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매일 [호매칼럼] 편집부국장 윤승병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부디 실감하시길... ,
2014.05.01.00.01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졌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할을 맡았던 한석규라는 배우가 한 대사이다. 자신과 함께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반대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신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해서 잘못된 과거 관행을 거론하며 공무원들을 질타하고, 선장을 살인자로 지칭하며 마치 제3자가 비평을 하듯이 말하면서, 정작 대통령 자신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언행과 비교하면서 세종대왕의 이 대사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 ,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이 학생들과 승객을 살리는 것을 우선하지 않고 자신들만 먼저 배를 탈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게 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등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연일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정부와 공무원들은 미필적고의살인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들의 책임보다 백배천배 더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다. 최근 방영된 <상속자>라는 TV 드라마에 나왔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어야 한다.”라는 말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 딱 들어맞는 명언이다. 그 무게를 견딜 자신과 능력이 없으면 왕관을 쓰서는 안 되고, 쓰려 해서도 안 된다.
"그게 진짜 자기 일 아닌 게 없어요. 그런 게 하나도 없어. 대통령에게는, 제일 골치 아픈 게, 비가 너무 와도 내 일이고, 안 와도 내 일이고…. 그래서 일기예보를 매일 보고 또 보고 그래요. 봐 봤자 별 수 없으면서..."
2007년 7월 아프카니스탄에 선교를 갔던 샘물교회 신자들 19명이 탈레반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이 무장 납치세력은 한국 정부에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요구하면서,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협박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납치된 국민들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40여일의 협상 끝에 19명 전원이 석방되었다. 이에 대해서 일부 우익세력은 테러 단체와 협상을 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수백억의 세금을 퍼주었다며,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다.
사실 당시 아프칸은 전쟁 중이었고 정부는 여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하여 국민들의 여행이나 방문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 선교 단체가 신고도 없이 간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이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그 종교단체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비가 와도 내(대통령) 일이고, 비가 안 와도 내(대통령) 일”이라면서 국정원장을 직접 나서도록 하여 국민들을 안전하게 석방시킬 수 있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2004년 7월 김선일이라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라크의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되어 무참하게 피살되었을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 현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는 국민의 여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대통령이 300명이 넘는 사망 또는 실종자를 낸 참혹한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의 빈소에 가서 조문을 하는데 유족들의 항의를 받아야 하고,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치워지는 장면을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고3 학생이 “목숨을 걸고” 대통령에게 헌법을 위반하였다고 직격탄을 올리고 있고, 어느 방송인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50만을 넘어섰다. 이것이 민심이고, 국민의 분노의 지표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10년 전 말을 보면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국민이 편안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국가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선진화”라는 그의 말이 100% 옳다.
이 말은 한나라당 대표로 국회에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한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 10년 전의 한나라당대표 박근혜가 지금의 대통령 박근혜와 동일인인지 의심하게 한다. 그 때 말을 잘 못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국가에 대한 신념이 바뀐 것인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원내각제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다. 그래서 내각의 수반은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다. 모든 국정의 책임은 총리가 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국민은 “우리 아이 살려 달라.”고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데 대통령은 서서 마이크를 잡는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대신 총리가 사과를 하고 있고, 대통령은 뒤늦게 유족과 국민 앞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관 앞에서 사좌를 하고 있다. 유족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민이 불신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잘 되면 대통령 덕이고, 못 되면 남 탓을 해서는 결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다. 특히 대통령은.....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천년도 부족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 한 시간으로도 족하다.” - G.G Byron
“못 가진 자들의 울부짖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 Howard Zinn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외국의 명언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를 밝게 빛 내는 게 정치의 이유”라며 정치에 입문한지 15년이 지났다. 바이런의 말처럼, 그가 정치에 입문하여 박근혜 정부를 세우는데 15년도 부족했겠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순간일 수 있다. 민심이 그를 떠나는 날 그것은 빈 껍데기뿐인 정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생떼같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차가운 바다에 수장당한 어머니들의 울부짖음이, 그들의 요구가 전부 옳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하워드 진의 말처럼,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정부는 결코 정의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를 운영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벽에 몰래(자신들의 표현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조문하지 않는 시간에”) 조문을 갈 것이 아니라 유족들을 붙잡고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함께 대성통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지금 온 나라가 초상집인데, 대통령이 상주가 되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야 국민에게 나라 사랑을 말 할 수 있다.
단원고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은 아마 수학여행 안내 교육을 받으면서, 어쩌면 수학여행 출발 전 전체 모임을 하면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며 애국가를 목청껏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가를 목청껏 부른다고 학생들에게, 국민들에게 애국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대통령과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세계에서 배를 제일 많이 만들고, 가장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나라(우리 나라는 언제나 선박 건조와 해운 물동량이 세계 1,2위를 다툰다고 한다)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배를 만드는 나라를 소원한다. 또한, 최첨단 대공 감시시스템이니 탄두미사일 대신 바다에 빠진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최첨단 수중 인명 구조 장비를 개발하는데 예산을 아끼지 않는 나라를 소원한다.
그리고 국민이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는 나라가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들 지켜주지 못했다며 국민 앞에 무릎 꿇는 나라, 마지막으로, 6천톤 짜리 배의 무게보다 60kg 짜리 국민의 생명의 무게가 더 무거운 나라를 소원한다. 이것이 필자가 소원하는 대한민국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