를 식식거리며 보따리를 이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고개 아래에서 징 꽹과리 북 날라리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이거 시 먼 소리대요?”
“글쎄다….”
관복을 입은 사람이 말을 타고 패랭이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봇짐을 지고 뒤따르는 풍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 끝을 돌을 돌아 끝이 보이지 않는 장대한 행렬이었다. 앞에서 북치고 나팔 부는 사당패는 또 누군가. 누구 장원 급제라도 한 것일까. 예부터 운봉이라는 데가 권문세가의 행세가 대단 하다고 하더니 또 누군가 고관대작이 대어 고향으로 금의환향을 하는 모양이라고 여긴 윤영감이 등짐을 추스르며 깃발을 유심히 본다.
[정삼품 통정대부 송흥록]이라 쓰여 있다. 장대한 행렬이 윤 영감 앞으로 지난다. 나팔소리 날라리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크다.
빠---앙
흔들리는 차 휘청 거리는 시선, 그리고 몸이 기우뚱 거리면서 하늘이 뱅글 뱅글 돌았다. 그리고 누군가 흔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씨… 연이씨…”
“백 형사님.”
“괜찮아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트럭을 피해 백 형사가 핸들을 꺾어 낭떠러지로 미끄러졌다. 잡목이 우거진 여원재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 트럭과 충돌하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잡목이 부러지고 차창이 깨졌지만 안전벨트를 한 덕에 두 사람은 무사할 수 있었고 앞뒤에서 뒤따르던 차량 운전자들과 구급 대에 구조될 수 있었고 그들은 곧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
“백 형사님 차량 번호는요?”
“7바 95-6685”
김 형사가 무전기로 차량 조회를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린 답은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라는 것이다.
“가짜 번호판이군.”
“정말 죽이려고 그랬을까요?”
“아니, 그랬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를 않지.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뒤 차 누군가가 따라와서 샌드위치를 만들었겠지.”
“그럼…?”
“경고를 주려는 거야. 더 이상 접근 말라는.”
백 형사의 말에 김 형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수사관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고 느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선을 넘어선 사람치고는 너무 의연했다. TV에서 백 형사와 연이의 교통사고를 대선 주자들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 A당과 B당의 대선 주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혐의점이 있지 않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정치판 공기돌이 된 인육살인 사건과 수사진은 풍랑에 일렁이는 작은 돛단배처럼 일렁이고 출렁였다.
->계속
첫댓글 오늘도 세편 연속으로 보고 갑니다. 뜨믄 보니 앞 줄거리를 잊어 연결이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