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6월 20일 일요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밴쿠버로, 다시 토론토까지
*16 시간의 비행
인천국제공항에서 AC 064 캐나다 항공 오후 5시 10분 밴쿠버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밴쿠버와 한국의 시차는 16시간이다. 즉 한국이 16시간 빠르다. 이 비행기는 같은 6월 20일 오전 11시 20분에 밴쿠버에 도착 예정이다.
한국시간으로 7시경 기내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쇠고기요리에 농협김치와 제주생수가 나와 모두들 이국의 비행기에서 나누어주는 한국 음식을 남다른 느낌으로 맛있게 먹었다. 석식을 마치고 나니 8시경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행기 창문의 전체가 내려지고 야간비행이 시작되면서 잠을 청했다. 기내 TV 모니터에는 현재 비행기 위치 및 바깥 온도와 고도, 풍속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뜨고 영화도 상영되곤 했다.
일본을 지나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는 베링해 근처의 날짜 변경선을 한국시간으로 11시경 넘었다. 심한 기류를 만날 때는 수시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방송과 사인의 불이 들어오고 비행기 날개가 심히 흔들리며 자동차가 자갈밭을 달리는 느낌으로 요동쳤다.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 그 마의 고지 5분을 제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교통수단인 비행기가 거센 기류를 만날 때는 두려웠다. 코발트 빛 하늘이 사라지고 지상에서 보았던 하얀 구름이 비행기 주위를 휘감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초고속 기류의 풍속이 시속 174Km, 섭씨 영하 57도, 비행고도 11900m, 자막에 보도되는 내용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하다.
한국과 밴쿠버의 비행거리는 8080Km, 예상 비행시간은 11시간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 20분. 그런데 벌써 비행기 차창 밖은 완전한 태양이 솟아 광명이다. 우린 밤도 없이 새벽을 맞은 것이다. 겨우 8시부터 11시경까지 3시간 남짓 눈만 감고 밤을 넘어왔다. 시계의 흐름보다 비행기가 가는 시간의 흐름이 빨라, 그냥 밤을 넘어온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눈부신 밖의 풍경, 청청한 하늘과 푸른 창공, 그리고 구름과 하늘의 비단실 같은 경계선, 그 사이로 빛은 쏟아지고. 종교에서 말하는 에덴이 저리도 순수하고 밝고 맑은 곳이런가. 순백의 눈밭 위 비행기는 고요하다. 풍속이 시속 40Km 전 후일 때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날개의 고요.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다. 평온함 그 자체다.
점점 비행기의 고도는 낮아지고 밴쿠버 공항에 가까워지고 있다. 저 멀리 툰드라 설원과 캐나다의 땅이 보인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과 사람이 사는 곳이 구분된다. 더 멀리는 북해도가 보인다. 무공해 청정 구역의 환상적인 풍경이 참 아름답다. 근경으로는 나무 숲, 그 사이 드문 드문 집이 보인다. 집보다 나무가 많음이 한눈에 보인다. 도시에도 건물 숫자보다 나무 숫자가 더 많다. 이것이 비행기에서 본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다. 중국 푸동 국제공항에 내릴 때의 바깥 풍경도 넓고 마른 들판이 보였는데 밴쿠버는 푸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평원의 삼림 뒤로 우람하게 산이 서 있고 산 정상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현재 이곳 온도는 25도, 여름인데 저 산은 겨울이다.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밴쿠버 국제공항답게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드디어 예정된 시간대로 캐나다 벤쿠버국제공항에 현지 시간으로 6월 20일 오전 11시 20분에 도착했다. 한국시간으로는 6월 21일 새벽 3시 20분이다. 지금쯤 한국에 있었다면 곤한 새벽잠에 취해 있을 텐데 20일의 밤을 비행기 안에서 뜬눈으로 지새우고 ?! 隔?캐나다의 하루 늦은 6월 20일의 오전 한낮으로 넘어온 것이다. 시계를 이곳 시간으로 조정하고 기다리던 캐나다 땅에 내렸다. 동행한 남편의 시계는 한국 시간으로 그냥 두고 나의 시계만 캐나다 시간으로 조정했다. 그 이유는 캐나다 자국 내에서도 시차가 나고 또 한국에 있는 두 아들에게 전화를 하려면 잠든 시간을 피해야 하는데 그 계산이 어려워서다. 이제부터는 캐나다 현지 시간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
우리가 알기로 캐나다가 한국보다 북부에 위치해 있으므로 온도가 우리 나라보다 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옷도 초여름보다는 4월쯤의 봄옷으로 입고 왔는데 공항에 내려서 입국수속을 밟는 동안 그런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각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기에 그 열기로 더운 것이 아닐까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벤쿠버의 날씨는 캐나다에서도 따뜻한 편이었고 우리 나라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늘도 화창하고 참 좋은 날씨다.
벤쿠버국제 공항은 상당히 복잡했다. 많은 관광객의 유입으로 혼잡한 것도 있지만 책에서 본 것처럼 캐나다의 국민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안될 만큼 어찌 보면 흐트러진 근무 태도가 보이기도 했다. 줄 선 사람들은 여권을 들고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장사진의 긴 행렬을 돌고 돌아 지쳐 있는데 나이도 어린 스무 살 남짓의 캐나다 여자와 남자 직원은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번갈아 자리를 떠서 돌아다니다 오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한 나이 지긋한 한국 어른이 한마디 했다. '우리 나라 같으면 빰 맞을 일이지. 단번에 쫓겨날 일이야.' 그랬다. 굳어진 정형의 틀에 몸을 담고 직무에 충실하고자 옆으로는 고개도 못 돌리고 분주히 일하는 한국인의 업무 태도와는 사뭇 다름을 알았다. 그것이 비단 이곳 공항에서만의 일일지라도 우리의 문화와는 엄연히 큰 차이였다. 큰 대륙의 나라이기에 지리적인 면에서 받은 축복으로 알면 이해가 빠르다.
실내 공간을 통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하여 캐나다 동부 도시인 토론토행 비행기를 탑승하고자 기다렸다. 역시 AC 152 캐나다 항공 16:00 비행기다.
창가의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멀리 높은 산과 산봉우리의 하얀 눈이 보였다. 록키산맥일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하며 사진을 찍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 흐릿하나마 흰눈을 볼 수 있음이 참으로 신기했다.
캐나다 항공은 우리 나라의 대한항공처럼 자국기다. 그러므로 비행기 후미 솟아오른 부분에 캐나다 국기인 단풍잎이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캐나다의 국기는 양쪽 붉은 세로줄과의 사이 흰색 바탕에 단풍잎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다 사이에 흰눈 또는 순결을 상징하는 땅에 단풍나무가 많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흰색 비행기에 선명하게 눈에 띄는 단풍잎이 아름다웠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남아 그곳 공항의 가게에 들렀다. 초콜릿을 사기고 하고 티셔츠를 사기도 했다. 그런데 공동적으로 느낀 것은 물건에 붙여진 가격보다 계산대에서 받는 돈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캐나다에는 자치연방 주 나름대로의 주세가 있어 대개 물건값의 7% 정도 되는 돈만큼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나라와는 다른 계산법이었다. 캐나다 달러로 17불 정도의 물건을 19불 정도의 돈을 내고 샀으니 말이다.
현지 시간 오후 2시 15분, 한국시간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15분이다. 한국시간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15분이다. 새벽잠을 자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 공중 전화는 수신자 부담으로 동전이나 전화카드가 없어도 쉽게 할 수 있다. 곁에서 주고받는 대화처럼 국제 통화가 아주 잘 들렸다.
드디어 토론토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국제선과는 다르게 내부의 좌석이 세 좌석씩 두 줄로 구분되어 있다. 즉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씩 나란히 여섯 명이 앉는다. 나의 좌석은 가운데이고 창가 쪽에는 뚱뚱한 영국계의 캐나다 남자가 앉았다. 캐나다는 넓은 나라라서 비행기가 이동 수단의 하나라고 들었다. 벤쿠버와 토론토의 거리는 서울과 부산 거리의 15배이며 육로의 교통 수단으로는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아주 먼 거리다. 비행기로도 4시간 30분이나 걸린다. 즉 우리 나라에서 필리핀까지 비행하는 시간과 맞먹는다. 벤쿠버와 토론토의 시차만도 3시간이다. 토론토가 동부 도시이니 3시간 빠르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오후 16시에 이륙한 비행기가 토론토에 23시 30분에 착륙한다. 이대로만 보면 7시간 30분 비행이지만 시차가 3시간 나는 관계로 벤쿠버 시간으로는 20시 30분이 토론토 시간으로는 3시간 빠른 23시 30분인 것이다. 자국 내에서도 엄청난 시차가 나는 것으로 보아 그 대륙의 넓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캐나다 국내 이동도 비행기를 이용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지금 옆의 캐나다인에게서 느낀 것은 바깥 풍경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책을 보다가, 자다가 그야말로 토론토로 가기 위한 탑승 그 자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기차를 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잠시 그가 자리를 떴을 때 바깥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그가 왔을 때 일어서려 하니 두 손으로 그냥 그 자리에 앉으라는 표현을 하며 영어로 괜찮다는 뜻인 듯한 말을 했다. 고마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어눌한 영어로 전하고 그 덕분에 토론토까지 창가에 앉아 캐나다의 바깥 풍경을 쉬이 볼 수 있었다.
자국을 이동하는 비행기라서 그런지 비행하는 동안 지상의 땅이 자주 보였다. 그만큼 비행 고도가 낮음을 알 수 있었다. 캐나다의 땅은 대부분 바둑판 같이 정리되어 있었다. 더러는 황토색으로, 혹은 푸른 초원으로 사각의 터가 채워져 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보리나 밀 재배를 하는 것이었다. 목축업 지역에는 초원의 너른 풀밭이기도 하다. 광활한 땅의 잘 정리된 모습이 아름다웠다. 밤이 되자 야경으로 도시의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역시 네모 반듯하게 구획이 정리되고 특이한 것은 긴 고속도로가 끝없이 뻗어 나간 모습니다. 오후 6시에 기내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지금 시간 오후 7시 10분, 해는 저물어 가고 빛과 하늘과 육지가 만나는 경계선의 아름다움 장관이다. 무지개 띠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고고한 추상 작품을 보는 듯하다. 8시쯤 도시의 불빛이 살아 일어나고 비행기 날개 아래 부분에서는 번개 치듯 불꽃이 튀고 하늘에도 밤은 있어 야경이 아름답다. 하늘은 별 천지다. 점점이 박아 놓은 듯한 별들, 오영되지 않은 공기층임을 알 수 있다. 이곳 하늘의 밤은 한국의 밤보다 좀 빨리 오는 것 같다. 오후 8시면 한국에서는 아?! ?밝은 기운이 감돌텐데 이곳 하늘은 어두운 기운이 짙다. 불빛으로 인하여 도심과 평원의 구분은 확연히 드러난다. 도시 군락이 붙어 있지 않고 드물게 흩어져 있다. 그만큼 땅이 넓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점은 도시와 도시 간의 단절이다. 워낙 넓어서일까, 도로는 도시 단위로만 형성되었을뿐 이웃과의 도로에는 거의 불빛가로등이 없고 연결되지 않는다. 도로가 거미줄처럼 엉킨 우리 나라와 다른 풍경이다. 자동차 행렬도 한산하다. 줄지어 늘어선 모양이 없다. 드물게 유유히 물 흐르듯 운행하고 있다. 저 모습만으로도 이민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토론토에 가까워 오면서 캐나다 제 1의 도시임을 알리는 휘황한 불빛이 너른 분포로 자리하고 있다. 토론토 시간으로 밤 11시 30분, 비행기는 토론토 공항에 착륙했다. 또 시간을 고쳐야 한다. 밴쿠버에서 맞춘 시계로는 8시 30분이다. 밴쿠버보다 토론토는 3시간 빠르기 때문이다. 밴쿠버는 저녁 무렵일텐데 이곳은 깊은 밤이다. 그러니 또 밤의 시간을 3시간이나 뛰어 넘어 온 셈이다. 잠자는 시간을 건너뜀으로 피곤함의 연속이다. 그래도 여행의 즐거움으로 모두들 웃으며 잘 견디고 있다.
이제 이곳 토론토의 관광을 안내할 현지 한국 교민이 나와서 인사하고 우리 일행을 인도했다. 캐나다는 늦은 밤이고 국내선이어서 그런지 벤쿠버 공항과는 사뭇 다르다. 쓸쓸할 정도로 한산하고 입국 수속도 빨라 속히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화물을 찾는 동안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가 한밤중이니 한국은 지금 한낮일 것이다. 요번에는 이곳 공중전화에서 아들의 핸드폰으로 걸어 보았다. 역시 잘 연결되고 목소리도 또렷이 잘 들렸다. 부모가 캐나다에 토론토까지 16여 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도착했노라고 알려 안심시켰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가족 모두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 여건이 되지 않아 두고 오니 좀 걱정이 되어 수시로 전화를 하게 된다. 아무튼 참 다행이다. 중국에도 이런 공중 전화가 없어 현지 안내원의 핸드폰을 빌려 걸지는 못하고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만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아무 곳에서나 국제 전화를 할 수 있음이 여행을 편안하게 한다. 통신의 발달로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드렸다. 그런데 화물을 찾는 과정에서 일행 중 한사람의 짐이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 ! 그 여행 가방 하나가 비행기에 실리지 않고 벤쿠버 공항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안내원이 말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내일 오후에 호텔로 갖다 주기로 하고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현지 교포 안내원의 인도로 관광버스를 타고 토론토 파크 프라자 호텔로 갔다. 가는 도중 캐나다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해 주었다. 캐나다는 국민 소득이 25000불이고 그 중에서도 토론토는 태나다 경제력의 4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오늘 밤 자고 내일 밝은 낮에 보면 여러 가지 신비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며 '먼 고국 땅에서 여러 문인님들 잘 오시었다'고 여행의 화두를 열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대충 정리하고 자정을 훨씬 넘긴 밤 2시경에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의 집에서 떠난 지 무려 26시간만에 누워 보는 침대다. 여기까지 오느라 밤도 없이 비행기 안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 셈이다. 낯선 땅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의 밤이기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깊은 잠을 청했다. 그렇게 캐나다의 밤은 우리를 따뜻하게 품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토론토공항까지-2004년 6월(2017년 8월 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