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교육을 망치고
있는가?
이찬승(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목차
1. 교육부 (장관, 차관)
2. 대통령(청와대)과 정치인
3. (일부) 언론
4. (일부) 시민단체
5. (일부) 학부모
6. 상위권 대학
7. 교원단체, 교원노조
8. (일부) 교원
9. (일부) 교육감
10. (일부) 교육학자
11. (일부) 사교육 학원
12. (일부) 국책연구기관
13. 국가교육회의
14. 우리 모두(사회)
‘의도적이든 아니든 또는 무지 때문이든 학교교육을 후퇴시킬 주장을 하거나 행위를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참 많다. 문제의 심각성은 교육 발전을 후퇴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개는 교육을 흥하게 하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하거나 잘못된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학종을 폐지하고 수능 비중을 대폭 늘리자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적 이익이나 정치적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교육을 흥하게 해야 할 교육부(장관, 차관), 대통령과 정치인,
일부 언론, 일부 시민단체, 일부 학부모, 상위권 대학, 교원단체와 교원노조, 일부 교원, 일부 교육감, 일부 학자, 일부 사교육 학원, 일부
국책연구기관, 국가교육회의, 우리 모두(사회) 등이 어떻게 교육을 후퇴시키거나 망치고 있는지, 또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교육부
(장관, 차관)
오죽하면 지난 대선 때 교육부를 폐지하자거나 교육부의 기능을 집행기능에
국한시키자는 등의 얘기가 나왔겠는가. 교육부가 교육을 망치는 예는 주로 ‘표 우선의 정치적
판단’, ‘교육행정의 비민주성(하향식 통제 위주)’, ‘교육개혁 프로세스의 후진성(졸속성)’,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 ‘잘못된 변화
동인(動因)’, ‘변화 방향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집념’, ‘근본적 변화보다 단기적 땜질식 접근’, ‘교육부 내부의 비효율적인 조직구조’, ‘법
개정의 지체’ 등이다.
교육부의
‘표 우선의 정치적 판단’이란 국가의 장래, 아동의 학습과 미래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선거 득표의 유불리함을 의사결정의 우선적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일컫는다. 이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여론을 의식해 갑작스레 교육부 차관이 대학에 ‘정시 비중 확대를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교육행정의
비민주성’은 중앙 독점적 권력 구조와 행정체계를 말하며 지난 대선에서 교육부 폐지 주장을 나오게 한 배경이기도 하다. 교육행정의
비민주성은 ‘교육부의 중앙 독점적 전횡’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의 폐해는 매우 크다. 지방 자치를 방해하고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며 학교를 말단 행정기관으로 전락시키고 교사를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 『학교교육 제4의 길(Andy Hargreaves, Dennis
Shirley, 2015)』에서 저자들이 교육에 성공한 세계의 다수 사례를 분석해보니 성공 요인 중 하나가 국가의 교육 경영 능력이고 그 예로
핀란드를 들었다. 핀란드는 각 지역 학교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단위 학교와 지역 지자체가 학교 운영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국가
교육과정은 가이드라인 기능을 할 뿐이다. 한국은 이와 정 반대다. 학교를 통제할 온갖 규정과 제도를 촘촘히 만들어 관리하고
통제한다.
또 한편 ‘교육개혁 프로세스의
후진성’은 무엇을 바꾸고자 할 때 그 절차가 매우 후진적이고 졸속적임을 의미한다. 프로세스의 후진성은 2015개정 교육과정 도입부터
수능체제 개발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교육부는 최근 수능 개편과 관련해 골치가 아프고 해결에 난항을 겪자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는 여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런 발상과 행태가 후진적이고 졸속적인 개혁의
전형이다.
아울러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도 교육부가 교육을 망치는 대표적인 요인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교육개혁이란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하고 이의 실행을
위한 법을 개정하고 지침을 내려 보내며 관련 연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교육개혁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원리의 적용(Michael Fullan, 2016)』에서 저자는 “학교개혁은 새로운 정책을 고안해서 현장에 내려 보내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이라고 일갈한다. 교육변화의 역동성과 복잡계적 특성을 무시하고 선형적(linear) 접근을
하는 것도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의 대표적인 예이다.
‘잘못된 변화
동인(動因)’도 교육부가 교육개혁을 그르치는 대표적인 예이다. 학종의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크자 며칠 전 교육부 차관이 주요
대학에 수능 정시전형의 비중을 높혀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수능의 비중을 조금 늘린다고
학종이 공정해지는가? 이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 및 고교학점제 도입과 거꾸로 가는 조치로, 교육부가 문제의 해결책을 잘못짚고 있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수능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는 일이다.
한편 교육부 정책 결정자의 ‘변화 방향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집념’이 교육을 실패하게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2016)』의 저자 풀란은 자신의 책에서 개혁가의 강한 집념이 교육을 그르친다고 말한다. 집념이 강한 개혁가는 이미
나아갈 목표를 정해놓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 측의 의견을 경청할 때 얻을 것이 더 많고 이들을 개혁에
동참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국이 공청회를 할 때 발제자나 토론자를 선정하는 경향을 보면 ‘내 편’ 일색이다. 변화에 성공하려면 변화에 대한
이해부터 높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육부의 ‘근본적
변화보다 단기적 땜질식 접근’도 교육을 망치는 핵심 요인이다. 중장기적 큰 방향과 비전을 먼저 설정하지 않고 기존의 제도를 조금씩
수선해 쓰겠다는 발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2022년 대입전형 및 수능체제 개발 방식도 전형적인 땜질식 접근이다.
교육부는 교육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2014)의 다음
내용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의 해결이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것은 문제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역별 전문화가 지배적인 문화 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문제를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문제는 계속 역동적으로 변하고 그 복잡성은 날로 증가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 간에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다. 어설프게 정의된 문제를 기반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하고 이를 추진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2.
청와대(대통령), 정치인
정치인은 교육을 흥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그 힘을 잘못 쓰면 교육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언제 어떻게 교육을 망칠 수
있는가? 대표적인 사례는 후보 시절 ‘잘못된 공약’을 내세우거나 재임 시절 ‘여론에 기댄 정책결정’이나 ‘무지에 의해 잘못된 정책을 승인’하는
경우이다. 한편 국회의원들이 교육을 망치는 경우로는 ‘표에 눈 먼’ 정책 결정, ‘여론을 의식한’ 의사결정, ‘로비에 의한’ 의사결정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입전형 간소화, 고교학점제 도입,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을 공약했다. 문제는 이런 공약들의 실행이 어떤 여건을 먼저 갖추어야 가능한지 또 서로 어떻게 상충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공약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금 실행에 옮기려 해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교육 정책은 연계되는 것과 인프라를
함께 고치지 않으면 득보다 해가 크다(Fullan, 2016). 대통령 후보가 교육 공약을 제시하는 방식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다는 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육이 나아갈 큰 그림인 비전의 수립 과정은 없었고 밀실에서 급조한 분절적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대선 때 가슴 뛰게 하는 제대로 된 교육비전을 개발하여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인프라를 하나씩 만들어 가겠다는 식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그런 접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민원을 처리하듯 땜질
처방만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정치인이 교육을 그르치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표에 눈 먼’
정책 결정과 ‘여론을 의식한’ 의사결정의 예를 보자. 최근 여당
초재선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더미래연구소’가 대입제도 개편안 보고서를 통해 학종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
수능+내신>으로 선발 인원을 각각 동일한 비율로 시행하자는 제안(동아일보 3월 30일)을 내놓았다. 이는 미래 교육의 변화 방향을 잘못
읽었거나 선거를 앞두고 학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의 영향을 반영한 ‘표에 눈 먼’ 정책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여론을 의식한’ 의사결정의
경우는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통해 여론에 의거해
교육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육 문제는 일반 대중이 제대로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교육정책 결정을 일반 여론에 기대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세계 주요국의 예를 보더라도 교육에 관한 정책 결정은 충실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들어
결정해야 한다.
핀란드의 교육정책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참고할만하다. 핀란드는 지난 교육과정 개정 때 국회의 지원을 받는 실무 위원회를 꾸린 다음 가장 먼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무려
120건의 제안을 문서로 받았다. 그 다음 교육과정 개정에 관한 연구 결과의 활용은 물론 제안 받은 문서 내용을 기반으로 전문가들이 초안을
작성했다. 그 이후 위원회는 특정 웹사이트를 열어 전국적 공개토론을 벌인다. 이런 과정이 통과의례를 위한 요식적 행위가 아니다. 초안의 내용과
관련해서 학생들도 활발히 참여했다. 핀란드 미래교육의 방향에 대해 13세 이상 학생이 무려 65,000명이 인터뷰에 응답했을 정도이다. 이는
실질적 사회적 합의 과정에 가깝다.
암튼 ‘더미래연구소’의 대입제도 개편안 보고서 내용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종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교육의 미래 변화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학종의 폐지는 총체적(holistic)
평가가 불가피한 21세기 학습 생태계의 변화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수능 강화를 통해 학교교육을 더욱 객관식 문제풀이 기관으로 변질시키는
일이다. 여당 초재선 의원들이 이런 제안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니 더욱 충격적이다.
3. (일부)
언론
언론의 힘은 매우 크다. 그래서 언론이 잘못된 주장을 하게 되면 여론을 오도하게
된다. 언론이 교육을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예는 ‘정론보다는 가치 편향적인 포지션 설정’,
‘경쟁 조장’, ‘고교 대학의 서열 조장’, ‘광고주 사기업에 대한 우호적 태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언론이 교육을 그르치는 대표적인 예는 특정 교육정책에 대해 보도할 때 학교교육의
질 향상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정론이 아쉬울 때 가치 편형적인 포지션을 설정하기도 한다. 교육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크게 다를 수 없다. 아동의 흥미와 강점을 발견해 잠재력을 실현시키고,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키워주려는 교육의 목적에는 진보와 보수 모두가 같은 생각일 테니까 말이다.
언론들(주로 보수 언론)이
교육을 그르치게 하는 또 다른 예는 ‘수능시험의 변별력 프레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동안 수능시험 변화에서 변별력을
가장 우선시한 측면이 있다.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학교교육이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 내실화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물론 언론만의
탓은 아니지만 그 결과 대입경쟁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고 고교는 대입준비 기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상위권 대학에 합격생 수를 많이 낸
고교가 좋은 고교란 인식을 강화시키는 일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고교별 서울대 입학생 수를 발표하거나 수능 성적 상위권 학교 정보가
언론에 노출되는 순간 이것이 의도치 않게 ‘교육의 성과 = 시험 성적, 입시 성과’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고 학교 서열화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언론에게 또 다른 부탁이
있다. 수능시험에 대한 가치 판단을 잘 해달라는 것이다. 미래 학교교육은 양적 평가보다는 질적 평가와 정성 평가의 비중이 매우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능과 같은 표준화시험으로는 이런 질적 평가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수능의 비중을 높이면 고교 교육은 다시 EBS의 문제 풀이
방송을 켜놓고 수업하고 문제 풀이 중심 수업, 실수 않기 수업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교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교사의 자존감을 훼손하며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4. (일부)
교육 시민단체
교육정책 변화에 관한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는 교육의 발전에 소중한 존재들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단체가 의도치 않게 교육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잘못된 가설에 바탕해 잘못된 주장을 강하게 해서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한 특정 시민단체가 지난달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수능 최저기준 폐지 반대’, ‘학종 폐지, 정시 확대’를 주장했다고 한다(동아일보 4월 2일). 특히 ‘학종 폐지’는
교육을 망치는 일에 속한다.
시민단체가 교육을 망치는 또
다른 예는 기존의 교육제도나 운영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지연시키는 역할이다. 현재 학교교육은 근본적이 재설계를 해야 할 단계이다.
그러나 교육시민단체가 정부 정책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꾸자는 제안보다는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면서 수선할 곳 위주로 지적한다면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지만 근본적인 교육개혁의 기회를 늦추는 일이 된다.
또 교육시민단체의 교육운동의
목표가 비본질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질 때도 교육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교육비 절감을 교육 혁신보다 우선시하는 행태, 수능의
변별력 유지를 학교교육 내실화보다 우선시하면서까지 대학의 선발 걱정을 지나치게 해주는(그래서 기존 체제의 근본적인 혁신을 지연시키는데 일조하는)
사례 등이다. 가령 수능에 서술형 문항의 비중을 높이자는 제안을 하면 많은 교육단체나 언론은 사교육비 증가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과정이 비판적 사고력 같은 고등정신력을 평가하기로 했으면 당연히 수능에 서술형 문항을 반영해서 이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는 것이 옳다. 사교육 증가로 인한 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별도의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본질을 훼손해가면서 사교육비를 줄이려는(실제 별로 줄지도 않지만) 자세는 옳지 않다. 교육혁신이
사교육 때문에 무산되거나 지연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입제도 논의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사교육비의 문제는 대개
핵심적인 요인에 종속되는 것일 수 있다. 종속적인 요인인 사교육비 문제를 대입제도 개선 논의에서 핵심으로 놓게 되면, 정작 중요한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나 기능 문제는 차선으로 밀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금까지 대입제도 개선의 변화를 보면 대학의 선발 자율권의 확보와 고교 교육의
정상화의 무게 중심축이 지그재그식으로 반복된 경향이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작용인(作用因)이 되고 있는 것이 사교육비 경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대입제도 논의에서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은 사교육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을 어떻게 하면 본래 기능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며,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광희 외, 2011).”
끝으로 교육시민단체의 무지가
교육을 그르칠 수 있다. 교육시민단체는 그 특성상 비판적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경향이 있다. 주장이나 가설에 대한 사실 검증도 소홀히
한 채 강한 비판과 주장을 한다면 이는 교육을 망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대표로 있는 『교육을바꾸는사람들』도 강한
책임감을 느끼며, 그런 점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본 단체는 의도치 않게 교육을 망치는 일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각별히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잘못된 주장에 대해 건강한 비판을 달게 받겠다.
5.
학부모
모든 학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입전형이나 수능제도를 바꾸고자 할 때 본인
자녀의 유불리에 기준을 두고 입장을 취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이때의 학부모는 입시제도에 민감한 중고교 학생의 학부모가
대다수이다. 학부모도 인간이기에 자녀의 장래에 유리한 제도를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가 지속가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당장의 내 자식에게 어떤 것이
유불리한가보다는 긴 안목에서 사회 전체를 위해 어떤 제도나 변화가 바람직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학부모님들께 부탁드릴 게
있다. 최근 특정 일부 몰지각한 단체나 사람들이 주장하는 ‘학종 폐지, 수능 확대’에 대해 흔들리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수능이 점수로
줄 세워 뽑으니까 공정하다는 생각은 사실도 아니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와 같은 수능을 통해 누가 어떤 대학에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수능과 같은 객관식 문제 풀이는 대충만 알아도 정답과 오답을 가릴 수 있다. 이런 수능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한 학습으로는 깊은 이해와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 당연히 지식의 활용도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학습으로는 AI가 수많은 직업을
자동화하는 시대에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도 오직 수능 점수만으로 선발하는 대입전형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능과 같이 정답만 찾고 얕은 학습(surface learning)만
조장하는 그런 학습은 지양해야 한다. 대신 학생들로 하여금 실수나 실패를 경험케 하고 이로부터 배우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수능이 채점
시비가 학종에 비해 적다고 해서 수능을 강화하게 되면 아이들에게서 스스로 미래를 살아갈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된다.
기업을 30년간 경영해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정답 찾기 수능의 폐해는 매우 크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도전을 꺼리고 실수를
두려워하며 확산적 사고에 약하다. 현재와 같은 객관식 위주 수능의 폐해는 매우 광범위하고 크다.
다음은 전 세계 수많은 학생들에게(2015년 기준 약 2,900만명) 양질의 무상
수학 교육을 제공하는 칸아카데미의 창시자 사먼 칸(Salman Khan)이 한국의 지식 포럼에 와서 남긴 말이다. 특히 학부모님들께서 깊이 새길
가치가 있다.
“부모로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성향을 충분히 이해한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자녀들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 본능이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모의 사랑에는 다소 위험한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위한 것이면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분명히 이는 위험한 사고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DNA와 협소한 씨족의 이익만 받들고 있다. 이는 정서적으로는 맞지만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스스로에게 자의적으로 허용하는 행위이다.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고 있는 한, 옆 동네, 다른 나라, 대륙 저편의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자신만 분리하여 ‘나 먼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아이들을 강제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안정성이 증가한 세상에 살도록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을
돕는 더 나은 방법은 ‘모든’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6. 상위권
대학
상위권 대학이 교육을 망치는
주요 기제는 ‘서열 강화를 통한 기득권 유지 욕망’, ‘가르치기 경쟁 대신 성적 우수학생 선점 경쟁’, ‘고교 교육 내실화보다는 행정 편익
우선’ 등이다.
먼저 ‘서열 강화를 통한
기득권 유지 욕망’의 경우를 보자. 아동·청소년들의 진정한 학습과 삶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대입 경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는 대학 평준화, 수능 점수에 의한 줄세우기 지양,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 등이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대학은
한결같이 이에 난색을 표해왔다. 주된 이유는 변별력 부족, 동점자 처리의 어려움 등이다. 이런 주장을 변명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더 깊은
이유로는 서열이라는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학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학생들의 건강과 삶의 질, 성장, 성공 등에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젊은 학생들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구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가르치기 경쟁 대신
성적 우수학생 선점 경쟁’을 보자. 대학이 성적 우수자 선점 경쟁을 지속하는 것이 초래하는 폐해가 너무 크다. 대입시로 인해
사교육비를 연 20~30조 이상 쓰고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학은 모름지기 학생을
촘촘히 성적으로 줄세우지 말고 잠재력이 있는 지원자들 중에서 느슨한 변별로 학생을 뽑아 잘 가르치기 경쟁을 해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총체적 전형은 대학이 우수한 가르치기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한편 ‘고교 교육 내실화보다는 행정 편익 우선’의 경우를 보자.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없애면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선발에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대학 편익 중심의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학종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학종 트랙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까지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이 교육을 망치는 요인으로 ‘공적 이익보다 사적 이익 우선적 추구’에 대해서도 대학은 개선이 있어야
한다.
고교에서 좋은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면 대학교도 좋은 학생들을 갖게 된다. 입시중심
교육을 완화하려면 대입 경쟁이 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느슨한 변별, 총체적(holistic) 전형이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건강을 희생하면서 대학은 서열 지키기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학은 교육과정 혁신 경쟁, 바람직한 역량을 키워서
학생을 졸업시키려는 책무성에 더 충실해야 할 것이다.
7. 교원단체,
교원노조
교원단체, 교원노조가 교육을
망치는 일은 기득권 지키기를 통해 학교 혁신을 게을리하는 일이다. 교원단체, 교원노조가 교육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단체가 교원의 권익과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학생의 교육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노조나 교원단체 스스로가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지금보다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일이 많다.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을 경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원자격 10년 갱신제’를 스스로 제안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한 교장 공모제 확대 좀 해보면 안 되는가? 이를 놓고 교총과 전교조의 논쟁을 보면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열린
사고를 했으면 한다. 어떤 방법이 더 좋은지는 몇 년간 시범 운영을 해보면 될 일이다. 교장 공모제 확대 안에 반대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득권 지키기로 비춰질 것이다. 교장 자격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도움만 된다면 필자 같이 기업을 운영했던 사람도 교사나 교장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21세기는 그런 사회이다. 각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다. 다양한 방안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어갔으면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교원단체나 교원노조가 교원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직사회가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도덕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사람도 배제가
없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찰과 노력을 배가해주었으면 한다. 교원 연수를 해보면 학습 부진이 누적된 아동에 대한 교원의 해결 의지나
해결을 위한 전문성이 낮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최근 미국의 교직단체들이 교원의 권익 신장에만 초점을 두었던 기존의 입장에서 교사
평가나 교사의 수업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두는 신조합주의(New Unionism)라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신조합주의의 핵심
내용은 교원의 전문성 향상이다. 한국의 교원단체들도 신조합주의와 같은 자체 혁신적 노력을 경주해주기 바란다.
끝으로 교총과 전교조는 기존의
대립적 자세를 지양하고 아동의 삶, 그리고 성장과 발달을 중심에 두고 협력적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간곡히 바란다.
8. (일부)
교원
학교 관리자들이나 교사들도 교육을 망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주로
교원은 ‘단기적 현재적(now and here)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 ‘학생보다 자기
생존과 편익을 더 우선하기’, ‘기존 체제에 쉽게 길들여지기’, ‘윤리적이지 못한 일에 죄의식 없이 동참하기’ 등을 통해 교육의
발전을 저해한다. 먼저, 단기적, 현재적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일의 예를 보자. 교육토론을 하다보면 교사들은 기존의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체제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교사중심 지식 전달식 수업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원역순설계 이론의 주창자인 위긴스와 맥티게(Grant Wiggins and Jay McTighe, 2005)가
오죽하면 교사의 활동중심 수업과 진도 나가기게 급급한 수업을 ‘교사가 범하는 두 가지 죄(twin sins)’로 규정했겠는가!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들’이란 낡은 인식의 틀을 갖게 되면 학생들의 교육을 가장 크게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 교사는 이제 교단 위 현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학생들에게 임파워링(empowering)하는
것이다. 임파워링이란 ‘교사가 수업 관련 의사결정 권한을 학생들에 점진적으로 이양하거나 공유함으로써 학생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 정신력, 자신감, 지식,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말한다. 학교교육에서 임파워링은 아동·청소년들의 잠재력을 깨우고 열정적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학생보다
자기 생존과 편익을 더 우선하기’를 통해 학교교육의 혁신을 지연시키는 사례를 보자. 교사들과 교육개혁에 관한 토론을 하다보면
학생들의 자기결정권, 자율성(student agency)의 강화에 소극적이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자신의 권력 축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기 생존을 더 우선시하는 다른 사례로는 어떤 좋은 개혁이라도
학생의 통제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면 우선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에 있었던 사례로, 고2까지 조건부 대입전형을
마치고 고3 한 학기나 고3 1년은 대입시 부담에서 벗어나 대학입학, 취업준비, 삶의 준비 등의 ‘학생주도교육과정’으로 운영’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면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기 어렵다”, “학교가 혼란에 빠진다” 등의 이유로 거부감을 보인다. 반면 대학 교수들의 반응은 “적극 찬성이다”,
“좀 혼란스런 것이 꼭 나쁜가?”로 사뭇 대조적이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에 먼저 관심을 갖는 것을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교육적인
견지에서는 아쉽다.
또한 교사는 ‘기존 체제에
쉽게 길들여짐으로써’ 교육을 후퇴시키기도 한다. 정부의 정책이 이해가지 않아도 이에 너무 쉽게 순응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교사는
교육 개혁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 교사가 이런 태도를 가질 때만 불합리한 제도, 실패가 뻔히 보이는 제도의 도입이
줄어들 것이다.
끝으로 교사가 ‘윤리적이지
못한 일에 죄의식 없이 동참하기’를 통해 윤리적이지 못한 일에 동참함으로써 교육 발전을 후퇴시키는 사례를 보자. 『학교교육 제4의
길(2016)』의 저자인 앤디 하그리브즈와 데니스 셜리는 자신들의 책에서 ‘제3의 길(성과와 파트너십의 길)’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교사의
비뚤어진 열정’을 꼽았다. 이를 한국 상황을 통해 설명하면 교사들이 중상위권 아동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을 갈 가능성이 큰 아이들
중심으로 학생부 관리를 하고, 내신 몰아주기를 하는 등의 비교육적 행위를 한 후 이를 통해 이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간 경우
축제를 벌이는 행태를 말한다. 교육 선진국이 되려면 사회적 약자층의 아동, 스스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동의 지도에 더 많은 관심과 맞춤
지도를 제공해야 하고 이런 것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또한 공부 잘하는 아동 위주로 지원하고 상위권 대학에 진학 가능성이 낮은 학생은 수업에서 배제되는 일, 소위
‘스펙 몰아주기’ 등의 부도덕한 일을 중단해야 한다. 과거 필자가 직접 교사와 학생 그룹에게 서로에게 변화를 바라는 바를 딱 한 단어로 말하기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이때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가장 바라는 변화는 ‘차별 (금지)’였다. 교사들은 이를 의외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 “격차를 줄인다”로 요약되는 교사의 도덕적 사명감(moral purpose)을 가지고 교직에 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학교장 역시 마찬가지다.
9. (일부)
교육감
교육감 역시 교육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요 요인은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 ‘권위주의와 성찰 부족’, ‘하향식 우선’, ‘변화 리더십 부족’, ‘차기 재선을
염두에 둔 전시행정’ 등이다.
먼저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 대해 살펴보자.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2016)』의 저자 풀란은 교육변화에 실패하는 이유로 리더들이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감 중에 아래 변화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변화는 관리될 수 없고 오직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변화란 자발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지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LEADING in a culture of CHANGE. Fullan,
2004)
“대규모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혁신적인 정책의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고 혁신이
일어날 학교와 학구의 문화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시스템 전반에 걸친 지속가능한 개혁을 위해서는 다음의
3수준 개혁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역 학교와 공동체 수준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개혁을 1수준, 학구 수준에서의 개혁을 2수준, 주 또는 국가
수준에서의 개혁을 3수준(Barber & Fullan, 2005; Fullan, 2005)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을 시스템 전반의
변화(system-wide change)라 부르며,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Fullan, 2010a,
2013a).”
대체로 교육감들은 변화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다. 풀란은 바로 개혁에 대한 강한
집념이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개혁의지가 강한 리더일수록 반대자, 비판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연구에 의하면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할 때가 찬성자의 의견을 들을 때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다음으로 교육감이 교육을 망치는 요인으로 교육감의 ‘권위주의와 성찰 부족’도 큰 몫을 한다. 교육감 17명에게 “본인은 권위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 같다. 교육감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육감과 함께 일하는 관료들이 교육감을 권위주의자로 만든다. 전국을 돌며 연수를 해보면 각 시도교육청마다
고유한 사업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바람직한 것들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런 정책을 왜 시행하셨어요?”라고 물으면 대개 귓속말로
“교육감님 지시사항이예요”라고 말한다. 교육감들께서 권위주의자가 되기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감이 신년사 등을 통해
새로운 방침이나 정책 제안을 할 때는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감은 의도와 상관없이 교주와 같은 리더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하향식
우선’도 교육감이 교육을 망치는 대표적인 기재이다. 교육청은 연말이 되면 차기년도 사업계획을 마련한다. 그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르기도 한다. 공약 이행을 위한 경우가 많으며, 교육혁신을 추구할 때
상향식(bottom-up)보다는 하향식(top-down)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교육청이 수립해 현장에 내려 보내는 수많은 사업은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마이클 풀란(2016)은 자신의 최근 저서(『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원리의 적용(Michael Fullan, 2016)』에서 “정책 입안자들과 행정가들이 동원하는 변화의 전략은 득이 되기보다는 방해
요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교육감은 이런 경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리더는 영향력이 큰 소수의 목표에
집중한다.
끝으로 교육감이 교육을 크게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화 리더십의 부족’과 관련이 깊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교육감은 수백 명이나 되는 교육청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내부 문화
혁신에 약하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내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전문성과 경험 부족이 큰 이유일 것이다.
교육변화의 핵심은 학교문화를 바꾸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한국 교육 리더들의 전문성은 전반적으로 약한듯하다.
교육감은 학교개혁에는 열심인데 정작 교육청 개혁에는 소홀히 하거나 학교 현장에까지
실질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교육감의 권위를 “실질적으로” 내려놓고 수평적 공유 리더십을 통해 관료주의가
심한 편인 교육청의 조직문화부터 바꾸고 학교기반 상향식 개혁을 추구할 후보를 뽑아야 할 것이다.
10. (일부)
학자
학자들이 학교교육을 그르치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학자들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과정 개정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개정하게 하는 데 일조를 했다면 이는 분명 교육을 그르치게 한 일일 것이다. 학자가
학교교육을 그르치는 또 다른 예는 소위 ‘밥그릇
챙기기’로 일컬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내용 적정화는 번번이 큰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학교교육에서
다룰 내용과 수준을 적정화하지 않고는 수박겉핥기식 수업, 진도빼기 수업이 불가피하다. 앞으로는 깊은 이해와 깊은 지식의 습득이 중요하다. 일부
학자들이 학생을 중심에 두지 않고 내 전공이 학교교육에서 배제되거나 소홀히 다뤄지는 것이 두려워 교과 내용의 수준을 낮추는 것에 극렬히
반대한다면 이것은 학자가 교육을 망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 학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현재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지금의 수업 시수의 몇 배가 더
필요한지 교육과정평가원과 함께 조사·연구해주셨으면 한다. 학교에서 진도빼기식 수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깊이 있는 학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학자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 물론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다 가르치는 문화를 만든 표준화 시험도 그 책임이 크다 하겠다.
학자들이 교육을 그르치는 또 다른 요인은 ‘학자로서의 사회적 임무 소홀’이다.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을 때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학자들의 이런 비판적 기능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11. (일부)
사교육 학원
사교육 기관 학원이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해치는 주요 요인으로는 ‘선행학습을 권유하는 공포마케팅’,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사적이익 추구 욕망’, ‘교육
불평등 심화 기능’ 등이 있다. 사교육 학원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교육을 망치는데 기여하는 사교육 학원이 있다고 하면 학원들은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동원해서 과잉 선행교육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교육 학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할 것이 있다. 사교육 기관이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밤늦게까지 학원영업을 하는 것을 중단해 달라는 것이다. 사교육 기관도 사회적 책무가
있다.
사교육의 번창이나 학생들의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게 만든다. 사교육은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대입전형에서 부모의 경제력이 큰 역할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사교육 업계가 자정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예: 가난한 집 아이들 무료
사교육).
한편 우리 사회가 사교육을 악으로만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
제대로만 한다면 사교육은 매우 소중한 사회적 순기능이 될 수 있다. 국가의 다양한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이나 수업혁신을 시도할 수 있고
이것이 학교교육에 큰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학원들에게 부탁드린다.
사교육이 학습부진이 누적되어 학교가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 좀 더 힘써주면 어떨까 한다. 학습부진이
누적된 아동들을 소규모 학원이 제대로 보살피고 가르치는 사례도 있다. 사교육이 도덕성, 윤리성을 바탕으로 공교육의 보완재 역할을 해주는 그런
사교육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
12. (일부)
국책연구기관
교육을 망치는 역할에 있어서 국책연구기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기관의 조직
사명에 충실하기보다는 교육부의 요구에 끌려가는 면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정작 중요한 기초연구는 소홀히 하고 현 정부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급급하다면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 연구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국책 연구기관장은 위로부터의 외압을 막아주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이 교육을 망치는
또 다른 요인 하나는 시행에 들어간 정책의 평가보고서 작성 기조와 관련이 있다. 실제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 현장에 맞지 않고
성과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적나라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발견한다. 현실적 어려움은 있겠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조사하고 보고하는 용기와 양심을 기대한다.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들도 교육부를 돕는 일 외에 교육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기초
연구를 소신껏 그리고 탄탄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13.
국가교육회의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비전을 비롯해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 주요 교육정책, 교육
거버넌스 개편 등에 대해 논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국가교육회의를 ‘누가 교육을 망치고 있는가?’란 글에 주요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함시킨 데는 이유가 있다. 국가교육회의가 교육을 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크고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회의가 교육을 망치게 할
경우는 ‘대통령, 청와대, 여당의 시녀 역할에 충실할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 역량이 부족한 경우’ 등일
것이다.
먼저 ‘대통령, 청와대,
여당의 시녀 역할에 충실할 경우’에 대해 살펴보자. 당장 8월 최종 확정을 앞두고 국가교육회의는 ‘단순·공정한 대입제도 개편안
마련’이 주요 의제의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단순한 대입전형’이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듯하다.
정부나 국가교육회의는 이미 “대입전형이 단순해지면 ~할[될] 것이다”란 ‘행동이론(Theory of Action)’을 신뢰할만한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 부분은 ‘입시 정보 격차 완화, 사교육 의존도 감소’ 등을 개대하는 듯하다. 대입전형 단순화는 학생부 교과전형+학생부 종합
전형+수능 전형'을 기본으로 하고 논술전형, 특기자 전형 등을 없애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언뜻 바람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수능전형’을 상상해보자. 수능전형은 ‘단순한 대입전형’ 추구라는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국가교육회의가
준비할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한 교육비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객관식 선다형 문제 풀이 능력으로 21세기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겠는가? ‘단순한 대입전형’의 양면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문이란 찬성만 하는 곳이 아니다.
비판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자문기구의 바른 역할이다.
그 다음으로 ‘공정한
대입전형’을 보자. 국가교육회의가 대입전형의 공정성을 어떻게 정의할지 매우 궁금하다. 대입전형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학종처럼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란 비난을 받지 않는 전형이 ‘공정한’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닐까. 기우일지 모르지만 수능처럼 점수로 줄세워 말썽이
없는 것을 공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수능전형 역시 깜깜이 전형은 아니지만 부모의 경제력이 크게 작용한 불공정한 전형이다.
게다가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 대입전형과 관련된 ‘공정’의 의미는 이런
논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국가교육회의가 적용할 공정의 개념은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①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인한 차이는 공정하지만, 사회적 계층 배경(예:
부모의 경제력)이 작용한 결과는 공정하지 못하다.
② 사회적 계층 배경의 영향을 축소하기 위해 빈곤 소외계층 아동의 교육에 더 많은
자원(resources)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하다.
(Brighouse 외, 2010)
③ “공정함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공정함이란 모든
사람들이 성공에 필요한 만큼 (차별적으로) 제공받는 것을 의미한다(Fair isn’t everybody getting the same
thing. Fair is everybody getting what they need in order to be
successful).”
이상의 공정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학교교육부터
공정해야 한다. 학교교육이 불공정했다면 대입전형은 공정할 수 없다. 공정한 대입전형을
위해서는 위 ②③의 조건부터 충족시켜야 한다. 이는 공부 잘하는 아동 위주로 지원하고 상위권 대학에 진학 가능성이 낮은 학생은 수업에서 배제되는
일, 많은 학교가 3등급 이상의 아동들의 학생부 기록에만 신경을 쓰는 일 등의 정의롭지 못한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국가교육회의가 시중에 떠다니는 ‘짝퉁 공정’ 모델을 기준으로 공정한 입시를 설계한다면 이 역시 학교교육을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 역량이 부족한 경우’를 보자. 우선 국가교육회의 위원 구성방식을 보면 개인 간의 가치, 이해관계, 전문성 차이가 비교적 크다.
이는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문제는 교육에 관한 문제 해결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회의가 출범하자마다
우선 학습을 하는 기간을 갖기를 비공식적으로 제안드린 바 있다. 의사소통의 효율과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문제해결 프로세스부터
함께 잘 정립할 필요가 있다.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가 교육문제 해결 절차로 개발한 ‘스튜디오 방식(Studio Method)’을 적극 참고할
것을 추천드린다. 21세기 문제해결 방식으로 널리 각광받고 사용되고 있는 디자인 씽깅(design thinking) 기법을 활용한다. 이 기법은
중장기적으로 나아갈 큰 방향과 비전을 먼저 설정하고 단기적 문제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결한다. 만약 국가교육회의가 8월에 발표할 대입전형 안을 사전 가이드라인에 따라 ‘단순하고 공정한 전형’
프레임에 갇혀 급하게 결정하게 된다면 나중에 후유증이 클 가능성이 높다. 문제의 정의와 가설 검증을 제대로 한 후 문제의 해결책은 열린 접근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디자인 씽킹의 기본 원리이다.
끝으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육을 추구하기 위해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부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 해결을 반드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가? 문제해결을 위한 질문을 “국가교육위원회를 언제, 어떻게 설치·운영할까?”에서 “교육행정의 민주화와
교육정책의 안정성·지속성을 담보하고 이를 통해 학교교육 혁신을 이루려면 새로운 교육거버넌스 체제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로 바꾸어야
한다. 전자의 닫힌 질문에서 시작하면 교육 거버넌스 체제로 다른 더 좋은 안이 있어도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처럼 열린 접근을 하는 것이 옳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권력의 이동, 권력의 또 다른 독점 현상만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후자처럼 열린 질문으로 시작하여 디자인 씽킹 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교육을 흥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학교교육의 질 향상이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고 학교 문화가 바뀌고 교사가 변화의 주체로 나서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본의 중앙교육심의회와 같은 연구 전문성이 높은 기관을 두고 교육부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자 할 때는 이 심의회에
자문을 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을 개혁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이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식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교육부를 구조조정과
조직혁신은 하되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혁신해서 이를 문화로,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문제 해결을 신고리 원전의 경우처럼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신고리 원전의 경우는 원전을 계속 짓고 유지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두 가지 경우의 수만 있다. 하지만 교육문제는 이와 전혀 다르고
훨씬 더 복잡하다. 질 높은 리서치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초안 작성 그리고 나서 이해당사자들의 폭넓은 이해, 공감, 협력을 구하기 위한
대화의 시작, 그 결과의 반영 등과 같은 사회합의 성격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가 하는 방식이다.
14. 우리
모두(사회)
우리는 지금까지 교육이 잘못 돌아가면 이것에 대해 교육부나 학교에 비난의 화살을
겨누었다. 물론 교육개혁이 실패하는데 대해 교육부나 학교의 책임이 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부나 학교가 어떤 특정 정책이나 특정
제도를 선택하는 데는 ‘우리 모두’의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령 ‘주입식 교육’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 학습이란
교사의 설명과 학생의 암기란 인식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또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란 미신이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행정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대신에 ‘학습자 주도 교육이나 학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여전히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생들은 수업 중 책상에
얌전히 앉아 교사주도 수업에 집중하기를 기대한다. 또 내신 ‘상대평가’가 끈질기게 생명력을 갖는 것은 학부모, 학생, 교사, 대학 모두가 이것이
갖는 폐해보다도 장점과 편리함에 대한 미련이 큰 것과 관련이 깊다. ‘대입경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경쟁이 완화되지 않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학능력시험처럼 학생을 점수로 ‘줄세워 뽑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다. 사람들은 오직
측정할 수 있고 수량화될 수 있는 결과만 중시하고 수행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표준화 시험(예:
수능, 기말고사)이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 학부모, 교사 등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시험의 필요성과 장점에 대한 믿음이 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학종’에 대해서도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자질과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총체적 평가가 강화되어야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은
점수화하는 전통적 시험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크다.
이상의 현상들은 일종의 밈(meme)(Blackmore, 2000;
Dawkins, 1976)이기도 하다. 밈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지닌 관념이며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달될 수 있는 문화적
정보의 단위이다. 밈은 집단의 행동과 믿음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영향을 받아 교육부는
정책을 선택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 모두가 의식하든 못하든 교육을 그르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가 규정하는 것이다. 특정하게 누구라고, 또는 어떤
세력이나 집단이라고 지목할 수 없는, ‘우리’가 문제를 정의하고 있다. 대선 캠페인에서 ‘사교육 절반’이라는 슬로건이 나오게 되는 것은 대통령
후보나 그 캠페인 진영의 탓이 없지 않지만, 그들이 그런 슬로건에 낙착을 보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함축한 여러 공유 의미들이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 문제가 있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일차적으로 그런 문제와 그것의 해결에 연루된 사람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책임은 ‘우리’가 공유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공유한 의미로 인하여 학교 문제는 ‘지금처럼’ 규정되고 있는
것이고, 그런 문제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시시포스(Sisyphus)와 다름없는 형국에서 그 문제 해결에 기약 없이 진력하는 사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학교를 망치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이다(강태중, 2014).”
이상의 성찰은 ‘교육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변화의 중심에 우리 각자가 서야 한다. 우리가 변할 때만 교육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전에!
[참고자료]
• 강태중, 2014. ‘누가 학교를
망치는가?’(공교육 희망 저널 기고문)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058&page=18
• Andy Hargreaves and Dennis
Shirley, 2009. 『학교교육 제4의 길』(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15)
• Blackmore, S.
2000. 『The meme machine』. Oxford University Press
• Michael Fullan, 2016.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원리의 적용』(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17)
• Michael Fullan, 2004.
『LEADING in a culture of CHANGE』
• Caine & Caine, 2011. 『뇌가
배우는 대로 가르치기』(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17)
• Helsinki Design Lab, 2010.
Recipes for Systemic 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