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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ㆍ영덕지역 향불교 성지순례
호미곶(虎尾串) 해맞이 광장에서 / 일출장관
지난 3월 강화도 정수사를 비롯하여 백련사, 청련사를 순례하다가 백련사던가 벽에 걸린 달 력에 오어사 전경이 아름답게 보여서 주현(보화)님이 오어사를 언제 가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8월 쯤에 가보자 하여 8월 21일 오후에 출발하여 22일 아침 해맞이로 시작하는 일 정표를 짜게 되었습니다. 오어사만 갈 것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포항 제일의 보경사, 좀 더 올라가면 나옹스님의 탄생지와 나옹스님이 세운 장육사가 있어 참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 던 중 포항에는 여러 절이 있는데 오어사에서 보경사로 가는 도중에 천곡사도 있음을 알고 천곡사를 더하여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공지를 올리자 여덟 분이 신청을 하셔서 백우거와 청안거를 몰고 가려 했는데, 황심행님이 자차를 가지고 가셨으면 하여 청안거를 뒤로 물리고 황심행거로 가기로 했습니다.
부산의 법공님, 영천의 무심님, 대전의 도솔님이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계셔서 이번 순례가 참 으로 여법하게 이루어지겠구나 생각되었습니다. 날마다 오는 비가 21일ㆍ22일 비켜 갈까 염려하는 분도 계셨지만 저는 당연히 날씨가 좋으리라 단언을 했었지요. 제가 믿는 구석은 부처님 밖에 없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긋난 바가 없으니까요. ㅎㅎㅎ
날짜가 임박한 하루 전, 황심행님이 전화를 해 오셨는데, 시어머니께서 병환이 깊으셔서 부 득이 동참이 어렵겠다고 하시고, 또 길상님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자당어른이 병환이 나셔서 가족회의를 토요일에 밤에 하기에 가고 싶은 오어사를 접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십니다. ㅠㅠ ㅠㅠ
이와 같은 일은 불가항력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 분이 줄어 여섯 명인데 차 의 정원은 다섯 명이니 고민이 될 수밖에요. ㅎㅎㅎ
그래서 청안님과 묘법님에게 전화를 하니 이 또한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청안님은 내일 출 장을 1명이 가야 하는데 청안님 대신 갈 사람이 정말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 내일 봐야 안 다고 하고, 묘법님은 묘법님 대로 물건이 내일 들어 올지 안 올지를 봐야 한다고 하니....
법공님은 오어사로 오시려고 했는데 등산 중 발목을 다쳤을 뿐만 아니라 유학에서 돌아오는 따님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하시고, 무심님은 일요일 날씨가 흐려 비가 오면 가능한데 날씨가 좋으면 포도를 따야 한다고 하시고, 도솔님은 시누이가 찾아올 예정이라 못 온다고 하시네 요. ㅎㅎㅎㅎㅎ
순례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지만 모두 어쩔 수 없는 입장이니 어떻게 하겠습니 까? 이런 듯 세사는 무상합니다. 웃을 수 밖에요.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청안님이 가신다고 하면 묘법님이 양보하고, 청안님이 못 가면 묘법님이 가신다고 했는데 순례 당일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청안님께 전화를 하니 출장을 간다고 하시 네요. 그래서 묘법님께 전화하여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가고 사정이 있으면 볼 일을 보시 라고 하니 동참하신다고 하여 주현(보화)님과 묘법님, 그리고 비니초님과 더불어 백우거에 몸을 싣고 가게 되었습니다. ^^
이에 앞서 비니초님은 냉커피를 얼리고 간식거리를 장만하여 만전을 기했고, 주현(보화)님 은 우뭇가사리를 넣은 냉콩국을 준비하고 유부초밥을 해 오신다고 하여 바쁜 중에도 분주하 셨습니다. 이에 앞서 또 주현님은 순례 때 입으라고 생활 한복을 한 벌 손수 만들어 지난 토요일 저녁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많은 분께 패션쇼를 하려 했는데... ^^
7시 30분 조계사 일주문에서 만나기로 하여 10분전에 나갔지만....
5시 40분경, 상생의 손을 향하여
8시 20분이 되어서야 호미곶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처남이 물려 준 고성능 네비게이션 을 달고 첫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순환을 타고 중부고속도로에서 호법에서 영동 선으로 갈아타고 여주에서 중부내륙간고속도로 갈아타고 대구에서 다시 포항으로 갈아타는 최단의 노선을 잡았습니다.
여주휴게소에서 보화님이 준비하신 유부초밥을 열무김치와 함께 먹었는데 무척 맛이 있더 군요. 저는 이미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도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묘법님과 보화님은 많이 출 출하셨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자정 무렵에 호미곶 대보찜질방에서 잠자고, 4시경 일어나 해수탕으로 목욕한 다음 일출을 보기로 했는데, 출발이 늦어져 새벽 2시가 다 될 무렵에 호미곶에 도착해서 찜질방 에 들어갔는데 찜질방은 쥐죽은 듯 고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잠자고 있더군요. 우 리도 바로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누워만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7,000원입니다. 5시에 일어났는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잘 되었다 싶어 묘법님과 해수탕을 약 10분 정도 즐기고 목욕재계하고 나오니 5시 30분이었습니다.
마침 주현(보화)님과 비니초님도 나와서 해맞이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해맞이 광장에 도착 하니 많이 보아 온 모습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분위기가 깨끗해 첫인상이 상쾌했습니다. 아마도 2000년이란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서 미래의 새 천년을 열기 위해서 새롭게 단장한 듯 합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
전국 최대의 가마솥비
상생의 손. 광장에 있는 왼손.
상생의 손 앞에 새 천년 불씨가 불타고 있습니다.
늘 여여하게
동해 독도 일출 불씨. 남태평양 피지섬 일출 불씨
이 불씨는 2000년 1월 1일 동해의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첫 일출의 햇빛으로부터 채 화한 것을 합하여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영일만 호미곶 일출 불씨
이 불씨는 2000년 1월 1일 영일만 호미곶의 첫 일출의 정기를 모아 채화된 것으로 새 천년 을 기념하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변산반도 일몰 불씨
이 불씨는 1999년 12월 31일 서해안 변산반도의 마지막 일몰의 햇빛으로부터 채화된 것으 로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광장 옆에 있는 연오랑세오녀상(延烏郞細烏女像)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제8대 아달라왕이 즉위한 지 4년은 정유년(157)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 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초를 따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물고기 한 마리라고도 한다) 나타나 태워서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 라고 하 여 이내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괴이히 여겨 나가서 찾아 보았다. 남편의 신발이 벗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바위 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한 이전처럼 태워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 워하며 왕에게 바쳐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귀비(貴妃)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해와 달의 정령이 우리나라를 버리고 지금 일본으로 가버린 까닭에 이 같은 변괴가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찾아오게 하였다. 연오는 말하였다..
"내가 이 나라에 이른 것은 하늘이 시켜서 된 일이다.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왕비가 짠 가는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지낸다면 될 것이다."
그러고서 그 비단을 내려주었다. 사신은 돌아와 아뢰었다.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낸 다음 에야 해와 달이 예전처럼 되었다.
그 비단을 왕의 창고에 보관하고 국보로 삼았다. 그 창고의 이름을 귀비고(貴妃庫)라 하고,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이라 이름지었다.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한다.
-삼국유사(三國遺史)에서-
이 이야기는 박인량이 지은 《수이전(殊異傳)》에 나오는 설화인데 그 《수인전》은 전하지 않고 《삼국유사》와 《필원잡기》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 제사지낸 곳이 영일만이니 그 설화에 따라 연오랑세오녀상(延烏郞細烏女像)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 다.
광장에서 바라 본 새천년기념관
호미곶 호랑이상
호미곶(虎尾串)은 한반도의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하며 한반도의 지형에 비추어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 곳을 일곱 번이나 탑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 선생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 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제일의 명당이라고 하였고, 육당(六堂) 최남 선(崔南善) 선생은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한반도를 묘사하면 서 일출제일의 이 곳을 조선십경(朝鮮十景)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하여 호미곶은 국운상승(國運上 昇),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日帝)는 여기 호 미곶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으며,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 하면서 이 곳을 토끼꼬리라 비하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 1월 1일 포항시장은 "포항시 승격 60년의 첫날이자 기축년(己丑年) 새해 아침 호미 곶에 한반도 모양의 호랑이상을 세워 국가번영(國家繁榮)을 기원하는 온 국민의 소망을 담 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바다에 있는 오른손
상생(相生)의 손
작 가 : 김승국(영남대학교 포항대학 교수) 재 질 : 황동 크 기 : 오른손(바다쪽) 높이 8m 길이 4m 넓이 4m 왼 손(광장쪽) 높이 3m 길이 6m 넓이 4m 제작년도 : 199년 12월
동쪽 바다에 돌출한 오른손은 손바닥은 넓고 강하게 펼침으로써 햇살의 이미지를 양식적인 방법으로 상징화 하고, 광장에 안정되게 누인 왼손은 햇살을 받아 포용하고 어우러지면서 오른손과 화합하는 새천년의 이미지로 형상화 하고 있으며, 오른손의 만질 수 없는 위치와 왼손의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의 대비로 양자의 관계성과 음양의 화합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새천년을 지켜 갈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였습니다.
해 뜨기 전입니다.
아침해가 솟는지 바닷물에 홍조가 보입니다.
이번에 꼬까옷 입고 나왔습니다.
이번 순례를 위하여 주현(보화)님께서 생활한복 한 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지난 8월 14일 손수 재단하여 만드신 산뜻한 옷을 직접 가지고 오셨었습니다. 늘 바쁜 중에도 시간을 쪼개 어 한 땀 한 땀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드신 작품입니다. 마로 만든 옷으로 입어보니 편안하고 멋스러웠습니다. 하여 비니초님이 깨끗이 세탁한 다음 풀을 먹이고 바짝 말린 다음 제가 다 림질하여 입고 나온 것입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주현님! ^^
반바지를 입고 오신 묘법님
자당 어르신께서 입을 옷을 모두 세탁하는 바람에... ㅎㅎㅎ ^^
호미곶 등대
바다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드디어 해가 얼굴을 내밉니다.
일출이 5시 46분 정도에 뜬다고 했는데 구름이 끼었는지 50분이 넘도록 해가 보이지 않자 묘법님이 돌아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러던 찰나 해가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5시 52분 경 이었습니다. 바다에서 붉은해가 이글이글 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가 얼굴을 내미니 일 출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더군요. 동쪽 제일 끝에서 해를 맞이하기는 처음입니다. 해를 맞이한다고 해서 영일(迎日)인데 이 지역이 포항시로 확대되면서 영일이 란 지명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역의 특성이 살아 있는 영일이 좋은데...
해가 얼굴을 내미고 있는 가운데 손가락에 하나, 둘, 셋, 넷, 갈매기가 날아들어 앉네요.
해를 맞는 사람들
주현(보화)님
저도 기념으로
다섯 손가락은 어느덧 갈매기가 차지합니다.
묘법님이 열심히 찍으시는데... 아...
비니초님
해를 바라보는 모습들
고깃배가 지나가니 운치를 더해 줍니다.
오늘도 힘차게 항행하는 어선 한 척
영롱한 해를 손가락에 끼워 봤습니다. ^^
묘법님도 증명사진을
묘범님을 끝으로 일출은 구경을 끝냅니다.
해맞이를 마치고 되돌아 갑니다.
상생의 손의 의미를 새기며
상생의 손 의미를 다시 한 번 옮겨 봅니다. 동쪽 바다에 돌출한 오른손은 손바닥은 넓고 강하게 펼침으로써 햇살의 이미지를 양식적인 방법으로 상징화 하고, 광장에 안정되게 누인 왼손은 햇살을 받아 포용하고 어우러지면서 오른손과 화합하는 새천년의 이미지로 형상화 하고 있으며, 오른손의 만질 수 없는 위치와 왼손의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의 대비로 양자의 관계성과 음양의 화합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새천년을 지켜 갈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였습니다.
여기 해가 떠서 이 의미를 밝혀 주는 듯 합니다. 서로 상생하는 길은 소통하고 화합하는 길입니다. 소통이 없으면 답답하고, 답답하면 소리 를 지르게 됩니다. 왜 시끄럽게 소리지르냐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왜 소리를 지르는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전 6시 18분, 해맞이광장을 벗어나 순례의 목적지인 운제산 오어사(吾魚寺)로 향합니다. 해맞이 광장에서 오어사까지는 약 33Km 입니다.
다음은 혜공스님과 원효스님의 전설이 깃든 오어사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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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찌되었든 죄송합니다~~ 함께하지못해 속상합니다 올해들어 이란저런사정으로 약속이 어긋나는일이 많네요
세사무상이니 어찌합니까


함께 하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어르신은 차도가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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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과 왼손이 의미하는 바가 크네요. 백우님, 새로 입으신 의상 멋있습니다. 주현님, 비니초님, 묘법님, 해 맞이 보시면서 빈 소원 꼭 이루세요. 일출 사진을 보니 제 가슴이 벅찹니다.
위정자들이 이 도리를 깨쳐야 하는데... 높은 양반이 여기서 그런 것을 다짐했다는데 모두 거짓인 것 같네요. 일출을 보면서 소원보다는 보다 넉넉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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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내리던 비도 비켜가고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일출이랑 포항에 유명한 "상생의 손". 사진과 설명까지 고맙습니다.
아, 하필이면 그때... 아쉬운 마음입니다. 우리가 갈 때마다 날씨가 많은 도움을 주네요. 기가 막히게... 그림으로만 보던 상생의 손을 직접보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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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니 훨씬 좋았습니다. 그리고 주현님이 해 주신 옷을 입고 다니니 너무 너무 좋습니다. 백우님 옷 참 좋고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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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낫고, 보는 것 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이번 순례에 입은 옷 편하고 너무 좋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주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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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할 따름입니다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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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이는 아무리 멋진 포즈를 해도 맨날 이 모양, 향기방 모델은 꿈도 못 꾸내요. 그래도 백우님 덕분에 이쁜 추억 남겨 두었내요....나무묘법연화경()()()
다음엔 밝고 환하게 잘 찍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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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님
덕분에 이번 포항 순례길 아름답고 잊을수없는 소중한 추억 이였답니다 


혹 제가 안보이면 호미곳 근처로 날아 가 있는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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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으로 시간 내기 어려운 곳 다녀왔네요. 호랭이 꼬리에 반하셨나요
거기로 가시면 얼굴 보기도 힘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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