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데 시카 <자전거 도둑>
1.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전쟁이 휩쓴 도시는 황폐와 빈곤 그리고 절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난 도시는 결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절망으로부터의 일어남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할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치졸함이 생존의 본능과 함께 폭발한다. 사람들은 남아있는 생계 수단을 붙잡기 위해 경쟁해야만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존재할 수 없다. 모두가 자신의 생존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타인과의 투쟁은 슬프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상이다. 서로의 것을 뺏고 빼앗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몰락하지 않는다. 최악의 순간에도 인간에게 구원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가져온 끔찍한 상황에서 희망, 좌절, 투쟁, 그리고 구원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사회적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던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작 비토리아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이다.
2. 오랜 실직으로 고통받았던 리치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자건거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얼마 전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자전거를 팔았던 리치는 집안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팔아 다시 자전거를 되찾는다. 상당히 좋은 보수와 수당이 주어지는 일자리는 리치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오랜만에 집안 식구들은 웃음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비극은 작업 중 자건거를 도난당하면서 시작된다. 리치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스스로도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은 가난에 찌든 이탈리아 사회의 민낯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리치는 자전거를 훔친 범인을 찾지만 증거가 없는 관계로 오히려 범인의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 참담한 심정으로 거리를 걷는다. 새로운 일자리는 자전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리치는 순간적으로 거리에 놓여있는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하지만 주인에게 잡힌다.
3. 리치는 이제 감옥에 가야만 했다.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때 구원은 자신의 아들에서 시작된다. 슬픔 가득한 눈을 가지고 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모습을 본 자전거 주인은 리치를 용서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구해낸 것이다. 리치와 아들의 관계는 영화 속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자전거를 찾는 일에 기꺼이 동참한 아들은 불안에 가득한 아버지에 의해 폭력을 경험하고 아버지에 대해 실망한다. 자신을 경원시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리치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아들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비록 최악의 상황이지만 아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아들과 함께 먹을 것을 주문한다. 어쩌면 아들은 리치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자전거를 찾기 위해 아버지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연대는 결국 아버지의 비극을 구원할 수 있게 된다.
4. 영화는 리치가 자전거를 찾는 과정을 통하여 이탈리아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전거’는 리치의 생존을 위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음에도 경찰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또한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결코 타인의 고통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 성당의 미사 때 리치가 보인 불안은 미사 진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배척의 대상이 될 뿐이다. 답답하여 찾아간 점성술사의 말도 리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절대적 고독과 절망적 순간의 연속이다. 현재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5. 리치의 아들은 미래 세대를 상징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불안과 동참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순간적으로 화가 났음에도 아버지와 화해하고 자전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헤매고 결정적 순간에는 경찰을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리치의 현재적 불안은 오직 아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경감될 수 있다. 영화 마지막, 아들 덕에 풀려난 리치는 참담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준다. 작고 연약한 손이지만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 희망의 다짐으로 나타난다. 현 세대를 위로하고 연대를 약속하는 미래 세대의 존재이자 연대의 표시이다. 영화가 사회의 어둠을 숨기지 않고 보여줌에도 결코 비극적 정서에 파묻히지 않은 이유는 바로 아들의 똘망똘망하고 순수한 눈동자와 그가 내민 손의 힘 때문이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위한 협력이었다.
한국의 천만 영화 <자유시장>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눈물겨운 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은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와 약속을 결코 잊지 않고 삶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일어날 수 있었다. <자전거 도둑>에서의 리치도 삶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리치의 손을 꼭 잡은 아들의 순수한 응원이 있는 한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옆에는 그를 응원하는 아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는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뜨거운 연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아있는 자들의 협력만이 구원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야만 리치를 용서한 자전거 주인과 같은 관용과 용서의 힘이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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