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떠나보내고...
오늘도 할매 한분을 보내드렸다.
아니 떠나셨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 곁에 있을 땐 그 존재감이 언뜻언뜻 있다가
다시 못 볼 상황이 오면 주마등처럼 한편의 영화처럼 눈앞에 선할까?
누구나 다 그렇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더러 이렇게 뜨겁게 내 뇌리를 훑어 내리는
존재들이 가끔 있다.
그 대상이 아름답고 신명으로 살아오고 보여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녀 역시 그랬다.
감고, 풀고, 돌아가는 백중놀이춤판이던 감내 게줄당기기의 밀양아리랑 소리판이던
그녀의 장구가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본래의 신명과 세월의 경륜에 자리는 비록 ‘이수자’였지만 이미 그녀는 마당의 신명을
좌우할만한 역량을 가진 ‘보유자’였다.
여름이면 눈부시게 흰 모시적삼을 곱게 다려 입고, 봄이나 가을엔 단아한 양장을 빼입고
나타나시던 멋쟁이 할매
구두를 반짝이게 닦고 흰 가재손수건을 늘 지니고 다니시던(백내장 때문에)
약간은 갈색이 들어간 라이방에 가까운 안경을 끼시던 모습이 분명 예사로운 촌할매는
분명히 아니었다.
가끔은 느닷없이 내손에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꼬깃꼬깃 접어서 쥐어주곤 누가 볼까
황급히 달아나시고, 때로는 에쎄 담배 한 갑을 주머니에 넣어주시곤 총총히 돌아서던
모습은 영락없는 촌할마시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장구를 빗겨 걸고 마당에 들어서면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어설픈 몸짓을
춤답게 다스려 주신 흥겹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던 그 장구가락이 오늘따라 내 귓가에
환청인듯 더욱 또렷이 울린다.
그뿐인가, 구수하게 뽑아 올린 밀양아리랑은 어땠는데, 세마치장단을 두드리며
“날 좀 보 소~ 날 좀 보 소~”하며 뽑아내는 밀양아낙네다운 초성은 어깨를 들썩이고도
남았다.
이렇게 가실려고 그랬을까? 작년 게줄당기기 발표공연 때 힘에 부쳐 목소리가 질라짐을
느끼고는 당신 스스로나 듣고 있던 우리도 “할머니 소린 이제 힘이 부치시는구나”하고
다들 느꼈어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었지. 아니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백중날 공연 때면 신명이 올라 힘들 줄도 모르다가도 근래 들어 자주 지쳐서는
“아이구 종태야.. 나도 이젠 팔이 아파 장구도 못 치겠다.” 하셨어도 나이에 비해 그래도
정정하신 편이라고 말씀 드렸었고 때론 쉬게 하셨는데...
이제 할매 없는 춤판은 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 몰아주고, 풀어주고, 어우러주고,
배겨주며 맛장구 쳐 주시던 가락을 이제는 들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도 밀양의 마지막춤가락이라 생각되어 가슴이 저밀어 온다.
할매요, 이제 저 세상 가시면 먼저 가 계신 하보경 어른의 양반춤, 김타업 어른의 쇠쇠락,
김상용어른의 농요, 순이할매의 병신춤에 할매의 장구가락은 더없이 안성마춤일테지요.
그 외의 많은 먼저 가신 어른들이 한데 모아 판을 열면, 아마도 이승판 보다 저승판이 더욱
푸짐할 테지요.
아, 그 신명들이 울려서 이승까지 들리면 좋으련만....
끝으로 다시 한번 밀양의 가인 김수야 할머니를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신명이 있어 아름답던 그대에게 부족한 글을 주절이 엮어 바칩니다.
2009.4.12 신새벽
밀양 가인 예술촌에서 운정 이종태 올림.
첫댓글 종태 리우스 나중에 어떻게 안되겠는지.....요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나도 그녀를 따라 나서겠지요..ㅎㅎ
우여곡절과 애환이 깃든 쉽지않은 예인(藝人)의 길, 신명으로 살아가는 예술인들이 있어 문화 혜택을 누립니다. 문화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향기로 피워 올리는 꽃입니다. 미술 문학 음악 무용 서예 조각들은 그 꽃을 장식하는 줄기이거나 입이 되는 것이죠
아따 가슴이 정말 징하요. 남은 인생 다들 즐겁게 보람되게 사시구려...
산다는것은 때론 먼저 떠난이들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시간이 아닐지???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