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Neckless of Time-
9.식목일 밤.
때마침 그 다음날은 식목일이었다. 그러나 데르나는 이렇게 잠자기 좋은 아침부터 울상을
짓고 있었다. 변함없이 맑은 햇살과 군데군데 조각구름, 그리고 아름다운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부터 얼굴을 찡그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 네클리스~~!!"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항상 차고 다니던 네클리스 때문이었다. 어제 아이들이 잠깐 보겠
다고 하루종일 떼를 써서(?)겨우겨우 빌려주었는데..하필이면 학교에서 가져오지 않은 것이
었다. 덕분에 데르나는 난생 처음 전화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해왕의 방에 들어갔다.
달칵
데르나의 바로 아래층에 있던 해왕의 방문을 열자 밝은 태양 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해왕
은 조금 멍ㅡ한 눈길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결은 나아진 얼굴이었다.
"...괜찮아?"
"응? 아, 어...말끔히 나은 것 같아."
"후훗. 다행이네."
활짝 웃고 있는 데르나를 바라보던 해왕은 문득 뭐가 생각났다는 듯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
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사막을 걷는데 어떤 천사가 내려와
자신을 어떤 숲에다가 내려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데르나는 뜨끔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해왕을 바라보았지만, 다행히 그는 그 천사가 데르나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왜 왔어?"
자신의 말을 끝내자마자 해왕이 궁금하다는 듯 그녀를 향해 물었고, 데르나는 얼굴에 떠올
랐던 미소를 지우고 다급히 네클리스를 빌려준 친구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해왕은 담임 선
생님이 처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누어준, 코팅된 전화번호 쪽지를 주었고, 데르
나는 전화를 들고 해왕이 사용했던 대로 번호를 누르고 신호를 기다렸다.
"ㅡ다이알 이스 워렁 넘버ㅡ."
"어라? 어라라?"
갑작스런 여자의 목소리에 데르나는 다급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약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수화기에는 이상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
았고, 다시 데르나는 번호를 정확히 쿡쿡 찍었다. 이번엔 성공할까...?
뚜루루루ㅡ,뚜루루루ㅡ.
성공이다, 데르나는 성공의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잠시 후 약간 차가운 분위
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태연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아, 나야 나. 데르나."
[아아, 데르나. 왜 전화했어?]
"목걸이 때문에 전화했는데...."
태연의 목소리는 약간 탁해진 듯 했다. 생각보다 택한 목소리에 데르나는 태연이 감기에
걸린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면 그것도 아닌 듯 했다. 태연은 기침도 없고 훌쩍이
는 소리도 없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ㅡ, 그 이상한 목걸이? 네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놨는데.]
"...뭐?"
[학교에 넣어놓고 왔다고.]
"....야아~~! 그냥 나한테 줘야지~~!"
[아아...그런가, 미안.]
왠만하면 미안하단 소리를 하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에 데르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
다. 그래도 일말의 복수심 비슷한 게 남았는지 그녀는 태연에게 다른 걸 물어보기 시작했고,
반면에 태연은 일말의 미안함이 남았는지 그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떻게 들어가는데?"
[휴일 중에는 아예 개방을 하지 않아. 운동장조차도.]
"그럼..."
[밤에 담을 넘고 조용히 들어가서 조용히 가지고 나오는 게 상책이지, 뭐.]
"으음...알았어. 고마워."
[으응. 잘 있어.]
달칵
수화기를 내려놓은 데르나는 조금 기계적인 소리를 내는 수화기를 넌지시 바라보다가 곧바
로 나갈 준비를 했다. 어두운 밤에 나가긴 죽어도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현관에 다가가 어지
간히 준비도 마치고(준비랄 것도 없었지만.)집을 나서려는데 때 마침 아침도 먹지 않은 해왕
이 데르나를 향해 물었다.
",...어디 가?"
"학교에 목걸이 가지러."
"목걸이?"
"으응. 내가 맨날 차고 다니는 목걸이..,"
"아아, 그거? 학교에 두고 왔어?"
"응. 지금 그거 가지러 가."
"...조금 있다가 가족 전부 나가야 되는데?"
"...왜에?"
"나무 심으러. 나무 심고 오면 저녁때쯤 될 거야."
"......"
"......"
"...나 안 가면 안 돼?"
"절대 안 돼. 오케이?"
"아니, 노 케이."
"...그래도 가야 돼. 알겠지? 가지 마!"
"어어? 야, 야!"
데르나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해왕을 바라보며 데르나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
.....결국 데르나는 하루 종일 나무를 이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흐리다. 오늘은 나무 심는 날이라더니, 심은 나무에 활력소를 주려는 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는데, 한 번 세차게 소나기가 내릴 기세다. 아침엔 맑았었는데...데르나는 으슥한 밤길을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플라이 마법을 시전 하던 데르나는, 학교 앞대로가 보이자 플라이
마법을 중지시키고 바닥에 조용한 발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데르나는 곧 구름을 등지고 검은빛을 발하는 거대한 고등학교 건물을 바
라보았다.
불이 꺼진 고등학교...무척이나 음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저녁마다 저기서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환영이겠지만 가끔 창문에서 고스트들이 왔다갔다하고 이따금
씩 괴성이 들리는 듯 했다.(적어도 데르나는 이 모든 게 환영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고스
트들에게 익숙하지만 고스트를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타악 탁
"흐아~~!."
플라이로 간단히 2M 높이의 담장을 넘은 그녀는, 다시 운동장 가득 모래바람을 날리면서
건물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잠시 자신을 붙잡았던 해왕을 생각했다.
같이 가야 한다며 자신을 붙잡은 녀석...그 녀석.....
...어쨌든 건물에 다가가자 데르나는 플라이 마법을 중지하고 건물을 주욱 훑어보았다. 백색
과 갈색 톤이 대조적인 이 학교 건물의 모든 문이란 문-창문, 현관문...-은 전부 닫혀 있는
상태였다. 데르나는 어떻게 들어갈까 생각하다가 일단 제일 보이지 않는 창문으로 이동했다.
데르나가 찾는 창문이란 으슥하고 눈에 띄지 않으면서 조용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때마침 건물 뒤쪽에 볼록 튀어나온 곳에서 그런 창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데르나는 손을 올려 창문을 열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이 곳 역시 꼭꼭 닫혀 있는 상
태였고, 그녀는 곧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결국 끝까지 마법쓰게 만드는구먼...데르나는
열쇠를 따는 마법을 생각해 내곤 주문을 외웠다.
"언 락(unlock.)"
.......
....성공했나? 데르나는 의구심에 창문에 손을 대고는 있는 힘껏 문을 열려 해 보았다. 그러
나 창문은 전혀, 몇 센치도, 아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굳건히 데르나의 앞길을 가
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뭐가 잘못됐지? 데르나는 창문을 세세히 살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다
곧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언 락은 자물쇠나 자물쇠식 문을 여는 데 이용될 뿐
이렇게 고리형 문은 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이제서야 기억하다니...데르나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조그만 목소리로 마법을 시전했다.
"텔레키네시스."
염력! 데르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 무색의 염력은 가만히 창문을 비집고 들어가 안
쪽의 고리를 열었고, 데르나는 문이 열린 걸 알자 염력과 자기 사이에 유지해 놓던 마나의
길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넘실거리던 염력은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문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였다.
데르나는 손으로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간 뒤 문만 닫고 고리는 잠그지 않았다. 혹시라도 도
망갈 때가 있으면 이 곳을 통해서 탈출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이미 학교에 들어와 있는 상태라면 어느 쪽을 가더라도 문을 따고 나갈 수 있
다는 것을.
............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데르나는 자기 자신이 사일런트 필드에 갇힌 것
처럼, 자신의 고동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슬몃 두려움이 일던 데르나
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1층 화장실 안. 왼쪽으로 가면 숙직실과 교무실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중앙 계단이 나
오는 장소였다. 데르나는 어느 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일단 편하게 가려면 열쇠가 필요할
거란 생각에 교무실로 가기로 했다. 열쇠가 거기 있다는 것을 이미 태연과 해왕에게서 들어
둔 덕분이었다.
그러나 교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미 자물쇠와 못을 통해 문은 조금도 움직이려 들
지 않았고, 데르나는 이번엔 텔레키네시스 대신 언락을 실행했다. 언락의 마나가 자물쇠를
열어 버리자 데르나는 자물쇠를 열고 못을 뺀 다음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도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어둡고 고요하다는 것을 뺀다면. 데르나는 슬몃 자
신이 나쁜 짓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의 물건을 찾기 위해 왔으니까 자책할
필요가 없어, 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어느 정도 생각이 진정되자 그녀는 문 바
로 옆의 나무상자에 다가갔고, 거기서 자기 반의 열쇠를 찾은 그녀는 낮게 미소를 그렸다.
그때였다.
드르륵
데르나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고, 데르나는 서둘러 한 곳의 의자를 빼
놓고 책상 아래에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조용히 기척을 살폈다.
달칵
가벼운 소리가 나며 주위가 약간 밝아진 듯 했고, 곧 노란 불빛이 교무실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수위 아저씨인가? 아마도 교무실 문이 열려있던 것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서 들어
온 게 틀림없으리라....데르나는 문득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가 든 랜턴의 불빛은 여전히 교무실을 훑었다. 데르나는 불빛이 자기에게 다가오자 서
둘러 더욱 바짝 몸을 끌어당겼고, 사내는 데르나의 바로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왔다. 데르나
는 사내의 갈색 구두를 볼 수 있었고, 사내는 다시 몇 분을 서성이다가 교무실을 나와 문을
잠가 버렸다. 데르나는 사내가 나간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책상 아래에서 나왔다.
교실에 갇힌 꼴이 되었지만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그녀는, 조심스럽게 창
문을 열고 주변을 살폈다. 랜턴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발자국소리도 조금 들리
는 듯 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데르나는 한숨을 쉬며 창문을 닫고 중앙 계단을 향했다.
데르나와 해왕이 수업을 받는 1학년 7반은 중앙 계단에서 서편으로 치우쳐져 있는 세 번째
교실이었다. 그 만큼 중앙 계단으로 가기도, 서편 계단으로 가기도 어정쩡한 위치였는데, 데
르나는 중앙 계단 대신 서편 계단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왼쪽으로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으히히히
"....?"
고스트? 하지만 영력이...
아하하하
...아니, 고스트라기보단 여러 사람이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 숙직실에서 들리는 건가? 데르
나는 재차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숙직실은 아닌 듯 했다. 그럼 고스트 대부대? 하지만
고스트라면 어느 고스트나 가지고 있을 영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시간'의 고스트들이 영
력 없이 움직이는 특별한 고스트로 보이지는 않았다. 두 '시간'을 뛰어넘은 적 있는 자신은
언제든지 과거에 사용했었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네클리스 오브 타임으로 간단히 시
간을 조작할 수 있었으며, 여러 모로 과거와 대부분의 것들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뭐지?'
데르나는 일단 고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에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방향을 바꿔 중앙 계단을
올랐다. 그러자 소란스러웠던 웃음소리도 어느덧 뚜욱 그쳐 버렸고, 의아스런 마음에 데르나
는 2층 복도에 들어섰다.
........
...아무도 없다. 그러나...인기척은 있군. 데르나는 슬몃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발소리를 내
며 안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순간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장난으로 시
작한 데르나의 마음은 어느덧 이들의 정체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필사적인 행동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가 문 가까이 다가갔을 때...!
번쩍
"크하하하~!"
갑자기 문 옆으로 머리가 없는 몸통 하나가 튀어나와 데르나를 위협했다. 위기를 느낀 데
르나가 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그 주변에 서너 명의, 각각 피 흘리고 다리가 없고 등등의 기
괴한 고스트, 아니 몬스터들이 튀어나왔고, 데르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약간의 두려움
과 3:1이라 불리하다는 생각에 몇 발자국 뒷걸음치다가 몸을 돌려 서쪽으로 달려나갔다. 녀
석들은 데르나 뒤를 악착같이 쫓아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녀는 놀란 비명을 지르기 시작
했다.
"꺄아아아~~!"
"흐흐흐흐"
"키헤헤헤"
고스트도 아닌데 고스트보다 더 무서운 그것들이 뒤를 쫓아온다.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미친 듯이 복도를 내달린다. 그러면서도 뒤를 따라오는 녀석들을 흘끗 바라본다. 뒤를 따라
오는 기형적 몬스터들...다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린다. 그래도 악착같이 쫓아오는 저
것들은 도대체 뭐냐!! 데르나는 재빨리 3층 복도 끝에 있는 과학실 문을 언 락으로 연 다음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철컥 탁
쿠웅 쿵 쿵 쿵 쿵.............
....갔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니 다행히 지나간 모양이었다. 데르나는 다리에 힘
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후아....링 오브 스페이스만 있었으면..."
네클리스 오브 타임과 작동 방식은 비슷한 반지의 이름이 링 오브 스페이스였다. 지금은
어머니 손에 달랑달랑 들려 있을 그 반지를 생각하던 데르나는 문득 자신이 과학실에 처음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희안한 과학실 풍경에 그 몬스터들이 자신을 포기할 동
안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조용히 외쳤다.
"라이트."
번쩍
번개 비슷한 노란색 파크가 잠시 튀기더니, 이윽고 그녀의 앞으로 하얀색 광구가 나타났다.
그러나 데르나는 마법이 시전된 것을 좋아하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
다. 방금 생긴 스파크는 마법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데르나는 한숨을 내쉬며(오늘만 몇 번째 쉬는 한숨인지 모르겠다.)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리컵, 모양이 각각 다른 수십개의 비커가 투명한 유리창 선반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
고, 그 밖에 각종 기구들도 선반,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좀 여러 군데가 사라진 듯한 모습의 인간 모형이었다. 데르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것
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렇게 자세히 사람 내부를 밝혀 놓다니...은근히 열등감이 생기는 데르
나였다. 우리 시대에는 겨우 마법으로 상처만 봉합해 놓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 시대에는
인간 내부를 이렇게 밝혀 놓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다니... 그 밖에도 다른 집기들마다 이
상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어떤 건 구리선이 자석 근처에 둥글게 놓여 있었고, U자형 종에
채색을 입힌 것도 있었으며, 역삼각형 모양의 추가 투명한 줄에 매여 있는 집기도 볼 수 있
었다. 데르나가 마악 그 곳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끼이익
화들짝
갑작스런 마찰음에 데르나는 기기긱, 소리를 내며 몸을 굽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광구
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놀란 탓에 광구에 유지했던 마나를 그대로 끊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가만히 있던 왼쪽 팔이 슬쩍 들린 인체 모형이 들어 있었
다.
"...설마, 아니겠...지."
데르나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앞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끼이이익
깜짝
..데르나는 이제 더 이상 아니라고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형을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을 때..
...드륵
쨍그랑
"꺄아악!!"
뒤의 선반이 열리고 뭔가가 깨지는 소리에 데르나는 화급히 과학실에서 나와 계단을 타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 때 데르나가 느낀 감정은 아까 몬스터들에게 쫓기던 그것과 같았다.
쿵쾅쿵쾅
복도를 어지러이 달리며 4층 복도를 가르던 데르나는, 1학년 7반에 닿자 떨리는 손으로 문
을 열고 자신의 책상에 가서는 책상 서랍을 주욱 훑어 보았다. 평소와 조금 다른, 음침한 교
실의 모습에 잠시나마 그녀는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지금 당장 도망가
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네클리스를 찾자마자 다시 교실문을 닫고 나온 데르나는, 곧 몸
을 돌리려다 다른 무언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키헤헷."
젠장! 이번엔 아예 앞에서부터 가로막고 있었다! 데르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뛰어갔다. 그
러나 하나였던 녀석들은 둘, 셋으로 날으나 데르나의 뒤를 따라왔다.
"허억, 헉 헉...!"
쿵쾅쿵쾅
더 이상 조용히 다녀야 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르나는 중앙 계단으로 달려가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몬스터가 서 있었고, 그 녀석마
저 데르나를 향해 달려오자 데르나는 다시 오던 길을 계속 달려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끝 계단은 철망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었다. 데르나는 몇 번이나 철
망을 흔들다가 뒤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공포스런 녀석들..각각 목없고 팔이 없으며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진 그 몬스터
들은 이제 구석으로 몰은 데르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데르나는 결국 마법을 쓸 요량으
로 손을 들었고, 몬스터들은 잠시 흠칫하더니 재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데르나?"
"엥?"
누군가가 데르나를 불렀다. 데르나는 그 급한 와중에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해 무의
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녀는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데르나는 다시 뒷걸음질을 쳤지만
오히려 그 여자는 몬스터들에게 조용히 소리를 쳤다.
"그만 둬. 얘 데르나란 말이야."
"....뭐?"
"이 얘가?"
순간 데르나는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켰다. 하나같이 '크흐흐', '키헤헤'하고 웃던 녀석들이
말을 한다? 결국 데르나의 의심은 몬스터들이 행동 덕에 밝혀질 수 있었다. 머리 위에 쓴
검은색 두건을 풀고, 탈을 벗은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하하, 너무 쫄아붙는 것 같아서 더 밀어붙이려 했더니...정말 이 얘가 데르나란 말이야?
화린?"
"...에? 화린? 네가 이화린?"
"응. 나야."
내렸던 머리칼을 쓰윽 귀 밑으로 꽂은 소복 여인의 정체는 다름이 아니라 화린이었다. 데
르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으응, 식목일을 기념해서 학교에 동아리 일로 모여서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있었지."
"...코스튬..뭐?"
"코스튬 플레이. 오늘은 귀신 같은 걸로 분장하는 날이라 이렇게 해 보고 왔어."
데르나가 황당해 하는 사이에 몬스터들은, 아니 몬스터로 분장했던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
누었다.
"근데 이 얘 생각보다 무서움 엄청 잘 탄다, 야."
"하핫, 맞는 말이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난생 처음 보는 건가? 하긴 외국에서도..."
"......"
정작 데르나는 말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놀린 것에 대해 분개하느라 미처 말
을 해 줄 틈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분노에 몸을 떨어 대던 데르나는 입에서 허연 입김(...!!)
을 내뿜으며 음산하게 말했다.
"Do you want DIE?"
결국 그들 외 5명 정도가 더 학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데르나는 그들과 잠시 아름다
운 대화(...!!)를 나누다가 하필이면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잠시 꾸중을 들어야 했다.
"앞으로 전화하고 오면 열어주마. 알았냐?"
"네..."
"죄송합니다."
"근데 너는 여기 귀신 놀이하는 얘가 아닌 것 같은데?"
데르나를 두고 한 소리였다. 데르나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 했다. 그러
나 그보다 화린이 한 발 더 빨리 대답했다.
"저기 그러니까.."
"아니요, 저희 일행인데요."
"...무슨 분장을 하는데?"
"목 없는 사람이요. 여기 위에 이렇게 검은 두건을 쓰면..."
"읍~! 읍, 읍!!"
"하핫, 어때요?"
데르나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검은 두건이 자신의 목과 얼굴을 감사는 것을 느끼고 소리
를 질렀다. 그러나 곧 화린의 '조용히 해'라는 라는 말에 금새 조용해졌다.
"으음...어쨌든 이제 가거라."
"네."
"죄송합니다~!"
재차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중앙 현관을 통해 모든 분장소품을 들고 그들은 학교를 나
왔다. 짐이 많은 관계로 데르나는 화린의 부탁에 순응하며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그들의 뒤
를 따랐다.
"후우...마무리는 이상했지만 복잡한 하루였어."
"으윽, 어깨에 알이 배긴 것 같은데..."
"하하, 저 애가 어쨌냐면 말이지."
찌릿
"...아, 알았어, 안하면 되잖아. 안 하면..."
비밀을 밝히려던 녀슥을 눈빛으로 잠재운 데르나는 잠시 갈등했다. 이거 이대로 기억을 소
거시켜 버릴까? 아니면 각인 마법으로 말하려고 할 때마다 헛구역질이 아닌, 정말 창자가
뒤틀리는 느낌을 경험하게 해 줄까. 그때 데르나의 머리를 스쳐간 것이 있었으니, 데르나는
화린과 나머지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과학실 일도 너희들이 그런 거였어? 과학실에 있었는데 막 인형이 움직이고 컵이 깨지
고...엄청 무서웠는데."
"응? 무슨 소리야?"
"과학실에서 그랬단 말이야?"
모두 오히려 무슨 소리냐는 눈치였다. 데르나는 얼굴의 띄우고 있던 미소를 싸그리 지워
버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아무도 안 그랬어?"
도리도리
"그렇다면...누구지?"
데르나는 의문에 가득찬 시선으로 학교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와글와글
웅성웅성
"정말이야? 어제 그랬다고?"
"정말이라니까. 한 번 귀신 분장한 애들 보고 마구 도망갔다는데, 그게...."
데르나는 아침부터 후회를 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
에 대해 후회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녀석들이 그새 어제 일을 죄다 퍼뜨려
버린 것이었다. 데르나도 주위에 살기를 뿌리며 아이들에게 경고조의 미소를 지었지만 대부
분 그다지 경계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고,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그녀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왠지 갑작스런 등장 덕에 아이들 누구는 말을 더듬었고, 몇몇은 옷매무새를 갖추며 선생님
을 맞이했고, 담임선생님은 그것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다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로운 전학생이 있다. 우리반에 데르나 뒤를 이어 두 번째 전학생인데...이번엔 남
자애야."
"꺄아아~!"
역시 좋아하는 것은 여자애들 뿐이었다. 질투심도 있는 몇몇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거부반
응을 보였지만 그것은 역시 남자애들에 한해서였다.
"자, 들어와라"
드륵
앞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 약간은 길고 부드러우면서도 귀를 덮지 않는 단정한 머리에 안
경을 쓰고, 얼굴엔 아기처럼 잡티가 하나도 없었다. 키는...해왕이 정도? 몽땅하지 않고 약간
마른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이질감이나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애는 교탁에 올라가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 성진, 여러분과 같은 17살로, 오늘 이 곳에 전학왔습니다. 잘 부탁드
립니다."
하아...6월 21일 23시 05분. 겨우 퇴고해서 올리네요. 뭐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매일 할 수 있다면 여유있게 올릴 수 있을 텐데...쳇. 그보다, 다음주는 시험기간(!)이라 소설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역시 공부하면서 소설쓰기, 두 개를 한꺼번에 하기가 어렵긴 어렵군요-_-;; 구럼 이만...
|
즐필, 즐독하시길...(--)(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