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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업인 출신 적십자사 총재…혈액사업 민영화 우려가 현실로? (라포르시안, 김상기 기자, 2014/09/26 09:51)
英, 사모펀드에 국립혈액원 매각…박근혜정부, 고용·복지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차원서 혈액사업 민영화 검토
'영국혈액원(PRUK)'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 산하 공공병원에 혈장 등 혈액제제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정부 소유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영국 정부가 만성적인 적자를 이유로 지난해 7월 PRUK의 지분 80%를 미국의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사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밋 롬니가 공동설립한 사모펀드다. 이 회사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와 미국 최대 영리병원 체인인 HCA를 공동소유하고 잇으며, HCA를 통해 런던의 민영의료보험시장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PRUK 매각을 놓고 영국 현지에서는 혈액 자급체제가 무너지면서 혈액 제제의 안전성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영국혈액원의 민영화가 꼭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최근 그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앞서 대한적십자사(이하 한적)는 지난 24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제28대 총재로 성주그룹 회장 김성주씨(57)를 선출했다. 총재로 선출된 김성주 회장이 정식으로 임명되면 한적 창설 이래 두번째 여성 총재이면서, 최초의 기업인 출신 총재가 된다.
지금까지 한적 총재에는 국무총리나 장관 출신 등 국가 원로급이 주로 임명됐다. 한적이 구호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남북 분단이란 특수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적십자회담 관련 업무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간 7,4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총괄하고, 국가적 인도주의 사업 전담기구 수장에 기업인 출신이 임명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 일로 받아들여진다.
김성주 총재 선출자는 철저한 기업인 출신이다. 그는 대성그룹 창업주의 막내 딸로, 90년대 초 성주인터내셔녈을 설립하며서 사업을 확장하며 지금은 세계적 여성기업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그가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바 있어 이번 인사를 놓고 '낙하산 보은인사'라는 비난이 거세다.
야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직접 영입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겼던 것을 빼고는 (김성주 회장의 총재 선출)설명이 불가능하다"며 "전형적인 '보은 낙하산 인사'나 다름없다.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옳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정부,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방안서 혈액사업 민영화 언급
무엇보다 기업인 출신 총재 선출이 우려스려운 점은 한적이 맡고 있는 혈액사업의 민영화 가능성이다. 1958년부터 혈액사업을 시작한 한적은 현재 15개 혈액원을 운영하면서 혈액의 안정적인 수급과 관리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혈액사업을 수행하면서 낮은 혈액수가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져 누적적자가 계속 쌓였고, 이 때문에 그동안 몇 차례 혈액사업을 한적에서 분리라는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혈액사업의 민영화 방안이 검토됐다는 점에서 기업입 출신 총재 선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 입수해 공개한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추진방안'(기획재정부 작성) 문건에는 한적의 혈액사업 민영화가 언급됐다. 기재부가 작성한 고용·복지분야 기능점검 추진방안 문건에는 적십자사와 관련해 '혈액사업에 대한 민간운영주체 참여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 내용이 보도된 이후 논란이 커지자 기재부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 것으로, 관련부처의 의견을 조회 중이며 확정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월 24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주도로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항의집회에서 최경진 적십자 노조 지부장은 "고용복지기능조정이란 이유로 적십자사 혈액사업을 정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총재도 모르는 혈액사업주체 변경 사업을 기재부가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다"며 "혈액사업을 민간으로 확대하려는 정부 의도를 간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복지분야 공공기관 기능점검을 통해 운영 효율화 방안을 강구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적자가 계속 쌓인 혈액사업의 민영화가 검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적 설립 이래 최초의 기업인 출진 총재가 임명될 경우 혈액사업 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혈액사업은 정부가 해야 하는 공공사업을 민간 비영리기관인 적십자사가 그동안 맡아온 것이지만 사실 정부의 지원은 미약해 적자가 쌓였다"며 "현 정부는 병원의 경영 개선을 이유로 의료업의 본래 역할보다는 영리자회사와 부대사업 확대를 통한 돈벌이로 내몰아 의료민영화 논란을 키웠다. 이제는 혈액사업 민영화 논란까지 불거지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http://health.re.kr/?p=1946
'적십자'도 경제 논리? (서리풀 논평,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4.09.29)
대한적십자사는 정부 조직이 아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라 하기도 어렵다. 굳이 법률대로 하자면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사단법인이다. 적십자 회비를 내고 남북적십자회담도 하는 바람에 생긴 흔한 오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적십자'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자.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적십자라 하지 않고 '적신월(赤新月)'이라고 한다. 종교적 배경이 달라 적십자 대신 초승달을 상징으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적십자'위원회와 달리 국제 연맹은 적십자, 적신월을 같이 쓴다. 연맹, 위원회, 회의, 협약 체결 당사국 등의 관계는 대한적십자사의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누가 보더라도 국제성, 보편성을 가진 조직임을 쉬 알 수 있다.
그런 적십자 운동, 한국 내에서 그 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인 대한적십자사에 기업인이 총재에 취임한다. 재벌가 출신에 대기업을 운영하면서, 지금 대통령의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신 분이라고 한다. 당장 낙하산이니 보은 인사니 하는 비판이 거세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잘 된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적십자 내부에서 합의해서 뽑았다고는 하나, 형식만 그렇다 뿐인 것을 누가 모를까. 막상 당사자는 그걸 몰랐다는 소리도 참 가소롭다. 적십자가, 또 그 총재 자리가 이런 지경인가 싶다.
이번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데에는 '낙하산'과 '전문성'이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평생 기업 활동을 해 왔고 지난번 대선에서 선거 운동을 도왔다니 말이 나올 만하다. 남북 관계를 다루었거나 구호 활동에 참여한 것 같지도 않다. 터무니없는 비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로 치면 적십자사 총재만 가지고 그런다고 억울해 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는 낙하산과 비전문가가 워낙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그나마 이번 경우는 조직 운영(민간의 사적 조직이지만)의 경험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보자. 낙하산은 나름대로 이해해 줄 구석이 있다.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고 또 공유한 사람이 국가기관의 운영을 맡아야 한다는 말이 영 우스운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지금 이해하고 공유할 국정 '철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스럽긴 하다.
비전문가라는 비판에도 당사자는 억울해 할 수 있다. 과거의 대한적십자사 총재만 하더라도 모두 무죄라고 하긴 어렵다. 일부 언론은 과거 총재가 주로 "경륜과 덕망, 사회적 신임을 고루 갖춘 원로"였다고 하나, 꼭 그런가 싶다. 정부 고위직이 '관피아'로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 많았고, 무슨 원칙인지 모를 뒤죽박죽도 꽤 있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낙하산도 비전문가도 아니다. 과거에 무슨 품위 없이 막말을 했다는 것도 관심 밖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 바로 '기업인'이 새 총재라는 사실이다.
일부 언론은 기업인으로는 처음이라고 했으나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2007년 총재를 맡은 분도 기업인 출신이긴 하나, 적십자 내부 사람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이번 정부에서 이 시기에 기업인이 적십자사를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관심의 출발은 사태가 이러 결과에 이른 이유. 임명권자도 영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비판과 비난을 예상 못했을까. 보은 인사니 비전문가니 하는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꼭 명시적, 체계적으로 어떤 구상을 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직관이고 암묵적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인 의미는 매한가지다.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적십자의 활동 범위는 꽤 넓다. 그 가운데는 일반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은 역할도 적지 않다. 이산가족 찾기로 대표되는 남북 교류 협력, 적십자 병원 운영, 헌혈 사업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적십자 활동들이 기업과 경제의 논리로 재해석되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분을 임명한 데에 여전히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비판을 무릅쓰면서도 기업인을 적십자의 운영 책임자로 뽑은 이유는 적십자 조직과 활동의 '경제화' 그리고 '기업화'를 빼고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지나친 해석에 억지 춘향식 의미 부여라고 할 것인가. 백 걸음을 양보해서 임명권자의 심오한(?) 의도 같은 것은 없었다고 치자. 그래도 우리의 예측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게 '경향성'이다. 새로 임명된 총재가 무엇으로 스스로를(충성과 열정과 실력을) 증명하려고 할까?
그렇지 않아도 적십자의 일부 활동(그러나 핵심적인 것들)은 경제화, 기업화의 길을 닦고 있던 참이었다. 혈액 사업과 병원 운영이 대표적인 분야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길을 넓히고 굳히는 데 관심이 기울어질 것이 틀림없다.
먼저 병원 사업. 현재 서울, 인천, 상주, 통영, 거창 등에 6개의 적십자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 유명하지 않다 뿐, 각각의 지역 사회에서 대표적인 공공 병원으로 역할을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적십자 병원은 같은 공공 병원인 지방의료원에 비해서도 더 사정이 나쁘다. 최근에도 지난 2010년 대구의 적십자 병원이 적자 심화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관련 기사 : '인도주의' 사라진 적십자 병원)
아직 총 부채 규모가 1200억 원이 넘고 매년 4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본다는 것이 작년 국정 감사 보고였다.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조 조정'을 하자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 조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업인인 새 총재는 아마도 공공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부채와 적자를 그냥 두고 왜 병원을 계속 운영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쯤으로 진단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 분이 살아온 이력과 평소의 소신으로 보건대 모두 문을 닫거나 민간에 팔아넘기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최저 수준이라도, 기업식 운영으로 효율과 수익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혈액 사업도 위태롭다. 헌혈은 흔히 단체 헌혈이나 급하게 구하는 Rh- 혈액형, 그리고 사회적 도덕과 윤리로 상징된다. 하지만 이미 민영화의 바람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혈액 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관련 기사 : 혈액 사업 민영화 우려가 현실로?)
경과는 구구절절 복잡하지만 이런 '새바람'의 배경에는 역시 경제 문제가 있다. 적십자사는 15개 혈액원과 131개 헌혈의 집을 운영한다. 여기다 연구원과 전문 시설, 검사 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한 이런 종류의 적자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장,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가격 같은 생각을 먼저 하리라. 역시 또 문제는 비효율적 운영이나 관련자의 '도덕적 해이' 또는 경쟁 메커니즘의 강화쯤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혈액 사업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벌써부터 다원화된 혈액 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적십자의 혈액 사업은 민간 부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한마음혈액원과 사실상 경쟁한다. 새로운 총재는 이런 혈액 사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 혈액 사업의 적자를 단번에 만회할 '상품'을 개발하라고 하지나 않을까. 아니면 기업에 모두 맡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걱정이 그냥 쓸 데 없는 것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새 총재의 경험이 적십자 본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좋게 쓰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래 봐야 헛된 바람 아닌가 싶다.
분위기가 그렇고 도도한 불퇴전의 각오가 그렇다. 그가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꽤 괜찮은 셈이다. 경제 부처는 물론이고 전체 국정이 경제화, 기업화를 신조로 삼은 지 오래지 않은가.
멀리 가면, 혈액 사업과 병원 운영을 넘어 남북 교류와 인도주의적 구호 사업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장의 근본주의는 장기 매매의 자유화까지 아무렇지 않게 말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대담하다(스콧 가니의 <레드마켓, 인체를 팝니다>(전이주 옮김, 골든타임 펴냄)).
조만간 적십자 회비를 내는 이유를 묻게 될지도 모른다. 납부 거부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시나리오다. 더 크게 보면, 모든 것의 경제화에 어떻게 저항할까를 물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다시 과제다.
보태는 말. 적십자사의 새 총재가 시장 거래가 아닌 인도주의적 동기의 헌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럴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리처드 티트머스가 오래 전 쓴 그 유명한 <선물 관계(The Gift Relationship)>라는 책을 살펴보시길 권한다(유감이지만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보도대로라면 영어로 읽는 것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다만 헌혈뿐 아니라 적십자 활동 전반을 성찰하는 데도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