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테라와다 상가의 비구가 되다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한지 열흘째. 오늘은 아마도 내 일생에서 아주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테라와다 교단에서 비구계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테라와다 불교의 수행을 체험하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짧은 기간이지만 출가하여 정식으로 비구가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출가의 결단을 내렸다.
이 달 말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환계(還戒)를 하고 다시 재가자로 돌아가는 단기출가이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미얀마의 테라와다 교단에서 공식적인 수계의식 절차를 거쳐 비구가 되는 것이니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특히 이곳에 오기 전 당진의 내과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심장에 이상이 발견돼 큰 병원으로 급히 가보라는 의뢰서를 받고는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해놓은 것도 나의 출가 결심에 영향을 주었다.
아, 출가라! 일찍 불연을 맺은 불자라면 젊었을 때 출가를 한 번쯤 생각해본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학생 시절에 출가의 뜻을 조심스레 어머님에게 털어놓았다가 혼쭐이 난 기억이 있다. 사실은 비장한 결심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니고, 불교를 처음 공부할 때여서 불교가 참 좋아 그런 의견을 드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어이없다는 표정에 자라 목 감추듯 출가의사를 접었으니,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 미얀마에 와서 막상 삭발하고 계를 받아 정식으로 비구가 되는 날이 밝아오니 그 시절 그 기억이 떠오른다.
출가 시간이 다가오면서, 솔직히 걱정도 된다. 삭발에 대한 부담도 조금은 남아 있고, 가사를 어떻게 입을 것이며, 또 성스러운 가사를 제대로 잘 관리할 지가 우선 제일 근심거리다. 특히 미얀마 사람들의 비구에 대한, 또 가사에 대한 놀라운 공경심을 생각하면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러나 그런 모든 부담들을 극복하고 나는 출가 결심을 굳혔다.
이제 비구가 되면 재자수행자들과는 공양을 하는 자리가 구분된다. 적잖이 어색할 것이다. 거기에다 동네로 탁발을 나가 발우에 공양을 받는데, 아무래도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다.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미얀마 불자들에게 밥을 받아온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나는 굶어도 스님들에게는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지극한 신심을 가진 이들의 기대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눌려 올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담마마마까 수행센터에서 매일 오전 10시 30분에 먹었던 밥은 비구들에게 이 동네사람들이 올린 시주였다. 쌀 한 톨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값진 의미가 깃들어 있는지 출가를 결심하고 나니 피부로 깨닫게 된다.
마하시 센타를 비롯하여 미얀마에 있는 무수한 수행처에서 지켜야 하는 계는 보통 8계이다. 기본 5계에 오후 불식, 가무 등의 금지, 높은 의자나 화려한 침상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 3가지가 포함된다. 그런데 이곳 담마마마까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자비계’가 추가되어 있어 모두 9계를 받아 지닌다. 그래서인지 담마마마까에서의 수행생활에는 어떤 의식이나 행사에도 자비관이 빠지지 않는다.
테라와다 비구가 되기 위해 출가하던날 삭발 장면.
오전 4시, 새벽정진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이제 몇 시간 후에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친 비구가 된다고 생각하니, 법당 가는 길이 오늘따라 새롭다. 야자나무, 망고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이 정겹다. 향하는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사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야도의 말씀이 스치는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법당으로 들어가 평소보다 더 지극한 마음으로 3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모기 망을 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평좌 자세를 하고 앉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망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릴 적 이야기, 아내와 결혼했던 순간,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즐거움을 주었던 순간들. 그리고 내가 병이 들어 누워있는 장면과 어느 날 죽음을 맞아 상가에서 빈소를 지키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까지. 지난 일과 아직 오지 않은 일 등, 온갖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때마다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서 다시 일어남 사라짐의 호흡으로 돌아가 보지만, 이상스러울 정도로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무래도 출가라는, 짧지만 비구의 삶을 살게 된다는, 내 생애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 주는 무게가 나의 의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 죽 공양을 마치고, 산책길에 나섰다. 오가며 만나는 한국인 수행자들이 오늘 비구가 되는 것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보낸다. 그렇다. 출가는 당연히 축하받을만한 일은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착잡할까. ‘오른 발, 왼 발’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발바닥에 마음을 두고 천천히 나의 꾸띠로 향했다. 잠시 후 있을 수계의식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므로.
드디어 수계식이 시작되는 오전 8시. 계를 받기 전에 먼저 삭발식을 거행해야 한다. 미얀마 비구인 난다완다 등 두 분의 비구가 삭발의식을 집행했다. 오늘 비구계를 받는 한국인 수행자 5명인데, 삭발을 하는 데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연장자부터 삭발식을 시작해 나는 4번째로 삭발을 했다. 머리에 물을 묻히고 면도용 거품을 충분히 바른 후 의자에 앉아 있으니, 난다완다 스님이 면도칼을 들고 다가선다.
삭발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일단 마감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재탄생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삭발을 하는 동안 사사로운 인연들과의 차단이 시작되는 것이니, 참으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삭발이다.
삭발을 하는 동안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으나 눈두덩이 더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머리는 정수리부터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난다완다 스님의 삭발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사각사각~ 정수리의 머리가 이마를 타고 땅으로 툭~ 떨어졌다. 아, 이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오, 부처님! 저 이제 막 무명초(無明草)를 떨어내고 있으니 부디 반야를 보게 하소서. 반드시 반야를 얻어 반야바라밀을 완성하게 하소서. 저 언덕에 오르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저의 의지가 흩어지지 않게 가피로 이끌어주소서.’
꼭 그리하겠다는 서원 대신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또 부처님께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명초가 한 줌 한 줌 떨어져 나가는 이 순간만큼은 왠지 부처님께 매달려 간청을 드리고 싶다.
불과 몇 분 만에 나의 무명초는 다 제거되었다. 무명초가 제거되었으니 밝은 지혜만 충만했으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오늘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나머지 20여 일의 수행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꾸띠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았다. 삭발한 모습이 생경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머리가 있던 곳과 얼굴의 색깔이 다르다. 얼굴은 그동안 햇볕에 그을렸으니 상대적으로 검다. 그런데 어쩐지 이 검음이 내겐 속진(俗塵)의 흔적으로 다가온다. 저 눌어붙은 속진의 때! 삭발을 해보니 그동안 속세에서 알게 모르게 지어온 탁함의 실상을 확실히 알겠다.
집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출가 결심을 완전히 굳힌 것은 아니었다. 기왕에 수행을 하러 왔으니, 단기출가를 해서 제대로 수행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최종 결정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 담마마마까 선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출가를 최종 결심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부처님 당시의 불교전통, 수행전통이 온전히 살아 있는 마지막 보루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비구계를 받는 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이고, 내 개인사에서 큰 사건인가. 또한 수행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이고, 특히 출가의 공덕이란 쉽게 만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받는 숭고한 일이 아닌가.
비구계를 받고 가사와 발우를 수한 모습. 겉모습은 그럴듯한 비구의 모습이다.
삭발과 샤워를 마치고 나를 포함한 5명의 한국인 출가자는 사야도 실로 인도되었다. 비구계에 앞서 사미계를 받기 위해서다. 에인다까 사야도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는 앞으로 비구생활을 하며 사용해야 할 발우와 가사 다섯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앞으로 다가가 오늘의 전계사이기도 한 사야도께 삼배를 올렸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출가의 의미와 공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비구계에 앞서 10계를 포함해 사미 105계를 먼저 설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 재가 수행자에서 사미, 다시 비구가 되는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계를 잘 지키겠습니다.
-다른 이의 물건 훔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일체 음행 범하지 않는 계를 잘 지키겠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이나 술 마시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정오 이후(익일 새벽 5시까지) 음식 먹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치장하지 않으며 불법수행과 반대되는 것은 구경도 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높은 의자를 사용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화려한 침상을 사용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금이나 은 등 귀중품을 소유하지 않는 행을 잘 지키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미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10계는 기본 5계에 오후불식, 가무와 치장 금지, 높은 의자 사용 금지, 감촉이 좋거나 화려한 침상 사용 금지, 그리고 금, 은 등 귀중품 소유 금지 등이다. 맨 마지막 금과 은 등 귀중품을 소유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런 값진 것을 가지고 있는 이유로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또한 그런 것을 소유하면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자세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사야도께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사미계를 받고 사야도로부터 ‘나렌다’라는 법명을 받았다. 나렌다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온 재가불자 이학종이 사미 나렌다로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미계 수계의식이 마무리되자 가사로 갈아입는 순서가 되었다. 미얀마 비구들이 가사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먼저 치마처럼 말아 허리를 끈으로 조인 하의를 입은 후 입고 있던 옷을 모두 탈의했다. 팬티까지도 다 벗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가사 상의를 걸치는데, 그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가사 입는 법을 잘 익히라며 옷을 입혀주는 데 도무지 헷갈려서 알 수가 없다. 하긴 나는 아직도 한복의 동정 매는법조차 모르는 수준이니 가사 입는 일은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동안 고역이 될 것 같다. 가사를 걸치고 발우까지 받쳐 드니, 겉모습으로는 영락없는 테라와다 상가의 일원이 되었다.
비구계를 받고 처음 공양을 받은 공양물들.
사야도 채에서 사미계 수계를 마친 후 사야도실 옆에 위치한 시마홀(sima hall)로 향했다. 테라와다 상가에서 비구계를 설하는 장소는 시마홀이다. 시마홀은 테라와다 상가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로, 이곳에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비구계 수계의식이나 자자포살과 같은 상가의 매우 중요한 행사 때만 이 공간이 이용된다.
시마홀로 이동하는 길옆으로 여성출가수행자 띨라신들과 남녀 재가수행자들, 한국에서 수행을 위해 온 수행자들이 합장을 한 채 줄지어 서 있다. 비구계를 받기 위해 시마홀로 향하는 다섯 명의 출가자에 대해 축복과 공경을 표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조금 뒤 비구계를 받고 비구가 되어 시마홀에서 나오는 새로운 비구들에게 축하의 공양을 올리기 위해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마홀 계단을 올라 2층 홀에 오르니, 전계사인 담마마마까 에인다까 사야도를 중심으로 20여 분의 비구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모여 불상 앞에 옹종망종 앉아 있다. 비구계 수계의식에서 계사 역할을 담당하는 비구들이다. 아, 드디어 내가 비구가 되는구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온몸의 촉수가 한꺼번에 깨어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30여 분 가까이 비구계 수계의식이 진행되었다. 빨리어와 미얀마어로 진행되는 수계의식인지라, 각각의 의미를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227계나 되는 비구계를 낭독하고 잘 지킬 것을 다짐시키는 의식이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마와 목 등에 진땀이 흘렀다. 힘들기도 하고, 잔뜩 긴장하기도 한 탓에 어질어질한 기운마저 밀려왔다.
비구계를 내리면서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2019년 1월 9일 오전 10시 30분’ 비구로 탄생하는 이 순간을 평생 늘 기억하라고 당부하셨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쇼킹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하니, 마음이 흔들리거나 원력이 흔들릴 때 비구로 탄생하는 성스러운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으라는 당부일 것이다. 비구계 의식이 끝나자, 사야도께서 새로 비구로 탄생한 5명의 한국인 비구들을 위해 축원을 해 주셨다.
“마음이 아름다운 수행자들이여! 지금 여러분은 비구계를 서원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계장엄을 하였습니다. 이 공덕으로 ‘아빠마데나(Appamadena)’를 완성하십시오. 아빠마데나란 부처님 일생의 가르침이며 마지막 유훈입니다. 아빠마데나란 걸을 때에도 잊지 않고 사띠하며, 서있을 때에도 잊지 않고 사띠하며, 앉아있을 때에도 잊지 않고 사띠하며, 누워있을 때에도 잊지 않고 사띠하는 것입니다. 또 볼 때에도, 들을 때에도, 냄새에도, 먹을 때에도, 접촉할 때에도, 생각이 일어날 때에도, 잊지 않고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24시간 이어지는 사띠를 충분하고 완전하게 성취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도와 과를 얻고 열반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비구계 수계의식이 끝났다. 에인다까 사야도를 선두로 새로이 비구로 탄생한 다섯 명이 그 뒤를 따르고, 계사로서 의식을 집전해준 미얀마 비구스님들이 그 뒤를 이어 시마홀 밖으로 줄지어 걸어 나왔다. 나를 포함한 신출내기 ‘5비구’들은 시마홀에서 나눠준 비닐봉지를 들고 공양을 위해 줄지어 선 띨라신과 재가 수행자들에게로 다가갔다. 테라와다 상가의 비구들은 돈을 직접 만질 수 없으므로, 비닐봉투를 나눠준 것이다.
제일 앞에 섰던 사야도께서 제일 먼저 새 비구들의 비닐봉투에 시자를 통해 공양금을 넣어주셨고, 이어서 혜송스님, 그리고 띨라신들, 이어 남녀 수행자들이 차례로 공손히 합장인사를 하면서 비닐봉투에 공양금이나 정성껏 포장한 공양물을 넣어주었다. 비구가 되어 받는 최초의 공양인지라 모든 것이 얼떨떨하고, 당황스럽지만 그 감동과 감동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부담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공양을 올리는 분들의 눈길이 뜨겁게 느껴진다. 이 뜨거움은 이내 울컥 눈시울을 덥힌다.
나중에 헤아려보니 처음 받은 공양물에는 소박한 미얀마 산 공책 두 권, 미얀마 커피 두 봉지, 비스켓 하나, 치즈과자 1봉지, 세탁용 가루비구와 세숫비누 각 1개. 그리고 여름용 흰 셔츠 등이 들어 있었다. 공양금으로는 약 3만 짯(우리 돈으로는 2만8천여 원)이 들어 있었다. 특히 가난한 나라의 여성출가수행자와 수행자들이 정성껏 마련한 공양도 포함되어 있으니, 비록 액수는 많지 않으나 그 의미와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클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공양물, 그리고 합장인사. 공양에 깃든 은혜가 얼마나 지중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받아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무도 장엄하고, 또 그 의미가 엄중하기 비길 데 없는 첫 경험들이 오늘 하루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건기인데도 마치 우기처럼 비가 내린다. 그쳤다가 다시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는데도 빗방울이 떨어진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몸까지 축 쳐지는 느낌이다. 아, 오늘! 결코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날이어서 그런가? 하루가 참 길다. 노곤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머리카락 속에
더운 눈물 속에,
그간의 부끄러움
자만
욕망
앙금
어리석음
말빚과 몸 빚,
함께 떨어지소서.
다 씻겨 내리소서.
이 몸과 마음
결단코
새롭게 지어갈 것이니….
-졸시 ‘축발(逐髮)’(1. 9. 담마마마까에서 비구계를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