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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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치와 협동조합운동
최혁진(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정책위원장)
1) 대중은 기회주의적이다. 고로 대중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2) 대중은 개인적이다. 고로 대중은 협동적이며 권력적이다.
3) 대중은 직접적 관계를 통해 진보한다.
- 얼굴을 마주대는 관계, 얼굴이 보이는 지역만들기
4) 직접적 관계의 장은 ‘개별자의 무리로서 대중’을 ‘개체적 열망과 요구의 집단적 표출’로 전환시켜낸다.
- 한사람의 꿈은 몽상에 머물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구체적 실천으로 표현된다.
5) 대중운동은 ‘개체적 열망과 요구를 창조하고 생성하는 운동’이며 이러한 ‘열망과 요구’를 집단적 의지로 전환시켜내는 운동이다. 고로 대중운동은 대중추수주의를 뛰어 넘는다.
6) ‘개체적 열망과 요구의 집단적 표출’은 지역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기초하며,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며 생존지향적이다. 고로 비관료적 민주집중제로서 참가형 시스템을 실현한다.
7) 따라서 삶의 정치, 직접적 민주주의와 능동적이고 혁명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의 과제는 다종다양한 ‘개체적 열망과 요구의 집단적 표출들’, 수많은 코뮤니티와 결사체들을 관통하는 보편적 의제를 생성하고 권력화해내는 것이다.
2. 지역을 다시 바라보기
1) ‘지역’ 또는 ‘마을’은 행정구역이 아니다. 지역을 행정구역으로 사고하는 한 우리는 낡은 지역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지역은 ‘직접적 관계의 가능공간’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3) 지역과 마을을 삶의 그물망이 가능한 거리, 개체적 열망과 요구가 생성가능한 공통의 공간, 비자본적 관계의 재구성이 가능한 공간, 민주적 참가와 관리에 기초한 자치공간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 일본의료생협은 진료소를 중심으로 반경 500m 거리 이내를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이 지역 내에 조합원의 밀도를 높이는 데서 운동을 시작한다.
4) 지역의 재구성은 현존하는 삶의 지배양식(자본적 지배양식, 비자본적 지배양식=혈연,지연,학연,종교,관변조직 등)의 균열을 통해 생성된다.
5) 현존하는 삶의 지배양식들은 ‘새로운 욕망의 집단적 표출’즉 새로운 대중운동 의 확산을 통해 붕괴되기 시작된다.
- 불가능한 것, 아니 불가능하다고 강요되었던 것들을 요구하라. 혁명은 직접적 욕망의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외현이 되어야 한다.
3. 협동조합운동이란 무엇인가.
- 보론 1, 보론 2 참고
1) 협동조합은 지역 즉 대중의 삶과 기초적 생활에 기반한 대중운동이다.
2) 진보적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지배적 관계를 전복시키는 직적접 관계의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직접적 관계의 장이 넓어질수록 대중의 열망과 요구는 확장되며, 이는 집단적 욕망이 되어 반드시 정치화된다. 때문에 지배집단은 반드시 협동조합운동을 관리하고자 하는 필연적 욕망을 드러낸다.
3) 진보적 협동조합운동은 개별협동조합의 이해를 뛰어넘어 삶 전체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나아가고 연대해야 한다.
4. 지역정치와 협동조합운동(= 정치운동과 사회운동)
1) 모든 정치권력은 대중의 집단적 욕망과 결합할 때 유의미한 권능이 된다.
2) 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모든 진보적 사회운동은 ‘개체적 열망과 요구의 집단적, 비자본적, 민주적 표현’으로서 반드시 정치사회적, 제도적 변화를 욕망하며, 이를 통해 확대 강화된다.
3) 고로 협동조합운동(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구체적 상호작용을 통해 일체화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운동이 일곱색깔 무지개라면 정치운동은 그 모든 색깔을 관통하는 ‘빛’이 되어야 한다.
4)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정치는 지방정치로 이해되어선 안된다. 지역정치는 구체적 삶 즉 개체적 열망과 요구의 집단적 표출과 결합된 ‘욕망으로서의 정치’이다. 대중은 ‘직접적 관계’ 속에서 ‘결집된 힘의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면서 진보’하며 새로운 정치의 주체가 된다. 삶의 욕망을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능력, 그리고 이러한 역량을 정치적 권능으로 전환시켜낼 수 있는 대중들만이 직접 민주주주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주의]의 정치적 주체가 될 것이다.
<보론 1- 생활협동조합운동이란 무엇인가>
1. 생협운동은 관계의 운동입니다.
자본주의의는 우리의 삶터 전체를 상품적 관계로 전환시키면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보다 가혹하고 공격적으로 관계의 상품화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상품화의 논리는 의료, 교육 심지어 복지의 영역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은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복지정책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의료, 교육, 복지의 상품화는 사회적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데 기여합니다. 빈곤한 자는 건강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며, 교육의 차별은 빈곤을 재생산합니다.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은 게으르기 때문에 빈곤하다는 논리를 확산시키면서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 논리적 모순과 허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거짓임을 발견합니다. 기초적 생존권과 사회보장마저 상실한 자가 무슨 수로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한다는 것입니까. 두 번째로 신자유주의는 왜 빈곤이 발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이유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신자유주의 자체가 빈곤을 생산해내면서 빈곤은 개인적 문제로 생겨나는 것처럼 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기초적 사회보장시스템까지 상품화시키면서 민중의 기본적인 삶까지도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전환시켜내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이상 이웃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사회에 연쇄살인, 아동성폭력 등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공권력이 붕괴되었다는 등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면서 CCTV를 곳곳에 세워야 하느니 경찰력을 강화해야 한다느니 말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본질을 외면한 임기응변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현재의 상황이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상품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힘있는 자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로의 전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신분상승이 어려운 사회에서 억압된 욕망과 사회적 불만은 또다른 약자와 소수자에게 무차별적 폭력으로 재생산됩니다. 독일이 나찌 체제 하에서 유태인 학살에 몰두하게 된 것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부동산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은 부동산입니다. 집없는 자들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이미 국가 자체가 국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이 더구나 명분없는 이라크 파병이 국익의 논리로 정당화되는 순간 우리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할 모든 명분과 도덕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윤을 위해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마당에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을 무슨 수로 막아내겠습니까.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생협운동이라는 것은 관계의 운동이다’ 즉 ‘일반화된 상품적 관계를 인격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구매생협들이 농민 생산자들과 연대하는 것도 이윤과 효율이 아닌 인격적 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조하려는 것입니다. 지역의 생협들은 지난 20여년간 농민들과 지속적인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힘과 지혜를 모아 유기농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유기농업이라는 것은 자연생태계를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다시말하면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체의 시각을 거부하는 사회운동입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공생적 관계임을 깨닫고 새로운 관계를 재창조하는 운동인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상품적 관계가 아닌 인격적 관계로 전환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생태계와도 상품적 관계가 아닌 공생적 관계로 전환해 나가자는 것이 지역생협운동의 목표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 기업이 취급하는 유기농산물과 생협이 추구하는 유기농업운동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시장성이 있다는 이유로 유기농산물을 취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농민의 생존권이나 농민이 사는 마을의 생태계의 순환성 등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속적인 관계보다는 가격적 우위를 찾아서 배회합니다. 가격적 우위에 있다면 수입유기농산물로 언제든 전환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농민은 거래대상자이고, 유기농업은 수익을 위한 시기적 전략의 하나일 뿐입니다.
생협운동은 농민의 생존과 농민이 사는 마을의 생태적 보존, 시민의 건강을 동시에 중심에 두고 사고합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공생적 관계를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가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수익은 이러한 관계를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으로써 의미를 지닙니다. 유기농산물의 시장성에 기초하여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집중합니다.
최근 많은 생협들이 조합원이 살고 있는 마을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데 주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상품사회에서 이웃이 사라졌고, 서로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적대적 관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생협은 조합원을 중심으로 서로 돌보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보살피는 관계를 새롭게 창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관계를 상품적 관계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생활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복지서비스 협동조합들은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상품사회에서 복지는 사회적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사회적 배제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처럼 되어 버렸는데 복지서비스 협동조합들은 인권이라는 문제로 복지에 접근합니다. 빈곤층, 고령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당당하게 함께 살아가는 한 인격적 존재임을 재확인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지의 시혜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복지의 주체입니다. 생산능력이 없는 자로서 시설에 수용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마을 안에서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생협운동이 끊임없이 상품사회에 저항하고 새로운 인격적 관계를 창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진보하기 때문입니다. 산지 직거래와 농사체험을 통해 기존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농민’이 하나의 구체적인 인격으로서 나와 직접적 관계를 맺은 이웃으로 전환됩니다. 의료생협 안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새로운 인격적 관계로 전환됩니다. 복지생협 안에서 노인과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복지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이웃이요, 동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힘입니다. 생협운동이 이러한 자기책임을 소흘히 하고 경제사업을 통한 이윤추구에 집중한다면 결국 중산층 소비자운동이나 진부한 조합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2. 생협운동은 요구를 만들어내고 요구를 결집시켜내는 운동입니다.
일본의 생활클럽생협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협동운동의 하나입니다. 생활클럽생협은 30여년전 일본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비소우유 사건을 접하면서 아이들에게 안전한 우유를 먹이고 싶다는 이유로 모인 200여명의 주부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 조직은 현재 일본전역에서 모두 27만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하는 사회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우유를 공동구매하는 운동에서 시작한 것이 진보적 여성의원을 100여명이나 보유한 풀뿌리 운동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생협운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생협운동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그리고 그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힘을 모으고 결집해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억누르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세탁로봇, 교육로봇, 소비로봇의 삶을 살고 있었다고 반성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하지 못하고 그저 남이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어지는대로 소비하던 삶의 양식을 거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급기야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 기업이 수익을 목적으로 생산한 것을 묵묵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안전한 것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운동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산자와 연대하여 안전한 우유를 생산하고, 그러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하여 동일한 요구를 지닌 여성들을 결집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커피가 남미의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을 알고서 이들은 이웃들에게 우리가 어떤 커피를 요구해야 하는지 알려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힘을 결집하여 남미의 농민들과 민중교역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역의 프로정치인들이 부패와 무분별한 개발에 앞장서는 것을 보고, 시민의 생활문제를 의제화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변에 알려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를 하나로 모아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아마추어 여성정치인들을 대리인으로 당선시켜 냈습니다.
제가 생협운동이 요구를 만들어내는 운동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상품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생협운동을 한다고 모여 있지만 깊은 성찰이 없으면 그저 상품화된 욕구를 공동으로 표출하는데에 머물고 맙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익집단화 또는 조합주의라고 말합니다. 한편으로 권위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는데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구나가 보편타당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돈많은 사람만이 좋은 의료를 받는 것에 이의를 표하지 못합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에 대해 억울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한 불이익이 올까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자포자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생협운동은 우리가 무엇을 요구할지 그리고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항상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성찰의 밑바탕은 앞서 말씀드린 현대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진단입니다. 그러한 문제인식에 기초하여 요구를 만들어내고 한사람 한사람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민주적인 의사수렴의 과정 즉 동의를 결집시키는 과정을 거쳐나가면서 성장해가는 것이 생협운동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상품사회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발견하고 요구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요구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나가는 것 다시말해 정당하지만 포기하고 있던 요구들이 혼자서는 어렵지만 기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여럿이 모이면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해 가는 것이 바로 생협운동인 것입니다. 이러한 힘들이 축적되어 가고 확장되어 갈 때 우리는 자본주의 너머를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3. 생협운동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전 세계는 민주주의가 근간에서부터 붕괴될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시겠지만 우리가 민주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은 4년에 한번, 그것도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약 5분 정도의 시간뿐입니다. 나머지 시간에 우리는 제멋대로 진행되는 정치행태를 바라보면서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것 외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한미 FTA가 체결되면 그나마의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마저 무기력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정치적 판단에 기초하여 선출한 정치권력이 시민의 요구가 아닌 국제적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장집 교수가 한미 FTA 문제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생협운동에 참여하는 우리들은 특히 민주주의의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생협운동은 두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자 시도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생협운동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철저히 배제된 노동자, 빈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장으로써의 의미를 지니고 탄생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정치적 영역에서의 민주주의의 원리를 경제의 영역에까지 확산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생협운동입니다. 생협운동의 기본원칙에 ‘자율가입과 자율탈퇴’, ‘공개적이고 투명한 운영’, ‘민주적인 조직관리’ 등이 포함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생협운동이 초기부터 목표로 했던 것은 ‘모두가 모두를 지배하고 다같이 참여하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식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대중독재론’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재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인데 타당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박정희, 전두환 씨도 절차적 민주주의인 선거를 통해 권력적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거기에 기초하여 독재를 하였습니다. 실패한 국가사회주의도 형식적 민주주의에 기반하였습니다. 다양하게 분출하는 대중의 혁명적 에너지를 오직 하나의 당으로 집중하려던 시도는 결국 관료주의의 잔재만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적하였던 경제의 민주화도 생협운동의 소중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인 주식회사의 운영원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주식회사는 주식을 많이 보유한 자 다시 말하면 자본투자를 많이 한 자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구조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자본주의는 과두제나 귀족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 것은 대중의 혁명적 기운을 무력화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꿰뚫어보고 생협운동은 경제적 생산과 유통을 사회적 소유의 방식을 통해 민주적 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생협운동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유럽의 대형 소비자협동조합들이 70년대 이후 몰락해간 과정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형소비조합들은 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다국적 기업과 경쟁하기 위하여 규모를 키우고 전문경영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자본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회사 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참여는 배제되었고, 대자본 투자자들에 의해 좌우되면서 민주적 운영의 틀도 훼손되었습니다. 마침내 협동조합의 가장 큰 힘인 조합원들이 외면하였고, 파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유럽 소비조합의 몰락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협동조합의 시대는 끝났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협동조합은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식회사 방식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는 유럽소비협동조합의 몰락이 단지 효율성 때문이 아니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상실되어 조합원으로부터 외면당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소비조합에서 탈퇴한 조합원들은 지역별로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들고 생활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유기농업분야에서, 대안에너지 보급을 위한 사업으로, 복지의 영역에서, 실업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공사업분야에서 협동조합은 새롭게 조직되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사례는 민주적 운영이 조합원의 자발적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과제라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생협운동은 강을 건너는 배와 같습니다. 물론 강 건너 저편이 어떤 모습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이며 여러 가능성으로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그림으로 미래의 상을 그렸던 목적론적 오류에 빠져선 안될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의 쉼없는 실천의 가닥들이 그물망을 형성하듯 그렇게 다가올 것입니다. 생협운동도 지금 우리가 위치한 자본주의라는 강을 끊임없이 거슬러 건너가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인격적 관계를 만들고, 요구를 결집하며, 민주적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너머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잃어버리면 그리고 민주적 소통이 차단된다면 우리는 뱃놀이에 넋이 팔려 나아갈 길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한국의 농협을 비롯하여 많은 협동조합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란 끝없는 혁명의 가능성’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권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언제든 대중적 결집에 의해 전복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이를 두고 우리가 항상 전쟁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패하고 폭압적인 권력의 재탄생에 대하여 스스로의 자립과 자존을 지켜내기 위해서 항상 전쟁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니체는 가장 이상적인 전쟁은 화약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협운동은 바로 화약냄새가 나지 않는 일상적 전쟁터이며, 직접적이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쉼없는 실천인 것입니다.
<보론 2 -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문제의식과 실천>
1.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수단이요, 조합원들이 현실이란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배이다.
-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자신의 삶터를 변화시키며, 협동의 힘을 바탕으로 지배받는 삶을 넘어서서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 협동조합의 목표는 스스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며, 민주적 결집을 통해 조직적인 시민권력을 강화해 나갈 조합원을 성장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단지 이용자를 늘리는 것 즉 협동조합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회원을 늘리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 협동조합의 최종적 목표는 개인적 삶과 지역,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제반 관계(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자연적 관계)를 협동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이는 곧 삶의 총체적 건강성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 삶의 총체적 건강성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은 개별협동조합의 실천만으로 달성되지 못하며, 삶의 전 분야에 걸친 협동적 실천들이 유기적 관계망을 형성할 때 가능해진다.(몬드라곤의 호세마리아 신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권고)
2. 우리는 왜 지역과 민주적 조직운영을 말하는가?
- 자본주의는 시민대중을 개별화시키고 독립된 소립자로 전락시켜 홈쇼핑 채널 앞에 앉은 소비기계처럼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어간다.
- 시민대중은 단지 협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으로 성장하지 않으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의 형성과 민주적 참여, 실천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진보한다.
- 협동조합의 목표가 삶의 총체적 건강성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의 개별적인 욕구가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결집으로 모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민주적 결집이 협동조합조직이 추구하는 철학적이고 의식적인 지도력과 일치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일치 속에서 합의된 규율과 정당한 사회적 권력이 형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협동조합운영의 철저한 민주적 공개와 직접적 참가의 보장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 지역에 주목하는 것은 중앙조직이나 연합조직을 배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의사결정과 직접적 참가의 장이 조합원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적 삶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역은 협동조합의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천의 장이요, 시민권력의 뿌리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기능해야 하며, 연합조직은 개별조직들이 조합원을 위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 시민대중의 역능은 감퇴하며, 조합원은 이용자로 전락하여 수동적 존재가 되며, 조직내부에서는 관료주의가 싹트기 시작한다.
- 인간은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스스로에게 부과한다.(맑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따라서 협동조합의 사업과 조직운영은 개별적 주체인 조합원으로부터 시작되며, 조합원의 일상적 삶터인 지역을 변화시키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 지역은 직접적 관계의 장이다. 직접적 관계의 장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곳이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 관계는 과제해결을 위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의지와 정열을 생성시킨다. 생산자와의 직접적 관계맺음이 없이 조합원에게 연대의식과 실천의 의지가 자생적으로 생성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억지이다. 만일 협동조합이 이러한 관계맺음을 일상적으로 형성시키지 않으면서 역으로 조합원에게 생명살림과 지역살림의 실천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추상적 관념의 강제요, 폭력이다.
-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지역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점포나 의료기관으로부터 반경 500~700미터 정도의 구체적인 지역에서 의식적이고 실천적인 공유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합원의 밀도를 높여내는 것이며, 사업과 운동을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업내용을 시민대중의 직접적 삶의 관계로 전환시켜내는 것이다. 연합사업은 물류의 효율화를 위한 하향적 집행이 되어선 안되며, 지역의 직접적 관계가 확산수렴되고 네트워크 되는 방식으로 성장해가야한다. 또한 조합원이 연합의 정책단위나 단위 협동조합 지도부의 명령하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직접적 정치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결사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자신의 지역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역능을 지닌 조합원과 단위조합이 없는 연합조직은 역사에서 사라질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가로막은 역사적 반동이 되어갈 것이다. 이미 한국사회의 일부 협동조합 조직들은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한 욕구를 개인적 실천과 지역 안에서의 결집된 힘으로 전환하고, 그러한 실천을 타 지역과의 협동을 통해 보다 보편적 의제로 확산시켜내며, 나아가 국제적 연대의 장으로 넓혀낼 수 있을 때 ‘지역을 창조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협동조합운동’은 가능해진다.
3. 우리는 왜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에 주목하는가?
- 어떤 사회도 완전하고 지속적인 경제적 평등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치적 자유에 이를 수 없다.(빈곤한 자는 이동권, 주거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직업선택의 자유, 의식적 진보를 위한 교육권 등 모든 권리로부터 배제된다.)
-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사회의 공적기능을 사유화 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또한 최소한의 신분이동의 가능성조차 차단되고 있으며, 빈곤의 재생산을 통한 계급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정치는 합법적 과두제로 전락하고 있다.
- 협동조합운동은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맞서 자신의 사회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며, 사회적 협동조합 방식의 새로운 경제적 자립운동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시민대중의 조직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 협동조합운동이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신자유주의로 소멸된 사회적 공공성을 새롭게 재창조하려면 지역 내 제반 협동조합들의 의식적 전환과 연대력의 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의 모든 삶은 자본화되어 있기 때문에 개별 협동조합의 실천은 자본주의적 속성에 포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로써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사회의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생산, 소비, 금융, 교육, 문화, 의료, 복지, 사회서비스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어야 하며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합원을 위한 종합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기능은 한사람의 조합원이 협동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기능들이기 때문이다.
4. 우리는 왜 시민참가형 정치를 말하는가?
- 시민의 모든 일상적 삶은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치적 기획이다. 일상의 모든 삶은 자본화되었으며, 자본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본제적 권력화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유기농산물의 상품화, 의료 상품화 문제 등등)
- 제도적 정치는 형식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의 일상적 권력화와 그로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고 시민대중의 삶과 의식을 재통합하고 있다. 천박한 민족주의적 감수성은 이러한 사회적 재통합의 수단이 되고 있다. 복지는 시민대중의 당연한 권리를 정치적 지배를 위한 시혜적 수단으로 활용하여 시민대중의 결집된 저항을 봉쇄하고 있다.
- 협동조합운동은 민주적 조직운영을 바탕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완전한 해소를 위해 시민대중의 결집을 만들어 나가기에 개별적 정치기획을 넘어선 집단화된 정치적 기획이다.
- 협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에 기능하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사이비 민주주의적 제도정치를 근원적으로 전환시켜내지 못한다면, 태생적 조건으로 인한 경제적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 협동조합운동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조직내부의 직접 민주주의 실천의 경험, 그리고 관계성에서 생성되는 자생적 연대의식의 사회적 결집, 역사적으로 축적된 민주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구태의연한 제도정치를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천의 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바로 시민참가형 정치이다.
5. 우리는 왜 국제적 연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 지역적 차원에서 지역의 현실에 기초한 진보적 기획을 생성하지 못하고, 시민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한 협동적 실천의 역량을 축적하지 못하면서 국제주의를 말하는 것은 감상적 낭만주의이다.
- 국제적 연대는 지역적 실천의 연장이다. 자본주의는 세계화되었으며 전세계적인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적 실천도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면서 반드시 국제적으로 유기적 연대의 망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 국제적 연대를 외면하는 지역적 실천은 세계사적 보편성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며, 편협한 애국주의와 감상적 민족주의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따라서 우리는 조합원의 삶에 기초하여 단협은 조합원의 결집과 사회적 실천의 수단이 되며, 연합조직은 단협의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그로써 조합원을 위해 단협이 보다 건강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역량을 국제적 연대로 확산시켜 전 세계적 자본에 대한 다종다양한 저항전선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6. 우리는 왜 생명운동을 말하는가?
- 협동조합운동이 생명운동을 말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의 기본이념이 자유, 평등, 박애의 실천적 완성을 위함이다.
- 협동조합운동은 시민대중의 경제적 자립을 통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고 완전하고 지속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하고자 한다.
- 경제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결집된 시민대중의 힘은 시민참가형 정치를 통해 직접적인 대중민주주의로 확산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대중은 과두제적인 귀족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 생명운동은 협동조합이 이룩한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의 실천적 지평을 바탕으로 사회전체의 공생적 관계로의 전환 즉 박애의 정신에 따른 상호 모심과 살림의 세계 구현으로 확장시켜내는 것이다.
- 이러한 일련의 기획과 실천이 없는 생명운동은 지식인 사회의 낭만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