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공간을 지원받기까지
낮잠을 깬 아이들로 왁자한 거실에 작은 무대가 마련됐다. 검은 수트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체육 교사가 아이들 앞에 섰다. 갖가지 소품과 함께 등장한 그는 오늘만큼은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마술사다.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회심의 이벤트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마술쇼에 흠뻑 빠진 사라(가명), 승우(가명), 지민이(가명), 로이(가명), 켈상(가명)의 웃음소리. 속임수나 거짓말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기적을 발견하는 순간. 설렘이 가득한 이곳은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이다.
2017년 1월 12일에 개소한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은 지난해 9개월여 동안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염원을 대들보 삼아 마련된 꿈의 창고이다. 한국 국적이 없어 보육료 지원을 받을 수 없고 그 부담 때문에 일반 어린이집에 다닐 수 없는 중국과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태국, 필리핀,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미등록 이주아동 보육의 현실과 마주하고 독립된 어린이집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10여년이 필요했어요. 이주 노동자들의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욕구를 지지하고 어린 자녀의 보육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경제•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이었죠. 그 마음으로 2013년 10월 빌라 3층의 방 2칸짜리 공간을 어린이집으로 꾸리기 시작했어요. 오랜 지인인 아시아의 창 이영아 소장의 부탁으로 어린이집 운영을 맡았는데 그게 벌써 5년째로 접어들었네요.”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 배상윤 원장은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일상의 참담함을 적극적으로 덜어내려 애썼다. 40통의 전화를 돌려도 아이 돌봐줄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데려가거나 돈 몇 만 원 쥐어주고 옆집할아버지에게 맡길 수밖에 없던 순간을 도왔다. 그 동안 첫 원생이었던 켈상(가명)은 건강한 개구쟁이로 성장했다. 여러 후원자와 아름다운재단의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을 만나 182㎡(55평) 규모의 꿈의 공간도 마련했다. 돌아보면 기적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초창기엔 인건비도 없고 보조 선생님 없이 저 혼자 어린이집을 운영했어요. 먹고 자고 하면서 16시간 동안 닥치는 대로 일했다니까요(웃음). 한데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인력도 보충돼서 안정적인 근무가 가능해졌어요.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3년 반 동안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돌보려니 가장 힘들고 조마조마한 게 ‘안전문제’였는데 그게 해결돼서 무척 기뻐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돼서 좋아요.”
일상을 허락받지 못한 아이들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 일과는 아침 8시 배상윤 원장의 출근으로 시작한다. 배 원장이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8시 15분부터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등원한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9시에 간단히 죽을 먹고 오전 수업을 진행한다. 날씨가 좋으면 근처 놀이터에 가서 놀다 들어와 11시 45분에 점심을 먹는다. 이를 닦은 뒤 다시 30분을 놀고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낮잠 시간을 가진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4시쯤 간식을 먹고 다시 놀이에 몰입한다. 그리고 5시부터 7시 30분까지 순차적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먹고 자고 노는 것의 무한 반복. 설핏 보면 일반 어린이집과 비슷한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모퉁이를 돌아 마주하게 될, 발붙일 곳 없는 이들의 불안 때문이다. 비자를 받거나 갱신하기 어려운 이주 노동자들이 선택하게 되는 불법체류가 원인이다. 갑자기 단속에 걸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 ‘어제’ 왔던 아이는 연락 없이 사라진다.
비자 없는 이들이 주말까지 야간 잔업과 특근을 하는 직장에서 일하다 결국 양육을 포기하고 아이만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돈을 더 벌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그런 착취적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에 양육이 선택지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어린이집에 머물 수 없는 아이들과는 늘 ‘오늘’ 만나 함께 한 순간이 마지막일 확률이 존재한다. ‘내일’을 모르는 일상은 지속가능한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다섯 명의 아이가 급작스레 어린이집을 떠났어요. 0세 반으로 들어온 4개월 아기, 6개월 아기 2명이 열흘 정도 등원하다 1주일 동안 연락이 끊긴 적도 있죠.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선생님 죄송해요. 아기들 베트남 가요” 하시면서 계속 우시더라고요. 6개월 된 아기를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나마 그 엄마는 비자가 있었는데 비자 없는 엄마는 연락조차 안 받고 오시지도 못하세요. 15개월 된 아이는 우리 어린이집에 오려고 마석에서 이사까지 왔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해 다시 마석으로 가셨죠. 말이 잘 안 통하니까 상태를 설명하기 힘들고 미안하니까 전화도 안 받으시는데 정말 속상하죠.”
누구나 합법적일 권리
아무 연고 없는 타국에서 미등록 노동자의 신분으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맡기고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애들 데리고 집에 가면 밤 10시 되는 상황, 비자가 없거나 남편이 없다면 양육은 고통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야근해야 하는 엄마들이 조금씩 부담하고 어린이집이 도와 야간 선생님을 구해 보자는 의견도 나눴다.
하지만 현실에 허덕이는 이주 노동자에게는 그마저도 실천하기 버거운 이상이었다.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주 노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한계를 느낀다는 배상윤 원장. 그녀는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권리, 아이를 양육할 권리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육 상황이 좋지 않은 분들에겐 더 적극적인 서비스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인가 받은 뒤 0~2세에게 지급하는 기본 보육비용은 받지만 그건 어린이집 운영비의 지극한 일부죠. 수년간 미등록 이주아동을 만나면서 우리만 합법적으로 일한다고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우리 어린이집이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아이도 합법화시켜야 하고 그 부모도 합법화시켜야 해요. 그래야만 법을 지키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요. 합법화시켜서 세금 내고 정당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법을 지키면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만들고, 그에 딸린 기관들도 법을 지키는 시절이 오기를 바라요.”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엔 일하는 부모 밑에서 언어나 인지적 자극을 전혀 받지 못해 발달지체를 보이거나 떼만 늘어서 오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그들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제대로 된 훈육으로 두세 달 만에 급격한 발달을 보일 때마다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한다. 여러 후원자와 아름다운 재단 기부자에게 불쑥 고마움이 솟는다.
“엄마들이 처음 오시면 잘 못하는 한국말로 ‘죄송해요, 잘 부탁합니다, 도와주세요’ 이 세마디를 반복하세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말을 더 이상 안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냥 고맙다 한 마디로 끝낼 때 너무 좋아요. 그럴 때마다 기부자님들을 떠올립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고비마다 필요한 만큼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점점이 부려진 개개인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때 ‘우리’로 연결된다. 아직 살아갈 만한 곳이구나, 한 번 살아보자며 무거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그것은 배상윤 원장이 여러 후원자와 아름다운 재단 기부자와 나누고픈,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으로 통찰한 미래다.
아름다운재단, 글 우승연ㅣ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