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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
아들, 손자, 며느리 데리고 아내와 같이 고향 가는 길이 즐겁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간다. 아들이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다. 판교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달린다. 뒷자리 가운데 앉은 손자 대훈이의 궁금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척이나 재미있는 듯 깔깔거리면서 하하거린다. 주체 못하는 팔과 다리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에너지가 넘친다. 차안이 시끄럽고 비좁다.
천안을 지날 무렵.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순대국 먹으러 병천에 나왔다고. 예상치 않은 일이라 좀 당황스러워서 우물쭈물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목천나들목을 나올 무렵 다시 전화가 온다...
저녁때 작은형님 칠순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하고, 헤어져서 나는 고향길을 간다. 매봉산을 돌아 등재고개를 넘으니 지렁리 마을이 나온다. 병천천을 따라서 송정주막 앞을 지나 한참을 달린다. 보현산을 끼고 왕덕이마를 돌아가니 내가 자란 방화골이다. 은빛모래 반짝이는 냇갈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새롭고,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귓전엔 생생한데, 동행하는 가족의 멍숭멍숭한 눈치가 관심이 없는가 보다. 보洑축을 지나서 동네 길로 들어선다. 길가 우측에는 형상화한 조경주목이 수려하고, 동생집 옆에는 시름을 쌓아올린 듯 돌탑이 무게를 더한다. 털보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치며 궁둥이를 흔들고, 송아지는“음메에”하며 반긴다...
아버지 산소에 가서 큰절을 올린다. 한문으로 쓰인 쓰인 비문을 읽어주는데 손자가 봉분으로 뛰어 오른다. 붙들어서 타이른다. 산소는 살아계실 때처럼 대하여야 한다고. 증조부는 좌측에, 머리를 북측에 두고 계시다고 알려주었다. 부모님이 방금이라도 털고 나오셔서 말씀하실 것 같았다. 잘 있었냐고, 너와 손자는 어디서 뭐하며 살고, 아픈덴 없고? 증손자는 처음 보는데 낯설지가 않구나 하시면서. 이제는 누가 온 줄도 모르고 말씀 없으신 부모님! 불효자가 속을 너무 많이 썩여드려서 가슴이 아픕니다. 후회도 제 탓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하게 살도록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못 온 시집간 딸도 딸하나 데리고 안양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딸네 집인걸요! 오늘이 작은형 칠순입니다. 제 칠순 때는 불혹을 지날 제 딸도 데리고 오겠습니다. 잡초 몇 개를 뽑고 조부모님 산소로 간다... 지금의 생각이지만 묘지에 대한 부담을 털어내야 한다. 세월에 따라서 장묘문화도 바뀌어야 하는데...
누가 우리 부모님의 산소를 관리해야 하는가? 관례대로 한다는 건 마음이 무겁다. 현대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내 아이들이 가끔은 찿아와서 놀다 갈 수 있는 그런 문화로 개선되어야 한다. 해결하고 가야 할...
이웃하는 처가妻家 성묘 가는 길은 처갓집 동네를 지나야 한다. 오래 전에 남의 집이 되어버린 처갓집이 풋풋한 추억과 함께 사라졌다. 마음 갈 곳 하나를 또 잃었다. 허전하다. 고갯길을 넘어 오는 행인과 마을 앞 삼거리 느티나무 그늘에서 부채질하는 노인을 이젠 대청마루에서 바라 볼 수 없게 되었다. 뒤꼍에는 감나무가 있었고, 장독대 옆에는 터줏가리가 있었다. 항아리속 신체神體를 햅쌀로 모시고, 시루떡에 정안수 바쳐놓고, 천지신명께 부귀안녕을 비시던 어스름 밤의 장모님 생각이 스친다.
장인어른의 송덕비頌德碑 앞을 지나 산소에 도착한다. 큰절을 올렸다. 웃자란 풀을 뽑는데 손자가 덥고 재미없다면서 빨리 가자고 투덜댄다. 아들이 거든다. 할아버지도 아마 너 맘때는 그랬을 꺼라고. 맞다. 난 어릴 적에 산소에 가 본 기억이 없다. 추석때면 친구들은 낫 날을 새끼줄로 동여매 가지고 어른들 따라 벌초를 간다고 하던데, 왜 난 성묘하러 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웃자란 풀들을 보기 싫지 않게 뽑고나니땀이 비 오듯 흐른다. 마음이 좀 개운하다.
옥산을 지나 청주역에 들려서, 땀을 식히면서 모양새를 추스르고, 작은형 칠순장소로 간다. 작은 고모님은 오셨는데 큰형님이 좀 늦게 오신다. 축하화환이 있고, 케익이 있고, 가족이 있고, 웃음이 있다. 케익에 촛불을 밝히고 끄고 자른다.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손녀가 꽃다발을 올리고, 작은형이 소희를 밝힌다.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말과 행복이란, 먹고 싶은 거 먹고, 보고 싶은 거 보면서,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사는 거라고... 박수를 청하면서, 참석하신 분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식사를 한다. 만찬이 끝나고 담소가 끝난다. 건배를 하면서 칠순모임이 끝난다.
오는 길 차안에서 벌초 이야기를 한다. 일과가 피곤한지 손자는 잠을 자고. 아내는 시간 있을 때 놀러가는 셈치고 잠깐씩 산소에 들려서 풀을 뽑으면 좋을 텐데 하고... 가끔은 산소를 잊고 살기도 하다가 ... 벌초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상황에 닥치면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닥거리는 ... 논쟁을 접고, 다음에 갈 고향 길을 수놓아 그려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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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을 읽노라면 지난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는듯 합니다
행복한 나들이되엇으리라 생각합니다
훗날 좋은 얘기거리가 된다면 이번나들이는 의미있었다고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