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한자표기는 南山. 그 뜻은 앞산을 뜻하는 것으로 유래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봤을 때 앞에
있는 산이 이 남산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 인경산이 있다.
남산에 가보면 국내 최대의 송신탑(?)인 N서울타워 (구 서울타워)가 있으며 남산 봉화대 등 다양하게 있다.
그 외엔 그다지 볼 것도 없고 뭐. 일단 정상에 올라가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건 맞다. 그러나 서울타워에
올라기지 않는 이상은 서울타워에서 보는 광경과 남산
봉화대에서 보는 광경 둘 다 다르다(봉화대에선 경복궁과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야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굉장히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남산에는
통감부 건물(총독부가 신축되면서 과학관으로 쓰였다)과
일본공사관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류지가 있어 왜성대라 불렸다. 또한
일제는 풍수상 서울의 중심을 남산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 산에 조선의 기를 누른다는 의미에서 현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분수대 위치에 조선신궁을
세웠고 현 숭의여자대학교 자리에 경성신사를 세웠다.
조선신궁은 신사 자체도 작지 않았지만 신사로 가는 길과
부속건물의 면적이 장난이 아니게 컸다. 덕분에 남산의
자연은 큰 훼손을 당하고 만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 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신궁은
없어졌지만 훼손당한 산의 공터를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남산 식물원, 백범공원 등의 시설이다. 때문에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세울려고 했었다.
이는 4.19 혁명으로 백지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