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 파이널 에디션』. 제목이 도발적이다. ‘최종판’이라니. 넛지에 대해서는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는 결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자기결박 전략’을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책이 완전하다는 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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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nudge)란 사전적 의미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것이나 그런 동작을 말한다. 이 책에서는 선택지를 없애거나 줄이거나 특정한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한층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혹은 그런 행동·장치·정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돕기 위한 일종의 간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를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는 이 책의 핵심 용어의 자
리를 차지한다.
‘자유지상주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제도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직설적 주장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결국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자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을 쉽게 선택하도록 하며, 자유를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어 한다.
‘넛지’는 이러한 선택에 대한 부담감 해소를 위해 기능한다. 그러므로 ‘넛지’는 어떤 선택지를 금지한다든가 선택지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크게 바꾼다든가 하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끄는 선택 설계의 특정한 측면을 의미한다.
어떤 개입이 단순한 넛지가 되려면 쉬워야 하고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세금도 아니고 벌금도 아니고 보조금도 아니고 금지명령도 아니고 강제적 지시도 아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눈높이에 과일을 두는 것은 넛지이나,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때로 선택을 머뭇거리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에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어리숙해서가 아니라 사물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선택이 잘못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가 옆구리를 슬쩍 찔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타인일 수도 있고 정책적 캠페인일 수도 있다. 그것이 넛지다.
그러므로 넛지는 우리가 선택을 잘못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의 버릇 하나를 알게 되었다. 현재 상황 유지에 대한 집착이다. 나는 20년째 같은 이발소를 다닌다. 40년이 넘게 같은 신문을 구독한다. 즉, 습관을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합리적 선택을 방해함으로 남에게 이용당할 여지를 만든다. 현상 유지 편향이 나타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주의력 부족으로 많은 사람이 이른바 ‘아무렴 어때(yeah, whatever)’ 식의 간편 추론법을 자주 채택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별 생각 없이 ‘아무 거나 먹지 뭐’ 하는 식이다. 그래서 어떤 식당에서는 나 같은 고객을 위해 메뉴판에 ‘아무거나’라는 메뉴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 메뉴는 말 그대로 아무 음식이나 내준다. 이 경우 ‘아무거나’라는 별난 메뉴가 바로 넛지인 것이다.
한편, 유혹은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다. 유혹을 떨치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두 개의 자아, 즉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계획하는 자아가 신중하다면 행동하는 자아는 즉흥적이다. 후자가 유혹에 취약하다면 전자는 유혹에 저항하게 한다.
불필요한 유혹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계획하는 자아가 행동하는 자아의 행동을 통제한다. 이룰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행동하는 자아를 유혹하는 인센티브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적절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자아를 통제하는 것이 바로 넛지의 역할이다.
텔레비전의 홈쇼핑을 보고 충동구매를 하는 팔랑귀가 그런 사례다. 계획하는 자아는 때로 외부의 도움으로 행동하는 자아를 통제하기도 한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한 시간 동안 독서를 하면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정부가 나서서 개인의 자제력 문제 해결을 돕기도 한다. 마약, 매춘, 음주운전 등과 같은 것은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된다. 안전벨트 착용, 퇴직연금 가입, 운전 중 휴대폰 사용 금지 등을 규정하는 법률이 있다. 알람을 통한 아침 기상하기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책은 이외에도 다양한 넛지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저명인사가 제기한 의견이나 행동을 따르게 되는 행위, 유명 연예인의 복장을 따라 하는 행위, 친구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는 행위 등은 모두 넛지의 사례들이다. 자동차는 넛지의 집합체이다.
기발한 표어로 엄청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텍사스 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어, 남자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가 그런 사례다. 그런가 하면 보상을 위해 복권 추첨이 활용되기도 하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전통이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데도 넛지가 활용된다.
한편, 좋은 선택 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쉽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장려하려면 장해물을 제거하면 된다. 반면 행동을 규제하려면 그 일을 하기 어렵게 하면 된다. 넛지와 행동과학은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용되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어두운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슬러지라고 한다. 슬러지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선택 설계의 어떤 측면’이라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복잡한 양식 때문에 정부지원을 못 받는다면 슬러지를 당하는 셈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슬러지는 수도 없다. 신문, 잡지 등의 구독 신청, 상품 구입 후 현금을 일정액 되돌려 받는 리베이트도 그런 유형이다, 질레트는 면도기를 공짜로 주고 면도날을 판다. 잉크젯 프린터는 프린터를 싸게 팔고 대신 잉크를 팔아서 돈을 번다.
호텔은 주차료와 와이파이 요금을 감추고 이를 리조트 요금이라 명명한 요금으로 고객 뒤통수를 친다. 이런 감추어진 속성은 슬러지의 근원이다. 정수기를 싼 값에 판매하고 정수기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는 것도 같다.
이런 구독함정, 리베이트, 감추어진 속성 사례는 모두 핵심 목표가 가격을 조금이라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도 대부분은 슬러지에 속할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요금을 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슬러지다. 이는 전부 시민의 부담이다.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공항 검색이 강화되어 승객들의 심사 시간이 길어졌다. 슬러지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출국 심사가 지문인식으로 대체되어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런 경우는 슬러지를 제거한 경우다.
어떤 선택 설계는 의도적으로 슬러지를 끼워 넣어 목표 달성 과정이 매끄럽지 않도록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회원 탈퇴나 구독 취소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그런 예다. 가난한 사람이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직업훈련을 받을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항 검색대
그렇다면 무엇이 최적의 선택을 이끌어낼까. 사람들은 놀라운 위업을 달성하기도 하지만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경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도움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넛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억을 필요로 하는 선택이나 결과가 한참 뒤에 나타나는 선택, 어렵고 빈도가 낮으며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 선택, 그리고 선택과 경험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선택에서 넛지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 주변을 돌아보면 넛지가 필요한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 멈칫거릴 때 누군가가 슬며시 팔꿈치로 툭 건드려주는 작은 도움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