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1496)
알브레히트 뒤러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탐구 정신이 풍부한 사상가였으며,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최고의 화가이다.
그는 1496년경에 <성모칠고>를 주제로 제단화를 그렸고,
그중 <비탄의 성모> 중앙 패널은 현재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 있고,
그 둘레에 있는 일곱 개의 작은 패널은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에 있는데,
이 제단화는 1496년 4월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비텐베르크에 있는 그의 궁전 교회를 위해 의뢰했고,
뒤러는 1500년부터 그림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제단화는 원래 높이가 거의 2m이고, 너비가 거의 3m로 매우 컸다.
지금은 <성모칠락>을 상징하는 오른쪽 절반은 사라졌지만,
<성모칠고>의 왼쪽 절반은 아직 남아 있다.
현존하는 제단화의 중앙 패널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고
비탄에 잠겨 있는 성모 마리아를 그려졌고, 시메온의 예언처럼
오른쪽 모서리에서 황금색 칼이 내려와 성모의 심장을 찌르려고 한다.
둘레에 있는 일곱 개의 작은 패널에는 <성모칠고>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성모칠고>는 복음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이다.
첫 번째 고통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께 할례를 베푸는 장면이고,(루카 2,34-35)
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로 피신하는 장면이며,(마태 2,13-15)
세 번째 고통은 성전에서 아들 예수님을 되찾는 장면이다.(루카 2,41-50)
네 번째 고통은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고,(루카 23,27-31)
다섯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며,(요한 19,17-18)
여섯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이고,(요한 19,25-27)
일곱 번째 고통은 예수님의 장례 장면이다.(마르 15,42-47)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성모칠고> 중에서 다섯 번째 고통의 장면으로
이 작품의 배경은 요한복음 19장 17-18절, 루카복음 23장 33-34절이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요한 19,17-18)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3-34)
성경에서는 비교적 짧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묘사했지만
뒤러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 장면을 묘사했다.
전경에는 십자가 위에 가시관을 쓴 예수님이 사선으로 누워 있고,
세 명의 군사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있다.
전면 중앙에 있는 군사는 드릴로 십자가에 구멍을 뚫고 있고,
왼쪽의 군사는 발에 못을 박으려고 망치질하고 있으며,
오른쪽에 있는 군사는 망치를 들고 드릴 뚫는 동료를 보고 있다.
군사들의 복장은 16세기 뉘른베르크의 복식이고,
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색인 흰색 두건과 천상의 색인 감청색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바닥에 손을 대고 있고,
사랑의 색인 붉은색 옷을 입은 곱슬머리의 사도 요한은
놀라고 두려운 표정으로 성모 마리아를 부축하고 있으며,
16세기 유행하던 흰색 두건을 쓴 마리아 막달레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주님의 고통을 목격하는 괴로움에 온몸을 비틀고,
성모 뒤에 있는 그분의 이모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분을 보고
눈물을 훔치거나 슬프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해골 터’였는데,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돌멩이들과 바위 사이에 해골 모양의 돌이 있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엉겅퀴가 있다.
오른쪽 전면 끝에는 푸른색 겉옷이 널브러져 있는데,
이는 군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