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백사장 '태풍 차바 쓰레기' 치운 외국인 세 모녀
엄마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 교사
"우린 부산 사람… 우리 동네 광안리 청소는 당연한 일“
산책 갔다가 쓰레기에 놀랐고 큰딸이 치우자고 해서 또 놀라
철물점서 청소용 갈퀴 4개 사서 해질녘까지 4시간 해변 정리
다른 주민들도 삼삼오오 모여 같이 줍고 치워 너무 기분 좋아
부산생활 7년… 스카이라인 멋져… 情이 뭔지 모르지만 삼겹살 즐겨
“우리도 부산 사람이고 이 동네 사람이에요. 청소하는 건 당연하죠.”
14일 오후 부산국제외국인학교 농구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디애나 루퍼트(38)씨와 딸 피오나(11·왼쪽), 스텔라(5·오른쪽). 부산에서 7년간 살고 있는 세 모녀는 지난 태풍‘차바’로 광안리 해변이 쓰레기 더미로 쌓였을 때 4시간 동안 청소하며 ‘주인의식’이 무엇인지를 실천했다. /김종호 기자
얼마 전 태풍 '차바'가 할퀴고 간 부산 광안리 해변을 청소했던 외국인 세 모녀를 14일 부산 기장읍에 있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에서 만났다. 이 학교 교사인 디애나 루퍼트(38·미국)씨의 큰딸 피오나(11)는 '쓰레기 치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는 말에 "쓰레기가 바다로 떠내려가면 안 되잖아요" 하고 말했다.
세 모녀는 지난 5일 광안리 해변으로 나갔다가 백사장을 가득 메운 쓰레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피오나가 어머니에게 "함께 청소하자"고 제안했고, 작은딸 스텔라(5)도 "재밌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해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수영구 민락동의 아파트로 돌아가 장화와 고무장갑을 챙겨 다시 나왔다. 집 근처 철물점에 들러 청소용 갈퀴 4개를 사서 해변으로 향했다. '셋이서 왜 4개를 샀느냐'고 묻자 루퍼트씨는 "해변에 나온 사람들과 같이 치울 생각이었다. 10개쯤 사고 싶었는데 돈이 모자랐다"며 웃었다.
폭설과 토네이도가 잦은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인 루퍼트씨는 재해 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집 주변을 청소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했다. 피오나도 "학교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며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을 때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을 봤는데, 여기서도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 봐 치우자고 했다"고 말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세 모녀는 오후 3시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루퍼트씨와 피오나는 갈퀴, 스텔라는 소꿉놀이용 삽과 바구니를 들고 쓰레기를 쓸어 담았다. 30분 남짓 지나자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같이 청소했다. 피오나는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정말 기뻤어요. 제가 우리 동네를 위해 무언가 한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하고 말했다.
지난 5일 루퍼트씨와 딸 스텔라가 부산 광안리 해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독자 김은경씨 제공
쓰레기 정리가 대강 끝난 오후 6시쯤 루퍼트씨는 딸들이 배고플까 봐 집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두 딸은 "10분만 더"를 외치며 계속 쓰레기를 치웠다. 해가 넘어갈 무렵 두 딸은 청소를 도우러 나온 한국인 아이들과 친해져 술래잡기도 하고 밀려드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고 한다. 결국 세 모녀는 해가 지고 오후 7시가 돼서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루퍼트씨는 "아이들이 피곤했을 법도 한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더라"며 큰딸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퍼트씨와 두 딸은 자기들이 해변에서 청소하는 사진이 언론과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상에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이틀 뒤에나 들었다고 한다. 스텔라는 "홍수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같이 학교에 다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간 친구가 '네가 청소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다 퍼졌다'고 알려주더라"고 말했다.
루퍼트씨도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월든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딴 루퍼트씨는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어 국제학교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졸업 후 일자리를 찾다가 예멘에서 국제학교 교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첫 직장을 잡았다. 하지만 테러 위험이 커지자 안전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1년 반 만에 예멘을 떠나 2009년 8월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루퍼트씨는 "바다가 가깝고 스카이라인(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이 멋진 부산이 매력적이었다"면서 "아직 한국의 '정(情)' 문화까진 이해하지 못했지만 회사 동료들, 아이들과 삼겹살을 자주 먹으러 간다"고 했다.
태풍 지나간 뒤, 광안리 해변 청소했던 아름다운 세 母女 - 14일 오후 부산 기장군 부산국제외국인학교에서 이 학교 교사 미국인 디애나 루퍼트(38)씨가 둘째 딸 스텔라(5)를 안고 큰딸 피오나(11·왼쪽)와 함께 서서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5일 태풍‘차바’가 지나간 뒤 쓰레기가 널려 있던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해변을 청소해 큰 감동을 줬던‘외국인 세 모녀’의 주인공들이다. 다섯 살 때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피오나는“우리도‘부산 사람’이고 이 동네 사람”이라며“우리 동네를 청소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루퍼트씨는 "이번 태풍은 한국에 와서 겪은 태풍 중 가장 무서웠다"며 "집 근처까지 물이 밀려오는 걸 보니 정말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바닷가가 더러워지면 또 청소하러 나오겠느냐'고 물었더니 세 모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Sure)"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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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