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보라! 내가 곧바로 간다. 저마다에게 그가 한 일에 따라 갚아줄 보상을 가지고 간다."(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중에서)
And, behold, I come quickly; and my reward is with me, to give every man according as his work shall be.(KJV)
“Look, I am coming soon! My reward is with me, and I will give to each person according to what they have done.(NIV)
"보라"
"Behold"
"ἰδού(이도우)"
이 말씀은 진짜 뭔가를 '보라'는 말이 아니라, '관심을 기울여라. 집중해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어 교회에게 전해진 이후, 수많은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집중했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테니 더욱더 주의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고난과 핍박을 견디어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거짓말하시지 않는다고 믿고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런 그들의 삶이 바보같은 삶일까요? 그로부터 200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속히 오신다던 주님은 오시지 않았으니, 그들은 주님께 속아 헛된 삶을 살아간 것일까요?
주님 떠나신 이후,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오신다는 날을 말하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났습니다. AD 100년이 오기전에, AD 1000년이 오기전에, AD 2000년이 오기전에...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10월 29일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주장을 하며 대한민국을 혼란하게 했던 『다미선교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역시 이 주장도 불발로 지나가 한국 교회가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더 이상 입에서 꺼내서는 안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지금도 여전히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속히 오겠다!"
이 말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잘못된 것일까요? 어리석은 일일까요?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주 예수 그리시도께서 오신다고 말하면 잘못 말하는 것일까요?
저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속히 오실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만약 안 오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지적하거나 반문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이게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내 말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께서 내가 살이있을 동안에 오실 것을 믿고 살다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실제로 제가 살아 생전에 오시느냐 오시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말씀을 믿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은 제대로 된 믿음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도 만약 주님께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시지 않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경이 요구하는 삶은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삶을 눈여겨보십시오. 그가 정말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를...
주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여기서 주님께서 줄 '상'은 헬라어 원어로는 μισθός(미스토스)인데 '일한 댓가, 보상'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겠습니까?
당신은 어떤 보상을 바라십니까?
저는 여기에서 '그 보상'에는 차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보상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보상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우리 삶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는 결정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속히 오실 것이며, 오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고, 이제는 상급을 바라고 살아야 한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난 번, 제가 쓴 글 【구원(求援), 확신(確信)과 확정(確定) 사이】에서 이미 밝혔지만, 구원의 확정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스스로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됩니다. 확신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확정되었으니, 이제는 일한 댓가, 상급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구원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시고, 입증해보십시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주실 보상은 일한대로 차등을 두어 주시는 상급의 개념이 아닙니다.
마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지위고하가 존재하고, 열 고을을 다스실 사람과 한 고을을 다스릴 사람이 있다는 식의 상급논리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창조 당시부터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나는 높고 너는 낮고, 나는 많고 너는 적고 하는 그런 비교논리가 적용되는 세상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주님께서는 내가 이 땅에서 행한 그대로 보상해주신다는 그 생각만 하면 좋겠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상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이런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보상이 차등이 없다면, 누가 열심을 내어 이 땅에서 일하겠는가?"
그러면 저는 그런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열심히 일하십니까? 주님께서 당신을 구원해주신 게 감사해서 일하십니까? 아니면 뭔가 댓가를 바라고 일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뭔가를 했다고 그것에 대한 댓가를 바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주님을 하찮게 생각하는 논리입니까? 과연 우리에게 그런 댓가를 바랄만한, 그런 보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