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憑依, 영어 possession)>
불교에서 ‘빙의(憑依)’란 기댈 빙(憑), 의지할 의(依)자로서,
부처님께 기대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두서너 살 먹은 어린애가 엄마 가슴에 포근하게 안겨서 편안하게
잠드는 것 같이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본래 빙의의 의미이다.
모름지기 우리가 진실로 의지할 곳은 부처님밖에 없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지극정성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자식과 같이 생각하신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절대빙의(絶對憑依)라 한다.
절대빙의 할 곳은 본존 석가세존밖에 없다.
우리가 의지하는 강도에 따라 가피(加被)라고 하는 복을 받는다.
부처님께서 보시기에 중생은 기댈 곳을 잃은 어린 아기와 같다.
이와 같이 빙의란 절대적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의지하는 것이
원래 의미인데, 빙의에는 전혀 다른 뜻이 있다.
• 사망해서 육신을 잃은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현상.
• 어떤 강한 힘에 지배돼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다른 힘에 조종돼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현상.
• 예기치 않은 뜻밖의 현상이나 형체(공동묘지나 시체 등)를
목격했을 때 일시에 음습한 기운 즉 음기(陰氣)나 귀기(鬼氣)가 엄습해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등의 이상 현상.
• 자기 몸 안의 정기(精氣)보다 강한 사기(邪氣)나 살기(殺氣)가
충만한 곳에 갔을 때, 순간 정기가 이에 눌려 갑자기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끼는 현상.
• 무속에서 신 내림 현상도 빙의라 한다.
• 육신을 잃은 혼백(영혼)이 고혼이 돼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인연 처를 찾아 우주법계를 떠돌다가 혼백이 머물기에 적당한 장소나
사람을 만나 영체(雲體)를 숨기게 되는데, 그로 인해 영체가 들어간
장소는 흉지(凶地), 흉가(凶家)가 되게 마련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빙의 현상이 일어나면 귀신에 홀린 상태가 돼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몸에 직접 유착되면 유착된 사람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흉포한 성격으로 변하여 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빙의(憑依)란 몸 안에 압도적인 사기(邪氣, 나쁜 기운)가
들어와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빙의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범접하지 못한다.
심약한 사람이 잘 걸린다는 말이다.
빙의란 쉽게 풀이하면 ‘귀신이 들러붙은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귀신 들리는 것, 귀신에 씌움을 당하는 것,
혹은 신내림을 뜻하는데, 다른 혼령(魂靈)이 들어온 것을 말한다.
즉, 빙의는 나의 인격에 다른 인격이 들어와서 자신의 인격은 사라지고
다른 인격으로 대치되는 듯한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기운(영체)들이
공존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영(靈)과 육(肉)이 분리될 때,
그 영체가 흩어지지 않고 일정기간을 유지하게 된다.
그게 들러붙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나 빙의가 돼는 게 아니고 전생이 있어야 가능하고,
아무한테나 붙는 게 아니고 파장이 맞아야 한다.
전체 인구의 30% 정도만 윤회를 통해서 혼령을 가지고,
귀신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극소수뿐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떠도는 영(부유령/浮遊靈)의 종류에는
괴롭히기 위해 온 저급한 악의 영부터,
마음 선한 고급 영까지 다양한데,
업력(業力)에 의해 전생에서부터 따라온 영,
갈 곳 없어 헤매는 영,
조상의 업장으로 인한 영 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떠도는 부유령(浮遊靈)들은 육신을 떠나면 머물 집이 없어지니
다른 사람에게 붙거나 바위나 물건에 붙어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임자 없이 버려진 물건이라 해서 함부로 주워오지 않는다.
혹시 귀신이 붙어 있을 가봐 조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집착이나 한이 있을 경우,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게 된다.
이러한 무속적인 현상 외에 종교에 있어서
광신도들에게 가끔 빙의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기독교 성직자들도 신도들 중에 광신도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북스럽게 여긴다.
빙의 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들이 있다.
1) 눈동자가 힘이 없고 시선에 집중력이 약하다.
2) 음식을 정신없이 먹기도 하고 전혀 안 먹기도 한다.
3) 항상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우며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4) 마음의 변덕이 심하고 까닭 없이 불안초조하고 허무한 생각에 잠긴다.
5) 손과 발이 유난히 차고 어쩌다 열이 날 때도 있다.
6)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도 증상을 발견하기 힘들고,
약물은 써서 치료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7) 악몽을 자주 꾸며 옛날에 겪은 일들이나 죽은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다.
8) 쓸데없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환상이 자주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9) 자존심이 이유 없이 강하고 성격이 난폭해지기도 한다.
10) 윤리의식이 희박해지고 밖으로만 돌아 가정이 파산되기도 한다.
빙의를 경험한 사람은 특정한 때에 평소와 다르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는
빙의현상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자아(自我)인
다중성격적인 증상으로 진단한다.
이는 평소에 자제돼 있던 내재된 다른 인격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한다.
신이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을 타빙의(他憑依)라 하고,
그가 자신의 생각에 골몰해 마음 안에 신을 만들어내는 것을
자빙의(自憑依)라 하거니와,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 모든 빙의는 자빙의인 것이다.”- 김정빈 <경>
현대 의학계에서는 이런 빙의 현상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보고
치료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정신병과는 그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약물로 치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빙의를 물리치지 못하면 멀쩡하던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 십상이라고 한다.
빙의는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무속인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잡귀에 씐 상태를 신이 내린 것으로 착각해
강신굿을 해주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단순히 빙의 환자일 뿐인데 무당으로 만들면 안 된다.
이상과 같이 빙의는 심약하거나 확고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따라서 확고한 믿음,
그리하여 부처님을 향한 긍정적인 빙의가 확실할 때,
사기(邪氣)에 물든 나쁜 빙의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독립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
자신이 판단해서, 자신의 결단을 통해서 인생을 살아야하는데,
만약에 다른 어떤 큰 세력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는 강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빙의에 의한 자유의지 박탈’과 같다.
빙의(憑依)는 ‘믿음과 신뢰’를 의미하는데,
아주 부정적인 믿음과 신뢰이다.
본래 글자의 뜻은 ‘신뢰성’의 의미이지만,
종교계에서 사용하는 빙의는
어떤 영혼이 그 사람의 육체 속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 땅을 점령하듯이 그러하다.
빙의는 로봇처럼 그 육체를 차지하고서, 빙의한 그 인물을 점령해버린다.
얼마나 무서운가? 이것은 협력자도 동반자도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 치하가 바로 빙의 같은 것이다.
반면, 결혼은 빙의와 다르다. 결혼은 서로 동반자가 돼
약속으로 맺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함께 하는 것이다.
빙의는 곧 주종관계를 말하고,
결혼은 서로가 동등권으로서 함께 의지하면서 협력관계를 갖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이것은 빙의가 아니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빙의로서 인간을 다스리려고 했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줄 이유가 없었다.
자유의지로서 하나님을 스스로 믿고 신뢰하면서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라고 ‘자유의지’를 준 것이다.
빙의의 다른 말은 곧 자유의지와 같다.
불교에서는 구병시식(救病施食)이라 하여 이 시식으로 빙의를 치료한다.
이 시식은 과일이나 음식, 지전 등을 차려 놓고
그 빙의의 영가가 흡족하도록 해주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깊은 진리의 말씀인
대승경전이나 조사(祖師)의 법문으로
그 영가의 원한이나 강한 집착을 버리게 하고
또 다라니 등의 위신력으로
그 영가를 바르고 깨끗한 의식을 갖도록 함으로써
다른 사람 몸의 의탁을 떠나서 스스로 자신의 길로 가도록 천도하는 것이다.
이 구병시식은 빙의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정신이 혼란한 정신병과는 다르므로
이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구병시식은 수행이 깊은 사람이 청정한 마음으로
그 빙의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고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사람도 꼭 같은 말을 하더라도 신용 없는 사람의 말과
훌륭한 사람의 말에 대한 설득력이 다르듯이
훌륭한 수행자의 수행력은 그 영가로 하여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이 구병시식을 빙자해 빙의자의 재산을 갈취하거나
많은 비용을 요구해 빙의자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극악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인터넷 공간에서도 버젓이 그러한 극악한 행위로
유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큰스님을 모시고 많은 대중이
참선 수행 정진하는 도량을 찾아 상담한 연후에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만약에 빙의가 된 사람은
그 영가에 대한 미움이나 애착을 버리고
그 영가의 영향을 따르지 말고 자기의 마음 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의 것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오계 등을 지키면서 살생이나 난잡한 음행을 삼가고,
남의 재물 등에 대해 헛된 욕심을 삼가고,
항상 올바른 언행을 하고, 음주를 하지 말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경전을 공부해 그 뜻을 알고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대승경전을 독송한다든지
또는 다라니를 외운다든지, 화두 참선법을 배워서 참선을 행한다든지…
어느 하나라도 꾸준히 열심히 행해야 한다.
세상사의 잣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진실한 수행력만이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빙의에 대해 무조건 증오하거나 떠나보내려는 마음을 거두고
그것을 인정해 주고 또 받아들이면서,
다만 그 빙의에 지배당하지 말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빙의 또한 서로 간에 인연이다.
그러므로 악연이든 순연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인연이 있을 때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잘 맺어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빙의를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이성적 지식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속을 이해하는 데 빙의 개념의 풍부하고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종종 이루어진다.
불교에서는 천도재나 구병시식(救病施食)과 같은 형식으로,
개신교나 천주교 계통에서도 퇴마의식(退魔儀式)과 같은 형식으로
빙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빙의나 빙의치료와 같은 것은
다소 이단적인 또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면치료적 장면에서 빙의현상과 같은 것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최면은 인간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세계, 특히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그리고 잠재능력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