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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4 편
예수의 어린시절 후기
. 중도자 위원회
. 1935년
124:0.1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할 기회는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갈릴리에서는 예수가 최소의 교육을 받고서 자신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세상의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점이 있었다. 나사렛의 교육과 훈련은 이방인에 대한 준비, 히브리 신학의 동부, 즉 바빌로니아파의 견지, 그리고 서부, 즉 헬라파 견지의 장단점에 대하여 더 낫고 치우치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서기 3년)
124:1.1 이 해에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남동생들과 아기 여동생과 함께 아이들이 걸리는 하찮은 병을 얼마큼 앓았다.
학교 공부는 계속되었고, 여전히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달에 한 주는 자유로웠다. 아버지와 함께 이웃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나사렛 남쪽 삼촌의 농장에서 머무르고, 막달라에서 고기잡이 하는데 시간을 똑같이 나누어 썼다.
학교에서 심각한 일이 생겼다. 모든 형상ㆍ그림ㆍ펜화가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는 하잔에게 감히 이견을 내밀었다. 예수는 도공의 흙으로 물건을 빚는 것뿐 아니라, 그림 그리기를 좋아 했다. 그런 종류는 무엇이나 유대인의 율법에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예수는 부모를 적당히 무마시켰다.
예수가 목탄으로 교실 바닥에 선생을 그리고 있는 것을 다른 생도에게 들켰다. 이것은 지금까지 받은 비난 가운데 가장 심각하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학교에 불려갔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을 분개하였다. 예수는 씩씩하게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겁 없이 맞섰다. 장로들은 혼란에 빠졌다. 예수는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용감히 자기의 관점을 변호했다. 지극한 자제력을 가지고, 논쟁이 되는 모든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문제에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장로 위원회는 말없이 떠났다.
요셉은 둘째 계명에 관한 랍비의 해석이 우선해야 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날 이후로 예수는 어떤 것의 모습을 빚거나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확신하지 않았고, 아주 좋아하는 그러한 오락을 포기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큰 시련 중의 하나였다.
124:1.6 6월 후반에, 아버지를 따라서 타볼산 꼭대기에 올랐다. 아홉 살 먹은 이 소년에게는 그가 인도ㆍ아프리카ㆍ로마를 제외하고, 온 세계를 정말로 바라본 듯했다.
예수의 둘째 여동생 마르다가 9월 13일 목요일 밤에 태어났다. 요셉은 집에 덧붙인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예수를 위해서 작은 작업 벤치가 만들어졌고, 그는 자신의 연장을 소유했다. 남는 시간에, 그는 이 벤치에서 멍에 만드는 일을 했고, 솜씨가 좋아졌다.
이 해 겨울이 몇십 년 만에 가장 추웠다. 여태 얼음을 본 적이 없었다. 물이 고체ㆍ액체ㆍ증기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물리적 세계와 그 구성에 대하여 소년으로 하여금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자라는 이 소년 속에 들어 있는 성격자는 방대한 한 우주에 두루 있는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창조하고 조직한 분이었다.
나사렛의 평균 기온은 화씨로 약 50도 (18도) 였다. 1월이 가장 추운 달이고, 7월과 8월은 화씨 75 (24도) 도에서 90도 (32.2도) 까지 변하곤 했다. 산에서부터 요단강과 사해(死海)에 이르기까지, 팔래스타인의 기후는 기온 차이가 크다. 따라서 유대인은 세계의 어떤 지방에서 살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보통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쯤까지 불었다. 끔찍하게 뜨거운 바람은 2월과 3월에 온 팔레스타인에 불어오곤 했다. 그 시절에 11월부터 4월까지 비는 시원한 소나기로 내렸지만, 비가 꾸준히 오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에는 단지 두 계절, 여름과 겨울, 즉 건조한 철과 비 오는 철밖에 없었다. 1월에 꽃이 피기 시작해 4월말에는 광대한 꽃밭을 이루었다.
124:1.11 이해 5월, 예수는 삼촌의 농장에서 곡식 거두는 일을 도왔다. 열세 살이 되기 전에, 금속 일을 제외하고 나사렛의 남녀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대장간에서 몇 달 보냈다.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가나ㆍ엔도르ㆍ나인으로 구경 삼아 또는 일 때문에 여러 번 여행했다. 소년일 때에도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다. 이곳은 기원전 4년부터 서기 약 25년까지 갈릴리의 수도였고,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 중의 하나였으며,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겨우 4.8Km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다.
예수는 계속하여 육체와 지능 면에서 자라고 사회적ㆍ영적으로 성장하였다. 집을 떠난 여행은 더 큰 아량을 가지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 때가 되자 부모조차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구전(口傳) 율법”과 항상 견해가 달랐지만, 언제나 집안 풍습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아이들의 느린 지성으로 가끔 실망했다. 열 살이 되기 전에―신체적ㆍ지적ㆍ종교적으로―어른이 될 인품을 장려하는 모임을 만든 일곱 소년의 무리에서 지도자가 되었다.이 소년들 가운데 예수는 많은 새로운 게임과 다양한 신체 운동 방법을 소개하는 데 성공하였다.
2. 열 살 되던 해 (서기 4년)
124:2.1 7월 5일, 그달 첫 안식일에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걷는 동안,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다음날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소년의 말을 들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아무 정보도 소년에게 주지 않았다. 자신의 의식 안에서 커지는 그의 사명에 대하여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는 거의 두 해가 흘렀다.
8월에 예수는 상급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끈질기게 묻는 질문 때문에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갈수록 더 그는 온 나사렛을 얼마큼 시끄럽게 만들었다. 부모는 소란을 일으키는 소년의 질문을 멈추게 하기 싫었고, 오히려 주임 교사는 소년이 보인 호기심과 통찰력과 지식 욕구에 크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예수의 놀이 친구들은 그에게서 어떤 초자연적인 것을 보지 못했고, 거의 친구들과 비슷하였다. 공부에 대한 관심은 평균이 넘었고, 유별스럽지는 않았다. 다른 학생들보다 질문을 더 많이 하였다.
그의 특성은 권리를 찾으려고 싸우기 싫어하였다. 건강했지만 불공평한 처사나 인신공격을 받을 때에 자신을 방어하기 싫어한 것이 놀이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한 살 더 먹은 이웃 소년 야곱과 친구여서 크게 시달리지는 않았다. 야곱은 예수를 크게 존경해서, 예수가 몸싸움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예수를 보호하는 일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예수는 나사렛 소년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어린 친구들한테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공평하고 애정과 동정심에 가까운, 보기 드물게 이해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124:2.6 이 해에 그는 더 나이 먹은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뚜렷한 성향을 보였다. 문화ㆍ교육ㆍ사회ㆍ경제ㆍ정치ㆍ종교적인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그의 깊은 논리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어른들은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자기 또래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 사귀도록 하기 위해 항상 애썼다.
이 해 늦게 갈리리 바다에서 두달 동안 삼촌과 함께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고, 어른이 되기 전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상급에 속하고 특권을 가진 생도였다. 어린 남동생ㆍ여동생들과 잘 어울렸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평판이 좋았고, 우둔한 어떤 아이들의 부모는 예수가 너무 건방지며, 겸손하지 않고 소년답지 않다고 자주 말했다. 예수는 어린 친구들의 놀이 활동을 보다 진지하고 사려 깊은 방향으로 안내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었다. 그는 선생으로 태어났고, 놀이조차도 그렇게 기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셉은 일찍부터 예수에게 생계를 잇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요셉은 공업ㆍ상업보다 농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보다 생활비가 1/4 밖에 들지 않았다. 갈릴리는 농사 짓는 마을과 번성하는 산업 도시들이 있는 지방이었고, 인구가 5천이 넘는 마을이 2백이 넘고, 1만 5천이 넘는 도시가 서른이나 있었다.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목수가 되도록 영향을 미쳤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체제의 종교 선생이 되는 선택으로 이끌었다.
3.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
124:3.1 이 한 해 동안 내내,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나 여행을 계속했지만, 이따금 막달라로 가서 삼촌과 함께 고기잡이에 들어갔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에게 그가 운명의 아들이라는 것을 털어놓고 싶은 유혹을 가끔 받았다. 그러나 부모는 이 모든 문제에서 특별히 지혜롭고 현명했다. 어떤 편애를 보인 경우에, 예수는 그 특별 배려를 재빨리 물리쳤다.
카라반에게 소모품을 파는 상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뭄으로, 세계의 동향에 관하여 정보를 쌓았다. 이 해는 그가 어린이로서 즐거움을 많이 누린 마지막 해였다. 이때부터 계속 생활에서 어려움과 책임이 빠르게 늘어났다.
서기 5년, 6월 24일, 유다가 태어났다. 이 일곱째 아이의 출생에 관련된 병이 뒤따랐다. 마리아가 몹시 아파서, 예수는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이 소년은 다시 어린 시절, 어린이의 위치로 돌아갈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아플 때부터―그가 열한 살이 막 되기 전에―그는 정상으로 마땅히 그의 어깨에 지워지는 것보다 만 1년이나 2년 앞서 맏아들의 책임을 지고, 이 모든 일을 해낼 수밖에 없었다.
하잔은 예수가 히브리 성서를 통달하도록 도와주었다. 예루살렘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라는 제안에 예수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124:3.6 5월 중순경에, 예수는 아버지의 스키토폴리스 출장을 따라갔다. 이곳은 고대 히브리인 도시였다. 요셉은 사울 왕 이야기, 이스라엘의 파란 많은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일러 주었다. 예수는 이 이방인 도시의 깨끗한 모습, 가지런한 질서 있는 배열에 큰 감명을 받았다. 스키토폴리스의 노천극장을 보고 감탄하고, 원형 경기장에서 "이방인"의 전시를 보고 찬미한 것에, 요셉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 이방인 도시의 아름다움과 얼굴을 마주했고, 요셉은 예수가 묻는 말에 점잖게 못 들은 척할 수 없었다.
마침, 이때 스키토폴리스 경기장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졸라 이 경기를 보게 되었고, 소년은 여러 경기를 보고 흥분했고, 사람들이 신체의 발육과 운동 기술을 전시하는 정신에 아주 흠뻑 젖었다. 야외에서 건전한 신체 활동을 하여 이렇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사렛의 젊은이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는 것을 들었을 때, 요셉은 일생 최대의 충격을 받았다. 요셉은 그러한 관습이 어떻게 나쁜가 예수와 함께 오랫동안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소년이 납득하지 않았음을 잘 알았다.
소년이 유대인 사상을 까마득하게 잊고서 예수가 집으로 돌아가서 원형 경기장을 짓기 위해 일하자고 말하여, 아버지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들아, 네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런 나쁜 생각을 입 밖에 내는 것을 다시는 듣고 싶지 않구나.” 결코 전에는 아버지가 분개하여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좋아요 아버지, 그렇게 하지요.” 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 소년은 그리스 풍의 경기와 기타 체육 활동을 비치는 말을 조금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풍의 원형 경기장을 보았고, 유대인의 관점에서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았다. 후일, 유대인 풍습이 허락하는 한, 예수는 열두 사도를 위하여 건전한 오락 관념을 소개하려고 애썼다.
열한 살 되던 해가 저물 때, 예수는 제대로 성장하고 익살이 있는 명랑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떻게 가족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고, 동시에 세상에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명이 유대 민족의 지위를 향상하는데 한정된 것이 아님을 이미 깨달았다.
4. 열두 살 되던 해 (서기 6년)
124:4.1 이 해는 사건이 많은 해였다. 학교 공부의 진전과, 자연 연구에 몰두, 사람들의 생계유지에 대해 공부하였다. 목수 작업장에서 정규적으로 일하여 번 돈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유대인 가정에서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이 일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는 지혜를 배웠다. 마을에서 자신이 일으켰던 문제를 의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동료들과 다른 무엇이든지 점점 신중하게 감추었다.
이 해 내내 그의 사명에 대해 확실치 않게 느끼는 기간이 여러 번 있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그의 인간 지성은 그가 두 성품을 가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대중 봉사를 하기까지 동생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야고보와 미리암과 사이가 좋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두 동생, 아모스와 룻과 사이가 아주 뛰어나게 좋았다. 마르다 와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예외는 유다였는데, 유다로 인해 집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신과 합쳐진 인간을 양육하는 일에서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벅찬 체험이었고, 그들은 부모의 책임을 아주 성공적으로 이행하였다. 예수의 부모는 맏아들이 이 지역 우주를 실제로 창조한 분이라는 것을 결코 털끝만큼도 꿈꾸지 못했다.
이 해에 예수는 음악에 더 마음을 쏟았고, 동생들을 위해서 공부를 계속 가르쳤다. 그의 생애와 상관 되는 문제에서 어머니는 차츰 아들이 자기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상하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점점 더 마리아는 예수의 사명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 착한 어머니는 갈수록 더 마음을 상했다.
124:4.6 요셉은 예수의 사명이 영적 성질을 가졌음을 차츰 더 믿었다. 그가 살아서 볼 수 없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듯하다.
예수가 학교에서 마지막 해인 12살이었을 때, 집으로 들어가거나 나갈 때마다 문설주에 못 박힌 양피지 조각을 만지고, 양피지를 만진 손가락에 입맞춤하는 유대인의 관습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항의하였다. “우리가 들어가고 나감을 지금부터, 아니 영원까지도 주가 보호하실 지라” 말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형상과 그림을 금지한 까닭을 예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따라서 문설주의 양피지에 경의를 표하는 습관이 본질적인 우상 숭배일 수 있다고 아버지에게 지적했다. 이후로 요셉은 그 양피지를 없애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는 가족 기도, 다른 관습의 종교적 형태를 수정하려고 많이 애썼다. 나사렛 회당의 유명한 교사 호세가 자유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
두 해 동안 예수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해야 하는 것과, 부모에 대한 복종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었다. 가장 큰 갈등의 두 계명은 이러했다. 하나는 “진리와 의에 대한 신념에 충실 하라”는 것, 다른 하나는 “네 부모를 존경할지니, 저희가 너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길렀음이라”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두 가지에 충실하면서 적응하는 책임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의 확신과 가족에 대한 의무를 조화롭게 섞어서, 충성ㆍ공정성을 기반으로 관용과 사랑에 기초를 둔 집단 결속의 개념을 얻는데 만족감을 얻었다.
5. 열세 살 되던 해 (서기 7년)
124:5.1 이 해에 예수는 청년기 초기로 들어갔다. 목소리가 바뀌기 시작했고, 정신과 육체의 모습이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서기 7년 1월 9일, 아기 남동생 아모스가 태어났다. 유다는 채 두 살이 되지 않았고, 아기 여동생 룻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 요셉이 사고로 죽게 되어, 예수가 상당히 큰 가족 부양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2월 중순에, 사람을 깨우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원대한 계획과 함께 중대한 결정이 이 소년의 머리 속에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겉으로 보통 유대인 소년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이 펼쳐지자, 온 네바돈의 지적 생명이 황홀하고 놀란 가운데 계속 바라보았다.
서기 7년, 3월 20일, 나사렛 회당에 부속된 지역 학교에서 훈련 과정을 졸업했다. 유대인 가정에서 "계명의 아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되찾은 첫아들, “최고자의 아이요” 온 땅의 주의 종으로 선포되는 날이었다.
요셉은 세포리스에서 새 공공(公共) 건물을 짓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이 경사에 참석하려고 왔다. 예수의 선생은 예수가 어떤 특별한 생애, 어떤 탁월한 사명을 타고났다고 굳게 믿었다. 비록 전통을 따르지 않는 예수의 성향 때문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장로들은 소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름난 히브리 학원에서 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그를 예루살렘에 보낼 계획을 이미 세우기 시작했다.
124:5.6 예수는 별로 이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일어날 비극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어머니와 자신은 물론, 곧 다섯 남동생과 세 여동생으로 구성될 큰 가족을 부양하고 지도하는 책임이 지워졌고, 그래서 모든 그런 계획을 단념하도록 한 것이었다. 예수는 아버지 요셉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크고 긴 체험, 이 가족을 양육하는 체험을 겪었고 나중에 자신이 부과한 기준에 부족함이 없었다.
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124:6.1 회당 학교를 졸업한 예수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유월절 축하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이 해에 유월절 축제는 서기 7년 4월 9일, 토요일에 있었다. 103명의 무리가, 4월 4일, 월요일에 예루살렘 유월절 축제를 향해 떠났다. 요셉과 그 가족은 야곱의 우물과 베델을 거쳐 사마리아를 통해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싫어했기 때문에, 요단강 유역의 길을 거쳐서 가기로 결정하였다.
두려워했던 아켈라우스는 폐위되었고, 첫째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기를 죽이려고 한 지 12년이 지났다. 아무도 그 사건을 이름 없는 이 나사렛 소년과 연관 지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여행하면서, 예수는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슈넴 마을의 소녀, 엘리사의 이적 이야기, 아합과 예세벨이 예후에게 한 일과 예후의 공적 이야기등, 길보아 산 둘레를 지나면서, 이 산 비탈에서 목슴을 끊은 사울 왕과 다윗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보아산 기슭을 돌면서, 순례자들은 바른쪽에 그리스 풍 도시 스키토폴리스를 볼 수 있었다. 마리아는 어째서 요셉이나 예수가 스키토폴리스에 대해서 입을 열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아는 지난 해에 그들에게 불편한 대화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
스키토폴리스의 맞은편으로부터 세 시간 남짓 여행하자, 그들은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샘물에 다다랐고, 여기서 그들은 밤에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서 텐트를 쳤다.
124:6.6 둘째 날에 얍복강이 요단강으로 흘러가는 곳을 지났고, 기드온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단강 유역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산, 사르타바 산밑 가까이서 텐트를 쳤다.
셋째 날에 헤롯이 지은 우수한 건축과 아름다운 야자나무 동산을 눈여겨 보았다. 2.4킬로미터 걸어서 고대의 예리고 터로 갔다. 밤이 되어 예리고에 이르러 아침까지 머물렀다.
넷째 날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로에는 순례자들이 줄을 이루었다. 올리브산을 처음 구경했다. 요셉은 그 거룩한 도시가 이 산마루 바로 건너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 도시와 하늘 아버지의 집을 곧 보게 된다는 즐거운 기대에 소년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베다니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요셉의 가족은 시몬이라는 사람 집 가까이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세 아이-마리아ㆍ마르다ㆍ나사로-가 있었다. 그들은 마실 것을 들자고 안으로 이 가족을 초청했다. 그 두 가족 사이에는 일생 동안의 우정이 생겼다. 그 뒤에 여러 번, 파란 많은 생애에서 예수는 이 집에 머물렀다.
예수는 (그가 기억하건대) 처음으로 그 거룩한 도시, 허세로 크게 지은 여러 궁전, 그리고 영감을 주는 아버지의 성전을 보았다. 예루살렘의 처음 광경을 황홀히 바라보면서 4월 이날 오후에 거기 올리브산에서 서 있는 동안, 이때 그렇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면서 가졌던 순전히 인간적 흥분을 예수는 일생에 어느 때에도 느낀 적이 없었다.
124:6.11 그들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목요일 오후였다. 도시에 이르자, 그들은 성전을 지나쳤고, 예수는 그렇게 많은 인간 무리를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 유대인들이 문명 세계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와서 여기에 모일 수 있는지 깊이 생각했다.
숙박 장소에 이르렀다. 이곳은 마리아의 어느 부유한 친척이 사는 큰 집이었고, 그들은 유월절 안식일을 적절히 축하하려고 준비했다.
금요일 (유월절 준비하는 날), 요셉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학교를 방문하였고, 2년 후에, 열 다섯 살이 되지마자, 교육을 시작하도록 주선이 되어 있었으나, 예수는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수는 성전과 그에 관계된 모든 예배와 기타 활동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어째서 하늘 아버지가 죄 없고 무력한 동물의 도살을 그토록 많이 요구하는지, 몇 가지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유월절 안식일 전날, 영적 빛이 예수의 필사 지성을 덮쳤고, 무지한 군중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느낌이 그의 가슴에 넘치게 채워졌다. 그날 밤 임마누엘의 임명을 받은 사자가 구원자별에서 와서 말했다: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124:6.16 아직 열세 살이 채 안 된 이 소년에게, 나사렛 가족의 무거운 책임이 지워지기도 전에, 한 우주의 책임을 비로소 다시 질 때가 왔다고 상기시키려고 이제 하늘의 전령이 도착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육신화의 신비는 우리 모두에게 점점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나사렛 젊은이가 모든 네바 돈의 창조자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창조 아들의 영과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이 인류의 혼들과 어떻게 연합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그가 육체를 입고 인생을 살지만, 정신적으로 그의 어깨 위에 한 우주의 책임이 놓여 있음을 그의 인간 지성이 점점 더 깨닫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나사렛 소년의 경력이 끝나고, 청년기에 들어간 그 젊은이―점점 더 자의식하는 신다운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의 소망과 가족, 그가 사는 시대의 사회에 대한 의무와 통합하려고 애쓰면서, 이제 그는 세계적 생애를 비로소 깊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