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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찬양방송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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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나의나된 신앙간증 스크랩 수술후의 이야기(1)
마라토너 추천 0 조회 127 08.10.24 19:3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수술 전날의 설레임은 꼭 군 하사교육대 입소전날의 생소한 흥분과 외로움에 입술을 앙다물고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유치하지않으려는 그런 심정이었다.

내가 입원해있던 병실은 정형외과 병동이었는데 장기이식에 관한법률에 의거 기증자와 수혜자가 서로 알수없어야 하기에 가족간에도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혀다른 건물의 다른층에 위치한 병실을 배치한것이었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엄청난 실수를 유발할뻔했다.

내용인즉 수술당일 설잠을 자고 새벽 4시30분 잠에서 깨니까 여자간호사한분이 오시더니 내게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변기를 잡고 있으라고 한다.
나는 깜짝놀라 뭐하는거냐고 했더니 관장을 해야만 수술을 할수있으니 자기네 병동에서 일반외과 병동으로 인수인계를 하기전에 수술준비를 완료해서 보내야 하는데 인턴선생님이 오시지 않아 자기가 할수없이 한다고 하였다.
그때 난 아무리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나이어린 여자간호사가 내가 의식이 있는상태에서 내성기며 항문을 직접만지며 면도를 하고 관장약을 넣는것을 용납할수 없었다.
그래서 관장만은 내가 할테니 나가있으라 하고 일단물약을 마시고 그동안 잘못된 식사로 비대해진몸때문에 손이 좌약을 항문에 넣기가 매우 곤란하였지만 상당한 시간을 노력한끝에 겨우겨우 끝내고 잠시 후 속이 니글니글 하며 토할것같고 옆구리가 켕길정도로 속이 꿈틀거리며 대변의 신호를 보내기에 깨끝이 속을 비웠다.

관장을 하고 나니까 이번엔 배와 성기주변의 털을 면도기로 깍는다고 이번엔 남자 간호사가 간이 침대를 밀고 와서 누우라고 한다.

넓은 주사실은 서늘하고 추웠고 침대위에서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상의의 단추를 전부 풀은상태에서 면도기로 쓱쓱 성의 없이 밀었다.

침대위에 누워남자간호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올려다보는 내기분을 정말 묘했다.

다음단계는 콧줄을 끼우는 일이었는데 이번 수술에서 가장 아프고 이런경우는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마음에서 꼭 적고 넘어가야 겠다.

침대위에 뉘인상태에서 다시 건강해보이는 군인정도연령의 짧은머리 인턴선생님에게 인계되었는데 2m 정도의 고무줄을 2개 가지고있었다.
그중1개를 글리세린을 묻혀 내 코속으로 밀어 넣는데 아프지않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난 정말 콧속에서 불이나는것처럼 아프고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한쪽눈을 감고 한쪽눈에선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학창시절 체육선생님께 담배피다 들켜서 한쪽귀를 잡혀서 끌려가는 애들의 외마디 소리처럼 콧속으로 고무관이 들어가는동안 - 아 - 아 - 아 -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고무관이 목구멍을 통과하여 들어가자 기도가 막히는지 너무나 숨이막혀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내가 두손으로 고무줄을 급하게 잡아뺐다.
콧속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목구멍에서 상처가 났는지 입으로도 침과 피가 넘어왔다.
헛구역질을 하며 눈물과 콧물 피가 범벅이 되어 있는 내모습은 거울이 없어도 보이는듯했다.

인턴선생님은 다시하자고 하고 나는 정말 못하겠다고 버티다가, 이러면 수술을 못하고 이 몇일이내에 수술을 못하면 대상자는 돌아가실수 밖에없다고 엄포를 놓는바람에 난 할수 없이 다시 응했는데 이번에는 더 아프고 목구멍을 통과한길이가 너무 길어서 숨이막혀서 잡아 빼는데도 많은시간이 흘럿고 나는 아프고 피가 쏟아지고 지쳐서 견딜수가 없었다.

인턴선생은 다시 고무관을 들이대고 나는 못한다고 손을 내젓고 결국 세번째 시도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피만 쏟아내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힘든일이 있었던가!

난 기진맥진해서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 앉았고 다신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인턴선생은 수술시간을 맞춰야 한다고 성질을 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듣지말아야할 말을 들었는데 여기에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술을 못하게 될경우 배상 어쩌고 저쩌고 하는말을 하는데 주먹으로 한대 날리고 싶었다.

순간 줄이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의 수술후 병문안 갔을때 보았던 기억을 되새기며) "이거말고 더 작은 사이즈는 없어요" 했더니 "아 잠간만요 또있나, 찾아볼께요" 하고는 다른굵기의 두개의 고무관을 가져오더니 이게 맞겠네요 하며 다시넣는데 이건 술술들어간다.
들어가는 길을 건드려놔서 들어갈때만 아프지 다들어갔는데 숨이막히거나 하지도 않는다.

콧소리가 나는 상태에서 내가 이거 해보긴 해본겁니까 했더니 대학 본과에서 해보고 처음이라고 한다.

정형외과병동에서 이런수술을 준비할 기회가 없었고 또한 이후에도 없을것이기에 그분에겐 미안하지만 법규와상관없이 귀중한 기증자의 아름다운마음을 어설픈 사람에게 손상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난 그날 아침 내가 죽을수도 있었던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턴선생은 내눈치를 살피며 시간이 늦었다며 부랴부랴 링거주사에 무엇인가를 타넣고 따로 어디였는지 기억은 나지않지만 마취 주사를 놓았다.

이어 양쪽으로 문이열리는 철문을 열고 내 침대를 밀고 들어갔는데 불이 환하고 조금 춥다는 느낌을 받으며 기억을 잃었다.



다시 기억이 들었을땐 그냥 잠간 잠들었던것 같은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것 같았고 작고 스산한 바람소리같은걸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

눈을 떠보니 옆으로 간호사 선생님이 지나가는데 "나 수술안해요" 했더니 생긋웃으며 "성현모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서 기증자 수혜자 모두 건강해요"
"어디 불편하신데는 없나요"하고 묻는다.
이때 고개를 움직일수없어 눈동자를 돌려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건너편벽에걸린 시계가 01시15분인지 03시 05분인지 모르지만 그시간이었던거만 보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깨어 났을땐 1월22일11시가 좀넘어서 였다.

눈을뜨면서 천천히 아픔을 느끼끼 시작하는데 몸이 완전히 고정이 되어있어서 내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고개를 숙여서 볼수가 없었다.

내가 신음소리로 깨어났음을 알리자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왔는데 상냥한 목소리로 무통마약주사기기의 사용과 가래를 뱃는 요령, 간호사 호출요령 침대사용요령을 가르켜 주었다.

손목과 발목에 채워놓았던 족쇄를 풀어 무의식중에 몸을 훼손하는걸 막으려 해놓은건 해제 했지만 내 몸에는 아직도 목에 줄세개, 양손목과 팔뚝 배 에 줄세개, 소변줄 등 12개정도의 각종줄을 매달고 있었고 내 몸은 손가락하나도 내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잠시후 간호사께서 밖에 가족이 와있는데 만나시겠냐고 물어서 ok 했더니 아내와 직장의 조장,반장님이 들어오셨다.

아내는 내손을 잡아주면서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는데 그순간은 진심어린 눈동자로 날 염려하고 있었다.
이어 조장,반장님도 내게 격려와 칭찬을 하시며 내손을 잡았다.

마음으로 흐믓하고 기뻣다. '해 냈구나. 그래 난 또하나의 내 세계로의 진입을 한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좀 힘이들어 돌아 침대를 낮추려 하는데 이번엔 다른분들이 들어오시며 내손을 잡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수혜자 가족입니다. 하고 말하는데 난 정말 반가웠다.
세분이었는데 특히 부인과 큰딸이 내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손을 잡고 울며 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치며 내 아내의 손도 잡고 조장,반장님께도 인사를 하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분들의 뜨거운눈물은 내 인생의 가장 값진 결과였다.

내가 과연 진정한사랑을 실천하느라고 한행동일까? ,
울리는꽹과리가 아닐까? 하고 성경 고린도서13장의 말처럼 내 행동에 많은 고심을 했었는데 수혜자 가족의 눈물을 본순간 난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순간에 난 알게되었다. 하나님께서 날 가르치려고 이런 경험을 시켰구나 하는

지금도 다른이들에게 하는말이지만 사랑은 받는것도 좋은일이지만 주는것은 말로 다할수없는 기쁨을 얻는일이라는것을 난 그순간이후 확실히 알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기쁨을 얻고 경험을 얻고 또한 한생명을 얻는시간이었지만 지금부터는 그 댓가가 얼마나 큰지를 깨닿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고통은 어디까지인지모를 여러가지로 다가 왔다.

첫째 잠이들면 꿈에 시달렸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되는 때부터의 정말여러가지를 다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데 하루하루 내머리속에 기억되어있던 모든것이 펼쳐지는데 약 1년치 정도의 세월이 꿈속에서 정말 실감나게 지나가고나서 잠에서 깨면 2 - 3분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이 들어있는 시간은 온몸이 쑤시고 아퍼서 몸살나서 한참 신음할때 정도의 아픔이 계속되어서 마약 주사 버튼을 연신 누르다가 다시 잠이들면 조금전 꿈의 뒤를 이어 다시 꾸는데 이상하게도 지난시간들 중에도 기억하고 싶지않은 부분만은 유독 확실하게 실감나게 재현되었다.

또 일년치 이년치정도를 지나가는데 길어야 3 - 4 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하루에도 이러기를 수차례 거듭하면서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픔과 가래를 뱉는 고통에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쳐야 했다.

처음엔 보고싶었던 아이들의 얼굴을 꿈에서 보고 반갑고 부끄러워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지만 계속되니까 정말 괴롭고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못하고 꿈에 시달리다보니까 몸이 뜨겁고 숨이 차서 견딜수가 없었다.


둘째 가래와의 전쟁은 내게 지난시간의 오류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으로 정말 혹독하고 가슴아픈 일이었다.

숨이 차도록 기도가 막히고 옆으로 비스듬이 몸을 기울이며 pet병 반자른 가래받이에 헛기침을 가슴을 쥐어짜며 해대도 숨이 가쁘긴 마찬가지였다.

니코틴이 섞인 검은색의 가래는 내 지난 학창시절부터 계속되어온 흡연의 이력서였고 난 담배를 끊은지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 흔적은 내폐포깊은곳에 아직도 또아리틀고 있다가 내가 가장힘들고 약할때에 날 괴롭히고 있었다.

내옆에 같이수술한 사람들이 건너다 보였는데 나보다 5살정도가 적은 젊고 건장한 사람은 나이트크럽 사장이라고 하는데 나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중에 나와 이야기 하였지만 그때 차라리 죽고싶었다고 한다.
살기위해 사촌동생의 간을 이식하고 사촌동생에게 취업과 얼마간의 현금보상과 집을 사주었는데 니코친때문에 기도가 막혀 그걸 억지로 뱃어내느라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차라리 온몸에 매달린 줄들을 제거하고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수십번을 가슴을 쥐어짜고 헉헉 거리며 가래를 뱃어내도 나오는 양은 정말 작은양이고 수술후 3 - 4일 동안 내가 겪은 가래와의 전쟁은 이후 내가 만나는 모든사람들에게 흡연의 아픔(?)에 대해 꼭 말해준다.

셋째 등창이 나서 엉덩이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중환자 실에서 돌보아 주는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등을 움직일수 없어 그대로 침대 시트에 붙여놓고 지내니 등은 물컹 물컹 생살이 썩어서 띁어져 나왔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2일째 되는날부터 등이 자꾸 가렵기 시작하더니 뜨겁고 아프기까지 하였다.

3일째 되는날부터는 등에서 국물같은것이 나오기 시작하여 입원실로 올라올 즈음엔 완전히 살이 묻어나올정도로 썩어있었다.

수혜자 가족들이 간병을 해줄수가 없어서 간병인을 붙여 주셨는데 50대 중반의 체격이 좋으신 아주머니 셨는데 내가 고통을 호소하자 나를 엎어놓고 등과 엉덩이를 보시더니 깜짝놀라며 치료를 받으라고 하였다.

지금도 엉덩이에 검은흔적이 남을 정도로 살이 따로 놀고 있었다.

아주머닌 내가 좋은일을 하였다고 자기가 받는보수와 상관없이 정성을 다해 등과 엉덩이를 맛사지 해주고 새벽이나 밤이나 내가 대변을 보려고 하면 부끄러움없이 날 돌보아 주셨다.

퇴원하실때 까지 정말 고마우신 분이었는데 연락처도 모른채 헤어진건 내가 잘못한일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지나갈때마다 몸에 붙여놓았던 줄이 하나씩 줄어 들더니 퇴원할 즈음에 마지막으로 배속에서 빠지던 피고름 줄까지 제거하고 나자 자유롭게 병원안을 운동삼아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녔다.

수술후 입원실에 와서 열흘만에 다른사람들 보다 2일에서 5일정도 빠르게 퇴원을 하게 되었고 병원서 나올때 가지고 갔던 차는 거기다 세워 놓고 아내의 차를 타고 나오게 되었다.

수술전 같이있던 강릉할아버지께 인사를 갔더니 강릉에 한번 꼭오라며 6인실 병실에 계신모든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선생님은 정말 부처님 예수님 이라고 소개를 해서 또한번 민망한 인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수원에 오니 그래도 집이 최고 였다.

내맘대로 공원에도 가고 자전거 탄어린이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지를 그때 처음알기도 했는데 배에 난 상처를 복대로 감싸긴했지만 아직 피가나는 상태였는데 만일 아이들하고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일 이었다.

집에서 아들과 딸과 컴퓨터를 가지고 서로 오래하겠다고 싸우다 슬쩍 사라져 P C방에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정말 한가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부작용이 또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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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0.25 20:57

    첫댓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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