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보푸름/장혜완
어화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나 어릴적 할아버지 진지 잡숫고 나면
보물처럼 여기시던 모란무늬 뚜껑단지
보푸래기 한소끔만 집어서 드셨는데
몰래 한번 먹어보면 아무 맛이 없는데도
어른들은 무미한 걸 몸에 좋다 하셨던고
물을 먹인 베보자기 말린 북어 둘러싸고
다드미에 얹어서 방맹이로 고루고루
힘을 분산 시켜가며 몇시간을 톡톡톡톡
가볍게 두드려서 껍집을 벗겨내서
기름에 튀겨내면 강릉 최부자 부럽잖아
주전부리 귀한 시절 아이들의 좋은 간식
몇백 살 나이 먹은 닳아 빠진 놋수저로
살살 긁어 내면은 스폰지 같이 폭신하고
소캐같이 부드러운 명태살로 변신하네
설탕 소금 기름으로 햇갓난이 만지듯이
보품보품 무쳐내어 사기단지 다져넣고
고명으로 잣가루를 얹은 듯 만듯하고
할아버지 전용 음식 너희들은 먹지마라
맛있지도 않는 음식 무에라고 탐을 낼까
세월 흘러 혼인하며 갖은 음식 준비하여
정성음식 가져가매 이쁜 단지 다섯개에
송이버섯 장아찌에 명란젓갈 다독다독
소고기 장조림에 노란 황태 보푸라기
더덕더덕 장아찌에 파래무침 색갈 갖춰
소고기 돼지고기 큰짝으로 맞춰가고
전복 문어 대하 대게 생물로 준비하고
큰 도미도 날것으로 오색 웃기 장식하고
고물찰떡 유과 약과 집에서 다 만들고
알록달록 찌짐이도 색색으로 구색 맞춰
고리짝에 꼭꼭 담고 연잎으로 덮어 씌워
청홍 비단 보자기에 근봉서를 둘러치고
신행날 차에 싣고 시댁으로 당도하니
온 집에 가득 모인 손님들의 기대만발
부러운 눈길 속에 하나하나 풀어내며
정성단지 개봉하던 시어맛님 제일성이
아이고 명태 보푸리 정말로 잘했고나
산해진미 다두고서 하필 그러 하셨던고
그 의문을 시집살이 사십년간 몰랐으되
시아바님 큰 수술 몇번 하시고 약 드시며
며눌아가 명태보푸리 한번 만들어 보거라
보고 들은 것은 있어 겁도 없이 달려들어
대충대강 두드려서 잘될 턱이 있나요
믹서기에 넣어 돌려 가루가 되었다네
돌아가신 시어맛님 이럴 때 생각는다
이름도 많은 명태 제삿상에 올라가고
동태 북어 먹태 관태 창란 명란 껍질까지
하나도 버림없이 우리에게 유용한데
보풀이도 못만드는 외며느리 가관이라
가랑께서 수술한 후 해독을 시키려니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이 명태 보풀이라
아하아하 깨달음과 후회가 밀려오네
명태가 간을 도와 약의 독성 풀어내고
치아 약한 노인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니
어른들이 그렇게나 중요시 하셨구나
선물 받은 좋은 명태 한 쾌가 생겼으니
보풀이는 못한따나 이것저것 만들었네
북엇국에 명태무침 양념구이 만들면서
뒤늦은 확철대오 실소가 절로 나네
철은 뒤늦게 나고 후회는 때 늦은 것
명태 보푸름은 반가의 귀한 음식이라
못해 드린 며느리는 대가 부녀 아니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