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산행계획
(백화산 정상 표지돌)
1.일 시:2014년4월5일(토요일)07:30 -
2.산 행 지:경북 문경 마성면 백화산(1063.5m)
※.산행로:마원1리 회관-갈림길-옥녀봉 갈림길-백화산-황학산 갈림길
-전망대-백화산 갈림길-마원성지(4시간30분 소요)
3.같이간 회원:45명(남자:23명+여자:22명)
4.날 씨:구름이 많고 가끔씩 햇빛이 나와 산행하기 좋은날.
산행후 출발시 소나기 내렸으나 금방 개임.
0.산행개요
1.백화산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북으로 이화령 조령산으로 이어지고 남으로
희양산을 거처 대야산,속리산으로 이어지는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겨울 내내 흰눈이 덮여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2.백화산은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들이 많지만 당일 산행지는 아니며 문경
쪽으로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고 정상을 기점으로 봉황이 날으는 형국의
산이다.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 있어 부리 구실을 하고 새가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 보듯이 조망이 뛰어난 명당의 산이다.
3.명산에 명찰이 많다고 했는대 백화산엔 명찰보다 천주교 성지가 있어
천주교 교인들의 성지 순례길로 괴산의 연풍성지 문경의 마원 성지가 있다.
(마원 성지)
※.마원성지:1866년 병인 박해때 순교한 박상근 마티아의 묘소와 프랑스
신부 깔레 신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곳이다.또한 문경에는최양업 신부를
그리는 진안리 성지,이윤일 요한 성인과 서치복 요셉에 의해 이루어진 교
우촌 여우목 성지가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 박해는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1801년 신유박해
1866년 병인 박해가 있다.
가.신해박해:정조15년(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 권상영등이 모친
상을 당하여 신주를 소각 하는 동시에 천주교식 장례를 지내다 발각
되어 처형 되므로 교인들이 산속으로 피신.
나.신유사옥:순조 즉위(1801년)로 벽파인 김대비가 시파인 남인계를 타도
코저 천주교 탄압.교도 이승훈,이가환등 300여명과 중국신부 주문모등
처형한 사건으로 황사영은 백서사건을 이르켰다.
다.기해사옥:헌종5년(1839년) 시파인 김조순이 집권 하면서 천주교 교세
가 학장되어 조선 교구를 설립하고 서양인 신부입국이 있었으나 풍양조
씨 득세로 벽파가 다시 집권하자 제차 천주교 탄압 하므로 서양인 신부
와 정하상,조신철등 80여명을 처형하고 천주교를 뿌리체 뽑기위해 오가
작통법 발표.(오가 작통법:5가구를 묶어 신자가 발생하면 연대 책임)
신도들이 백두대간 쪽으로 이동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아감.
그후 사회 문란으로 진주민란,개성민란,농민동요로 최제우의 동학운동
서양 열강의 도전으로 고종이 즉위하여 러시아,영국,독일등이 통상을
요구하자 대원군이 쇄국정책 단행 하면서 제차 천주교 탄압으로 병인
사옥이 일어남.
※.병인사옥:고종3년(1866년) 러시아가 베이징 조약으로 계속 남진하며
통상을 요구하자 남종상과 배르누 프랑스 신부를 시켜 프랑스 세력을
이용 하려다 실패하자 조대비와 조두순의 정책및대원군 개인적 감정으로
남종상,정의배등과 프랑스 신부 신부 9명및교도 8천여명을 학살한 사옥.
◈.마원성지는 병인사옥으로 경상북부 교인을 확보키위해 활동 중이던
프랑스 신부가 문경에서 중국을 거처 프랑스로 돌아가 자서전에 교인
박상근 마티아를 소개하므로 1985년 안동교구 김태욱 레오 신부가 마티아
묘소를 찿아 1996년 묘소 정비와 마타아 교우,깔레신부의 동상을 제막
하므로 성지 탄생함.
박마티아는 깔레 신부를 자기 집에 모셔 천주교도 넓히는대 도움을 주었
으며 병인 박해로 교인 탄압이 있자 깔레 신부가 백화산을 넘는대 길을 안
내하는등 교세확장에 큰공이있어 병인 박해시 문경 교인 40여명이 상주,
대구,충주등지로 잡혀갈시 상주목으로 잡혀가 처형되어 가족들이 시신을
고향에 안치.박마티아는 문경현의 아전으로 현감이 교를 믿지 안으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 끝내 하나님 곁으로 가겠다고 하여 상주 감형으로가 처형.
(깔레 신부와 마티아 동상)
4.백화산은 문경에서 4번째로 높은산으로 문경에서 오르면 경사도가 심한
반면 괴산에서 평전치(안말)나 흰두뫼로 올라 백두대간을 타면 경사도가
그리 심하지 않으나 부산에서 교통편의차 60도 경사지를 1시간을 올라야
하므로 힘든 코스로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시작하여 마원리로 내리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화령:옛이름은 이우릿재로 괴산과 문경을 잇는 고개로 일명 조령(새도
쉬어 넘는다는 고개)이라고도 한다.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하늘재,조선시대
는 문경세재길,1925년 일제치하에 신작로가 열린것이 이화령(일명 배꽃고
개)이다.
※.문경에서 높은산:대마산(1115m),주흘산(1106m),운달산(1097m),백화산
이나 괴산에서 보면제일 높은산이 백화산이다.
※.마원리의 마원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말을 사육하던 마포원이 있었던 터라
마포원,마원,마판이라 부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마원리라 부름.
0.산행실시
1.산행예약을 잘못받아 48명이 산행키로 했으나 4명이 나오지 않고 1명이 예
약 안하고 나오는 바람에 45명이 산행출발.
2.마원1리에 10시45분에 도착하여 인원 점검후 산행 출발.
(과수원 지나 산행 들머리)
3.마을을 통과 과수원 포장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산길에 접어들어 10분 올라
게류를 건너 20분 오르니 첫 이정표(백화산:2Km)
(백화산을 알리는 이정표)
4.첫 이정표에서 잠시 오르니 경사지 60도가 기다리고 60도 경사지를 1시간
오르니 옥녀봉과 정상 갈림길 이다.회원님들이 유격훈련도 아니고 무슨 이런
험한 등산로를 택했느냐 한다.
(옥녀봉 갈림길:이곳까지 1시간 60도 경사지를 올라왔다)
5.잠시쉬고 가장 힘들다고 했던 바위길인 힘들지 않다고 한다(로프2곳)
(백두대간에 오르는 첫번째 로프)
(백두대간에 오르는 2번째 로프)
6.20분 오르니 백두대간 갈림길이다.좌측으로 100m가니 백화산 정상이다.
(백두대간에 정상 이정표)
정상에서 문경의 높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대미산,주흘산,희양산등)
(정상에서:단체를 안찍으려해 모인 회원만)
7.정상에서 인증하고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중식,
8.중식후 백두대간길로 30분가니 마원리(3.1Km) 이정표다.후미 선두가 황학
산 쪽으로 가고 있어 다시 오라하여 하산.
(하산길을 알리는 이정표)
9.10본쯤 내려서니 문경읍이 보이는 점망대.
10.전망대 돌아10분 내려서니 바위 자길길로 낙엽이 덥혀 조심하며 내려선다.
11.갈지자로 돌아돌아 내려서는 길목엔 아직 이르지만 야생화가 군대군대.
(
(
(현호색이 지천이다)
(
(
(백화산은 생강나무가 한창이다)
12.30분쯤 내려서니 산행때 올랐던 길과 마주치고 다시 30분을 내려서니
마원리이다.
(마원성지 표시돌)
(성지앞 성모 마리아상)
(성지 울타리에 개나리가 활짝)
13.마원성지를 찿아보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 하소서 오늘 산행을
통해 마원성지 순레길 성모님께서 함께해 주시길 청하옵니다.아멘하고 돌아
내려섰다.
(동상 도안 설명서)
(성지 준공 기념)
13.마원리 회관 앞에서는 하산주가 한창이다.하산 안주로 돼지 족발과 도토리
묵인대 벌써 산행하다 힘들어 하산한 회원들은 술기가 있다.
(마성면 마원1리 회관)
하산 안주 준비한 총무님,윤금숙 회원님,안주와 술을 나르는 부총무님 늘
고생이 많으며 감사이 맛있게 잘먹었읍니다.
14.오늘 백화산 산행에 참여해 주신 회원님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바람니다.
(마원1리 회관 앞에 정자:정자뒤에 마원 선지)
첫댓글 마원성지가 병인사옥으로 많은사람들이 학살 댱한 곳이네요 마리아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산 하였고 하산주 끝나고나서 비가 내렸네여 마치 그빗물이 깔래신부와 박마티아
읽고 갑니다 .^
회원님들의 안산
눈물로 여겨지니 마음이 숙연해 지네요 대장님 후기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