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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장흥 79코스 제1부
원등마을회관-농어두마을-풍길마을-꼬막재-상발마을-사금마을-정남진-삼산방조제
20220622
1.정남진과 가슴앓이섬 가금도
격주로 진행하는 1박2일의 남파랑길 탐방을 위해 장흥으로 떠났다. 남파랑길 77~79코스를 진행하는데, 첫날 79코스부터 진행한다. 77코스와 78코스를 걷지 않고 79코스를 출발하니 이미 걸어야 했을 77과 78코스를 모르는 채 79코스를 걸어가니 지나온 길을 돌아보아도 그 위치 감각이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지도를 통해 위치를 살피며 뒤뚱뒤뚱 남파랑길을 따라갔다.
장흥군 용산면 덕암리 원등마을회관 앞에 도착, 마을 표석 뒷면을 읽어보니 이 돌은 400여 년 전에 채취하여 돌다리 상판으로 사용하던 돌이었는데, 이제는 마을 표석으로 세워져 이 마을을 알리는 뜻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220년 나이의 푸조나무가 마을회관과 蓮波亭(연파정) 주변에 그늘을 드리워 마을 주민의 편안한 휴식을 돕고 있다. 마을회관 옆 가로등 기둥에 붙은 남파랑길 79코스 시작점 표지와 함께 출발을 기념하는 사진을 남기며 길게 이어지는 남파랑길 79코스를 출발한다.
79코스는 덕암리 원등회관 위 삼거리에서 덕암풍길로를 따라가다가 남상천의 덕암교를 건너 풍길리 들녘으로 나가 풍길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남상천은 갈대습지를 형성하며 득량만으로 흘러가고, 들녘의 푸른 벼들이 싱그럽게 자란다. 제암산과 사자산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북동쪽으로 이어지고, 남파랑길 78코스에서 걷게 되는 안양면 사촌리 사촌마을에서 해창마을 그리고 지천리로 이어지는 남상천 건너편 길이 가늠된다.
풍길리 들녘에서 덕암풍길로로 나와서 풍길삼거리까지 길게 이어지는 덕암풍길로를 따라가면서도 풍경은 풍길리 들녘에서 바라본 풍경과 대동소이하다. 덕암풍길로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으로는 풍길농원, 왼쪽으로는 영광 김씨 세장산이 나타나는데, 이 지점을 통과하며 동쪽으로 활짝 트인 농어두저수지와 그 건너편 안양면 해창리와 지천리 들녘, 그 뒤쪽으로 펼쳐지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리고 후박나무 가로수 초록 열매들이 에메랄드 보석처럼 반짝이며 길손의 눈을 호강시킨다.
풍길마을 입구 정자의 현판 雲耕亭(운경정)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구름 속에서 밭을 갈다, 구름밭을 갈다, 구름을 갈다, 되는 대로 생각해 봐도 결국은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나타내는 것 같다. 힘겨운 농사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거나 단잠을 잘 때, 구름 같은 꿈을 꾸며 논밭을 경작하듯 구름을 경작하고, 구름을 펼치듯 꿈을 경작하는 모습이 운경정 글자에서 그려진다. 풍길마을은 풍산길지의 마을이니 雲耕의 풍요한 삶을 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풍길삼거리에서 접정남포로를 따라 남포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남파랑길 78코스에서 걸어갈 건너편 안양면 사촌마을과 해창마을을 가늠하고, 미지의 장재도와 남포마을 그리고 소등섬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접정남포로는 두암마을과 두암천을 지나서 고개로 이어지는데 신풍마을 입구에서 풍경이 닫친다. 접정남포로에서 접정남포로와 작별하고, 오른쪽 풍길농장 방향의 꼬막재로 들어서 고개를 오른다. 풍길농장 위 꼬막재에서 다시 한 번 호남정맥의 산줄기와 안양면 사촌리와 해창리 마을을 가늠한 뒤 고개를 넘어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용산면 풍길리에서 상발리로 넘어오게 된다. 꼬막재는 용산면 풍길리와 상발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상발마을로 들어서면, 상서로운 구름의 정자 瑞雲亭(서운정)이 상발마을 입구를 지킨다.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듯 마을에 상서로움이 항상 넘쳐난다는 뜻일 것이다. 상발마을에는 예쁜 벽화들들이 조성되어 있다. 농촌과 어촌의 풍경을 보여주는 벽화들을 살피며 마을을 지나치는 길손은 그 그림의 수준을 떠나서 그 그림의 의미를 떠올리며 마음이 풍요해진다. 꽃 그림들, "별님, 소원을 들어 주세요." 고무줄 놀이 그림,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나무 그림, 뻘배 그림 등, 상발길을 내려오며 스치는 그림들이 동심을 자극하여 길손의 마음은 아득해졌다. 또한 상발마을의 벽화를 통하여 마을이 어업과 농업의 이중 생산활동을 하는 농어촌 마을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상발길에서 득량만 정남진해안로로 나오면, 해안로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 득량도와 건너편의 고흥반도, 소록대교와 소록도, 거금대교와 거금도를 가늠하는 즐거움에 빠져 환호하였다. 걸어간 소록대교와 잠두항, 그리고 고흥만 해안길, 도양읍 봉암리의 비봉산이 한눈에 모두 가늠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적확한 것 같다. 고흥반도의 걸어온 길들, 남파랑길 탐방을 마치고 가외로 걸어간 해안길과 소록대교, 잠두항과 해안길, 그곳에서 장흥의 득량먄과 천관산을 조망하던 일이 생생하다. 동경은 실현을 성취하고 그리움은 실현한 것의 추억이 되어 실현의 성취와 성취의 추억은 삶의 역동과 반추로 삶을 풍요롭게 하여 준다.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고서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이어간다. 그 길에서 끊임없이 건너편 고흥반도, 소록도와 거금도는 눈길을 끈다. 용산면 상발리에서 관산읍 죽청리로 넘어오면 길게 꿰어진 섬이라는 장환도(長逭島)가 주변의 여러 섬들과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섬이 아닌 육지가 된 장환도가 길게 이어진 등성이와 부리 모양으로 바다에 뻗은 곶(串) 모양으로 펼쳐져 있으며, 장환항과 마을이 평화스럽게 조망된다. 장환도를 옆에 두고 오르면 죽청리 신월마을 입구 죽청방조제에 이른다.
죽청방조제는 관산읍 죽청리와 고마리 사이를 가로막은 방조제로서 고읍천 하구를 가로막고 있다. 고읍천은 예전에 대내(竹川) 또는 죽천강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이곳에 방조제가 생기면서 이 하천 이름이 고읍천이라 바뀌었다고 한다. 죽청방조제 배수갑문 수문교를 건너 바라보니 배수갑문에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글자를 보니, 拔溷採淸(발혼채청), 그리고 글자 끝에는 齋藤實書(재등실서)가 세로로 작은 글자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이 글씨를 제3대와 5대, 조선총독을 두 차례씩이나 역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썼다는 말인가? ‘더럽고 어두운 것을 뽑아버리고, 깨끗하고 맑은 것을 취한다.’는 拔溷採淸(발혼채청)의 뜻이 아주 좋아 보인다. 그런데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이 발혼채청을 통해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뜻으로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이후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여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를 펼친 사이토 마코토는 득량만을 비롯한 남해안 간척사업을 주도했을 것이며, 장흥 죽청방조제도 이때의 간척사업으로 건설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죽청방조제를 걸으며 齋藤實書의 '拔溷採淸' 글자를 생각하니, '반일종족주의'를 내세우는 신친일파 세력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곧 拔溷(발혼)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청리에서 고마리로 넘어와 장환도로 이어지는 고마리 포두마을 입구에서 남파랑길은 농로로 진입, 관산읍 신동리 신당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농로를 따라가다가 왼쪽 해안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직진하여 신당마을 입구로 가는 실수를 범한 뒤 뒤돌아서서 남파랑길 코스를 찾아들어 정남진해안로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지는 고마방조제와 긴 등성이의 장환도를 바라보며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신당어촌체험마을 표석이 있는 신당방파제, 사금어촌체험마을 민박이 있는 사금마을을 지나 굽이도는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표석에 扇遊閣(선유각)이라고 멋지게 글씨가 적혀 있다. 선유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득량만과 다도해 풍경을 조망했다. 이제 그 위치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하나하나 가늠되었다.
거금도 오른쪽으로 금당도가, 그 오른쪽으로 금일도가, 그 오른쪽 뒤로 백운산이 솟은 생일도가, 그 오른쪽으로 조약도가 가늠된다. 정남진으로 가는 해안길에서 작은 돌섬이 보인다. 이 돌섬은 신선들이 가야금 선율에 맞취 춤을 춘다고 하여 가금도라고 불리는 섬이다. 바로 이 섬이 가슴앓이섬인 것을 관산읍 신동리 정남진 표석이 세워져 있는 삼산방조제 입구에서 알게 되었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에리직톤의 초상'의 작가 이승우의 문학지도 안내판을 통하여 작은 돌섬이 왜 가슴앓이섬이라 이르는가를 알게 되었다. 정남진 표석이 세워져 있는 모래미 앞 돌섬인 ‘가슴앓이섬’은 그의 소설 '샘섬'의 배경지라고 한다. 작은 섬마을에서 시집, 장가를 가고 싶은 마을 젊은이들이 달뜬 마음에 가슴앓이를 했다고 해서 가슴앓이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꼭 청춘남녀만이 가슴앓이를 하는 것일까? 우리들 모두 뜨거운 가슴이 있는 한은 가슴앓이를 하게 되어 있다.
득량도와 가슴앓이섬, 소록대교와 소록도, 거금대교와 거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조약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섬' 전문) 그 섬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슴을 앓는 사람이다. 그 섬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가슴앓이섬을 안고 있다. 가슴앓이섬 안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 섬에 결코 갈 수 없다. 가슴앓이를 안고 삼산방조제를 걸어 정남진전망대로 향한다.
제2부로 이어짐.
2.걸은 과정
장흥군 용산면(蓉山面) 덕암리 원등회관 앞, 수령 220년 푸조나무가 마을회관 앞 그늘이 되어 주고 있다.
이 표석은 마을 선조님들이 400여년 전 앞산에서 채취하여 마을 앞 진입로 소하천의 다리 상판으로 사용하였는데 마을 재난방재사업 시행 때 철거하여 보관하다가 2016년 마을표석으로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남상천 하류의 기름진 터전 위에 조선 초기에 형성된 마을로, 장흥 고을 원님이 옛 고읍(현 관산읍)으로 가는 길에 꼭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등(院嶝)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남파랑길 79코스 시작점 표지가 마을회관 옆 가로등 기둥에 붙어 있다.
원등회관과 그 오른쪽에 蓮波亭(연파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쉼터정자, 도로에는 원등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그리고 400년 전에 채취하여 다리 상판으로 사용하다가 이제는 마을표석이 된 돌, 이 모든 것을 지켜주는 푸조나무가 싱그럽다.
덕암풍길로 왼쪽으로 이어간다.
왼쪽으로 꺾어 덕암풍길로 해안도로를 따라 남상천의 덕암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덕암풍길로에서 덕암교를 건너 바로 왼쪽으로 꺾어 들판의 농로를 따라 우회하다가 덕암풍길로로 다시 나온다. 남상천은 용산면 덕암리와 풍길리의 경계가 된다. 덕암교를 건너 풍길리로 넘어간다.
남파랑길은 남상천변을 따라가다가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판을 가로질러 나간 뒤 덕암풍길로로 나간다. 중앙 맨 뒤 왼쪽으로 살짝 나온 흐릿한 섬은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장재도이다. 장재도 왼쪽으로는 연륙교 장재교로 사촌마을과 이어지고, 장재도 오른쪽으로는 연륙교 정남진대교로 용산면 상발리 남포마을과 이어진다. 남포마을 앞에 소등섬이 있을 것이다.
왼쪽 앞에 원등마을회관 앞의 푸조나무가 싱그럽다. 중앙 맨 뒤에 장흥과 보성의 경계를 이루는 제암산이 보인다.
남상천 서쪽의 농토가 드넓다. 호남정맥의 제암산(왼쪽)이 중앙의 사자산을 거쳐 중앙 오른쪽의 일림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등마을회관 앞에서 남상천의 덕암교를 건너 풍길리 들녘으로 나와 농로를 따라 걸어왔다. 자귀나무 꽃들이 한창이다.
풍길리 들녘 농로를 따라가다가 앞의 전봇대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덕암풍길로로 나간다.
뒤쪽으로는 호남정맥의 제암산(왼쪽), 사자산(중앙), 일림산(중앙 오른쪽)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 오른쪽 마을은 장흥군 안양면 지천리 지천마을이며, 왼쪽은 용산면 덕암리 덕암마을이다.
남파랑길은 덕암풍길로를 따라 풍길삼거리까지 이어간다.
제암산과 사자봉이 뒤쪽에 보인다. 중앙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는 용산면 덕암리 덕암마을, 오른쪽은 안양면 지천리 지천마을이다. 남파랑길 78코스는 풍길리 들녘 건너편 지천리 남상천 제방을 따라 덕암리로 이어진다.
남파랑길은 덕암풍길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풍길마을로 이어진다.
덕암풍길로 오른쪽에 있다. 남파랑길은 덕암풍길로를 따라 직진하여 고개를 넘어 풍길마을로 향한다.
고개를 넘어 풍길마을로 내려왔다. 건너편은 안양면 지천리 지천마을이며 뒤쪽에 일림산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풍길마을 입구에 '豊産吉地 풍길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풍길마을은 물산이 풍부하고 복된 일이 생기는 터임을 내세우고 있다. 풍길삼거리에서 남파랑길은 왼쪽 남포방향의 접정남포로를 따라 이어간다.
앞의 정자는 雲耕亭(운경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쉼터정자, 그 왼쪽은 풍길다목적회관이다.
남파랑길은 두암마을로 진입하지 않고 접정남포로를 따라 이어간다.
오른쪽 맨 끝에 해창마을이 보인다. 남파랑길 78코스는 해창마을에서 방조제를 따라 왼쪽 지천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왼쪽에 억불산, 중앙에 제암산, 오른쪽에 일림산 능선인 듯. 건너편 오른쪽은 안양면 지천리에서 왼쪽 용산면 덕암리로 이어지는데 남상천 방죽길을 따라 남파랑길 78코스가 이어진다. 맨 왼쪽 끝은 출발지인 원등마을회관 앞이다.
중앙에 안양면 해창리 해창마을, 맨 오른쪽 뒤에 사촌리 사촌마을, 사촌마을-해창마을-방죽길은 남파랑길 79코스이다.
장흥군 용산면 풍길리 신풍마을 입구, 남파랑길은 신풍마을로 진입하지 않고 오른쪽 접정남포로를 계속 따라간다.
접정남포로 전봇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풍길농장 방향으로 진입하여 꼬막재를 넘어간다.
건너편 중앙에 안양면 해창리 해창마을이 보인다. 왼쪽 제암산에서 오른쪽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다.
꼬막재는 용산면 풍길리와 상발리의 경계가 된다. 꼬막재를 넘어 상발리로 넘어왔다.
죽교상하발로에서 상발마을로 들어가 상발길을 따라 이어간다.
남파랑길은 서운정 앞 상발길을 따라 상발마을을 관통하여 득량만 해안으로 나아간다.
상발길을 따라 득량만 정남진해안로로 나간다.
전망대에 올라가 활짝 열린 풍경을 조망한다.
전남 장흥군 용산면 소재에 위치한 이 마을은 서기 1500년경 개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734년 남면 청원계의 명안으로 발리산으로 기록되었다. 안산은 87m이나 뒤에 노승봉이 솟아 있고 능선으로 용산과 관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예부터 구전으로 노승 밑에 명당이 있다 하여 마을 터를 잡고 발산으로 불렸다. 1940년 남면이 용산면으로 개명되자 남포리를 분구시켜 오늘날의 상발리로 이어져오고 있다. 마을 앞의 자라섬은 옛날 삼신할머니가 치마에 흙을 담아 노두를 놓고 고흥을 건너가려다 치마에 구멍이 뚫려 흙이 쏟아진 것이 자라섬이 되었다는 구전이 있다.
우뚝한 노승산, 상발마을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상발길, 곤포 사일리지 뒤의 용산면 상발리 상발 하수처리장이 보인다.
정남진해안로가 남포마을 소등섬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의 득량도와 그 오른쪽에 고흥반도가 길게 이어진다.
오른쪽에 자라섬, 맞은편에 고흥반도가 이어지고 그 오른쪽으로 소록도와 거금도가 흐릿하게 들어온다.
자라섬이 왼쪽에, 장환도가 중앙에 보인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이어진다.
상발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였다. 걸어온 상발마을과 상발전망대를 뒤돌아보았다.
맨 뒤에 일림산이 보인다. 중앙 뒤는 장재도, 그 뒤에 흰 건물이 보이는 곳은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해수욕장이다.
자라섬 뒤로 고흥반도가 이어지고, 그 오른쪽에 소록대교로 이어지는 소록도와 맨 오른쪽에 거금도가 흐릿하다.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용산면 상발리에서 관산읍 죽청리로 넘어왔다. 왼쪽의 섬은 장환도, 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섬과 섬이 방조제로 이어져 간척되어 육지가 되었다. 오른쪽에 소산봉이 분화구 모양으로 솟아 있다.
남파랑길은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맨 뒤에 천관산이 의젓하고 왼쪽에 소산봉이 작은 화산 같다.
왼쪽의 나무는 고사한 듯, 그 자태가 근사하다.
관산읍 고마리 장환도 및 주변 섬들이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왼쪽에 신월방파제가 있다. 중앙 뒤로는 고읍천이 흘러온다.
拔溷採淸(발혼채청), ‘더럽고 어두운 것을 뽑아버리고, 깨끗하고 맑은 것을 취한다.’ 齋藤實書(재등실서). 그렇다면 조선의 3대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쓴 글씨가 맞을까?
관산읍 죽청리 죽청2구 신월마을 입구이다. 앞에 쉼터정자와 신월방파제, 오른쪽 뒤에 득량도가 흐릿하게 들어온다.
왼쪽 뒤에 천관산이 보인다.
관산읍 죽청방조제는 죽청리에서 빙 돌아 고마리까지 이어진다.
건너편 마을은 관산읍 죽청리 신월마을이다. 왼쪽 뒤에 노승산이 보인다.
방조제에 의하여 갈대습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위쪽의 마을은 관산읍 죽청리 죽청마을이다.
다리를 건너면 관산읍 죽청리에서 고마리로 넘어간다. 남파랑길은 정남진해안로 왼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 죽청배수갑문 수문교에서 죽청배수장으로 이어왔다.
해안로 길가에 경화네굴구이, 사계절굴구이 등 굴구이 음식점이 있다.
왼쪽에 굴구이 음식점 두 곳이 있고, 노승산이 오른쪽 뒤에 있다.
자라섬 뒤 상발전망대에서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신월방파제 앞 죽청배수갑문으로 이어왔다. 왼쪽에 노승산이 보인다.
왼쪽 앞에 자라섬, 왼쪽 끝으로 보성 득량만의 오봉산이 가늠되고, 득량도 오른쪽으로 고흥반도가 펼쳐져 있다.
득량도와 그 오른쪽에 고흥반도, 그리고 오른쪽 바로 앞에 장환도가 누에처럼 누워 있다.
이곳은 고추섬이라 불린 섬이었으나 방조제로 육지와 이어졌고 장환도와도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현재는 고마3구 포두마을이다. 남파랑길은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포두마을로 향하지 않고, 대규모 축사 앞에서 오른쪽 농로로 진입한다.
정남진해안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 관산읍 신동리 신당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소산봉은 멀리서 볼 때가 멋지다. 오른쪽 뒤의 천자의 관을 쓴 천관산은 명산임에 분명하다.
관산읍 고마리에서 신동리로 넘어와 걸어온 간척농토의 농로가 곧바르다. 중앙 뒤에 노승산이 표지가 되어 준다.
남파랑길은 농로를 따라오다가 왼쪽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가는데, 실수하여 신동마을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되돌아왔다.
맨 왼쪽 고추섬과, 그 오른쪽 섬들이 방조제로 이어져 있고, 맨 오른쪽 장환도와도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섬과 육지를 가로막은 고마방조제 덕분에 관산읍 신동리에 드넓은 농토가 간척되었다. 왼쪽에 노승산, 중앙 맨 뒤에 일림산이 가늠된다.
관산읍 고마리 장환도는 방조제에 의해 섬들과 이어져 육지와 이어져 있다.
중앙 왼쪽 뒤에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 그 오른쪽에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가 보인다.
정남진해안로에서 왼쪽의 금당도를 가늠한다. 그 오른쪽에는 금일도가 있다.
관산읍 신동리 신당어촌체험마을 표석에 정남진을 앞세우고 있다.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사금어촌체험마을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사금방파제에 쉼터정자가 세워져 있다.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왼쪽),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오른쪽), 거금도는 길게 누워 있다.
남파랑길은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사금마을 해안을 돌아나간다.
사금마을 입구에 사금어촌체험마을민박이 있다.
1760년경 청주 사씨, 광산 김씨가 둥지를 틀어 세거촌을 이루고, 이어서 달성 서씨, 밀양 박씨, 김해 김씨 등이 입촌하여 성촌이 되었다. 전하기를 '소산봉(蘇山峰) 선인무수(仙人舞袖)'란 명당이 있어 안적산에 선인들이 모여 가야금을 타고 칠기녀들이 가무를 하면 안적산 선인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세월을 낚는 선경지로 전하여 내려온 곳. 선들바위 선유각이 명당인 줄 알았더니 사금마을 정남진 고장 되어 선인무수가 이곳이구나. 확 트인 득량만은 어머님 품같이 포근히 껴안고, 식은포의 광활한 농경지 조성으로 풍요한 농어촌 되어 살기 좋은 사금마을 영원할지어다.
장환도는 득량만 앞으로 나와 있고, 득량도는 바다 전체의 중심인 양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사금마을이 '에리직톤의 고향'의 작가 이승우의 고향일까?
표석의 扇遊閣(선유각) 글씨가 멋지다. 선유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득량만과 다도해 풍경을 조망했다.
왼쪽 정남진 신당어촌체험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는 방파제에서 이곳으로 왔다. 오른쪽 장환도와 그 왼쪽의 섬들이 방조제로 이어져 육지가 되었다. 맨 뒤에 일림산이 가늠된다.
장환도와 그 오른쪽의 득량도, 오른쪽에는 고흥반도가 맨 끝으로 이어져 있다.
맨 왼쪽에 금당도, 그 오른쪽 뒤에 금일도, 그리고 정남진해안로가 굽이도는 끝에 백운산이 솟은 생일도가 가늠된다.
정남진해안로 왼쪽의 주택은 집주인이 자연의 바위를 그대로 살려서 멋지게 건축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에서 왼쪽 뒤에 생일도, 중앙의 정남진전망대, 그 왼쪽 뒤에 바다로 튀어나온 곶(串) 뒤 오른쪽에 조약도가 가늠된다.
왼쪽에 금당도, 그 오른쪽 뒤에 금일도, 그 오른쪽에 백운산이 솟은 생일도, 그 오른쪽 맨 뒤에 조약도가 가늠된다.
정남진해안로에 정남진을 알리는 표석이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모래미 해안에 세워져 있다.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모래미 해안이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정남진이라 명명하였다.
정남진에 가면 - 사홍만(史泓萬)
천관산 자락/ 신동마을 바닷가 주작새 온기에 젖어/ 살고 싶다//
안개 자욱한 새벽이면/ 가슴앓이 섬이 보이는/ 그 언덕에 순수 순정 이를 기억하네//
바닷물이 파르스름할까/ 그 마음의 물이 파르스름할까/ 내게 물들이고 스며드는/
잔잔한 수평선 너머/ 거침 하나 없는 고요한 바다//
사랑한 사람만이 볼 수 있다는/ 파래 빛 바다/ 슬픔, 파르스름한 빛깔이/ 내게 물들어 간다
저 출렁이는 파도/ 등 뒤에 서 있기만 해도 푸른 물이 들어온다/ 그 바다 빛/ 그런 사랑,/ 출렁 출렁인다 끝도 없이.
'에리직톤의 초상'의 작가 이승우는 1959년 관산읍 신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정남진 표석 옆에 이승우의 문학지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남진 표석이 세워져 있는 모래미 앞 돌섬인 ‘샘섬’은 그의 소설 '샘섬'의 배경지라고 한다. 작은 섬마을에서 시집, 장가를 가고 싶은 마을 젊은이들이 달뜬 마음에 가슴앓이를 했다고 해서 가슴앓이 섬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방파제 뒤에 작은 돌섬인 샘섬이 보인다. 샘섬은 이승우의 소설 '샘섬'에서 가슴앓이 섬으로 묘사된다. 샘섬 뒤쪽에 고흥반도의 비봉산과 그 오른쪽에 소록대교와 소록도가 분명히 보인다.
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전망뎈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삼산지구 간척개발사업은 2002년 8월~2009년 12월 동안의 공사를 거쳐 완공되었다고 한다. 삼산방조제는 정남진방조제라고도 이르는 듯. 바다 뒤쪽에는 생일도의 백운산이 흐릿하게 가늠된다.
샘섬 오른쪽 뒤에 고흥반도의 비봉산, 소록대교와 거금대교가 분명히 보인다. 작은 돌섬인 샘섬에 얽힌 사연이 아프다.
해안선 한 구비에서 바다사내들이 장작불에 장어를 구워 소주잔을 돌리고 있었다. 그네들의 술잔 너머로 갯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가슴앓이 섬이 출렁거렸다. 한 사내에게 물었다. 왜 가슴앓이 섬이죠?
"물 속 돌들이 얌전해, 튀어나온 구석이 없어,
돌섬인데도 아무 데나 배를 댈 수가 있어. 그랑께 처녀 가슴맹키로 이뻐서 가슴앓이라고 하지. 꼭 그런 것보담, 여기 사람 많이 살 적에는 처녀총각들이 가슴앓이 섬으로 건너가서 많이 놀았어. 바닷가란 데가 툭 터져서 어디 꼼지락거림서 정분 나눌 데가 없거등. 그랑께 저 섬에서 가슴 애린 사랑 이야기가 많이 싹트지 않았것능가, 내 생각으로는 그래서 가슴앓이 아닌가 싶어.”
-이승우의 '샘섬'중에서
조형물 '둥근 바다'는 세 개의 원형판으로 삼면을 형성하고 있다. 각각의 원형면은 '둥근 바다', 둥근 하늘', '둥근 땅'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 바다를 조형물의 제목으로 삼아 '둥근 바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땅의 생물체로 파악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 天地海를 우주 삼라만상으로 표현해 낸 것 같다.
조형물 뒤에는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거대한 인공호수 삼산호와 장흥의 명산 천관산이 자리하고 있다.
정남진의 바다는 둥글다. 바다가 둥글어 바다를 둘러싼 땅이 둥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하늘도 둥글다. 정남진 바다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기에 아버지의 바다라기보다는 어머니의 바다다. 모든 만물을 품어 기르는 생명력의 바다, 지친 영혼들을 위무하는 평안의 바다, 세상의 갈등들을 치유하는 관용의 바다다. 하여 소설가 이청준은 해질녘 이 바다에 들면 나를 에워싼 땅과 섬들이 나누는 정다운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린다고 하였다.
이 작품은 둥근 바다, 둥근 땅, 둥근 하늘을 의미하는 세 개의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선의 가장 완성된 형태는 원이다. 원에는 하늘, 태양, 우주, 관용, 완전, 회귀, 빙 둘러서 처음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등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작가 : 이송(二松) 김선두(金善斗, 1958~), 장흥 관산출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조교수
규격 : 500cmx5cmx3
재료 : 스텐레스 스틸
제작연도 : 2005년
둥근 하늘의 중심 이미지는 주작이다. 주작은 남쪽을 상징하는 신화 속의 새로 장흥이 선비들이 사는 상서로운 곳임을 상징한다. 여백엔 작은 풀꽃들을 하늘의 별처럼 뿌려 놓았다. 별은 곧 이 땅과 사람들이 지닌 꿈이다.(설명안내판)
둥근 땅의 이미지는 장천재의 태고송이다. 태고송은 장흥땅이 뛰어난 풍광과 올곧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의향임을, 태고송 아래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문림예향의 고장임을 각각 상징한다.(설명안내판)
둥근 바다의 중심 이미지는 연꽃형상의 물비늘이다. 소설가 한승원은 "정남진의 바다는 모든 생명을 품어 기르는 천관보살의 넉넉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하였다. 천관보살을 상징하는 연꽃과 풍요로운 바다의 여러 생명들을 담았다.(설명안내판)
제2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