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로드 무비 한 편을 소개하겠다.
로드 무비란 주인공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생관이 형성되든지, 변해가든지 등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말한다. 로드, 즉 이동의 상징인 도로 위를 달리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하여 다툼만 하던 두 사람이 진실한 친구가 된다거나 다정한 연인으로 바뀌다는 등의 패턴을 이룬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지 라이더(1969)>, <내일을 향해 쏴라(1969)>, <델마와 루이스(1991)>,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 등이 있다.
90년대 로드 무비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페미니즘 영화인 <델마와 루이스>가 바로 오늘의 영화이다.
고집 센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운명으로 여기며 순종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인인 지나 데이비스 역의 델마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겨워하면서 독신생활을 즐기는 웨이트리스인 수잔 서랜든 역의 루이스의 이틀간의 여행과 예기치 못한 비극적 종말을 묘사한 영화이다.
여류 작가 켈리 쿠리의 꼼꼼한 시나리오, 리들리 스콧의 깔끔한 연출, 그리고 수잔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 두 배우의 열연만으로도 이 영화는 재미와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거기에 단순한 관람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상황과 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주는 텍스트로서의 영화 본색을 숨김없이 드러내 준다.
주인공 델마와 루이스는 사회체제에 순응하고 살아야 했던 보통의 여자들에 불과했지만 이틀간의 여행 도중 뜻밖의 사건들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남성 위주 사회의 편견 속에서 성적 소모품 정도에 불과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기존 질서에 통렬하게 저항하며 죽음을 맞는 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극 중 남성들의 시선을 통해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제도의 모순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고발하고 있으며, 단지 순응하며 지배당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비극적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사회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통제를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주인공은 차츰 가부장제도에 매인 여성이 아닌 참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게 되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자신을 찾아가면 갈수록 그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사회통념 속의 파멸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들의 도주는 자신들의 존재와 삶을 저당잡힌 운명의 사건이지만 그 이면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겐 치기어린 가십거리밖엔 되지 않았다. 같은 여성들조차 이들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형사 하비 키이텔 분의 할 슬로컴브 형사만이 두 여자의 어쩔 수 없는 여정을 이해하여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온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이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와 감독은 세상을 바로 보려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노력이 제도나 거대한 사회적 강압 속에서 부질없이 무시되는 점들을 이 형사 캐릭터를 통해 그려보려 했던 것 같다.
경찰에 쫒기며 110마일(약 176km)의 과속으로 차를 운전하며 둘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너 깨어있니?”
“내 눈이 떠 있으니까 그런 셈이지.”
“한 번도 이렇게 깨어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
“뭔가 달라. 그런 거 너도 느끼니?”
라스트 씬. 그랜드 캐년 절벽 위에서 총을 버리고 자수하라는 경찰의 요구 앞에서 그들은 오히려 편안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절벽을 향해 돌진한다. 깨어있는 느낌의 해방감을 간직한 채…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들도 있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접해 보기 바란다. 훌쩍 커진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겐 깨어있는 해방감도 선사할 것이다.
첫댓글 델마와 루이스를 봤던 중학교때...그들이 스피드처럼 착륙하길 바랬는데...ㅎ ..요즘 한국에서 반응이 좋은 '왕의남자' 라는 영화 마지막장면이 델마와 루이스와 흡사해요..딱! 하고 멈추거든요. 칼럼 잘보고 있습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