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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소득을 바탕으로 환경을 일신한 마을
경남 함안군 칠원면 곡촌마을 지도자 조 규 용
성공내용
이 마을은 도시 인접마을이며 호당 경지면적이 0.45ha에 불과한 극히 영세하고 낙후된 마을이었으나, 73년부터 슬기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일치단결, 마을의 모든 자원과 입지여건을 최대한 개발 활용하여 재래의 미백 편중 영농에서 과감히 탈피, 양계, 양돈, 낙농, 한우 등 축산중심의 다각영농을 추진하면서 공동구판과 협동작업 등을 통하여 주민단합의 계기를 확고히 조성하였고, 소득증대 사업을 선행하여 생활의 안정을 기한 다음, 이를 토대로 불량 주택개량, 소하천, 하수구, 마을안길 정비 등 마을환경을 일신한 결과, 70년 24만원에 불과하던 호당 소득이 76년 말에는 156만원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80년대에는 327만원의 고소득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마을현황
가구 : 90호 (농가 76, 비농가 14)
인구 : 459명 (남 224, 여 235)
경지면적 : 40.6ha (논 36.3, 밭 4.3)
가난하기만 했던 도시 인접마을
곡촌마을은 남해 고속도로와 구마 고속도로가 교차되는 중리 인터체인지에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마산시와는 직선거리로 6km밖에 안 되는 도시 인집마을이나 호당 경지면적이 0.45ha에 불과하여 대부분의 주민들은 마산시에 나가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며 실의와 체념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왔었다. 73년 낙후되었던 이 마을에도 뒤늦게나마 새마을 운동의 불길이 번져 왔고, 슬기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한데 뭉쳐 잘 살아 보자고 열심히 일한 결과, 소득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으며, 이 소득을 바탕으로 주택을 개량하고 취락구조를 개선하여 불과 4년 만에 살기 좋은 부자마을을 건설하게 되었다.
곡촌마을에 새바람을 일으킨 조 규옹 지도자는 이 마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 2년을 수료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마산 수출자유지역내 제혁회사 노무과장으로 근무하다가 마을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이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마을 일이면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적극 참여하게 되자 주민들은 그를 새마을지도자로 선출하게 되었으며, 책임을 맡게 된 조 지도자는 이 마을을 잘살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을 몰아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개선에 앞서 주민소득을 증대시켜야 갰다고 마음먹었다.
첫 소득사업으로 양계를 시작
이 마을은 경지 면적이 협소하여 종래와 같은 미작위주의 경종농업만으로는 마을의 발전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으며 이 마을이 잘 사는 길은 오로지 도시근교에 위치하고 있는 입지여건을 적극 활용하여 축산으로 소득을 개발하는 길 뿐이라고 판단한 조 지도자는 자신이 제혁회사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하던 양계사업을 주민들에게 지도하여 양계 붐을 조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육기술의 미숙으로 백리 병에 전염되어 수백 마리의 닭이 몰사된 시련도 겪었지만 농촌지도소의 지도를 받아가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74년에는 53호의 농가에서 35,000여 마리의 닭을 사육하여 호당 36만원 상당의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양계 농가가 50호를 넘고 주민들의 생활이 점차 안정되어 가자 지도자는 사료구입 운반용 픽업트럭을 마을 공동으로 구입, 운영하여 사료를 보다 싼 값에 공급함으로써 주민협동의 계기를 조성하였다.
또한, 출산한 계란은 공동출하 하되 개인별 전표를 활용, 판매 대금이 출 하자에게 자동적으로 되돌아가도록 하여 판매과정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경비와 인력의 낭비가 없도록 함으로써 주민들의 협동심을 정착 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양계에서 수익성이 높은 양돈 사업으로
74년 가을부터 사료 값이 올라 양계사업의 수익이 크게 떨어지게 되자 지도자는 질병의 위험성이 적고 수익성이 높은 양돈 사업으로 업종을 바꿔 나가기로 작정하고 주민 등을 설득, 김해 , 함양 등지에서 우량 비육품종인 랜드레이스 새끼돼지 120마리를 공동 구입하여 42호의 농가에 분양하였다.
돼지마을이란 별명이 붙은 이 마을에서는 1년에 2~3회씩 자돈을 성돈으로 키워 육용으로 출하함으로써,m 75년에는 590두를 판매하여 호당 42만원을, 76년에는 1,270두를 판매하여 호당 67만원의 순소득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돈사에서 나오는 퇴비를 인근 비닐재배농가에 톤당 12,000원씩에 팔아 양돈소득의 다변화를 기하고 있다.
양돈에 필요한 사료의 일부는 이 마을에서 계란을 계약 공급하여 단골이 된 마산시내 주요 음식점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공급받아 활용함으로써 사육비의 70%를 절약하고 있다.
축산기술 터득으로 낙농업에 손대
양계와 양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축산관리 기술을 터득한 주민들은 74년 축산구조 개선 사업비 200만원을 융자받아 젖소 3마리를 구입 낙농에 착수하였으며, 지금은 8호의 농가에서 54두를 사육하여 연간 369톤의 우유를 생산하고, 계통출하를 통하여 2,700여만 원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변 야산의 풀을 이용 102두의 한우를 사육하여 연간 608만원의 축산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하여 이 마을의 축산 농가는 62가구로 확대되었으며 그 동안의 축산발전상황을 73년 말과 비교하여 보면, 양계는 그 당시의 3,200마리에서 74년 말에 35,000마리까지 늘어난 바 있으나 양돈 사업으로 전환함에 따라, 지금은 9,000마리를 기르고 있으며 양돈은 70두에서 504두로, 74년에 시작된 젖소는 54두로, 한우는 42두에서 102두로 각각 증가되어 명실상부한 축산주업 마을로 성장되었다.
유실수 심어 소득증대
다른 한편으로 마을 청년 회원들은 유실수 조림에 힘을 기울여 밤나무 3,000주를 식재 10ha의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였고, 그 후 마을의 모든 산주가 참여하여 현재는 그 면적이 25ha로 확대되었으며, 지난해에는 27톤의 알밤을 수확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부농가에서는 마을 주변의 유휴지와 산지에 포도밭 1,500평을 조성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마을 뒤 저수지 1,000평에 잉어 3만 마리를 방류하여 내년 초부터는 유료낚시터로 개방, 공동소득을 올릴 계획으로 있다.
그리고, 조 지도자는 마산시 근교마을이라는 여건을 살려 취업소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마산 수출자유지역에 근무하던 인연으로 이 마을 소녀 40여명을 공장에 취업 알선하였으며, 이들은 마산시까지 버스로 통근 하면서 연간 1,800만원의 임금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지도자와 주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소득증대에 힘쓴 결과, 74년도에 호당 평균소득은 140만원을 달성하였으나,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과 악취 등으로 마을환경이 극히 불결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제2단계 사업으로 환경개선사업에 착수, 문화적인 농촌건설을 서두르게 되었다.
소득사업에서 취락구조 개선 사업으로
지도자는 76년 초 불량주택 개량과 공동축사건립 소하천, 하수구, 마을안길 등의 유기적 정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취락구조 개선 계획을 수립하여 마을총회에 부의하였으며 주민들은 이를 충분히 토의 확정하는 동시에 전주민이 본 계획의 추진에 총화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취락구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그해 3월 정부로부터 주택개량 농가에 동당 60만원의 융자와, 2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게 되자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이웃끼리 서로 협조, 부지를 폐치 분합함으로써 터가 좁은 집은 넓히고, 안길은 바르고 넓게 구획하는 등 사업을 계획성 있게 추진토록 하였다.
건축자재는 마을공동으로 구입하여 비용을 절감하였으며, 부럭 제조와 기초공사는 군 기술공무원의 지도하에 시멘트 배합양생 등을 공동 작업으로 실시하는 한편, 주택의 구조는 창문을 넓게 하고 마루는 중심에 배치하여 방과 부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등 튼튼하고 편리한 주택이 되도록 지어나갔다.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고 마을의 새롭게 변모되어 가자 주민들은 마을환경개선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으며, 당초에는 생각지도 않던 주민들도 크고 질이 좋은 새집을 짓게 되어, 이 마을에는 도시주택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담한 단층 또는 2층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생활이 어려운 생활보호 대상자 3가구에 대해서는 마을에서 쓰고 남은 건축자재와 마을 공동기금 150만원을 투입하여 주민들의 공동 작업으로 24평의 2세 대분 연립주택과, 12평의 1세 대분 독립주택을 지어줌으로써 인보정신을 발휘한 흐뭇한 미담사례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마을 주민들의 협동 단결된 노력으로 1년도 못되는 기간에 62동의 주택 개량사업을 완료하여 훌륭한 문화농촌을 건설하게 되었다.
주민 협동으로 마을환경의 일신
주택개량 사업과 병행하여 리어카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였던 마을 진입로 450m를 폭 6m로 확장하였고, 연장 1,370m의 마을안길도 주택이, 개축의 기회를 이용, 토지 소유자들의 합의하에 간이구획 정리방식으로 굴곡부분을 바로 잡으면서 폭을 3m에서 5m로 확장하여 대형트럭이 마을 안까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오물이 흘러넘치던 소하천 550m를 시멘트 옹벽을 쌓고 하상도 고르게 포장하여 말끔히 정비함으로써 더러운 물을 쉽게 배수시켜 마을안의 악취를 제거하였으며, 74년에 설치하여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간이급수 시설만으로는 축산용수를 충당할 수 없으므로 금년 내에 새로운 지하수를 개발하여 위생적인 축산사업추진을 위한 용수를 확보할 예정이다.
또한, 마을입구에 있는 400년생 느티나무의 주변에 축대를 쌓고 마을의 상징수로서 보호하면서 여름철에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새마을 사업의 성과가 인정되어 76년 12월 전국 새마을 지도자대회 시 대통령각하로부터 특별 지원금을 하사받게 되었으며, 이 돈으로 80평 규모의 공동축사 2동을 건립하여 마을의 돼지를 공동사육 함으로써 협동경영방식을 통한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마을안의 공동이용 시설확충에도 힘을 기울여 비좁고 허술하던 구 회간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자리를 잡아 34평 2층 스라브 형 마을회관을 300만원의 공동기금으로 건립하여 아래층 20평은 리 사무실, 마을금고, 경로당, 영농교실로, 2층은 회의실, 예식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74년 말에 공동창고 30평을 건립하여 주민들의 생산품, 농기구 등을 보관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정부양곡 2,660가마를 보관 5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소득기반 구축으로 80년대 고소득 전망
지난 6년 동안 이 마을의 호당소득 성장추세를 살펴보면 70년에는 24만원에 불과하였으나, 73년부터 급속한 성장을 보여 76년 말에는 156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며, 그동안 구축한 소득기반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 다가오는 80년에는 327만원의 고소득이 달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마을의 새마을 운동이 단 기내에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뜻있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일치단결, 마을의 모든 자원과 입지여건을 최대한 개발 활용하여 재래의 미맥 편중 영농으로 과감히 탈피, 축산중심의 다각영농을 추진하면서 공동구판과 협동작업 등을 통하여 주민단합의 계기를 확고히 조성하였고, 소득증대 사업을 선행하여 생활의 안정을 이룩한 다음 이를 토대로 마을환경을 일신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축산 선도 마을의 꿈을 안고
이 마을 주민들이 추진할 앞으로의 계획은 먼저 건립되어 있는 2동의 공동축사 이외에도 금년 내로 6동의 축사를 신축 마을안의 모든 가축을 집단 사육하고, 축산기술센터를 설치하여 이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축산에 관한 정보제공과 관리기술, 질병예방 등의 교육을 실시하여 명실 공히 축산선도 마을이 되도록 하는 한편, 마산수출자유지역내의 회사들과 교섭하여 이 마을 유효노동력을 취업시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새마을 공장을 유치해 나갈 계획이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시작에서 오늘까지 1977 내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