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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金萬重)
<전략>
성진이 석교(石橋) 위에 오래 있어 선녀 가는 곳을 바라보더니 구름 그림재 사라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진정하거늘, 바야흐로 석교를 떠나 스승을 가 뵈니 늦게야 옴을 묻거늘 대답하되,
“용왕이 관대(款待)하고 만류(挽留)하니 능히 떨치고 일어나지 못할러이다.”
대사,
“물러가 쉬라.”
하거늘 저 있던 선방(禪房)에 돌아오니 날이 어두웠더라.
성진이 여덟 선녀를 본 후에 정신이 자못 황홀하여 마음에 생각하되,
‘남애(男兒ㅣ) 세상에 나 어려서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면 장쉬(將帥ㅣ) 되고 들면 정승이 되어, 비단 옷을 입고 옥대를 띠고 옥궐(玉闕)에 조회(朝會)하고, 눈에 고운 빛을 보고 귀에 좋은 소리를 듣고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고, 공명(功名)이 후세에 드리움이 또한 대장부의 일이라. 우리 부처의 법문(法門)은 한 바리 밥과 한 병 물과 두어 권 경문(經文)과 일백여덟 낱 염주뿐이라. 도덕이 비록 높고 아름다우나 적막하기 심하도다.’
생각을 이리하고 저리하여 밤이 이미 깊었더니, 문득 눈앞에 팔 선녀 섰거늘, 놀라 고쳐 보니 이미 간 곳이 없더라. 성진이 마음에 뉘우쳐 생각하되,
‘부처 공부에 유로 뜻을 바르게 함이 으뜸 행실이라. 내 출가한 지 십년에 일찍이 반점(半點) 어기고 구차한 마음을 먹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이렇듯이 염려를 그릇하면 어찌 나의 전정(前程)에 해롭지 아니하리요?’
향로에 전단(方舟 檀)을 다시 피우고, 의연히 포단(蒲團)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어 염주를 고르며 일천 부처를 염하더니, 홀연 창 밖에서 동재(童子ㅣ) 부르되,
“사형(師兄)은 잠들었느냐? 사뷔(師父ㅣ) 부르시나이다.”
성진이 놀라 생각하되,
‘깊은 밤에 나를 부르니 반드시 연괴(緣故ㅣ) 있도다.’
동자와 한가지로 방장(方丈)에 나아가니 대새(大師ㅣ) 모든 제자를 모으고 등촉을 낮같이 켜고 소리하여 꾸짖되,
“성진아, 네 죄를 아느냐?”
성진이 나려 꿇어 가로되,
“소재(小子ㅣ) 사부를 섬긴 지 십 년에 일찍 한 말도 불순(不順)히 한 적이 없으니, 진실로 어리고 아득하여 지은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대새(大師ㅣ) 이르되,
“중의 공부 세 가지 행실이 있으니 몸과 말씀과 뜻이라. 네 용궁에 가 술을 취하고, 석교에서 여자를 만나 언어를 수작(酬酌)하고 꽃을 던져 희롱한 후에 돌아와, 오히려 미색(美色)을 권련(眷戀)하여 세상 부귀를 흠모하고 불가의 적막함을 염(厭)히 여기니, 이는 세 가지 행실을 일시에 무너 버림이라.”
성진이 고두(叩頭)하고 울며 가로되,
“스승님아, 성진이 진실로 죄 있거니와 주계(酒戒)를 파(破)하기는 주인이 괴로이 권하기에 마지못함이요, 선녀로 더불어 언어를 수작하기는 길을 빎을 말미암음이니, 각별 부정(不淨)한 말을 한 배 없고, 선방에 돌아온 후에 일시에 마음을 잡지 못하나, 마침내 스스로 뉘우쳐 뜻을 바르게 하였으니, 제재(弟子ㅣ) 죄 있거든 사뷔(師父ㅣ) 달초(撻楚)하실 뿐이지 어이 차마 내치려 하시나이까? 사부 우러르기를 부모같이 하니 성진이 십이 세에 부모를 버리고 스승님을 좇아 머리를 깎으니, 연화도량(蓮花道場)이 곧 성진의 집이니 나를 어디로 가라 하시나이까?”
대새(大師ㅣ) 이르되,
“네 스스로 가고저 할새 가라 함이니 네 만일 있고저 하면 뉘 능히 가라 하리오? 네 또 이르되, ‘어디로 가리요?’ 하니, 너의 가고저 하는 곳이 너의 갈 곳이라.”
대새(大師ㅣ) 소리질러 가로되,
“황건 역새(黃巾力士ㅣ) 어디 있나뇨?”
홀연 공중으로서 신장(神將)이 내려와 청령(聽令)하거늘, 대새(大師ㅣ) 분부하되,
“네 죄인을 영거(領去)하여 풍도(豊都)에 가 교부(交付)하고 오라.”
성진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비같이 흘려 울고 머리를 무수히 두드려 가로되,
“사부는 성진의 말을 들으소서. 옛 아란존자 창녀에게 가 자리를 한가지로 살을 섞되 석가불이 존자를 죄 주지 아니하고 다만 설법하여 가르쳤으니, 제자 비록 죄 있으나 아란존자에 비기면 중치 아닌 듯하니 어이 풍도에 가라 하시나뇨.”
대새(大師ㅣ) 이르되,
“아란존자는 요술을 제어치 못하여 창녀를 더불어 친근하나 마음은 어지럽지 아닌지라. 너는 진세(塵世)의 부귀를 흠모하는 뜻을 내었으니 어이 한번 윤회(輪廻)의 괴롭기를 면하리요.”
성진이 다만 울고 갈 뜻이 없거늘, 대새(大師ㅣ) 위로하여 이르되,
“마음이 좋지 못하면 비록 산중에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고, 근본을 잊지 아니면 홍진(紅塵)에 가서도 돌아올 길이 있으니, 네 만일 오고자 하면 내 손수 데려올 것이니 의심 말고 행할지어다.”
성진이 하릴없이 불상과 사부에게 예배하고 모든 동문을 이별하고 역사와 한가지로 명사(冥司)에 나아갈새 유혼관(遊魂關)을 들고 망향대(望鄕臺)를 지나 풍도성에 다다르니 성문 잡은 귀졸이 묻거늘 역새(力士ㅣ),
“육관 대사 법지(法旨)로 죄인을 데려오노라.”
하니 길을 열어 주거늘, 바로 삼라전(參羅殿)에 이르니 염왕이 공사(供辭)하여 역사를 주어 보내더라.
성진이 전하(殿下)에 꿇으니 염왕이 묻되,
“성진아, 상인(上人)의 몸이 남악(南嶽)에 있으나 이름은 이미 지장왕 향안 위에 치부하였으니 불구(不久)에 큰 도를 얻어 높이 연좌(蓮座)에 오르면 중생들이 대도(大道)의 은덕을 입을까 하더니 무슨 일로 이 땅에 이르렀니뇨?”
성진이 가장 참과(慚課)하여 하다가 왕께 아뢰되,
“성진이 무상(無常)하여 노상(路上)에서 남악 선녀를 만나 보고 마음에 거리낀 고로 스승에게 득죄하여 대왕께 명을 기다리나이다.”
염왕이 좌우로 하여금 지장왕께 말씀을 올려 가로되,
“남악 육관 대사 그 제자 성진을 보내어 명사로써 벌하라 하니 여남은 죄인과 다를 새 취품(取稟)하나이다.”
보살이 대답하되,
“수행하는 사람의 오며 가기는 저의 원대로 할 것이니 어이 구태여 물으리요.”
염왕이 정히 성진의 죄를 결단하려 하더니 두어 귀졸이 들어가 사뢰되,
“황건 역사 또 육관 대사의 영으로 여덟 죄인을 영거하여 왔나이다.”
성진이 차언(此言)을 듣고 가장 놀라더니 염왕이,
“죄인을 불러들이라.”
하니 남악 선녀 팔 인이 청하(廳下)에 들어 꿇거늘 염왕이 물어 가로되,
“남악 여선(女仙)아, 선가(仙家)에 무궁한 경개 있고 무궁한 쾌락이 있거늘 어이 이 땅에 이르렀나뇨.”
팔 인이 부끄럼을 머금고 대 왈(對曰),
“첩등이 위부인 명으로 육관 대사께 문안하러 갔다가 길에서 소화상(小和尙)을 만나 언어로 수작한 일이 있더니, 대새(大師ㅣ) 우리를 부처의 깨끗한 땅을 더럽혔다 하여 우리 부중(府中)에 공사하여 첩등을 잡아 이리로 보내어 계시니 첩등의 승침(昇沈)과 고락(苦樂)이 오직 대왕 손에 있사오니 바라옵나니 대자대비(大慈大悲)하사 좋은 땅에 환도(還道)하게 하소서.”
염왕이 사자(死者) 아홉 사람을 불러 각각 비밀히 분부하여 보내더니 홀연 전 앞에 대풍(大風)이 일어나 모든 사람을 불어 공중으로 올라 사면 팔방으로 흩어지니 성진이 사자를 좇아 바람에 밀리어 표표탕탕(漂漂蕩蕩)하여 한 곳에 가 바람이 그치며 발이 땅에 닿았거늘, 정신을 차려 보니 푸른 뫼이 네 녘으로 두르고 시냇물이 굽이지어 흐르는데 대발과 푸른 집이 수풀 사이에 여남은 인가(人家)는 하더라. 사자가 성진을 인하여 한 집에 이르러,
“문 밖에 섰으라”
하고 안으로 들어가거늘, 양구히 서서 들으니 곁집 사람이 저희 같이 말하되,
“양 처사(梁處士)의 부처(夫妻) 오십에 처음으로 잉태하니 인간에 드문 일이러니, 임산(姙産)하연 지 오래돼 아이 울음 소리 없으니 염려롭다.”
하거늘, 성진이 저를 이르는 말 같으니 차언을 들으니 심중에 분명히 양 처사의 자식이 되어 날 줄 알고 홀연히 생각하되,
‘내 이미 인세(人世)에 환도하게 하였으니 이에 와도 분명히 정신만 왔을 것이니 육신은 분명히 연화봉에서 소화(燒火)하는도다. 내 나이 젊어 제자를 데리지 못하였으니 어느 사람이 나의 사리를 거두리요.’
이처럼 생각하며 마음이 자못 처창하더니, 사자 나와 소리쳐 불러 가로되,
“이 땅은 대당국(大唐國) 회남도 수의 땅이요, 이 집은 양 처사의 집이니 처사는 너의 부친이요, 처사의 처 유씨는 너의 모친이니 수이 들어와 길한 때를 잃지 말라.”
성진이 들어가 보니 처사 갈건 야복(葛巾野服)으로 당상에 앉아 약화(藥火)를 곁에 놓았으니 향내 코에 거사리고 방 안에 은은히 여자의 신음하는 소리 나더라.
사재(使者ㅣ) 재촉하여
“방에 들라.”
하거늘 성진이 마음에 의려(疑慮)하여 머뭇머뭇하니, 사자 뒤으로서 마이 밀치니 공중에 엎더져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 번복(天地飜覆)하는 듯하거늘 소리질러,
“나를 구하라.” 하더니 소리 목구멍에 나며 말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아이 울음 소리를 할러라. 은태 하례 왈,
“아기 울음 소리 크니 소낭군(小郎君)이로소이다.”
처사 약 보아를 가지고 들어와 부처 크게 기뻐하더라.
성진이 이후는 배 고프면 울고, 울면 젖 먹이니 처음은 마음 속에 남악 연화봉을 잊지 아니하더니, 점점 자라 부모의 은정을 아니 전생 일은 망연히 잊고 생각지 못할러라.
<중략>
“부는 어로셔 오신고.”
호승이 쇼 왈,
“평 고인을 몰라보시니 귀인이 니 타 말이 올토소이다.”
승샹이 시 보니 과연 치 닉은 거 홀연 쳐 능과 낭 도라보며 왈,
“소 젼일 토번을 졍벌 제 에 동졍 뇽궁의 가 잔고 도라올 길 남악(南嶽)의 가노니, 화샹이 법좌의 안져셔 경을 강논(講論)더니 노뷔 노화샹이냐.”
호승이 박장 대쇼(拍掌大笑)고 오,
“올타, 올타. 비록 올흐나 몽듕이 잠간 만나 본 일은 각고 십 년을 동쳐던 일을 아디 못니, 뉘 양쟝원을 총명타 더뇨.”
승샹이 망연(茫然)야 오,
“쇼위 십오뉵 셰 젼은 부모 좌하 나디 아녓고, 십뉵에 급제야 년야 딕명(職名)이 이시니 동으로 연국의 봉고 서로 토번을 졍벌 밧근 일 경(京師) 나디 아녀시니, 언제 부로 더브러 십 년을 샹죵여시리오.”
호승이 쇼 왈,
“샹공이 오히려 춘몽(春夢)을 게 리오.”
호승 왈,
“이 어렵디 아니 니이다.”
고 손 가온 셕장(錫杖)을 드러 셕난간을 두어 번 두리니 홀연 네 역 뫼골노셔 구이 니러나 대샹(臺上)의 이여 디쳑을 분변티 못니, 승샹이 졍신이 아야 마치 몽듕(醉夢中)의 잇 더니 오래 게야 소 질너 오,
“뷔 어이 뎡도로 쇼유 인도티 아니고 환슐로 서로 희롱뇨.”
말을 듯디 못야셔 구름이 거두치니 호승이 간 곳이 없고 좌우 도라보니 팔 낭 한 간 곳이 업지라. 졍히 경황(驚惶)야 더니 그런 놉흔 와 만흔 집이 일시의 업셔지고 졔 몸이 젹은 암 듕의 포단(蒲團) 우 안쟈시, 향노의 블이 임의 샤라지고 디난 이 창의 임의 빗최엿더라.
스로 제 몸을 보니 일여 낫 염 손목이 걸녓고 머리 디니 갓 근 마리털이 가츨야시니 완연히 쇼화샹의 몸이오, 다시 대승샹의 위의 쟤(行者ㅣ)인 줄 알고 각하니, 처음의 스의게 슈(受責)야 풍도(豊都)로 가고 인셰예 환도야 양가의 아되여 쟝원 급제 한님사고 츌댱입샹(出將入相)야 공명 신퇴(功名身退)고 냥 공쥬와 뉵 낭로 더브러 즐기던 거시 다 로밤 이라. 의 이 필연 뷔 념녀 그릇믈 알고 날노 여곰 을 어 인간 부귀와 남녀 정욕이 다 호 줄 아게 미로다.
▶ 어휘 풀이
관대(款待) : 정성껏 대접함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옥대(玉帶) : 벼슬아치가 공복에 띠던 옥으로 만든 띠
옥궐(玉闕) : 신선의 궁궐, 여기서는 그냥 궁궐을 말함
조회(朝會) : 모든 관리가 아침에 임금을 알현함
바리 : 중이 쓰는, 나무로 대접같이 만들어 안팎을 칠한 뚜껑 없는 그릇
반점(半點) : 매우 작은 것의 비유
유로 : 유독, 특별히
전정(前程) : 앞길
단 : 향나무, 단향(檀香)
포단(蒲團) : 부들을 엮어 둥글게 틀어 만들어서 앉는 방석
사형(師兄) : 나이와 학덕이 높은 사람, 불교에서 스승의 불법을 이어받은 선배를 일컬음
연고(緣故) : 까닭
방장(方丈) : 절에서 주지가 거처하는 방, 또는 그 주지를 일컫는 말, 사방이 한 장의 넓이가 되는 방
수작(酬酌) : 본래 술잔을 주고 받음이나 여기서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뜻
권련(眷戀) : 몹시 그리워함
염(厭)히 : 꺼리고 싫어함이
고두(叩頭) : 머리를 조아림
달초(撻楚) : 회초리로 때려 꾸짖음
연화도량(蓮花道場) : 연화봉의 사찰로 성진이 지금까지 도를 닦아 오던 곳
토번 : 당나라 때 티베트족을 부른 이름
화상(和尙) : 중의 존칭
법좌(法座) : 법연, 불법을 설명하는 자리
박장대소(拍掌大笑) :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망연(茫然) : 어이가 없어 멍함
상죵(相從) : 서로 의좋게 지냄
석장(錫杖) : 승려가 짚는 지팡이
환슐 : 남의 눈을 속임
슈(受責) : 꾸짖음을 받음
풍도(豊都) : 지옥
츌당입샹(出將入相) : 전쟁에 나가서는 장수, 평화시에는 재상이 됨
공명신퇴(功名身退) : 공을 세워 이름을 널리 떨치고 벼슬에서 물러남
▶ 전체 줄거리
중국 당나라 때 육관 대사의 제자로 있던 성진이 동정호의 용왕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팔 선녀를 만나 그 미모에 도취되어, 선방(禪房)에 온 후에도 불도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다가 육관 대사에 의해 팔 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되고 다시 인간 세상에 환생한다. 양소유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출세 가도를 달리며 역시 인간으로 환생한 팔 선녀와 결합하게 되어 아내 둘과 첩 여섯을 거느리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산다. 그러던 중, 문득 인생 무상과 허무를 느끼고 승려와 문답하던 중 꿈에서 깨어나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오게 되고, 육관대사 앞에서 본성을 깨우친 후 불도에 정진하여 극락 세계로 돌아간다.
▶ 핵심 정리
지은이 : 김만중(金萬重, 1637- 1692) 조선 숙종 때의 문신. 호는 서포(西浦). 숙종의 폐비에 반대하다가 남해에 귀양 가서 일생을 마쳤다.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정비(正妃)로 세운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국문소설인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지었고,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고 한다.
갈래 : 염정, 양반, 액자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액자 구성(현실 - 꿈 - 현실)
성격 : 불교적. 구도적
문체 : 산문체. 번역체
배경 : 현실 - 초월적, 천상의 세계(불교), 꿈 - 세속적, 지상의 세계(유교)
인물 : 성진과 팔 선녀
사상 : 유불선을 종합한 가운데 불교의 윤회 사상을 중심으로 함
주제 : 인생 무상의 자각을 통한 허무의 극복
의의 : 몽자류 소설의 효시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지었다는 국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성진(性眞)이라는 불제자가 하룻밤의 꿈 속에서 세상의 온갖 영화를 맛보고 께어나서 불법의 진리를 깨닫는 다는 내용으로, 인간의 부귀영화는 일장 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하다는 주제 의식을 지닌다. 이러한 내용 구조는 역사와 사회 안에서의 현실적, 세속적 욕구를 극복하고 천상의 영원한 삶을 회복하려는 그리하여 초월주의적 존재론과 세계관을 근거로 인간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여 보려는 영원 회귀의 문학임을 보여 준다.
성진이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형이하학적 세계로 내려가서 온갖 욕망을 성취하였으나, 그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어 형이상학적 세계로 복귀하는 "꿈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작품 구조상 꿈 부분으로 되어 있는 양소유의 세계가 오히려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배경과 현실적인 욕망 성취의 과정이 나타나 있으므로), 꿈이 아닌 현실로 되어 있는 성진의 세계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현실과 등진 배경에서 현실에서 떠난 삶을 살고 있으므로), 성진이 죄를 짓고 내쳐진 지옥의 땅인 양소유의 세계가 오히려 현실적 행복의 땅이다. 요약해 말하면, “구운몽”은 꿈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단순한 꿈으로 되어 있지 않고 역설적이고 복합적인 꿈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는 작품 구조와 주제의 상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은 성진이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 적강(謫降)하는 대목이다. 성진을 보낼 때의 육관 대사의 말을 통해 성진이 인간 세상에서의 여러 체험을 거친 다음 다시 처음의 세계로 돌아오리라는 암시를 받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이 ‘현실-꿈-현실’의 몽유 구조로 짜여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진의 내면적 고뇌 속에 유교적 공명주의와 불교적 적막함이 대조되는 가운데 인간의 부귀 영화는 일장 춘몽(一場春夢)이라는 주제가 제시되고 있다.
“구운몽”은 주인공 성진의 꿈속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성진은 꿈의 세계에서 양소유라는 인물로 환생해서 온갖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삶의 과정이 모두 허무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 다시 불도에 온 힘을 쏟는다.
이처럼 “구운몽”은 ‘꿈을 꾸기 전(현실) → 꿈(비현실) → 꿈을 꾼 뒤(현실)’라는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구조는 우리 나라 고전소설 가운데 흔히 ‘몽자류 소설’ 또는 ‘몽유록계 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구운몽”의 구조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 “조신의 꿈”을 떠올리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조신은 불도를 닦다가 불공을 드리러 온 태수의 딸에 반해 그 여자와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 그 때 그는 꿈을 꾸고, 꿈속에서 태수의 딸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세속의 삶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되면서 태수의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일이 결코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 끝에 조신은 꿈에서 깨어나고 다시 불도에 정진하게 된다.
성진 역시 조신과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그 벌로 인간 세계로 내침을 당한다. 그런데 그는 조신과 달리, 사대부로서의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아마도 작가는 성진이 원한 것처럼 유교에서 말하는 세속의 행복을 직접 체험하게 하여,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몸소 깨닫게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양소유로 환생한 성진은 팔 선녀를 만나서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최고의 벼슬자리에 올라 모든 부귀와 공명을 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 시대 양반들이 추구했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다. 성진이 말했듯이, ‘어려서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서 성군(聖君)을 섬겨, 나아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정승이 되어 몸엔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띠고 눈으로 고운 빛을 보고 귀로 신묘한 소리를 들어 미녀와의 사랑과 공명(功名)의 자취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그 시대 지배 계층이 꿈꾸는 양반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얻은 양소유는 과연 행복하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모든 부귀와 공명을 한 손에 쥔 그의 눈앞에 어리는 것은 영광과 행복이 아니라, 진 시황의 아방궁과 한 무제의 무릉도원, 당 현종의 화청궁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이 세 인군(仁君)이 모두 다 만고의 영웅이거늘 이제는 어디 계시는고?’라고. 양소유가 행복의 정점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 무리가 한 번 돌아간 뒷면 높은 누각은 스스로 무너지고 깊은 연못은 스스로 메워지며, 노래와 춤을 추던 집이 변하여 메마른 풀과 싸늘한 연기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얻은 부귀와 공명은 결국 죽음 앞에 있는 티끌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양소유는 꿈에서 깨어난다. 이 깨달음 속에서 사대부 양소유는 다시 스님 성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김만중은 양소유의 깨달음을 통해, 세상 부귀영화가 모두 부질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가 덧없다는 공(空) 사상을 통해, 그 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에서 진채봉은 신의를 가진 인물로, 가춘운 · 계섬월 · 적경홍은 빼어난 자색과 가무 솜씨가 뛰어난 인물로, 심요연과 백능파는 뛰어난 무술 솜씨와 용기를 가진 인물로, 정 소저와 난양 공주는 어진 덕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김만중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로 그리는 섬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양소유가 8명의 여인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문체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하여 “구운몽”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동시에 소설의 격조를 한층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구운몽”은 이후의 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이 작품 자체를 늘리거나 줄여 개작(改作)한 작품이 계속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구운몽”처럼 ‘현실-꿈-현실’의 ‘몽유 구조’를 바탕으로 한 ‘몽자류 소설이 많이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고소설 창작의 전형적인 모범을 제시하여 소설사에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한 소설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 “구운몽”의 사상
우리 나라 고대 소설 가운데 성격과 사상, 주제 측면에서 가장 다양한 요소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 “구운몽”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인공 ‘성진의 하룻밤 꿈’ 속에 전개되는 ‘양소유의 일대기’가 꿈과 현실이 교차되는 환몽 구조 속에 이루어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하겠다.
“구운몽”의 배경 사상으로는 유교, 불교, 도교가 융합된 가운데 불교의 공(空) 사상이 강조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조선 사회의 큰 특징인 봉건 사상을 곁들이기도 한다. 유교는 성진이 양소유로 환생하여 누리게 되는 입신 출세(立身出世)․출장 입상(出將入相)하고 부귀 영달(富貴榮達)하는 과정이 유교의 현세주의와 일치함에서 나타나고, 불교는 성진이 세속의 부귀영화가 덧없고 무상함을 깨닫고 허무를 극복하여 득도(得道)․성불(成佛)하는 모습과 주인물(대사와 승려)과 배경이 불교적인 것에서 나타나고, 도교는 위부인과 팔 선녀를 중심으로 본 사상적 규정이다. 또한, 양소유가 2처 6첩의 순종 속에 가정을 다스려 가는 모습에서 봉건 사상이 있다고 본다.
<참고> “구운몽”의 등장 인물
“구운몽(九雲夢)”의 ‘구(九)’는 성진의 꿈 속에서 나타난 아홉 인물, 즉 양소유와 그 두 부인, 그리고 여섯 명의 첩들로 이들은 선계(仙界)의 성진과 팔 선녀의 후신(後身)들이다.
그 관계와 성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선계(仙界)
육관대사(六觀大師) : 성진의 스승으로서 그를 부귀영화의 헛됨을 깨닫게 함
성진(性眞) : 육관대사의 수제자로서 인생무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음
팔선녀(八仙女) : 위부인의 시녀들. 나중에 이들은 인간계로 여덟 여인으로 환생함
위부인(魏夫人) : 중국의 남악(南嶽) 형산(衡山)을 주재(主宰)하는 여자 신선으로 팔 선녀를 다스림
(2) 인간계(人間界)
호승(胡僧) : 성진의 꿈을 깨워 줌
양소유(楊少游) : 성진의 후신(後身), 양처사와 유씨 부인의 아들
정경패(鄭瓊貝) : 정사도의 딸로 영양 공주로 봉해짐. 양소유의 제1 부인
이소화(李簫和) : 황제의 여동생인 난양 공주. 제2 부인
진채봉(秦彩鳳) : 진어사의 딸로 난양 공주의 시녀가 됨. 제3 부인
가춘운(賈春雲) : 정경패이 몸종. 제4 부인
계섬월(桂蟾月) : 낙양의 명기(名技). 제5 부인
적경홍(狄驚鴻) : 하북의 명기(名技). 제6 부인
심요연(沈裊烟) : 토번(吐藩)의 자객. 제7 부인
백능파(白凌波) : 동정(동정 용왕의 딸. 제8 부인
이 작품에서 진채봉은 신의를 가진 인물로, 가춘운 · 계섬월 · 적경홍은 빼어난 자색과 가무 솜씨가 뛰어난 인물로, 심요연과 백능파는 뛰어난 무술 솜씨와 용기를 가진 인물로, 정경패와 이소화는 어진 덕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참고> 서포 김만중의 삶과 문학
“구운몽”의 지은이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붕당(朋黨)으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17세기에 이름난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났다. 하지만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탓에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책을 구하는 데 값을 따지지 않을 정도로 아들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 결과 김만중은 14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뒤 대제학(홍문관 · 예문관의 정이품 으뜸 벼슬), 의금부 판서(의금부의 으뜸 벼슬) 등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윤씨 부인의 가르침은 그의 삶과 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만큼 어머니에 대한 그의 효성은 누구보다도 지극했다. 김만중이 “구운몽”을 쓰게 된 동기는 어머니와 무관하지 않다. 이규경(1782-?, 조선 시대 실학자)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우리 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고금의 사물을 백과사전식으로 해설한 책)에서 ‘세상에서 전하기를 서포가 귀양살이할 때 그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시기를 가지고 추측해 보면, 그가 장희빈의 아들 균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에 반대하다 귀양 간 숙종 14년(1688년)이나, 기사환국(1689년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봉하는 문제를 계기로 일어난 서인[노론]과남인의 다툼. 노론이었던 김만중은 이 일 때문에 남해로 귀양을 가게 된다. 1962년 그는 결국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56세로 숨을 거두었다.)으로 남해에 귀양 간 숙종 15년(1689년)이 아닐까 한다.
귀양살이와 높은 벼슬아치의 생활이 반복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여느 문인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지은 일종의 비평서인 “서포만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전후미인곡(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우리 나라의 이소(離騷-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자신의 시름을 적은 서정시로, 고전시의 걸작이라 불림)다. ···· 지금 우리 나라의 시문은 흡사 우리의 언어를 버리고 남의 나라의 언어를 흉내 내어 쓴 것이다. 설령 그것이 십분 흡사해진다 해도 그것은 앵무새가 하는 말일 뿐이다.’
이처럼 그는 우리 시가(詩歌)를 높이 평가하면서, 나무하는 아이들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서로 화답하여 하는 노래가 학사 대부들의 시부(詩賦)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는 시가뿐만 아니라 당시 사대부들이 천하의 풍속을 어지럽힌다고 멸시하던 소설의 가치도 높이 평가하였다. 즉 통속소설의 예술적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보다 나관중(羅貫中, ?-?)의 “삼국지연의”(중국 후한 말부터 위, 촉, 오 삼국의 정립 시대를 거쳐서 진나라에 의한 천하 통일에 이르는 역사를 토대로 한 장편 역사 소설로서 흔히 삼국지라 불리는데, 유비와 관우와 장비 등 세 인물의 무용과 제갈공명의 슬기로움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바, 소설가 나관중이 정사인 삼국지를 바탕으로 70%의 사실과 30%의 허구를 섞어서 쓴 소설이다.)가 사람을 더 감동시킨다는 말을 남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가 당시 천대 받던 우리말과 우리 글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우리말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같은 소설을 남겼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이 얼마나 진보적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한 예라 하겠다.
<참고> 관련 자료
(1) 환몽 설화
평소의 어떤 생각 때문에 꿈속에서 일련의 사건을 체험하고 꿈에서 깨어나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구조를 가진 설화를 환몽설화(幻夢說話)라 하는데 '조신몽(調信夢)'은 이러한 구조를 가진 전설로, 뒤에 김만중의 '구운몽'과 이광수의 '꿈'이라는 소설에 영향을 준다. 이 설화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불교적인 것으로, '인생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은 한 순간의 꿈이요, 고통의 근원이니 그러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2) 조신 설화(調信說話)
신라 때 중 조신은 명주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본 뒤 매혹되어 낙산사 관음상 앞에서 그 사랑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수년 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나 그녀가 이미 다른 사람에 출가해 갔으므로 매우 슬퍼하였다. 하루는 그가 부처님을 원망하다가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데 그녀가 찾아왔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은 했지만 마음으로는 늘 그만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기뻐하며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서 살림을 시작하였다. 40여 년 동안 깊은 정을 나누고 살면서 자식 5남매를 거느리게 되었으나 가난으로 사방을 떠돌아다니면서 10년 동안 걸식하였다. 결국 첫아이가 굶어 죽자 길가에 묻었고 초막을 짓고 살다가 늙고 병들어, 부부가 따로 헤어져 아이 둘씩을 데리고 남북으로 정처 없이 떠나려던 참에 꿈에서 깨어났다. 이에 조신이 크게 깨달아 꿈에 아이를 묻었던 곳에 찾아가 땅을 파 보니 돌미륵이 나와 거기에 절을 짓고 불도에 정진하였다. 꿈을 통하여 애욕(愛慾)의 무상함을 깨친다는 내용의 설화로 (三國遺事)에 전한다.
인생의 욕망과 집착은 한 순간의 꿈이요, 고통의 근원이라는 불교의 주제가 담긴 전설로서 꿈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설화를 환몽설화라 한다. 이 설화는 세규사와 정토사라는 구체적 증거물로 구체적 시대가 나타나므로 전설에 해당한다. 한편 절의 건립 내력을 보여 주는 사원 연기 설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