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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소득불평등 문제를 ‘누진과세 강화’와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자본수익률’(return of capital: r)이 ‘경제성장률’(growth rate: g)보다 높을 경우, 자본을 많이 소유한 상위계층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돈을 많이 갖지 못한 하위계층(예: 근로자)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18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지난 300년간의 통계를 분석해보니 거의 대부분의 시기(1929년의 경제대공황 및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는 제외)에서 ‘r>g’였음을 밝히면서,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소득불평등 구조가 갈수록 심화되어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수 있으므로, 이를 치유하기 위해 자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소득은 ‘r=g’를 가정했을 때 얻어질 소득이 되도록 자본에 대한 누진과세와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다.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소위 ‘1% 대 99%’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99%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기초연금 등 복지 지출을 늘리고는 있지만,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1%로부터 추가적으로 세금징수(증세)를 하는 부분에는 부유층의 반발 등 ‘정치적인 요인’ 등을 감안하여 미적거리고 있다.1) 이러는 사이에 국가채무는 갈수록 늘어가고 국가재정 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
소득불평등 구조의 심화가 자본주의 체제 등 사회구조에 미치는 효과 및 그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경제적·철학적 분석과 평가는 필자의 연구 영역 밖이다. 다만 피케티가 주장하는 소득에 대한 누진과세 강화 및 자본에 대한 글로벌 자본세 도입에 대해 세법 전공자로서 의견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누진과세의 현실성
누진과세란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반대로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여, 세금을 내고 난 뒤의 소득을 보면 내기 전보다 소득의 격차가 줄어들고, 그와 같이 확보한 세금으로 도로 건설, 교육, 국방 등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사회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연간 소득이 10억 원인 사람(A)이 있고 1억 원인 사람(B)이 있다. 10억 원에는 40%의 세율이 적용되고 1억 원에는 10%의 세율이 적용된다고 하자. 소득세를 납부하기 전 A의 소득은 B의 10배다. 그런데 소득세 세율을 적용하면 A의 가처분 소득(개인의 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득-편집자)은 6억 원[10억 원 ― (10억 원×40%)], B의 가처분 소득은 9천만 원[1억 원 ― (1억 원×10%)]이 된다.2) 즉, 세금 납부 후 A의 소득은 B의 소득 6배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피케티가 주장하는 것처럼 80% 세율을 부과한다고 하면 A의 가처분 소득은 2억 원이고 B의 가처분 소득은 9천만 원이 되어서, A의 가처분 소득은 B의 2배 정도에 그치게 된다. 피케티는 이렇게 해야 소득불평등이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한다.3)
만일 A가 얻은 소득이 자본소득(이자·배당·부동산임대소득·주식양도소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B가 얻은 소득은 근로소득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의미는 자못 심각하다. 이유는 자본가 A가 얻는 소득의 대부분은 B로 대표되는 근로자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능하여 A에게 더 많은 누진세율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4) 반면 A는 자신의 자본이 있었기에 B에게 그나마 노동의 기회가 부여될 수 있었으며 만일 A에게 높은 소득세율이 적용될 경우 세율이 낮은 국가로 자본이나 거주를 이전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다.5)
그렇다면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정한 누진세율 특히 최적최고세율(Optimal Top Tax Rate)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피케티는 극단적으로 연소득 100만 달러 초과분에 대해 80% 소득세율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금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기 때문’이고 단지 어떻게 걷느냐는 문제와 무엇을 위해 쓰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한다.6)
피케티는 세금의 사용처로 국민의 의료, 교육, 대체소득(연금과 실업급여) 및 이전지출(가족수당, 최저보장소득) 등을 들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형태로 다시 분배될 경우 소득불균형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1%의 상위 계층이 추가 부담하는 소득세를 재원으로 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하자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첫째, 누진세율체제 특히 최적최고세율의 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 원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소득세제가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세율체계가 아니고,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진 현실에서 최적최고세율을 높일 경우 그곳에 거주하는 납세자가 세율이 낮거나 조세피난처로 거주 국가를 옮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득세 과세체계를 주소나 거소(실제로 사는 곳) 등을 기준으로 하는 거주 국가 중심에서 미국과 같이 국적기준의 변경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무국적자에 대해서는 달리 대안이 없다.
둘째, 각 나라마다 소득세 과세대상 소득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달라서 이를 전 세계적으로 통일하지 않는 한 설사 최적최고세율을 80%로 인상한다고 하여도, 그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속인주의 과세시스템을 적용하는 국가는 국내소득과 해외소득을 합쳐서 동일한 세율로 과세하지만 속지주의 과세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는 국내소득에 대해서만 과세를 하고 있다. 따라서 납세자 중 해외소득이 많은 자는 그 해외소득에 대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거나 아예 과세를 하지 않는 국가로 주소지를 옮길 가능성이 상존한다.7)
마지막으로, 세율의 결정은 혁명적인 상황이 아닌 한, 정치로 대표되는 국회의 소관이다. 정치는 그 속성상 자본가들과 결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주로 얻고 있는 자본소득에 대해 높은 세율이 적용되도록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지 의문이다.8)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자, 배당소득, 주식양도소득 등에 대해서는 소득세 최고세율인 38%보다 훨씬 낮은 세율이 적용되거나 아예 비과세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피케티의 주장을 우리나라 현실에 대입해보면, 초고소득자(10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해서는 현행 최고세율인 38%보다 높은 세율(예: EU 국가는 대부분 42~50% 정도)이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비과세나 감면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서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통해 소득재분배가 어느 정도 가능하고 복지재원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자본세 도입의 현실성
피케티가 주장하는 글로벌 자본세는, 현재 프랑스가 시행하고 있는 ‘연대세’(Impȏts de Solidarité sur la Fortune: ISF)9)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10) 프랑스의 연대세는 독특하게도 해당 납세자의 국내 및 국외에 소재한 총자산(부동산+동산)에서 이에 대응하는 부채를 공제한 순자산에 대해 일정한 세율로 과세된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재산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동산, 특히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부과하고 있지 않다. 이는 금융산업을 발달시키고자 하는 정책적 목적 이외에 세무행정 기술상 과세당국이 해당 납세자의 국내 및 국외 금융자산의 과세정보를 모두 다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등 현실적 제약요건 때문일 것이다.
피케티는 프랑스가 시행하고 있는 ISF를 관찰할 때 프랑스 납세자가 해외에 금융소득이 있는 경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 일단 해당 자산이 소재하는 국가에서 모두 과세를 하고 그 자산을 소유한 납세자가 거주하는 국가에서도 과세를 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효과적인 과세를 위해 전 세계적(Global)으로 특정한 납세자에 대한 금융정보를 자유롭고 규칙적으로 교환하자고 주장한다.
특히 정보교환의 경우 피케티는 미국에서 현재 시행 중인 ‘해외금융계좌신고법’(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FACTA)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2014년 1월 1일까지 전 세계 모든 금융기관은 미국 국세청과 ‘의무이행합의서’를 체결하고 미국 거주자(영주권자·시민권자)가 보유한 금융계좌 정보(계좌번호, 계정 잔액, Tax Identification Number), 총 소득수취액 등과 관련된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미국 국세청은 2015년부터 해당 금융기관이 미국 내에 투자해 벌어들인 수익의 30%를 벌금으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행은 그 계좌에 예금하는 미국 국적(이 있는) 납세자의 금융정보를 모두 미국 국세청에 보고하여야 하고, 이를 해태(기일을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않음)한 경우 한국은행의 미국 소득 중 30%를 벌금으로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주장을 요약하면, 전 세계가 프랑스식 ISF 제도에다 국제간 조세정보 공유시스템을 확고하게 하면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커서, 이에 따라 발생하는 자본소득 중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흡수하여 복지재원으로 활용하면 1%와 99%의 격차는 줄어든다는 것이다.11) 특히 피케티는 세습자본주의의 도래를 막기 위해서라도 100만 유로가 넘는 재산에 대해 1%, 500만 유로가 넘는 재산에 대해서는 2%의 글로벌 자본세를 걷자고 제안한다.
그의 주장을 짚어보자면, 우선 금융자산에 대한 자본세 과세방안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현행 우리나라 세법상 시가 100억 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재산세를 납부해야 하는 반면, 주식 100억 원을 보유한 경우 재산세는 없다. 세법이 부동산과 동산을 특정한 이유 없이 차별하여 과세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부자들의 투자패턴을 보면 종전의 부동산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금융상품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살펴보더라도 더욱 그러하다.12)
둘째, 과연 순자산(자산 - 부채)의 형태로 과세해야 하는지는 과세기술상 그 방법의 시행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각국의 금융정보가 완벽하게 교환될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자산으로 과세를 하되 세율을 낮추어 주는 방법도 있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글로벌 자본세의 과세표준금액이 순자산의 형태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이 적용될 것이다. 즉, 과세대상 금액을 넓게 하고 세율을 낮추는 것이나 과세대상을 좁게 하고 세율을 높이는 것은 세금징수측면에서 보면 동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인 조세정보교환 규정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 조세피난처 같은 지역 또는 국가가 이 정보교환 규정을 거부할 경우 이를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유럽연합(EU)에 속한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 등의 국가에서 그들이 지닌 금융정보를 프랑스나 독일에 고분고분하게 내줄 경우, 그들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피케티의 주장을 우리나라 현실에 대입해보면 실천 가능한 내용이 있다. 이른 바 금융자본에 대해서 재산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차별과세금지원칙을 규정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보아도 타당성이 있다. 다만, 한국 거주자의 국외재산에 대한 글로벌 자본세 부과는 한국만의 노력과 실천으로는 피케티가 바라는 성과가 달성되지는 않는다. OECD나 UN 등에서 국제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실천이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13)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 도입 주장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과세고권(課稅高權,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의 주권적 권한)을 쉽사리 포기할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단지 세금징수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자본주의 구조는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자본소득이 많은 자에 대해서는 최적최고세율을 올리는 등 누진과세 강화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조세피난처 이용 등으로 국외금융자본에 대한 과세가 누락되고 있으니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미국이 시행 중인 FACTA 제도와 유사한 조세정보교환 규정 제도의 도입을 통해 글로벌 자본세 제도를 시행하자고 주장한다.14)
살펴보건대, 복지국가가 도래하기 전에는 가급적 세금을 적게 거두고 작은 정부를 꾸려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다. 개인의 의료비나 연금 등을 각자 알아서 해결하던 시대에는 굳이 많은 세금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부자들의 신앙심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300여 년 전 시작된 산업화에 따라 국제간 자본과 기술 및 인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소득의 불평등 현상과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마르크스는 자본을 모두 국유화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15) 미국 등 시장경제주의 국가들은 가급적 세금 부담을 적게 하고 기업의 경쟁 강화를 통한 경제성장률 제고를 통해 소득양극화 해소 방안을 찾았다. 유럽의 경우에는 사회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조세부담을 늘리고 그 재원을 통해 사회보장 수준을 향상하려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적어도 이제 막 시작된 기초연금 등 복지수준을 후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그 복지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복지는 좋지만 세금 부담은 사양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복지를 미끼로 표를 얻었지만 집권한 뒤에는 그 재원 마련은 다음 정부에 넘기겠다는 정치권의 태도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노후세대는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이 젊은이들이 힘들게 부담하는 세금으로부터 나온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한편,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재산에 대해 국가가 함부로 몰수하는 등 개입할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세금을 통하는 것이다. 소득이 많은 자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세율을 적용해서 징수를 하며 특히 국제간 거래에 대해서는 조세정보교환을 통해 누락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소득불평등 및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재원이 없는 복지정책은 자칫 국가를 재정 디폴트(default, 채무 불이행)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소득자에 대해 누진세율이 적용된다면 그들이 사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은 적어도 그의 재능(talent)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자에게는 적용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가 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누가복음 16:13)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안창남
세법 전문가로, 프랑스 파리 제2대학교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이다. 월드텍스연구회 회장, 한국세무사회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