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태에서 시속 200km까지의 도달 시간 7.2초, 180마력의 최고출력과 144Nm의 최대토크, 짐승이라 불리는 KTM 1290 슈퍼듀크R의 제원이다. 1190 RC8 R(이하 RC8)에서 빌려온 LC8 75° V트윈 엔진은 보어와 스트로크를 105mm X 69mm에서 108.0 X 71.0mm로 증가시키며 더욱 강력해졌다.
1301cc의 엔진은 8,870rpm에서 180마력의 최고 출력을 내고 6,500rpm에서 144Nm의 최대 토크를 분출한다. 자사의 990 슈퍼듀크R에 비해 40%이상 향상된 토크이며, 6,500rpm에서는 RC8에 비해 40%나 증가한 토크 특성을 갖췄다.
엔진의 회전한계는 10,500rpm이다. 독특한 점은 10,250rpm에 이르러서야 최대 출력이 나오는 RC8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회전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피스톤의 무게가 47g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린더의 보어 증가에 따라 피스톤 직경이 오히려 3mm 늘어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KTM이 질량 경감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엔진 자체의 무게도 990 슈퍼듀크R 보다 가볍다.
길들이거나 맞서 싸우거나
1290 슈퍼듀크R의 무지막지한 가속력 앞에서는 전자 제어 시스템에 인색한 KTM도 조금은 친절해졌다. 보쉬의 기술이 적용된 라이드 바이 와이어 (Ride By Wire) 스로틀 컨트롤은 레인, 스트리트, 스포츠의 세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빗길 주행을 가정한 레인모드에서는 100마력으로 출력이 제한되며, 휠스핀이 최대한 억제된다. 스트리트 모드는 스로틀 저개방 시의 출력을 낮춘 설정으로 공도 주행에 최적화 되어있으며, 스포츠 모드는 리어 휠의 파워 슬라이드까지 허용, 1290 슈퍼듀크R의 모든 잠재력을 개방하는 설정이다.
슬리퍼 클러치의 채용은 급격한 시프트 다운 시의 백토크를 차단하고, 트랙션 콘트롤은 다양한 주행 장면에서의 안정감을 확보한다. 트랙션 컨트롤은 연료나 점화를 차단하는 직접적인 방법 대신, 스로틀 플레이트로 흡기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시 말해, 트랙션 콘트롤을 온(ON)한 상태에서조차 윌리가 가능하다.
프론트와 리어가 연동되는 콤바인드(Combined) ABS는 보쉬의 9ME를 채택했다. 두카티의 1199 파니갈레와 같은 사양이지만, 1290 슈퍼듀크R은 기본적인 온/오프 외에도 슈퍼모토(Supermoto) 모드를 탑재해 KTM만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슈퍼모토 모드를 선택하면 프론트에 ABS가 동작하는 동안에도 리어휠의 슬라이드가 가능하다.
320mm 더블 디스크로 구성된 프론트에는 브렘보의 M50 모노블록 캘리퍼를 장착했으며, 240mm 싱글 디스크 사양의 리어 브레이크는 2피스톤 브렘보 캘리퍼를 채용했다. 브렘보의 래디얼 캘리퍼는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한 설정으로, 오작동을 최소화하면서도 필요 시 즉각적인 제동력을 보여준다.
타이어는 1290 슈퍼듀크R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던롭 스포츠스마트2(SportSmart II)를 장착했다. 던롭 스포츠스마트2는 고속 주행 안정성 및 젖은 노면에서의 탁월한 그립력을 인정받는 제품으로, 1290 슈퍼듀크R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타이어 사이즈는 프론트가 120/70-17, 리어가 190/55-17이다.
짐승의 등에 올라타다.
레이싱 오렌지 컬러의 트렐리스 프레임(125/200 듀크는 검은색)과 최소한의 카울, 도립식 포크는 KTM 듀크 시리즈의 특징이다. 배기량에 관계없이 디자인의 공통 분모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규모의 차이를 선명히 느낄 수 있다.
크롬-몰디브덴 소재의 트렐리스 프레임에 둘러싸인 엔진룸은 1301cc의 엔진으로 인해 꽉 들어차다 못해 비어져 나올 듯한 형상이고, 18.5리터의 연료탱크는 웅크린 짐승의 등처럼 불거져 나왔다. 반면, 헤드라이트의 위치는 내려가 한층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프론트와 리어에는 화이트파워 서스펜션을 채용했다. 듀크 시리즈가 엔트리 클래스인 125/200 듀크에도 고급 사양의 화이트 파워 도립식 포크를 사용한 것은, 지난 1995년 KTM이 화이트 파워를 인수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290 슈퍼듀크R에 장착된 최고급 사양의 48mm 프론트 포크는 좌우의 댐핑과 리바운드가 개별적으로 동작하는 타입으로, 튜브 끝의 핑거 트위스터블 노브 (finger twistable knob)를 조절해 댐핑을 조절할 수 있다.
대구경 머플러는 트윈 엔진의 독특한 연소 간격으로, 흡사 짐승이 그르렁 대는 듯한 배기음을 낸다 (공식 사이트인 http://www.1290superduker.com/cms/은 1290 슈퍼듀크의 배기 사운드를 따로 준비해놓았다). 스윙암은 체인 가드를 겸하는 형태로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으며, 이밖에 휠과 핸들에도 아낌없이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차체 경량화의 노력으로 1290 슈퍼듀크R은 배기량 1301cc의 엔진을 탑재했음에도, 건조중량이 189kg에 불과하다.
THE BEAST
레이스 버전의 1290 슈퍼듀크R
1290 슈퍼듀크R에 짐승이라는 닉네임이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압도적인 파워? 다루기 힘든 특성?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와같은 설정의 모터사이클은 경쟁 브랜드에도 존재하지만, KTM의 1290 슈퍼듀크R과는 다르다. 단순 제원으로는 말할 수 없는, 날것(Raw)과도 같은 주행 감각에 집착하는 KTM의 고집스런 철학만이, 비로소 이 명칭에 어울리는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흔히 날것이라고 하면 구식 제품에 대한 향수, 곧 기술의 부재로부터 오는 낭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KTM이 1290 슈퍼듀크R을 통해 보여주는 날것은 그러한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오히려 숨소리마저 재현하는 기술의 극한, KTM의 ‘짐승’은 가장 정밀한 기술을 통해 그 첨예한 성능의 한계점으로 라이더를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