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돌봄 워크숍, 생활관리사 현장이야기
홀로사는 노인들의 안부를 중점적으로 체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제공하거나 연계하여 노인복지를 증진하는데 최 일선에서 수고하는 노인돌보미, 일명 생활관리사 워크숍이 3월 4일부터 1박 2일로 부안군 변산에 있는 대명리조트에서 있었다.
노인복지부서 담당공무원을 비롯한 19명이 참가했다.
이날, 여러 가지 운영프로그램 중에 현장에서 독거노인들을 돌보며 체험한 생생한 사레 발표가 있었다.
아들을 잃었다, 다시 찾은 할머니
쌍치면 신00
맨 먼저 쌍치면에서 근무하는 신00씨가 발표에 나섰다. 정작 본인도 건강이 좋지 않아 공기 좋고 물 좋다는 청정지역 순창군 쌍치면에 들어와 살면서 우연히 이 일을 하게 되었단다.
맨 처음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 독거노인들의 독거사 문제 등 안전관리가 으뜸이라는 이 업무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우선 노인들이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신수영씨 이야기다.
쌍치면 00마을에 사는 김00 할머니라는 한분은 내가 찾아 갈 때마다 마냥 울기만 하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들처럼 친절하게 잘해주는 나를 보니까 자식들 생각이 나서 그랬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6년이 다 되 가도록 그동안 3번 오고 지금까지 한번도 안온다고 하면서, 한번은 애들 아버지 제삿날 와서 형제간 끼리 싸움을 하고 한동안 안 오다가, 두 번째 왔을 때는 작은 아들이 땅을 산 문제 때문에 싸움을 했고, 그 뒤엔 어쩌다 한번 왔는데... 이후 생활비도 안대주고 해서 동네 우물을 쓰는 전기료사용도 어렵고, 교회에서 식사거리를 갖다 주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도 아껴서 먹느라고 밥을 나누어서 물을 말아서 잡수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이런 꽤를 내기로 승낙을 받은 다음, 서울에 사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할머니가 어떻게 사시는지 아십니까? 한번씩 와 보셔야죠?” 그랬더니 “가보긴 가봐야 하는데 노가다 일을 하며 살다보니 생활도 어렵고 틈을 낼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둘째 아들에게 전화 했더니”너무 바빠서 시간이 안나 못 갔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아들들에게 할말이 없냐고 할머니에게 여쭸더니 특별히 할 말은 없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좀 줬으면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순창읍내 모병원 관계자와 예기를 하고 할머니를 입원시켰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영양결핍에 극도로 야위어 있었기 때문에 입원할 만 했다. 나는 다시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할머니가 위독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까 빨리 내려와야겠다고....” 그랬더니 먼저 큰 아들이 내려왔고, 둘째도 뒤에 내려 왔다. 먼저 큰 아들에게 말했다. “보일러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사시느라 고생이 참 많으시겠다. 고 그랬더니 ”아파트라서 보일러도 있고 먹고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지금 큰 아드님은 어머니가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알고 있냐고 다그쳤다. 보일러도 제대로 돌지 않는 냉방에 하루 세끼 먹는 밥도 부족해서 교회에서 준 밥을 물에 말아 나눠 먹는 어머니를 아냐고, 그러면서 소지하고 있는 “노인의 전화”증을 내보이면서 정말 이러면 노인학대로 신고할 생각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랬더니 "그동안 바빠서 그랬지 학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하면서...“ 나는 큰 아들에게 할머니 집에서 이틀만 자고가라고 권했다...
이틀 밤을 지낸 큰 아들은 보일러 기름을 가득 채워놓았고, 냉장고에도 먹을거리를 가득 채워놓았다. 나는 할머니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난방비와 생활비를 아들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쌀과 반찬 등 생활비로 월 15만원과 보일러 기름대 27만원(1통)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기름은 겨울철 몇 번 넣으면 되기에, 큰아들이 먼저 생활비는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다고 했다. 보일러 기름대는 자동적으로 작은 아들 몫이 되었고, 그리고 매월 할머니 통장에 입금키로 했다. 나는 이렇게 약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인학대로 고발할 수 밖에 없으니까 잘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확인해 보니 할머니 통장에 생활비와 보일러기름대가 잘 입금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시장도 보고 할머니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도와드려 왔다.
할머니는 내게“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라고 하시며 밝은 웃음을 보이셨다. 내가 이할머니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형제도 우애가 좋지 못해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항상 마음 아파서였다. 이후 어느 여름날 할머니가 위독해 119로 병원에 후송한 적이 있어 큰아들에게 연락했더니 즉시 달려 온 것을 보았고 지금은 아주 잘하고 있음을 보았다. 내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함을 느꼈다.
“생활관리사 여러분! 여러분이 돌보는 노인들을 내 부모라 생각다보면, 그 어르신 자녀들도 잘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론 부모섬기는 연습이라 생각하면 재미있고 흥미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들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끝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
구림면 강00
서울에서 7년간 생활을 접고 시골에 내려왔다. 시골은 젊은이가 적고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 많아 한때는 마을 이장일도 보았었다. 서툰 운전을 하면서 면사무소 사회복지사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생활관리사 일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노인어르신들이 몸이 아플땐 등에 업고 병원 입원 시킨 적도 있고, 쌀이며 부식거리며 후원품을 지원받아 나눠드리기도 하고, 행정에서 또, 자녀들이 있어도 못하는 일을 찾아 문을 두드리고 해드릴 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애로사항은 할머니댁을 찾을 때 빈손으로 가기가 참 어려웠다. 사탕 한 개라도 사들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간식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또 넓은 지역 다니다 보니 자동차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들어 부담스러운 것, 이런 어려움 하나하나가 해결되고 일하는 보람이 한층 업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 워크숍 자리를 통해 화합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끝
위급상황 대처하는 손길
쌍치면 모00
할머니들 백내장 수술을 해드릴 생각으로 할머니 몇 분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한 할머니는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 수술이 어려웠다. 협심증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술이 어려웠다. 협심증 증세까지 있어 검사하고 약 처방까지 하여 집에 모셔다 드렸다. 백내장 수술을 하러 온 것이 협심증 예방의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몇 번 찾아 갔지만 할머니는 안계셨다. 자녀들이 모셔갔다. 나중에 돌아오셨다. 자녀들이 객지로 가고 위급한 상황에서 대처가 안 된 불안을 떨쳐준 내게 자녀들이 딸 이상으로 잘해준다고 고마워한다. 이렇게 건강 상태가 위급한 독거노인 어르신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 많다. 우리들의 하는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끝
안전 확인 방법의 지혜
동계면 윤00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75세쯤 되신 할머니 한분이 있었는데,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그냥 지나치곤했다. 홀로 외딴집에 살고 주변과 비교해서 늘상 내게 불만이 많았다. 나도 어려운데 좀 찾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기가 걸려 몸이 무거운 어느 날 그 할머니 댁을 찾았다. 나는 평소 방문이 잠기지 않으면 꼭 방문을 열어 보았고, 부엌문도 열어보곤 했다. 그런 습관이 있어서 그날도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어보고 또 부엌문도 열어 보았다. 순간 깜짝 놀랐다. 부엌을 여는 순간 부엌이 연기로 꽉차있는 것이다. 가스불에 주전자는 올려져 있고... 나는 얼른 가스벨브를 잠갔다. 그리고 창문과 문을 죄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이곳에도 "독거노인응급안전시스템 u-care“가 설치된 댁이었는데 화재 감지센서가 작동되지 않은 것은 부엌방과 안방이 분리되어 있고, 화재센서는 안방에 있던 탓이다. 그리고 부엌은 가스감지센서라 계속 가스불이 타는 것에 대한 센서 작동은 안되는 것이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했지만 생활관리사들이 일하면서 한가지 참고해야 할 것은,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방문이 열려 있으면 반드시 열어보고 내부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방에 할머니께서 항상 싣는 신발이 있는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이웃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 이런 예기를 했더니, 깜박 잊고 외출했다면서 .... 그리고 가스렌지 옆에는 가급적 식용유 같은 인화물질이 없는 것도 생활의 지혜라 생각된다. 끝
후원품 쌀 한 봉지의 서운함
풍산면 유00
어떻게 다가서야 마음 문을 열까? 자신의 부모라 생각하고 늘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며 다가섰고, 먼저 내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를 꺼내 예기하다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마음 문을 열고 딸자식처럼 가까이 대해주었다. 이렇게 유대관계를 잘 맺고 나니까 딸자식보다 더 났다며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 주시곤 했다. 그런 관계에서 한 가지 섭섭한 일이 생기고 말았는데, 설 명절 때 후원품 쌀이 있어 한 할머니 댁을 방문했지만 서울 아들내 집으로 명절쇠로 가신 것이다. 그래서 금방 오시지 않을 것 같아 할머니 드리려고 가져간 쌀을 이웃에 드리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좋을 대로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어려운 할머니에게 드리고 말았는데... 명절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 댁을 찾았을 때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을 경로당에서 자기 것 쌀이 있는데 못 받았다며 섭섭한 예기가 이웃 주민들로부터 들려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서운하면 내가 사서 드린다고 했더니, 그것이 서운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떻든 내게서 미안하단 말이 듣고 싶어서 였다고 하신다. 이런 일을 계기로 할머니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사소한 일로 오해 받는 일이 생기고 서운해 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후원품 같은 걸 줄 때도 세심한 생각을 해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 작은 것이라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 싶고, 생활관리사 여러분들께서도 이런 경험 있겠지만 참고해 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