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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애쓰셨던 흔적을 보았습니다.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고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헌신한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기쁨백일장의 지나온 흔적들이 아름다운 꽃비가 되어 마음 밭에 떨어져 쌓입니다. 모두~ 참 감사합니다. 응모로부터 시상에 이르기까지... '기쁨의 샘' 기자들의 수고는 천국에 쌓이는 보석이 되어 오늘도 반짝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그동안 너무도 빈틈없이 잘하고 계신 것을 보면서 늘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자문이 필요할 때까지는 그래도 조금은 격려와 권면과 기도와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지난 해엔 자주 찾아가서 격려하지 못해 늘 미안했습니다. 선교마당에서 뛰어다니다가 한 해를 안식년으로 갖고자 했기에 가족을 돌보며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 어느새 훌쩍 키가 크고 성숙해진 스무살 아들을 보듯 '기쁨의 샘'을 보게 되었지요. 초창기 멤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이해금, 백가진, 박선정, 육민아) 최근 한 두해 중요한 성숙기에 양분을 많이 공급하신 편집장, 팀장들과 기자들이 참 고맙습니다. 그냥 마냥~ 고맙습니다. 몇 해동안 일해보던 저는 매 달 얼마나 긴박한 지, 힘든 지를 잘 아니까요.
오늘 저는 '진작에 카페에 들어와서 필요한 부분의 교정을 볼껄~' 하는 자책의 마음이 듭니다. 주안문학상의 발자취(245p-247p 수정할 부분입니다.)
2002년 1월 제1회 기쁨백일장 시상 -담당 : 백상규 목사, 박선애 권사 -시상 : 우수 1명, 장려 1명 * 시 : 웃으십시오/김은경, 수필 : 하얀비둘기/이유진 그 당시 백상규 목사님이 바로 다른 교회로 발령받아 가셔서 폐간위기에 놓일만큼 힘들었던 때인데 2002년 6월부터 2003년 2월까지 류헌영목사님이 담당해주셔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역사의 확인은 할 수만 있으면 얼마던지 할 수 있는데 자문으로서 역할을 미처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혜경권사인 제가 자문위원 대표로 사과를 드립니다.
이 기회를 빌어서 기쁨의 샘 발자취를 조금 더듬어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쁨의 샘' 2000년 5월호에 '37호'라고 써있으므로 창간호는 1997년 4월호일 것 같습니다.(2000년 5월호에 이해금, 박선정, 백가진, 육민아가 있군요.***'장기근속상'드려야겠네요.) 2000년 지도 : 김주엽, 편집장 : 없음, 편집위원 다수, 컴퓨터 편집 : 박현숙 간사 2001년 1월 지도 : 배현성, 편집장 : 박선애(초대 편집장) 2002년 1월 지도 : 백상규, 편집장 : 박선애 1월 '기쁨의 샘' 현재의 크기로 판형 변경 2002년 6월~2003년 2월 지도 : 류헌영, 편집장 : 박선애 2003년1월 올 칼라판 출간 2003년 3월~2004년 12월 지도 : 박성일, 편집장 : 박선애 2005년 1월~2006년 12월 지도 : 김명섭, 편집장 : 유종선 (제2대편집장) 2007년 1월 지도 : 황성준, 유종선 2008년 1월 지도 : 황성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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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책자로 보니 여러모로 서투른 점이 더 돋보입니다. 그렇지만 미약한 시작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많은 도전을 주는 계기가 되어질 것을 믿습니다. 존귀한 기쁨의 샘 지기들 위해 기도합니다.
아울러, 앞의 연혁은 그간의 '기쁨의 샘' 에 기록된 사항에 의거했으며, 불행하게도 기쁨의 샘에서 보관중인 책자중 기쁨백일장 1회 시상관련 기사가 담긴 기쁨의 샘 책자가 누락되어 있어서 부득불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귀한 지도와 자문 고맙습니다. 전반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한 송구함도 함께 담아둡니다.
편집장님께 장기근속상(이해금, 백가진, 박선정)의 건의를 드리려고 다시 헤아려보니 1997년 5월이 창간호 1호인 것 같습니다. 10년이 훨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라컴과 청년 몇명의 인내, 열정과 열심이 오늘까지 이어져온 것을 감사합니다.
다시 보니 '기쁨의샘' 역사의 산 증인들이시네요! 좋은 영향력으로 꽃 피울 것으로 믿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