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수님 사진의 유래
내가 팔레스타인 성지를 순례한 것은 1982년 10월 중순이었다. 그때 나는 조작이 간편한 내 카메라 인스터매틱 110(Kodak사 제품)으로 스냅사진을 주로 찍었다.
귀국해서 필름 현상소에 맡겼는데, 그 많은 사진들 사이에 바로 이 예수님의 사진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다른 누군가의 사진이 어쩌다 내 사진들 안에 섞여 들어왔을 것이라고 여겼다. 내 남편에게 말했듯이, 나로서는 그런 성화를 카메라에 담은 적이 없었을뿐더러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현상된 필름 전체를 살펴보니 내가 찍은 것들 사이에 그 필름이 끼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당황했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아무래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동행했던 사제에게 갖다 보였더니, 여러번 성지 순례를 했지만 거기에서 그런 성화를 본 적은 도무지 없다는 것이었다.
성지를 자주 방문면서 연구 중인 우리 지역 사제에게 보여 봐도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순례 당시에 함께 갔던 여행사 측에서는 그것을 뉴욕의 회화 및 벽화 연구자들에게 보냈는데, 그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런 인물화는 성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이 사진을 받게 된 이후 세차례 더 성지 여행을 떠났고, 그런 해마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장소에 관해 말을 걸 수 있는 한 누구에게나 탐문하길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무에게도 답을 얻지 못한 채 줄곧 탐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몇 친구들이 알게 된 후부터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남편과 나는 이 사진의 아름다움을 느꼈기에, 우리와 함께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으로 봉사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러 장을 인화시켜 배포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진의 유래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척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내가 주저한 것은 좀더 철저히 검토하고 싶어서였다. 무엇보다도, 찍은 사실을 내가 기억해 낼 수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온통 아뜩하게 한 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에 기억이나 시간의 착오를 했다고 느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 이토록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도 기억 못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이제 이 사진은 미국과 전세계에 퍼져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유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엄위로우심을 바라보기를 원할 뿐이다. 그분은 사랑의 초상이시다. 이 사진이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소망은 이 사진을 통해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모셔가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사진에 얽힌 숨은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나는 어떤 이들이 이에 대해 말하듯이, 기적 운운을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이 사진이 많은 이들에게 - 그 유래를 전혀 모르는 이들인데도 -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누가 찍었는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하는 따위는 대수로울 게 조금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재키 해쓰
◎ 예수님 사진에 관한 어느 사제의 증언
그리스도와 마리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저는 1946년부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사제로 살아왔으며 지금 나이는 68세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을 선물로 받은 건 1987년 10월이었는데, 그분임을 알아뵙자 엎드려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2월 둘째 토요일, 어느 사진사가 이 사진의 주님 얼굴을 뵙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하기에, 그가 편리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그 자신의 스튜디오로 주님 사진을 가져 가서 작업해도 좋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루이스 미야르이고, 스튜디오는 스페인의 아스투리아, 오비도 2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의 작업이 완료되자 우리는 그의 집에서 기도 모임을 시작했는데, 이는 삐에뜨렐시나의 삐오 신부님의 기도 모임과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루이스는 우리 주님의 사진 몇 장을 확대하여 기도회가 열릴 방의 탁자에 모셔 두었는데, 그 배치 방식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호세 라몬을 통해 말씀하고 계심을 알아차렸을 때는 로사리오 기도를 시작한 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방에 있는 다른 세 사람, 즉 후아나 마리(루이스의 아내), 일곱 살인 꼬비(루이스의 딸), 그리고 루이스 자신에게도 메세지를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녹음했고, 호세 라몬을 통해 주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 “주님, 루이스가 확대한 사진과 제가 선물로 받은 사진에 대해서 몇 마디 설명을 주시겠습니까?”그랬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내 자녀들아, 이는 나의 본모습이다. 너희 삶의 모든 날에 이를 공경하여라. 이 사진 원판을 제작한 이들과 똑같이 너희에게도 특별한 은총을 주겠다. 나는 이 사진이 찍혀질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 현존해 있었다.” 이 기도회 이후 우리 주님의 사진이 더욱 많이 제작되어, 여러 사제와 몬시뇰, 기도회원들에게 배포되었고 그들 모두가 주님을 경외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답니다.
1989년 12월 19일, 이때는 우리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스페인의 아스투리아 지방 기혼성당에 화요일마다 발현하시어 일반적인 일이나 특별한 일에 대한 질문을 받으실 당시였고 그러한 질문은 역시 아스투리아의 기혼 출신 신자로서 두께 데 리베스 8가 3번지에 거주하는 마리아 델 로사리오 프레초소를 통해 전달되고 있었는데 바로 이날 성모님께서 마리아 델 로사리오를 통해 이런 답변을 주셨습니다. : “작은 사진 뒷면에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써 넣어라. 모든 이로 하여금 주님의 참모습과 이 참모습이 담긴 사진을 통해 보여주신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큰 사진에는 앞면에 우리 구원자(구세주) 예수님이라고 써 넣어라.”
주님께서도 여러 차례 이 사진에 대해서, 그리고 이로 인해 일어난 기적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사진 위에 박판(薄板)을 덧씌우는 처리를 한다든가 유리나 그런 어떤 것 안에 사진을 집어 넣지도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아무래도 품격이 저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또한, 사진을 사탕과자처럼 나누어 주기보다는 신실한 믿음과 존경심으로 원하며 환영하는 이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사진을 통해 현존하시는 예수께서 가능하게 하신 많은 기적사건을 알고 있고, 그분을 흠숭하며, 그분께 우리의 신뢰와 믿음과 사랑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사진을 통해 현존하시는 주님을 경배하며 사랑 드릴 기회를 제게 주신 것이 여간 감사롭지 않습니다. 한 번은 성모님께서 “그분의 아들인 보이틸라”에게도 이 사진을 보내라고 청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받으신 교황은 이토록 위대한 선물에 대해 참으로 영광으로 생각하신다면서 감사와 기쁨 어린 말씀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 자신은 우리 주님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중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요! 하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사진을 두개의 작은 묶음으로 만들어, 한 묶음은 산호세에 있는 강생회 수녀원에 부치라고 하셨습니다. 장수를 헤아리지 말고 그냥 묶어 보내면 모두 다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과연 사실로 입증되었답니다. : 두 수녀원에서 보낸 감사와 경탄이 섞인 편지들에 의하면 수녀가 몇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수로 보냈는지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빌라의 수녀원은 13장을 더 보내달라고 청했습니다. 한 장 더 갖고 싶어하는 수녀가 13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진에 계시는 우리 주님의 생생한 현존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제가 어찌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저의 이 편지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부부에게도 이를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뜨거운 작별인사와 사제 강복을 받아 주십시오.
- 호세
알레손 신부

출처: 바다의 별 http://blog.naver.com/perpe64/90088543049
첫댓글 저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진정 이 시진이 당신의 모습인가요?
믿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