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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 목장에서부터 노리 갤러리가 있는 곳까지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날 산책을 하다보면 내가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나지막한 언덕과 숲길을 거닐면 차분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왜 이곳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이명복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노리 갤러리를 찾았을 때엔 바람이 세게 불어 자동차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제주가 바람이 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갤러리 안쪽의 수장고에서 장작 난로를 쬐며 이명복 화가와 그의 아내 김은중 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귤을 까먹으면서 말이다.
이명복 화가는 이십대 중반부터 민중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한참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MBC 방송국에 입사한 그는 그래픽 디자인과 전시기획 분야에서 26년간 일했다. 명예퇴직을 앞둔 2009년, 제주 현대 미술관 기획초대전을 시작으로 세 번의 전시를 연달아 하게 되었고 미술관 주변의 풍광에 반해서 제주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SBS에 근무 중인 아내에게 전화로 제주 정착의 의사를 밝히자 망설임 없는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제주 현대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인 마을이 조성되어 있던 저지마을 근처의 땅을 우연찮게 살 수 있었고 그곳에 갤러리와 작업실 겸 살림집을 지었다. 2010년 1월부터 직접 낫을 들고 수개월 동안 잡초를 골랐다. 같은 해 7월,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간 갤러리는 12월 ‘노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잊혀져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에 열게 된 갤러리는 막상 열고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섯 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이명복이는 화가가 될 거라고 부모님께 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나를 인근의 조각가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게 해주셨지요.”
어린이들의 재능 발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는 몸소 체험했다. 노리 갤러리에서는 매년 5월 초등학생들과 젊은 작가들이 힘을 모아 말을 주제로 전시를 한다. 갤러리라는 낯선 공간을 이웃들과 나누며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 중이다.
“2011년부터 올레길 개발과 저가항공의 등장, 국제학교 설립과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 제주 이민자들의 증가로 제주는 지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점점 이주민들이 많아지는 시점에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의 벽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파괴나 무절제한 개발도 경계해야겠지요.”
갤러리를 운영하다보면 뜻하지 않는 손님들, 서울에서 활동한다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불쑥 갤러리를 찾아온다. 낯을 가리고 내성적이었던 김은중 관장은 갤러리를 운영하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김은중 관장은 제주도에 내려와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갤러리 앞마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명상 댄스(sacret dance)도 즐긴다.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온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주까지 내려와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그래서 나이나 하는 일, 지위에 상관없이 평등한 입장에서 만나게 되지요. 그런 관계는 도시에서 형성될 수 없어요. 전직 장관님이 갤러리에 와도, 이곳에서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일 뿐입니다. 누구든 쉽게 대화가 통해요. 제주를 평등의 땅이라 부르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명복 화가는 재작년 갤러리를 찾은 손님 중, 오스트리아에서 온 큐레이터와 인연이 되어 오스트리아 운터라비니츠에서 열리는 국제 레지던스에도 한국인으로는 처음 초대를 받아 6개월 간 작업을 했다. 유럽에서도 그의 그림은 반향이 커, 앞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전시를 기획하고 각 나라 도시들의 갤러리들과의 연계를 구상 중이다.
지난 30년 동안 전국을 구석구석 훑으며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고 노동자와 농민의 모습,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열망을 담은 작품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쳐왔던 그에게 제주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처음 제주에 내려와 작업을 할 땐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가 붉은 흙이 되고 손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웃 농민의 얼굴이 친숙해지자 화가의 붓은 비로써 자유로워졌다.
그의 그림 중에 산방산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는 작품이 있는데, 그 속에는 4.3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서울의 야경을 딛고 선 말의 모습에서는 작가의 모습을 투영되고 동화적 상상력으로 희망의 불씨를 틔운 팽나무, 작고 단단한 제주의 말과 평화로운 제주의 풍경은 차곡차곡 작가의 화폭에 담겨 대중을 만났다.
“제 그림의 대부분은 제주에서의 일상을 주제로 합니다. 저에겐 일기와 같다고 할까요. 일상의 아름다움에서부터 제주의 아픈 역사, 육지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까지 그림에 담아내곤 합니다.”
지난 5년, 놀아보자는 뜻을 가진 ‘노리’갤러리는 부부의 의지대로 과거와 현재, 육지와 섬, 이주민과 원주민, 노장과 어린 화가들이 어우러진 장이 되었다. 민중 속에서 도시 노동자의 삶을 온전히 겪어온 민중 화가는 전업 작가가 되어 활발히 작업을 하고 있으니, 이 부부에게 이보다 더 평화롭고 평등한 땅이 있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취재를 간 아내는 미술을 공부했다. 오래 전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이명복 화가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는데 이런 인연으로 제주도에서 만난 것을 너무 기뻐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저 똑똑한 아저씨로 보이지만, 아내에게는 만나보고 싶었던 훌륭한 화가인 것이다. 이명복 화가의 말처럼 제주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가 보다. 앞으로 저지리를 지나가다 보면 반드시 들를 곳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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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진
여행을 다니며 소설을 쓴다. 지난 여름 제주에 석달간 머물게 되면서 제주의 매력에 빠졌다. 아내와 반려견 보동이와 함께 올해에는 제주에 정착할 계획이다. 땅은 마련했고, 집은 직접 지을 것이다. 지은 책으로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제12회 한겨레 문학상)', '하트브레이크 호텔','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파라다이스의 가격','청춘 동남아' 등이 있다.
http://3nightsonly.com
http://facebook.com/bookwanderer
▷사진/ 강선제
※ 이 글은 제주특별자치도와 다음카카오 협력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토리텔링형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사업의 하나로 다음카카오의 모바일플랫폼 '다음 스토리볼'(storyball.daum.net/story/324)과 포털 다음(http://storyball.daum.net/story/32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반가울 우리 화가님이시넹
나오미님과 잘 아시나봐요? ^^
@블루오션 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