쨈 오래전 개봉작이지만...파이트 클럽...
좋은 영화져..
얼마전 비됴로 봤습니다.
(개봉할때 보려했지만 실패했어요..흐흑)
첫눈에도 대박(?)이란 걸 알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부분, 가구 카달로그를 그대로 에드워드 노튼의 방을 연결시킨 씬은 죽이져..
하지만 끝까지 보는데 실패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넘 피곤해서...
당시 제 생활은 정상이 아니었죠...
조만간 다시 보려 합니다. 꼭...
아래 글은 필름 코멘트에 실린 데이빗 핀쳐의 인터뷰인데 (물론 전 국내 사이트에 실린걸 퍼왔지만...) 꽤 흥미롭습니다.
파이트 클럽은 보고 실망하신 분들은 인터뷰를 읽어보면 쨈 이해가 가실 거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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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감독 "데이빗 핀처" 와의 인터뷰
Q: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하자고 했던 것입니까?
나는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이걸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만든다?"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10대 후반이나 20대에 성인이 되지 않고 30대 들어서야 성인이 되는 사람들을 위한 <졸업 (The Graduate)> 같은 성년식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점점 더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반면 감정적으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늦은 나이에 성숙해지는 서로 상반되는 조류가 흐르고 있다. 이건 불교에서 나온 말인 것도 같고 잘은 모르겠지만, 깨우침의 길로 가기 위해선 부모와 신과 스승을 죽여야한다나 그런 개념이 있다. 에드워드 노톤이 연기하는 인물은 29세인데 그는 자기가 배워 온 모든 방법대로 사회에 맞게 자신을 뜯어 맞추려 했던 사람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아라, 좋은 직장을 얻어라, 이렇게 이렇게 행동해라, 이런 가구를 사고 이런 차를 사고 이런 옷을 입어라, 그래야 행복해진다"라는 식의 강의를 내내 받아 들여왔던 그는 그래도 결코 행복해지지 않자 그런 틀린 말을 한 부모를 죽여버린 상태고 영화는 이 시점에서 인물을 소개한다. 인물은 이 상태에서도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는 해방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타일러 더든을 만나게 되고 둘은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일, 나중에 생각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부모에게서 해방된 20대가 범할 수 있는 그런 모든 것을 하는 것으로 신에게 도전한다. 그렇지만 결국 인물은 스승인 타일러마저도 죽이게 되고 이렇게 볼 때 영화는 그의 성숙과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Q: 그럼 내레이터는 "보통사람(everyman)"을 대변합니까?
물론이다. 모든 보통 젊은이. 다시 한번 <졸업>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는데 그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수 많은 가능성과 기대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의 한 순간에 서서 그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다. 미세스 로빈슨이란 길을 선택한 인물은 그것이 황량하기 그지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것은 지나야 하는 입문 과정이고 견뎌야 하는 불의 시험이다. 모든 것을 엉망으로 하는 틀린 길이기는 하지만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파이트 클럽>은 90년대가 내어 놓은 <졸업>의 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가능성은 커녕 단 한가지의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은 인물, 정말 어떻게 자기 인생을 바꾸어야할지 상상마저도 허락안되는 그런 인물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Q: <졸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풍자고요?
쇼핑몰로 정의되는 근대 사회에 대한 스타일화된 비젼이라고 할까? 영화가 말하는 개념들은 사실 간단하다. 인간은 사냥을 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지금 쇼핑을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죽일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고, 극복해야 할 것도 없고, 탐구해야 할 것도 없는 이런 거세된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이 오늘의 "보통사람"이다.
Q: 영화 속의 타일러의 말을 빌리면 "자기 개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어쩌면 자기 파괴만이 삶의 해답일지 모르겠다"했는데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그 말을 믿는다. 특히 그 말이 전달되는 방식이 좋았는데 책에서의 타일러는 이미 어떤 경로를 통과하고 내레이터도 자기와 같은 경로를 통과하기를 조급하게 기다리는 그런 인물로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일부러 이런 느낌을 없애고 특히 브래드의 아주 예리한 충고대로 설교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을 모두 없애려고 했다. "이걸 알아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거고 이것은 헛소리다"식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무엇을 잃는다는 것에는 항상 두 가지 측면이 있지 않을까? 몇 년을 걸려서 골라 모은 그 모든 소중한 물건들을 잃어야 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서 그것들에 대한 책임에서 해방된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좀 심오하게 말하면 그런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책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결국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고 내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Q: 마치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내는 것 같군요.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같은 길을 가는 거야. 나는 네가 지금 나를 때린다면 무척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나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번 해 봐. 네가 정 싫다면 안해도 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Q: 영화의 각본에는 처음부터 관여하셨나요?
그렇다. 구상단계에서 판에 박힌 말들이 오고 갔는데 가령 "보이스오버 처리를 하면 안된다. 그건 지팡이에 기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따위의 말이였다. 초벌 원고를 받아 본 나는 금방 "왜 보이스오버는 없냐?"고 물었고 그랬더니 한결같이 "보이스오버는 이야기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방편이다"라고 답했고 나는 "보이스 오버가 없으면 이건 그냥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일 뿐이지 유머를 도무지 느낄 수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에서 어떤 느낌을 내야하나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을 했는데 나는 "이건 영화도 아니고 TV도 아니고 TV 채널을 바쁘게 돌려서 보는 것도 아니고 어떤 느낌이어야 하냐 하면 컴퓨터에서 풀다운 메뉴를 보는 것과 같아야 한다. 두르르 내려서 보고 또 다음 것을 두르르 내려서 보고 이건 다운로드해야겠다 하고 정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사람의 생각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런 영화가 되야 하고 그런 속도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촬영 기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게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를 가졌던 부분 중의 하나인데 즉 얼마나 시간 속을 누비면서, "뒤로 잠깐, 오케이, 아니지, 이건 시발점인데? 그렇지 여기서 이 인물을 만났지..."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현 시점에 도달했다가 다시 또, "이건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고 후진을 하는 대화 방식같은 전개를 할 수 있나 하는 것 이였다. 이건 나래이터가 두서없이 하는 생각을 그대로 표방한 것이기도 했다.
Q: 그런 공간과 시간의 자유가 주는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영화가 갈 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말하자면 결국 컨텐트와 컨텐트의 균형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을 항상 내러티브 위주로 정밀하고 필수적이게 만들 필요는 없다. 많은 장면들은 순전한 내러티브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덤으로 보일 수 있지만 테마를 쌓아 가는데 있어서는 꼭 필요할 수 있다.
Q: 오프닝 샷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타이틀 시퀀스는 사람의 두뇌에서 공포를 관리하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설정 했다. 입 속에 넣은 총구의 방아쇠가 재워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 속에선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사고하는 프로세스들이 가동되고 시냅스(씨네서울 주: synapse, 신경세포의 연접부)들은 맹렬히 움직이고 화학적 물리적 반응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이렇게 해서 전시(戰時)가 선포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추적해 보고 싶었다. 영화는 순전히 생각과 어떤 식으로 인물이 생각하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또 관점도 완전히 인물의 관점이기 때문에, 이렇게 머리 속에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이 괜찮게 느껴졌다. "망할, 난 이제 갔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지?"하는 공포에 대한 아주 즉각적인 반응을 시작으로.
Q: 그런 불가능한 카메라 동작을 위해서 CG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방침을 세워 놓으셨나요?
CG는 나에겐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기적인 방법이였을 뿐, "와- 이런 효과를 쓰면 멋지겠다" 이런 건 조금도 염두에 없었다. 책에서는 니트로글리세린 만드는 방법과 내레이터의 아파트가 폭발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추측하는 부분들이 아주 장문에 걸쳐 설명되는데 이걸 어떻게 보여주나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경찰이 나중에 알려준 바에 의하면 점화불이 꺼지면서 가스가 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이걸 보여주려고 레인지로 컷할 것 만이 아니라 카메라가 가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스콜세지의 영화 에서 항상 사랑해 온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영화에서 전화기가 주는 위협적인 느낌이다. 그 영화에서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를 받는 순간 카메라가 냅다 그리로 달려가는데 그럴 때면 정말 누가 전화를 걸어오는지 절대로 알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가령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차의 냄새를 말하고 싶으면 우선 차에 가까이 가서 이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거기서 올라오는 스팀을 보여주고 그 스팀을 따라서 방 속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보여준 다음 그 중에 냄새를 맡는 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바로 같은 내용을 내레이터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이야기해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의 유머가 바로 이런 데 있는데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에서는 아주 냉소적이고 빈정대는 투인 이 소설은 어떤 디테일의 설명에 가서는 병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네이팜은 이렇게 이렇게 만드는 거야하는 조리법을 설명하듯 아주 자상해 진다.
Q: 결국 의식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다. 영화는 의식의 흐름을 표현했고 그래서 따라 가는 것이 재미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오로지 인물에게 생각 나는 것 만큼, 그에게 생각이 날 때 마다 조금씩 제공된다. 영화의 처음 40분은 순전히 그의 광적인 정신상태에 젖어들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냉장고 뒤에 뭐가 있다고 하면 벌써 그곳으로 가고 그가 폭탄 이야기를 하면 곧 바로 열어 젖힌 창문 밖으로 카메라가 30층을 떨어져서 보도를 뚫고 그 밑의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그곳에 주차해 있는 밴 트럭에 나 있는 총 구멍으로 들어 갔다가 옆으로 빠져 나오는 그런 식이다. 처음 40분동안 영화는 당신은 이런 이런 것을 볼 것이고 인물은 이런 이런 말을 할 것이며 이 두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고 서로가 서로의 설명이 된다는 것을 설정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아 참 아까 보여준 것 있지 사실은 그게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뒤에는 또 이런 것이 있었어" 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인터뷰기자 경고문]
아직 <파이트 클럽>을 안 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최상의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위해 다음부분은 읽지 말고 넘어 가십시요. ▶ 넘어가기
Q: 솔직히 나는 반전을 예상 못했습니다.
당연하다. 그런데 간혹, "근데 나는 알았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나는 "거짓말 말아" 라고 말해 주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걸 모르게 하려고 우리는 산더미 같은 돈을 주고 각기 다른 두 사람을 배우로 썼지 않는가 말이다. 반전은 그걸 알아차려서 똑똑하고 못그래서 바보이고 하는 것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인물이 도달하는 자기발견 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관객을 속인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관객은 욕을 본 기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친구가 내게 해 준 명언이 하나 있는데 "관객이 영화에서 바라는 것은 두가지, 나는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과 내겐 아무 죄도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보여 준 사람들 중에는 "이 놈아, 또 이 따위 <게임> 같은 영화를 만들어서 나를 병신으로 만들려고 해?"하며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속임수가 아니라 메타포다.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이 실제로 빌딩을 폭파하고 다니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저 내면의 혼란과 분노에 휩싸여 혹시 이런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보고 그것의 구현으로 타일러를 만들어 내는 그런 인물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연히 뒤따르는 실험과정에서 니체의 초인(ubermensch)개념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모호한 도덕적, 윤리적 과제들과 싸우게 된다. 니체는 대학교 일학년 남학생들사이에선 잘 나가는지 모르지만 30대, 40대 초반 사람들에게는 별로 해 줄 이야기가 없는 저자다. 영화 마지막의 대립도 결국은 같은 이야기다. 타일러 더든은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지만 실제가 아니며 공감할 수도 없다. 그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야 할 법도 없고 생활에서 부딪치는 개념들을 이상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타협을 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은 그와 같을 수 없다. 현대인의 비극은 바로 그가 사는 세상이 별로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다 구현되었고 돌리기만 하면 된다. 고맙지만 그대는 그저 인터넷이나 접속해 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Q: 에드워드 노톤 인물은 한번이라도 이름이 붙여지든가요?
스크립트 상에서는 잭이라고 불렀다. 엔드 크레딧에는 "내레이터"라고 나온다
Q: 소위 문학에서 말하는 "믿을 수 없는 내레이터"에 해당하나요?
그렇고 말고다. 그는 전혀 믿을 수 없다.
Q: 그런 것을 나타내려면 도대체 어떤 스테이징을 해야하지요?
우선 타일러에 관해서는 미리 룰을 많이 정해 놓았다. 타일러는 여러사람이 들어 간 씬에선 절대 투 샷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타일러가 어떤 의견을 말 할 때면 오버 더 숄더 샷을 피하고 항상 혼자 따로 나오도록 했다. 영화의 처음 두 릴에는 타일러가 에드워드 노톤 인물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잡힌 프레임이 대 여섯 개 정도의 샷에 들어갔다. 가령 의사가 노톤에게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보고 싶으면 화요일 밤 제일 감리교회에서 열리는 고환 암환자 미팅에 가 봐라 그럼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안다라고 말하는 씬에서 의사 어깨 너머로 타일러가 한 프레임 동안 반짝하고 들어간다. 사람들을 뒤에 배경으로 하고 타일러를 찍은 것을 한 프레임만 뭉개 붙였다. 타일러가 자신이 돌리는 필름에 남자 성기 프레임을 붙여 넣듯 우리는 그의 모습을 붙여 넣었다. DVD로 보면 볼 수 있다. 이런 수법을 종종 썼는데 노톤과 타일러가 비행기에서 보는 텔레비젼 호텔 광고에서 연회시설을 선전하는 웨이터들이 함께 "환영합니다"하고 말하는 샷 속에도 브래드를 살짝 끼워 넣었다.
Q: 나는 플래시 프레임이란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타일러 자신이 장난 친 영화를 보고있다는 것으로쯤 이해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다. 끝에서 빌딩들이 폭파하는 부분에도 남자 성기가 들어간 프레임을 두개 붙여 넣었다.
Q: <게임>의 인물도 모든 것을 박탈 당하고 보이는 그 아무 것도 액면대로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 영화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인물이 굴욕적인 기분이 되는 것에서 두 인물은 사촌지간이라 하겠다. <파이트 클럽>은 더 심하다면 심한데 인물은 자기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과 상종해야하고 그를 신봉하다가 차츰 그의 사상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자기자신의 사상이며 저질러 놓은 문제들은 모두 자기가 저질러 놓은 문제들이며 자신이 바로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Q: 스타일면에서는 어떤 것을 시도하셨습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음침하게 휘황한 느낌을 주는 것이였다. 무서움 없이 색깔을 마음대로 쓰는 팔레트를 택하기로 했다. 밤중에 편의점에 가면 시퍼런 형광불 밑에 비닐 팩들이 번쩍거리고 있는데 그런 것 같이 사람들도 광이 나게 만들고 싶었다. 헬레나는 빛을 발하는 메이크 업을 많이 발라 헤로인 중독자나 시체의 얼굴같이 창백한 빛이 돌게 했다. 진정한 낭만적 허무주의자인 그녀 인물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제프 크로넨웨드 (촬영감독)와 나는 해스컬 웩슬러의 <청춘일기 (American Graffiti)> (씨네서울 주: 웩슬러는 이 영화의 비쥬얼 자문이였음)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밤 배경들은 평범하면서도 색깔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그러면서도 스타일에 달리 신경을 쓴 것 같지 않아 마음에 든다. 또 우리 영화는 일부러 더럽게 보이게 하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필름 프로세싱 과정에서 일부러 보기 싫으라고 어떤 곳은 노출을 좀 덜 시키고 어떤 곳은 실버링을 다시 해서 대조를 과장했고 고명암대비 프린트를 쓰는가 하면 그것을 일부러 때묻히고 번들거리게 하는 작업을 했다.
Q: 실버링을 다시한다(resilver)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데요?
일종의 수정작업인데 프로세싱 과정에서 표백된 질산은을 다시 본딩시키는 작업이다.
Q: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러면 색의 농도가 아주 진해 보인다. 검은 색은 말할 수 없이 진하고 더러운 느낌이 된다. <세븐>을 만들 때도 이런 수법을 조금 썼었는데 그 때는 주로 보기 좋게하는 목적이였지만 이번엔 보기 싫게하는 것이 목적이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세트를 택했지만 페이퍼 가의 집 (주인공이 머무는 집)은 예외였다. 미국 서부에 그런 5미터도 넘는 천정을 한 빅토리아 스타일 집이 있을 리 없다. 알렉스 맥다우웰 (프로덕션 디자이너)과 나는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 (사진작가)의 책을 많이 들여다 봤는데 그 책은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 같은 모텔을 전전 하는 삶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말라의 아파트는 세트였는데 그것은 LA의 로잘린드 아파트 단지 어느 방에서 그가 찍은 사진과 똑같다. 우리도 그냥 그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은 다음 "바로 이거야 이대로 만들어 달라"하고 부탁을 했다. 사무공간은 되도록이면 실제 회사 건물을 물색해서 그곳에 가서 "오케이 여기 여기 칸막이 설치하고 찍자"하는 저예산 스타일의 진행을 했다.
Q: 아이키아(씨네서울 주: 가구및 생활용품을 파는 대형 체인 상점) 카달로그 씬은 어디서 나온 아이디어입니까? 그것을 보는 순간 이런 영화는 처음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에서는 인물이 자기가 사서 모은 물건들을 나열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우리는 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보여주지? 이런 구매 충동의 절정이 얼마나 공허하고 깊이가 없는 2차원적 인생의 모습인가 하는 것을 어떻게 전달하지?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걸 그냥 그대로 카달로그에 넣어 보면? 하는 안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모션 컨트롤 카메라로 우선 에드워드가 세트 속을 걸어가는 것을 찍은 다음, 세트를 팬하는(돌아가는) 카메라를 찍고, 세트에 들어가 있는 각가지 아이템을 찍고, 이것들을 모두 합성한 다음, 특수 프로그램 처리를 통해 전체가 같이 팬하도록 만들었다. 행복이란 개념의 모조품 속에서 사는 그를 말 그대로 아이키아 카달로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준 것이다.
Q: CF도 만드는 감독인 것을 감안할 때 개가 주인 손을 무는 격이 아닌가요?
글쎄다. CF건 무엇이건 물건을 팔려고, 당신은 이상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되야한다며 나르시즘을 부추기는 행동을 몹시 냉소적으로 본다. 그런 것에 걸려들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기를 내심 바랄 따름이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저예산 식으로 찍은 것을 후회스럽게 생각한다. 완전한 시퀀스로 이것을 만들었다면 무척 재미있었을 것 같다.
Q: 감독으로써 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에 구속 받기는 싫다. 나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는 어떤 것인가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있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한 영웅 - 이런 따위의 영화에는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은 이미 많이들 만들고 있다. 친구가 말하기를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 중 적어도 한 명은 변태고 우리 이웃 중에도 꼭 한 사람은 수상쩍은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Q: 감독이라는 직업에서 가장 창의적인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생각하는 것. 처음에 모든 것을 생각해 내는 부분, 세트 디자인을 하고 연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그것으로 창의적인 부분은 완전 끝나 버린다. 그리고 그때부턴 말 그대로 전쟁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치뤄야 하나?" 하는. 99%는 계략이고 1%는 영감인 상태에서. 어떤 때는 촬영을 끝내고 "야- 이것이 바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구나"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질문을 해 오고 재깍거리는 시계와 함께 재깍 재깍 모든 일들이 순조로이 나아가는 그런 때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어떻게 처음 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지켜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순간 화를 내는 것으로 인해 집중이 흩어져서 그것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 답안 찾기와 우선 순위 책정이 일이다. 씬을 끝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데..."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주 종종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머리 속에서 만들어 본 것과 모든 것이 똑같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물에 오줌을 싸는 격으로 무언가 그래도 추가를 했으면 됐지 한도 끝도 없이 퍼부으면 나중엔 아주 완전히 말라 버리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듯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도 아이 같이 "여기서 그냥 놔 줘, 꼭 그렇게 끝까지 끌고 가려고 하지 마"하고 말하는 것이 영화다. 나는 <페르소나>(씨네서울 주: 잉마르 베르히만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영화 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하는 것이 비교적 뻔하게 나타나지 내부에 숨어있지 않다. 내부에 숨어있는 것은 어떻게 같은 정보를 가지고 독자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프로세싱하나 하는 것이고 그것이 영화의 서브텍스트 이기도 하다.
나는 엘리아 카잔도 아니다. 관객을 위해서건 배우 자신을 위해서건 배우를 다시 재창조해 내는 것은 내 분야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주변 디테일에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관객이 별로 힘 안들이고 인물이 된 듯 착각할 수 있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 책상 옆에 서서, 그런 불 빛을 받는 것이 납득이 간다" 이런 식의 논리로. <게임>을 찍으면서 마이클 더글라스하고 나는 이런 것 때문에 많은 말을 주고 받았는데 그는 "여기서 이렇게 해야 나중에 이것이 말이 된다"라고 말하고 나는 "그래? 내가 보기엔 그건 내러티브에서는 말이 될지 몰라도 여기서 그 누구도 그렇게 행동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하겠다면 배우로써의 이기심을 마음껏 부려서 해 봐, 나는 나대로 그것이 다시금 납득이 되도록 상황을 꾸밀테니까.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는 나에게 맡기고... 이 부분에서 아직 화를 낼 필요는 없어, 나중에 여기서 화를 낼 것인데, 관객에게 얼마나 화를 잘 내는 능력이 있나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했다. 가끔은 감독이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기심이 충동하는대로 행동해 봐,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을 꼭 해야 하게끔 만들어 봐. 나만 너에게 넘어야 할 숙제를 줄 것이 아니라 너도 나에게 넘어야 할 숙제를 주어보라"고.
Q: 그럼 처음 마음 먹은대로 된 것은 어떤 것이였습니까?
하나도 없었다 (웃음). <세븐>에서 빅 밥이 테이블 위에 놓인 스파게티에 얼굴을 처박고 있듯이 영화도 그 꼴이 될 줄 알았다.
Q: <파이트 클럽>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나는 계속 내 자신에게 "철 좀 들어라, 그렇게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냥 놓아 둘 것은 놓아 두라"고 타일렀다. 완전 똥칠을 안하게 방향을 잡아 줄 것만 잡아 주되 그 다음엔 생겨난 결과를 최대한 잘 편집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너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진실이 충분히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진실은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다. 스케쥴, 예산,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은 있어도 모든 것이 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그런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최대의 능력있는 캐스트를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방해가 안되면 그만이였다. 이 영화는 26살에서 34살사이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브래드와 에드워드는 이 연령 구별을 뚜렷이 보여주었고 생각하는 방식에서도 달랐다. 에드워드 노톤은 그의 세대의 대변자 같았고 그래서 중요한 많은 무엇을 영화에 가지고 올 것 같았다.
Q: 그러면 감독으로 돈을 벌고 그 일을 즐긴다는 것 이외에...
하나도 안 즐긴다.
Q: 그렇다면 무슨 욕구를 충족하느라고 이 일을 합니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일을 포함한다. 투자자들을 꼬시는 것부터 쇼를 차리는 것, 인생을 몇몇 순간으로 정화시키는 것, 되도록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전기로 된 미식 축구 세트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조각품 만들기도 좋아하고 만화나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현상하고 녹음을 하고 놀았는데 이런 것이 모두 영화다. 결국 어른이 안되는 방법이다. 4차원 체스 게임을 하는 것 같이 전략을 짜는 작업이고 아플 정도로 정직하면서도 상상을 못할 정도로 속이고 그 중간에 해당하는 모든 것도 다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어릴 때 방 속에 틀어 박혀서 몇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망할 놈의 손이 머리 속에 들은 것을 제대로 그려주지 않아서 애가 타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면 항상 언젠가는 내가 실력을 쌓아서 머리 속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게 되고 그러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면 내 머리 속의 것을 드디어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방법을 터득한 거고 나의 가치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고 페인팅을 포기했고 조각을 포기했고 연기를 포기했고 사진을 포기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계속 더 어려운 것을 시도했다 - 오로지 머리 속에 들은 것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이것은 다분히 자학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항상 이런 말을 하게 된다 - "이제 이것을 모두 다 잘 조립하기만 한다면, 이제 사운드만 내가 듣고 싶은대로 녹음할 수 있다면..." 말이 나서 얘긴데 에드워드의 보이스오버 녹음을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 목소리는 마치 생각인 것 같이 들려야 하는데 마이크를 다섯 종류나 써 가면서 녹음을 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생각같이 들리지는 않고 누가 말하는 것 같이 들리는 것이였다. <블레이드 러너>의 보이스오버도 잘 들어보면 누가 변기에 앉아서 녹음한 것 같이 들린다. 용변을 보면서 소리를 내서 책 읽는 사람같이 들린다. 어떻게 그런 것을 피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모든 문제들에 도전하는 것이 영화다.
1999년 9/10월호 개빈 스미스 (Gavin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