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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약 1시간 30여 분을 달리면 버스는 휴게소로 들어간다. 금봉이휴게소는 충북 충주시와 제천시 사이 고갯길 마룻턱에 있는 쉼터로 그러니까 강원도의 오지 영월로 허위허위 넘어가기 직전 한숨 돌리는 깔딱고개 정도쯤 되겠거니...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가슴 아픈 사연 품은 고갯길에 있는 휴게소인 듯 하지만 오늘 가 보면 저 아래 아스라이 보이는 제천시가 무심히 안갯속에 젖어 있음에, 해서리 사람들은 시절이 수상하다 하는지 모르긋네...
그넘의 경상도 젊은이 박달도령은 대고개(竹嶺) 넘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서 이쁘디 이쁜 금봉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네. 과거에 급제하고 내려 오면서 데려가겠다던 박달도령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금봉이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과거시험에 낙방한 그넘의 갱상도 청년은 소식조차 없으니 기다리다 지친 금봉이는 상삿병(相思病)으로 죽고 말았으니...뒤늦게 찾아온 그넘의 박달도령은 이미 차안(彼岸)으로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해 절벽 아래 몸을 던져 그녈 찾아 갔다나 뭐래나...
박재홍 선생의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나오는 가사를 보면, '천등산(天登山) 박달재에~'라 하지만, 실상 충주와 제천 사이에 있는 해발 807m의 천등산을 넘어가는 고개는 박달재가 아니라 다릿재라고 한다나 뭐래나, 쩝! 뭐이, 원박사 만나러 영월 가는 길에 만나는 게 박달재면 어떻고 다릿재면 또 어떨까? 어쩌다 양놈 지갑 줍듯 이쁜 여인네 귀신 만나면 어얼쑤, 더더욱 좋고야.
금봉이휴게소 지나 20여 분 가면 드디어 영월읍(지방자치법 제 7조에 의하면 읍이라 불리려면 인구 2만 명을 넘어야 되는디 2023년 현재 영월군 전체 인구가 37,000명이니 읍은 개코...)이 나온다. 버스에서 내려 대략 3~4분 정도 걸어가면 원박사가 사는 아파트가 나오고, 거기서 영월군청이 도보로 3분 정도의 거리니까 아! 이 친구 중심지 이른바 다운타운에 살고 있구만 그랴.
내가 어릴 때 사람들이 한 말이, 강원도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이 밥 숟가락 입에 떠넣는 걸 보면 알 수 있다던데...그게 뭔 말이냐면, 강원도 사람들은 노란 수수 알갱이로 지은 밥을 먹다 보니 숟가락으로 입에 떠 넣을라치면 수수가 흘러내리기 땜시 자기도 모르게 왼손이 숟가락 아래를 떠받치고 있대나 뭐래나...
촉나라의 첩첩산중에 사는 dog가 하루 3시간 하늘에 겨우 머무르는 해를 보고 짖는다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의 오지(奧地)에 다름없는 읍내에서 원박사를 만나 점심 먹으러 20여 분을 걸어 장릉(莊陵)까지 걸어갔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곁들여 걸으면서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조선 초기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의 시조 문득 떠올렸다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의 사당을 지나 장릉에 올라보니 부귀영화가 따로 없고 흐르는 세월 이길 자 없다더만, 그때의 단장(斷腸)의 아픔은 어딜 가고 둘러처진 소나무들 사이로 시신(屍身)같은 적요(寂寥)만이 감돌더만...보리밥집은 몇 년 전 직원연수 때 와서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는데 원박사 덕분에 오늘 다시 찾았네 그랴. 보리밥비빔에 두부 한 접시, 그리고 동강 막걸리 한 잔으로 덧없는 세월 무심히 보냄을 설워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