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간 더 안자는 것도 어렵지, 말 안하는 것도 어렵지, 책 안보는 거야 좀 쉬운데 말이야,
안 보면 되는데, 먹는 것 말이여, 세 때 먹는 것 말고도 옆사람이 자꾸 간식을 먹으니,
스님이 얼마나 나를 미워하길래 옆사람은 먹게하고 나는 못 먹게 하는가?
기가 막히더라 이거야.
돌아 다니지 말라는 것도, 해제하면 몸도 어쩌고 해서 가봐야 되니,
아무래도 못 지키겠다 이거야.
"이 쌍놈, 죽일 놈아, 오계도 못 지키면서 공부가 되니 안되니 그딴 소리하고 있어?
앞으로 공부가 되니 안되니 그 소리할래, 안 할래?"
"다시는 그소리 안하겠읍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오계를 한번 지켜뵈라!"
그뒤에도 더러 여기 있었어. 더러 오기도 했는데, 오계를 몇해를 지키려해도 못 지키겠대.
그 뒤에도 더러 오계를 줬는데, 어떤 首座는 요만한 판자에 五戒를 적어서 메고 다녀.
그래도 못 지켜.
五戒를 수백명한테 줬어도 지키는 사람 한 사람도 못 봤어.
결국은 지금까지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봤다 그 말이 되어 버리거든.
그래도 공부가 되니 안되니 그런 소리 할 수 있을까?
벌써 結制하고 한 달이 됐는데, 두달이 남았긴 하지만, 두달도 퍼득 같애.
결제때 오계법문을 하려다가 기운도 없고,
결제법문하고 오계법문할려하니 안된다 말이라.
그래 오늘 내 늦긴 좀 늦었지만, 우리 오계를 한 번 지켜 봅시다.
또 선방만 오계 지키란 말 아니야.
講院도 經 읽고 할려면 잠 잘 것 다 자고 공부 될 것가?
서울대 들어가는 비결 말이여, 두 시간 더 안자고 하는 거, 많이 물어 봤어.
좋은 대학에 들어 가려해도 두 시간 더 안자고 공부해야 되는 판인데,
無上大道를 성취하려 하면서, 부처님 經을 읽고, 參禪을 할라 하면서,
세시간, 그것도 많이 생각해서 세시간이지,
나중에 할 수 없이 五戒중에 시간을 하나 늦추자, 어떻게? 네시간하지.
네시간으로 늦추어 봤단 말이야.
(그런데) 그것도 못지켜.
올 여름 결제때도 4시간 했는데, 여섯시간 하자고 한다 하길래 안된다고 했어.
그러니까 首座스님하고 얘기해서 다섯시간 한 모양이야.
어쨌어? 다섯시간 했제?(네시간 방 짭니다) 네시간 하는가?
그때 다섯시간 한다 길래 말이야. 난 말같잖은 소리엔 대답도 안해.
그러니까 네 시간 꼭 하지? (예!) 옳지! 네시간 자면 충-분해.
우리 다 해 봤어. 우리 젊을 때 사실 세 시간 더는 안 자봤어.
몇이서 짜거든? 세시간 자서 잠이 부족해 병나는 법 없어.
"세시간 더는 안자고 공부한다"는 그런 결심은 여간해서는 못하는 거거든.
그러니 이것만 해보면 말 안 하는 것(등 나머지 네가지)는 따라가 버려.
講院은 몇시간 자노? 일곱시간 자나? (여섯시간 잡니다)
여섯시간? 일곱시간 안자고? 요새 여덟 시간은 자야 된다 카든데?
강원은, 이건 명령이 아닌데, 내 이만큼 얘기 해 줬으니까,
몇사람이라도 짜고 말이여, 한 세시간 하든지,네시간 하든지, 네시간 하면 충분해.
아무리 애들이라 한참 잘 때지만,
나는 7시간 자는줄 알었더니 여섯시간 자는구나, 하하하.
우리가 웃고말 일이 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깊은 산중에 들어 앉아서 시주물을 먹고 있으면서 공부를 안하면 生陷地獄하는 것 아니야?
본래 五戒는 세시간이지만, 禪房에서는 네시간 한다 하니까-
그래도 "그래라" 이말은 안해-
네시간하고, 얘기하지 말고, 그런 동시에 책 같은 것 보지 말고, 간식하지 말고,
요새는 어느 선방이고 할 것 없이 먹자판이래.
내 지금 말한 五戒,
첫째는 세 시간 더는 자지 말자,
얘기하지 말자,
잡담하지 말자,
講院에는 經 익히는 게 근본이니까 經 이외에는 딴 책 보지 말자.
그전에는 내가 다니면서 講院애들 책상을 뒤졌거든.
보면 유행가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온갖 것이 다 나와.
몽땅 모아서 불에 다 태우고 그랬어. 요새는 기운이 없어서 그것도 못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냅둬. 그것도 하려면 힘들어.
간식하지 말자. 간식 안 하는 그게 큰 공부여.
또 설사 解制가 됐다 해도 돌아 다니지 말고.
이렇게 五戒를 어떻게 해서든지 철저히 지켜 갖고,
하나 아니면 반쪽이라도 참으로 공부하는 "공부인"이 나와야 될 것 아니가?
자! 우리 노력해 봅시다 !
4) 원수를 불보살로 섬기자.
____(그렇지만) 내가 그르다고 생각해 봐.
때리는게 아니라 설사 목을 부러뜨려도 내가 죄를 짓고 잘못했으니까 그런식으로 은혜를 베픈게 아니냐 이말이여.
실지로 나를 잘 깨우치고, 잘 반성시키고,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욕도하고 해쌌는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나 그 말이야.
그 막중한 은혜는 뼈를 갈아 가루를 낸다 하더라도 도저히 다 갚을 수 없다.
그래 내가 게송 하나를 만들어 줬어.
그사람이 보더니,
"제가 참 實行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이방향으로 노력하며 살아야 안되겠읍니까?"
하면서 그 뒤로 부터는 노력을 많이 하는 모양이야.
"내가 당신보고 법문이나 하는 체하면서 게송이나 만들어 주고 하지만 실행은 당신보다 못할지도 몰라" 하니까
"스님이 그럴리가 있읍니까? 이를 근본으로 삼고 앞으로 잘 노력해서 누가 뭐라든지 간에 상대를 善知識으로 보고, 아무리 해(害)를 줘도 은혜로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하겠읍니다"고
___ 하필 결제하는 날, 좋은 날,
칼로 째고 창으로 찌르고 하는 그런 말을 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비오는 날도 있고 날씨 좋은 날도 있고,
그런데, 비가 오는 궂은 날, 나쁜 일을 당하는 그때가 어렵거든.
그 땐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야 되느냐___
그래서 이런 소리를 해보는 것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부처님이 장 하신 말씀이
"원수를 부모같이 여겨라" 이것의 근본내용이,
於我에 極惡者가 是眞善知識이니,
나에게 극히 악하게 하는 자가, 나를 어떻게 해서 든지 못살게 하는 사람,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참다운 선지식이다 그말이여.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나를 잘 가르치고 지도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 선지식이다...
그럼 말 다된 것 아니여?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든지, 무슨 소릴하든지 간에 그 은혜는 뼈로 가루를 내더라도다 갚을 수 없다.내가 항상 하는 소리가
"우리 불교사전에는 용서란 없다"는 것이야.
용서란 나는 잘했는데 저쪽은 잘못했거든?
그래 잘한 내가 잘못한 저쪽을 용서한다 그 말 아니야?"
보통 "용서할 줄 알아라"하는데, 나는 정신없는 소리라고 봐요.
남을 용서한다는 말은 자기는 잘했다는 말 아니야?
그러니 우리 불교사전에는 용서라는 말이 없다 그러거든.
언제든지 내가 잘못했지 저쪽 잘못은 없단 말이여.
저쪽은 언제든지 선지식이고 나는 중생이고,
모든 잘못된 책임은 나한테 있는데,
어떻게 남을 용서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감사를 해야 해.
저 사람이 나를 한대 때리면."저 사람같지 않은 것, 그만 내가 용서해야지"하면
언제든지 내가 옳은 거거든.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저사람이 나를 툭 쥐어 박으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거야, 잘못했으니깐 내 허물을 고치려고 이런 주먹 법문을 해 주었구나" 하고 생각해야되.
그러니 "참 감사합니다"해야지,
"용서"하면 세상에선 최고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든지 내가 잘못한 걸로 알고 저쪽을 불보살로,선지식으로 보라 이말이야.
그러니 감사를 해야지 어찌 용서를 하겠나 이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무슨일을 당한다 해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
용서한다는 것은 도저히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거거든.
그리고 옳고 그른 것, 그것은 참 모호한 것이야.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싸움나는 것 아니야?
한쪽이라도 내가 잘못했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하면,
모든 분쟁이 없었질 것인데,
그렇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잘 안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까도 얘기 안했어?
나이가 80,90이 되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자기 반성 할 줄 모르면,
아직까지 철 안든 사람이다 그 말이여.
철이 들면 자연히 모든게 내 잘못이요, 내 옳은 것이 없어져 버려.
이건 고담에 나오는 얘긴데, 한 1300년 전에 당나라에 '裵度'라는 정승이 있었는데,
참- 유명한 정승이야.
밖으로 나가면 將師가 되고, 안으로는 큰 宰相이 되고,
만고의 名宰相인데,
이사람은 등이 동생과 딱 붙어서 쌍둥이로 태어나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모르는데,
중간을 칼로 잘라서 하나는 형이라 하고 하나는 동생이라 했어.
한날 한시에 태어 났으니, 얼굴도 같고, 생년월일시도 같으니,
행복한 사람이 되든지 불행한 사람이 되든지,
똑같이 생활하고 말것 아니야?
그런데 안그래.
그뒤에 커서 배도는 천하에 유명한 명재상이 되어 만고에 그 이름이 드러나 있지만,
동생은 지지리도 생활이 곤란하여, 개울가에서 평생을 뱃사공으로 곤궁하게 살았어.
그럼 배도는 얼굴도 똑 같고 생년월일도 똑 같은데,
어째서 운명이 그렇게 달라졌나.... 그 이유가 있어.
그가 조금 커서 열 댓살이 돼서 관상을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니 큰일 났다, 니 얼굴이 뵈기는 좋아 보이는데, 얼마나 운명이 나쁜지 니만 평생 고생하고 말 것이 아니라, 니 이웃까지 다 못살게 된다, 너 때문에-" 사주를 보더니 또 그러거든.
한두 사람이 그러는게 아니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군데 물어 보니 다 그래.
그래 이사람이 생각을 했어.
내가 운명을 잘 못 타고 났던지, 사주팔자를 잘못 타고 났던지 해서 내가 고생하는 것은 괜찮은데,
나 때문에 이웃까지 다 망한다 하니,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단 말야.
보통 사람 같으면 사주도 팔자고 숨기고,
남이야 망하든 말든 어디 사람 많은데 가서 나도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했겠지만, 그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옆사람에게 피해 안 주려고 저 깊은 산속에 갔어.
그래 생활하면서 자기 반성해 보니,
좋은 일 (善)과 궂은 일(惡)한 것이 반반이야.
"여기서 나도 공부를 해서 착한 사람이 되야겠다"하고,
종이도 붓도 없으니 나무를 두개 깎아 놓고 좋은 일하면 오른쪽 나무에 표를 하고,
나쁜일 했다고 생각이 들땐 왼쪽 나무에 점을 찍어 표를 했어.
그렇게 생활을 하는데,
처음엔 자기 생각에 착한 일 한 것 밖에 없어.
그래서 착한 쪽의 점수가 자꾸 올라가거든,
나쁜 쪽은 점수가 적고,
그래 어느정도 점수가 올라 간 뒤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 전에 좋은 일 했다는 것이 전부 나쁜 일이야.
생각이 모자라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철이 들고 보니,
나쁜 일이지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이때까지 했던 것이 다 헛일이었구나.
나무를 새로 깍아서 새로 점을 찍었어.
이제는 나쁜 쪽에 점수가 올라가.
그러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좋은쪽의 점수가 올라가.
그러다가 또 시일이 지나간 뒤에 보니까,
자기가 좋은 일이라고 한 것이 전부 다 나쁜 짓이야.
이렇게 여러번 반복을 했어.
혼자 살면서도 여러가지 선악이 있거든.
이렇게 하다가 나이가 한 40되니 몇달이 되도 자기가 잘했다는 생각이 안들어.
잘 했다는 생각에 점을 찍을 수가 없단 말이야.
그때가 이제 요새말로 철이 좀 든 때야.
아무리 자기가 잘한다고 했어도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잘했다는 생각에 점을 찍을 수가 없단 말이야.
전부 잘못한 것이지.
잘했다는 생각을 낼수가 없어.
사람이 되려면 그만큼은 되야 돼.
그래 결국에 가서는 무엇을 성취했냐 하면,
자기가 잘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성취했어.
전부 자기 잘못이지.
그래 생각해 보니 한 20년 산중에 살았으니 세상구경이나 한번 해 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서 유랑길에 나섰어.
가다가 길이 무너진 곳이 있으면 길을 고쳐놓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 있으면 짐을 져 주고,
농사철엔 농사도 도와주고,
때가 되면 밥 좀 얻어 먹고,
사방팔방 다니면서 남 거들어 주는 일만하고 돌아 다녔어.
그러면서도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이 없었어.
이렇게 한 10년을 돌아 다니니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어.
"그 사람이 미쳤는가 안 미쳤는가 알 수가 없어.
남 도와주는 일만 하는 걸 보면 미친 것 같지는 않고 필시 聖人인 것 같애"
일 도와주고 때되면 한 술 얻어 먹기나 하지, 삯을 받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 하나.
인사를 하려 하면 내 잘한게 아무것도 없다고 달아나 버린단 말야.
그사람이 聖人일 거라는 소문이 唐나라 天子의 귀에 까지 들어 갔어.
"나도 한번 만나 보자" 天子가 만나 봣어.
"내가 들으니 온 천하가 네가 어질고 착한 聖人이라고 하는데, 네가 뭘 잘하기에 성인이라고 하느냐?"
" 폐하, 그것은 잘못 들은 것입니다. 저는 이리저리 돌아 다니면서 밥이나 얻어먹는 거지지 아무것도 잘 한게 없읍니다.
그 소문은 잘못된 것이지 절대로 제가 잘하고 옳게 해서 그런 소문이 난 것이 아닙니다." 하면서 천부당 만부당하다고 펄쩍 뛰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眞情 그러거든.
"그래도 널 참으로 성인이라고 하는데" 하니,
엉엉 울면서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로 잘한게 없읍니다" 하면서 도망을 가.
천자가 가만히 보니 조작도 아니고 진정이고... 참말로 성인이야.
그래 대궐문을 닫아서 도망 못 가게 했어.
" 당신은 참으로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고 나쁜 일만 한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당신은 진짜 성인이야.
당신같은 사람이 이나라를 맡아 정치를 하면 이 나라는 堯舜시대가 될 테니, 政丞을 맡아 해라"
그만 눈이 둥그레져서,
"폐하 저 같은 사람이 정승을 하면 백성들이 다 죽습니다. 백성 다 죽이려면 저 같은 사람을 정승하게 하십시요"
"당신 말로는 백성들이 다 죽을 거라지만, 내가 볼 땐 백성들이 다 살꺼야. 죽고 사는 건 나중에 보고 일단 정승을 해 봐라"
그리고는 요새말로 억지 감투를 씌어서 정승을 시켰는데, 시키고 보니 명수상이야.
당나라가 요순시대가 돼 버렸어.
그때 오온제라고, 반란군이 나와서 나라를 어지럽히니, 누구도 난리를 평정하지 못해.
그래 裵度더러 都元師를 시켜서 보내니,
배도가 "이 태평성세에 당신이 이렇게 소란하게 하면 쓰나? 빨리 서로 화해하자"
하는데, 그 첫번째 조건이 당신 측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허물을 묻지 않겠다, 벌을 주지 않는다,
이거야.
(하지만) "당신의 군대가 城에 들어가서 (백성이든지 군사든지) 누구에게든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재물을 빼앗거나 하면 엄벌을 하겠다" 하고 4大門에 방을 붙혔어.
오온제 측에서 생각해 보니, 이건 (자기 측과) 싸우려는 게 아니라 도우려는 거야.
배도와 싸워봤자 결국 지겠거든.
에라 미리 항복하자! 그래서 천하가 태평하게 됬어.
나라 밖에서는 큰 將師가 되서 적군을 평정하게 됐어.
그래 근본이 어디에 있냐 하면, 내 옳은 것은 하나도 없는 거기에 있다 말이야.
우리도 이를 근본으로 삼고 龜鑑으로 삼자는 말이야.
철이 났다면 언제든지 저쪽이 옳고 내가 그른 줄 알아야 돼.
내가 그르니 잘못한 사람이고, 저쪽이 옳으니 저쪽이 선지식이다. 그 말이야.
그런 동시에 용서란 할 수 없고, 오직 감사만 할 뿐이야.
내가 옳고 니 그른 것을 반성해서, 내가 그르니 니가 옳다는 걸 노력해야겠다 이거라.
말은 쉬워도 당장에 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노력은 해봐야 안되겠어?
방향은 분명히 잡아놓고 봐야 안돼?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부처님 말씀대로 방향을 잡아놓고 살면, 결국엔 그 방향으로 가고 마는 게야.
한가지 덧 붙일 것은 실천관곈데,
흔히 " 스님, 날 해롭게 하는 사람, 원수를 부모같이 섬겨라... 말은 간단하고 참 쉬운데,
해볼라면 참- 어렵습니다. 저는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방법이 없겠읍니까?" 하는데,
살다보면 은연중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 나를 해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는 부처님 제자니까, 장 예배를 드리고 축원을 하는데,
나는 축원을, 나를 제일 해롭게 하는 사람 안 있겠어?
예를 들어 김가면"김가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십시요"하고 자꾸 축원을 한단 말이야.
이것도 말 안되는 소리지?
그사람 생각만 해도 뜯어 먹고 싶고 뼈를 갈가 먹고 싶은데 말이여,
그사람을 행복하게 해 달라고 어떻게 부처님께 축원을 해?
그것도 당연한 소리여.
그런데, 억지로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한 번하고 두번하고,자꾸 여러번 하면,
거짓말이 참말이 되어서 나중에 오래 오래하면 결국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 축복을 빌게 돼.
실지로 해 보면 그렇게 된단 말이야.
그러면 날 해롭게 하고 날 못살게 구는 그 사람이 선지식으로 안 보일 수가 없고,
내 옳은 건 없어져 버리고,
모든 사람이 다 불보살이고,
모든 것을 다 감사하게 생각 할 수 있다 이거야.
우리 한번 해 볼까?
그렇게 하다보면, 앉아도 감사하게 되고,
넘어져도 감사하고,
코를 깨도 감사하고,
실지로 그렇게 돼.
(이상 성철스님이 해인사에서 하신 소참법문 녹취자료 재정리)
부록1. 公案의 명칭과 기능,
문 : 佛祖의 機緣을 공안이라고 하는 이유와 그 기능은 무엇입니까?
답 : 공안이라는 말은 관청의 문서에 비유한 것으로서,
"公"이라 한 것은 훌륭한 道를 깨달아 세상 사람들에게 그 길을 모두 함께 가도록하는 지극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며, "案"이라 한 것은 성현들께서 그 道를 수행하는 바른 방법을 기록한 것이란 뜻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라면 먼저 관청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으며, 관청을 세웠다면 그것을 운영할
법령이 없을 수 없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른 이치를 받들어서 법령을 만듦으로써 바르지
못한 것을 박멸시켜서 천하의 기강을 바로 잡아 왕도정치가 제대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불조의 기연을 공안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같은 것으로써,
이는 한사람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신령스러운 根源에 꼭 들어 맞고
妙旨에 계합하며 생사의 굴레를 부숴 버리는 것으로서,
언어나 문자로 따질 수 없되 十方三世의 수많은 보살들과 더불어 똑 같이 지니고 있는 아주 지극한 도리라는 뜻이다.
또한 "公"이란 개개인의 주관적인 주장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며,
"案"이란 기필코 불조의 깨달음과 동일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靈山會上에서 말한 "敎外別傳"이란 바로 이 道理를 전한 것이며,
달마스님의 "곧바로 가리키는 禪"도 이를 가리킨 것이다.
예를 들어 "뜰 앞의 측백나무" "마 세근" "똥 묻은 막대기"등과 같은 공안은 전혀 궁리해 볼
길이 없는 것이 마치 은산철벽을 뚫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마음을 깨친 눈밝은 사람만이 언어문자 밖에서 뜻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이치로 알 수 없고, 말로써 전 할 수도 없고,
문자로 설명명할 수 없으며,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
마치 途毒鼓를 울리면 듣는 이는 모두 그 자리에서 죽는 것과 같으며,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 즉시 타 죽는 것과 같다.
세상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불공평한 일이 생기면 반듯이 관청에 가서 공정하게 재판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이때 吏曺에서는 공포된 법조문을 근거로 해서 재판해 주듯이,
참선하는 이가 깨달은 것이 있으나 스스로 확신을 못해서 스승에게 질문하는 경우, 스승은 공안을 근거로 해서 의심을 풀어준다.
또한 공안은, 범부의 妄情과 分別識이란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햇불이며,
보고 들음이란 창문 카텐을 걷어 올리는 줄이며, 生死의 命根을 끊어 버리는 예리한 도끼이며,
성인과 범부의 면목을 비춰보는 신령스러운 거울이다.
조사들의 뜻이 이공안에 의해 확연히 밝혀지고,
부처님의 마음이 이 공안에 의해 開顯된다.
따라서 완전히 초월하여 멀리 벗어나며, 크게 통달하여 똑같이 증득하는 데는,
이 공안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이른바 공안이란 법을 아는 자만이 두려워 할 뿐이니,
만약 그러한 사람이 아니면 그 비슷한 것도 엿보지 못한다.
문 : 어떤 이들은 공안의 깊이에 따라 서열을 매기기도 하는데 과연 공안에 깊이의 차이가
있읍니까? 또한 어째서 한 공안에 대해 깊다 얕다 하는 평가가 다릅니까?
답 : 모든 공안은 그에 맞는 분명한 한 가지 도리를 갖고 있음에도,
공안에 대한 평가에 차이가 있는 경우는,
참구한 이가 그 공안의 道理를 극진히 깨치지 못하고 자신의 所見에 빠졌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움직임은 보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또한 사람이 바다에 들어 갈때,
들어가면 들어 갈 수록 바다가 깊어지는 것과 같이,
공안도 깊히 참구할 수록 그 도리는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들어가서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해서
홀연히 머리를 들어 보면 일찍이 별도의 바다가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몸소 한번 도달하지 못했다면,
가슴 속에서 의심을 없애지 마라.
그러면 저절로 지극한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마조스님께 묻자,
마조스님은 "마음이 부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에 참선한 적이 없는 사람도 알았다고 그냥 넘어가지만,
그 지극한 뜻은 오랫동안 참선한 사람조차도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참으로 진정한 道流라면 결코 공안을 언어나 문자로써 따지거나 알음알이로써 뜻을 풀어 보려고 하지 않고,다만 마치 눈앞에 수만 길이나 되는 장벽이 서 있는 것처럼 하고오래도록 참구하다가 홀연히 의심덩어리를 타파하나니,그렇게 되면 百千萬가지 공안의 甚淺, 難易, 同別을 한꺼번에 뚫어 버려서 자연히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자신에게 되물어서 參究하지는 않고,남들이 그뜻을 열어 보여 주기나 바란다면, 설사 석가나 달마가 (자신들의) 속마음을 다 보여 준다해도 오히려 본인의 눈만 멀게 할 뿐이다.
-天目中峰禪師-
* 천목중봉선사는 중국에서 1263-1323년에 살았던 스님으로 "禪要"라는 책자저자로 유명한 고봉원묘스님의 제자입니다. 달마스님의 29세 법계승자이며, 임제스님의 15세 법손이고요.저서로서 천목중봉화상광록이 전해내려 오며,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山房夜話"라는 실제선수행요령에 대한 지침이 대화체로서 편찬되었읍니다.
(출처-성철스님 소참법문에서 발췌/인터넷상 몇군데의 글을 사견을 제외후 아비라 카페에서 정리)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_()()()_
뼈에 새겨놓을 말씀입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性徹 大善知識이시여 !
발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