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 여행(6)
구름 속 숨겨진 동네, 따쥐마을
티나객잔에서 점심식사 후 따쥐(大具)마을로 향한다. 차오토우에서 이곳 티나객잔까지 23km 구간이 사실상 후탸오샤트레킹의 하일라이트이다. 1박2일 10여시간의 트레킹이 꿈 만 같다. 상후탸오샤에서 중후탸오샤로 이어지는 장대한 대협곡. 역시 세계3대 트레킹 코스라는 수식어가 실감난다. 1,815m-2,670m높의의 하바설산 절벽 허릿길을 넘으면서 구름 위를 날 듯, 때론 칼날 위를 걷 듯 환상적인 여정을 마무리한다. 따쥐 가는 길은 로우 패스(Low Path)의 끝머리인 하후탸오샤 길. 지나온 협곡을 다시 돌아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여정을 기대한다.
티나객잔 우측 쉔촨(新村)대교를 건너자 빵차가 기다린다.
윈난성 여행 중 수시로 이용하는 차. 모양이 빵처럼 생겨서 흔히 빵차라고 부르는 이차는 소형봉고차 형태이다.10명 미만의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편리할 뿐 아니라 이름 자체도 친근감이 간다.
차를 타기 전 전망포인트에서 중후탸오샤 협곡을 다시 내려다 본다. 위룽설산과 하바설산의 높이가 낮아짐에 따라 협곡의 경사도 점점 완만해진다. 지나온 티나객잔 마을이 그림같이 보인다.
따쥐마을은 쉔촨(新村)을 거쳐 진사강(金沙江)을 건너야 한다. 빵차를 타고 하바설산의 암벽 허릿길을 달린다. 도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길을 새로 낸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좌측 암벽은 깎아내린 흔적이 역력하다.
차로 10여분 가면 쉔촨마을. 이곳에서부터는 걸어서 진사강 나룻터까지 가야 한다. 포장되지않은 황량한 벌판길을 걷는다. 비가 오지않아 흙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강 건너 따쥐마을이 잘 보이는 곳에서 다시 사진 한 장 찍는다. 트레킹 도중 만난 중국인 젊은 남녀. 그들도 사진촬영을 함께 한다.
진사강을 향해 내리막길을 따라간다. 진사강은 장강(長江)의 지류이다. 장강은 양쯔강(揚子江)이라고도 부르며, 중국 대륙 중앙부를 횡단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전체 길이가 6,300km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길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양쯔강이란 명칭을 사용한 뒤, 오늘날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쯔강이 장강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진사강은 양쯔강의 주요상류 중 서쪽 끝에 있는 강으로 길이는 2,308km이고, 유역면적은 49만 500㎢에 이른다. 상류에서 사금이 채취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성수이강, 뤼수이강 또는 진룽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굽이굽이 중국대륙을 가로지르는 강. 진사강 물줄기에서 중국의 장대한 역사를 보는 듯 하다. 강물이 약간 황토색깔이다. 비가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가 적은 11,12월 무렵부터 이듬해 4,5월까지는 비교적 파란 색을 띤다고 한다.
지그재그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 나룻터 도착. 나룻터에는 필자 일행 이외 사람이 보이지않는다. 한적하다. 지류라서인지 강폭이 좁다.시멘트 바닥에 앉아 잡담을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배가 도착할 무렵 다른 일행 몇 명이 합류한다.
강 건너에서 배가 온다. 승선인원 20명 미만 정도의 조그만 배다. 조타석 지붕이 재미있다. 마치 궁궐 망루 모양이다. 강을 건너면 가파른 계단. 건강한 사람도 한번 정도는 쉬면서 올라야 하는 급경사길이다.
따쥐마을은 선착장에서 지척이다. 걸어서도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란다. 빵차가 기다린다.
드디어 따쥐마을 도착. 마을이 잘 정돈돼 있는 것 같다. 아담하고 깨끗하다. 마치 민속촌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중앙로에서 어린이 두명이 뛰어노는 모습이 여유롭다.
따쥐는 위룽설산, 하바설산 등 사방 설산으로 들러쌓인 분지형 마을이다. 마을이 마치 어항 속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따쥐(大具)라는 지명은 이곳의 지형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큰 솥(大鍋) 모양으로 생긴 데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현재의 지명은 크게大 갖춘具 곳이라는 뜻이니 꽤 그럴 듯 하다.
필자 일행이 머물 곳은 따쥐객잔. 나시족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아담한 민박집이다. 이곳 주민의 90% 정도가 나시족이란다.
사각형 모양의 집안에 들어서면 중앙에 돌로 된 큰 평상이 놓여 있고 좌측으로 이층방이 보인다. 전형적인 중국식 집 모양이다. 여기저기 놓여진 화분이 여행객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사람 크기 두배 가까이 높이의 브겐베리아나무가 등나무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꽃인데 이 정도로 큰 브겐베리아 나무는 처음 본다. 빨갛게 핀 브겐베리아가 참으로 아름답다. 꽃말답게 정열적이다.
배낭을 푼 후 마을산책에 나선다.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어느 여행가의 여행기에 의하면 "지금까지 세상에서 본 마을 중에서 따쥐처럼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라고 했는 데 약간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찬사이긴 하다. 마을 곳곳을 흐르는 수로(水路) 역시 인상적이다. 물가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봤던 풍경과 흡사하다.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카메라를 드니 포즈까지 취해준다.
마을에서 몇걸음 만 나가면 들녘이다. 보리수확기라 들판이 온통 샛노랗다. 보리를 베는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뒤로 위룽설산, 하바설산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같다.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지키는 아주머니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방목하는 염소들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중앙로를 따라 마을 길도 걸어본다. 입구 길가에는 사람 키보다 헐씬 큰 선인장들이 가로수로 진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봤던 풍경. 기온이 따뜻한 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마을 담벽 여기저기에는 브겐베리아 꽃이 만발해 있다. 따쮜마을에는 특히 브겐베리아 나무가 많은 것 같다. 이집 저집 연못들도 눈에 들어온다. 연못이라기 보다는 물을 담아놓는 수조인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이다. 오늘의 메뉴는 삼겹살 구이. 싱싱한 상추 쌈에 삼겹살 철판구이, 고추장과 김치까지 올려놓으니 영락없는 한국식탁이다. 한국인 여행객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한 주인의 배려란다. 고추장과 김치는 가이드인 조나단 씨가 일부러 준비해온 메뉴이다. 중국 술 몇 잔에 따쥐의 밤이 취해간다.
다음날, 5,596m의 위룽설산과 하바설산 기슭에도 아침이 밝아온다. 만년설이 쌓여있는 설산 봉우리가 붉게 타오른다.
이번 여행은 오세영 서울대명예교수(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예술원 회원) 내외분, 배경숙, 시인, 이석례 시인 등과 함께 했다.
오세영 교수님과 아침 산책에 나선다.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 이른 아침이 아닌데도 마을 길에는 교수님과 필자 밖에 없다. 필자 일행이 새벽을 깨운 것 같다. 담벽에 붉은 글씨의 낙서가 보인다. '相互天愛 共享生命...'.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삶을 누리자' 는 뜻 아닐까.
골목 길로 들어선다. 이곳 집들은 대부분 돌담과 흙벽돌로 지어져 있다. 골목 한가운데를 흐르는 수로가 특이하다. 길을 갈라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골목에서 남자 한 분을 만난다. 필자 일행이 집안을 기웃거리니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제법 큰 집이다. 따쥐마을 주민들이 비교적 여유롭게 사는 듯 하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비슷한 모양이다. 사각형 형태로 우측은 안채, 좌측은 헛간채이다. 헛간 채는 2층형. 농촌 가옥으로 실용적인 건축구조 같다. 집에 따라 아랫층은 가축을 기르거나 농기구를 보관하기도 하고 2층은 곡식 또는 가축사료 등을 보관한다.
여자주인이 부엌에서 빵을 굽는다. 주인은 필자 일행을 부엌으로 안내한다. 부엌이 꽤 넓다. 부엌 한 구석에는 응접실 모양의 탁자도 놓여 있다. 여자주인이 빵과 차를 내놓는다. 호떡 모양의 빵. 맛이 담백하다.나시족들이 아침식사 때 먹는 빵은 그들의 주식으로 나시빠바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연히 중국 나시족들의 생활방식의 일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민박집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한다. 이집 역시 주식은 호떡 모양의 빵. 삶은 계란과 익힌 야채, 콩나물 등이다.
어제는 무심코 지났는데 아침에 보니 이곳 따쥐객잔에도 수조가 있다. 연못 모양의 수조에 물을 받아놓고 이 물로 발도 씻고 빨래도 한다. 집집마다 수조에 물을 받아놓았다가 주로 허드렛물로 쓰는 것 같다.
조식 후 다시 다음 여행길에 오른다. 오늘 갈 곳은 위룽설산 경구(景區). 케이블 카를 타고 위룽설산 모우평 3,800m까지 오를 것이다. 그런 후 백수하를 거쳐 해발 3,300m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지는 대 파노라마 '인샹 리장 쇼'도 볼 예정이다. 마을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본다. 가슴이 탁 트이는 조망.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다.
광활한 분지 위에서 오손도손 삶을 영위해 가는 나시족 사람들. 그들의 삶이 그림같다. 설산(雪山)의 눈처럼 맑아 보인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