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회면 대책위 집행위원장 박근실
제주송전선로반대 임회면대책위 박근실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올해 50줄에 들어선 박씨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십일시에서 슈퍼와 낚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선대부터 대대로 십일시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자식들이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는다면 그 녀석들도 십일시를 고향으로 삼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물론 후대에게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집행위원장을 맡은 계기는?
답: 개발독재 시절의 용역 깡패처럼 몰아붙이는 한전의 행태를 그냥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점잖게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주민들의 주장과 요구를 단 한 가지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약속한 사안들에 대해서 돌아서면 없던 일로 해버리는 사기꾼들입니다. 돈을 뿌리고 사람들을 매수해서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는 것은 그들의 장끼입니다. 전자파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자파가 위험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는데도 한전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안전대책과 저감방안을 세워 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은 계속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전은 불법공사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고소해 생업까지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십일시 사람이 아니죠. 저 또한 경과지에 사는 주민이기도 하지만, 고향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보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살아야 할 마을이고 자식들도 살아가야 할 보배섬이기에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 집, 내 농토, 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전진하겠습니다.
문: 대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해야 하고 법적인 책임까지 감수해야 하는데.
답: 솔직히 공룡 같은 한전과 싸우는 일은 달걀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법공사, 사기공사를 보고 양심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한전이 한전식 법으로 우리의 몸을 묶어놓겠다고 하면 우리도 우리식 법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싸우다 구속될 수도 있고 벌금을 물 수도 있겠죠. 그런 건 무섭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장과 요구에 정당성이 있다면, 민심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면 그들만의 ‘한전법’은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지금 민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문: 바다와 육지에서 상당 부분 공사가 진행돼 경과지 변경이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데.
답: 저는 이 사업 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과지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저케이블 포설 작업이 끝났다 하더라도 지중화 구간이 완료되지 않으면 완공할 수 없습니다. 현재 지중화는 시작에 불과하고 해저케이블 포설 자체도 기술력의 한계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한전 관계자에 의하면 하루 임대료가 1억이 넘는다는 포설선이 공사가 어려워 자국으로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한전에서는 부랴부랴 중국에서 포설선을 구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하네요. 수중 전문가들에 따르면 포설선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조류가 엄청나게 빠른 진도구간에서는 공사할 방법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합니다. 진도보다 상대적으로 조류가 약한 제주구간에서 케이블이 끊어지고 잠수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만 보더라도 결과가 뻔합니다. 더군다나 공사를 위해 대형 석재들을 바다에 투하한다고 하는데 조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어장과 생태계에 상당한 피해가 우려됩니다. 한전에서는 해저케이블 공정률을 43%로, 지중송전선로 건설실적을 33%로 주장하고 있으나 모두 거짓말입니다.
문: 지금 십일시를 비롯한 임회면 주민들의 참여 분위기는?
답: 현재 주민들은 민・형사상으로 고소당한 상태입니다. 한전은 주민들을 겁주기 위해 경찰과 검찰을 동원하려 했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주민들은 분열되지 않고 더욱 더 단결되어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7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던 군 대책위와 달리 임회면 대책위는 경과지를 중심으로 주민들 스스로가 투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회면 대책위 출범 초기에는 조직화가 안 돼 집회를 준비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십일시청년회가 큰 역할을 했고, 지금은 집행부가 탄탄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투쟁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습니다.
문: 고소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답: 지난 2월 9일 민사소송 건으로 해남법정에서 심리가 있었다. 한전 하청업체인 한백이 저와 18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공사방해금지가처분과 1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원래 그날 결심을 하기로 했지만 판사는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결심을 3월 9일로 연기했다. 한전 쪽에서는 결심이 나오게 되면 곧바로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었는데 연기되자 무척 실망했을 것이다. 지금 예상으로는 3월 9일에도 결심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건의 특성상 많은 증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민 28명이 형사고소당한 건은 이번 주 내로 경찰조사에 응할 예정이다.
문: 향우들의 관심은 어떤가?
답: 지역 소식을 접한 향우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마련될 것입니다. 향우들 모임에 투쟁 소식지도 보내고 모임도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주민들이 한전에 고소를 당한 이후, 석중 총동문회에서도 응원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각 지역 향우 모임에서도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모임 때 자료를 돌려보고 공동 대응 방법을 찾겠다고 합니다. 향우들이 진도를 떠나있기는 하지만 마음까지 떠난 것은 아닙니다. 임회면 소식을 전할 때마다 당장이라도 달려와서 도와주고 싶다더군요.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떠난 분들이나 남아있는 분들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문: 한전이 다시 공사를 시작하면?
답: 당연히 막아낼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한전에 요구하는 것은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초고압 송전선로가 집 앞으로 지나가면 건강 피해는 물론 재산 피해도 발생하게 됩니다. 어느 누가 피해가 예상되는 송전선로 주변에서 농사를 짓고 건물을 짓겠습니까? 살던 사람도 이사를 가야 할 판인데요. 경과지 주민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막아낼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경과지가 아니더라도 초고압 송전선로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도는 더 이상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로 먹고 살 수 없게 됩니다. 경과지 마을에 암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진도는 공포스런 섬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문: 경과지 선정부터 의혹을 사고 있다.
답: 한 마디로 사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기공사’를 공익적인 사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전기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고, 진도에서 쓰는 전기는 해남을 거쳐 오기 때문에 진도에서 제주로 전기를 보내는 일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해저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는 해남(넘버1)에서 갈 수 있는데도 경과지가 진도로 선정된 내막에는 한전과 업체・공무원들의 결탁과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진도에서 제주로 가는 송전선로(넘버2)가 연결되면 제주도 전력 예비율이 50%를 넘어선다고 합니다. 육지의 5배나 되는 예비율입니다. 게다가 넘버3까지 계획돼 있습니다. 예비율 100%를 달성하려는 걸까요? 공익적인 사업이 아니라 국고낭비입니다. 한전은 전기를, LS전선은 전선을 팔 수 있고, 한백과 같은 건설업체는 하청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도군은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한전은 불법공사로 공유수면점사용 허가조건과 도로점용(굴착) 허가조건을 위반하면서도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허가취소권을 가진 진도군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문: 한전의 불법에 대해 진도군이 행정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데.
답: 진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약 200곳 이상이 한전과 크고 작은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밀양시와 기장군은 시장 군수가 전면에 나서서 주민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전은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치단체장이 행정적으로 공사를 막아주면 한전이 막무가내로 공사를 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진도에서 한전은 공사를 하고 있고, 군수는 방관하고 있습니다. 대책위와 주민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군수의 직무유기이고 군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군수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문: 밀양은 주민들과 업체,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제도개선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찾고 있는데.
답: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전 쪽에 먼저 고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법공사에 항의하는 주민들을 민형사 고소해 놓고 대화하자는 게 말이 됩니까? 한전은 고소 취하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송전선로 문제를 주민들과 협의해야 합니다. 주민들과 한전, 국회의원, 군수, 군의원 등이 모여서 원탁회의를 하면 해결책도 나올 것입니다. 한전이 정말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대화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그게 한전을 위한 길입니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공사가 지연돼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지금 한전은 주민들의 마음에 피고름이 나도록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당신들은 가해자며 날강도와 같습니다. 피해의식이 쌓이게 되면 폭발하고 맙니다.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한전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고소를 취하하십시오! 그 다음 대화의 장으로 나오십시오!
문: 앞으로 투쟁 계획은?
답: 2월 24일 진도군민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한전과 진도군을 대상으로 하는 법적 투쟁도 구체화할 예정입니다. 불법 시공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초에 불과합니다. 한전의 전력수급계획과 송전선로 사업 전체에 대한 대국민 여론전을 시작할 것입니다. 중앙방송과 언론에서도 이 사업의 허구성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고, 조만간 보도될 예정입니다. 또한 악법인 전원개발촉진법이 하루빨리 개정될 수 있도록 전국 대책위와 연대할 예정입니다. 개정이 늦어지면 폐기 운동을 시작하면 됩니다. 한 기업이 사익을 위해 주민들의 삶터를 강제로 빼앗고 있는데 그게 합법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2011년입니다. 악법이라면 폐기시켜야겠죠.
문: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답: 이제는 군민 모두가 나서 주셔야 합니다. 경과지 주민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마을 이장님들을 중심으로 대책위에 다시 참여해 주시고 궐기대회에도 꼭 나와 주십시오. 진도군청에 항의 전화도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전화 한 통화가 진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도 관내 건설업체 관계자들께도 부탁드립니다. 한전이 벌이는 송전선로 관련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 형제자매, 선후배들이 목숨을 걸고 한전과 싸우고 있습니다. 한전은 공사를 끝내고 떠나면 그뿐이지만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할 이웃입니다. 주민들이 서로 적이 되어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저들이 안전과 피해 대책을 세우고 공사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