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장1-14절 부활 예수는 무슨일을 하셨나-제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260424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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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나신 일은 이러합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어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아멘.
1.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과 예언의 성취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 하셨습니까? 당신의 부활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구약 성경 전체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모세 오경과 그다음 선지자의 글들, 시편 성경, 다 해당합니다. 선지자의 글 안에는 선지서(소선지서, 대선지서)와 역사서가 있는데, 역사서는 제사장이 기록한 것과 선지자가 기록한 것으로 나뉩니다. 열왕기 상하는 선지자들이 기록한 역사서로, 역대기는 제사장들이 기록한 역사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역사서까지도 사실은 선지자들의 저작물들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 전체가 누굴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할렐루야.
그것만 말한 것은 아닙니다. 재림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약 선지자들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초림을 앞에 보고 재림을 뒤에서 봅니다. 멀리서 보면 초림과 재림이 한 선에서 겹쳐 보입니다. 그래서 초림을 말하는데 재림이 나오고, 재림을 말하는데 초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이지만, 공생애 동안 하신 사역을 보십시오. 죽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이적과 기사로 사단을 제압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막 임하게 하시는 것, 이것은 재림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초림 안에 재림이 있고 재림 안에 초림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초림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고, 재림의 예수님은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이 멀리서 이렇게 보니까 한 선에서 겹쳐 보인 것입니다. 마치 산 위에 올라가서 정상에서 보면 가까운 산과 먼 산이 겹쳐서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선지자는 그렇게 본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원근법을 사용하셨습니다. AD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시며, 가까이 있는 예루살렘 멸망과 인류의 대멸망을 한 선에서 겹쳐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선지자의 글과 모세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일들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2. 제사장이며 제물이신 예수님
그런데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난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재물과 재물을 주관하는 제사장은 각각 다른 객체입니다. 재물은 양이고 소인데, 제사장은 자기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재물이 되십니다. 구약 성경에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인신 제사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난제입니다. 또한 레위기 말씀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이신데,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입니다. 이스라엘이 제3 성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엔 아론의 혈통인 대제사장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그 혈통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십니다. 제자들이 이 부분을 보며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주님, 이것은 구약과 맞지 않지 않습니까? 모순이 아닙니까?" 아마 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질문을 다 받으시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3.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고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안에서, 한번 따라합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징벌, 사망 권세 안에 내어줌이 되셨습니다. 죄에 대한 벌을 주님이 받으시고, 이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만약 계속 벌받고 계신다면 우리의 죄가 아직 사하여지지 않은 과정 중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배당에 모여서 "언제 부활하실까?" 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사십니다. 로마서 4장 25절 말씀입니다.
주님은 부활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고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성령이 임하기도 하고, 성만찬 떡을 떼서 주실 때 성령이 임하기도 합니다. 제가 한참 은혜받을 때, 집회 끝나고 밥 먹으러 가서 친구와 밥 먹다가 반찬을 나누는데, 그 순간 성령이 막 임하시니까 방언이 터지고 입에서 토하고 난리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이 조반을 먹는 중에 성만찬을 행하시면서, 당신의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죄 사함 받은 증거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실 때 "아, 아멘" 하는 그 아멘과 함께 성령이 꿀떡꿀떡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 그런 축복이 우리 교회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4. 제자들의 깨어진 비젼과 상처 치유
성령을 받았는데도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 큰 역사를 보고도 마음이 회복이 안 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그리고 다른 제자 둘까지 일곱 명입니다. 나머지 네 명은 어디 갔습니까?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나머지 제자들도 다 따라나섰습니다. 왜 갔겠습니까? 깨어진 꿈의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이스라엘 나라 회복을 꿈꿨습니다. 그들이 꿈꾼 나라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달랐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지나며 베드로의 꿈은 깨어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넘어질 수 있구나, 내가 주님을 이렇게 부인할 수 있구나."
가룟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저도 존경했던 교계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면서 성 문제, 횡령 등으로 픽픽 넘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 재정 문제로 교회가 네 개로 찢어지고 서로 고소하고 감옥에 가는 처참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들도 처음에는 신학교 갈 때 소명감 하나로 가난을 감내하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 부딪히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젊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회 정치에 발목 잡히고, 작은 교회 목회하면서 돈도 안 되고 열매는 없으니 대리운전 투잡을 뜁니다. 새벽 기도도 못 하고 대리운전 뛰며, 텅 빈 교회 강단에서 사모님께 "여보, 새벽 기도 잘해라" 하고 나가는 그 애환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랬더니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마치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열매 없이 내 인생을 살려다 보니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는 낭패 상황입니다. 밤새도록 애썼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 날이 새어갈 때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5. 발작 버튼에서 치유의 버튼으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느냐?" 여기서 '얘들아'는 헬라어로 '파이디온', 즉 철없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열매 못 맺고 세상에 나가 대리운전하고 고기 잡아서 뭐 잡았느냐?"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때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하셨고, 제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잡았습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다" 하니 베드로가 겉옷을 두르고 물로 뛰어듭니다. 나와 보니 숯불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놀란 데가 있으면 솥뚜껑 보고도 놀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때 숯불 앞에서 부인했습니다. 숯불은 베드로에게 '발작 버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동일한 숯불을 피워놓고 조반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치유의 버튼이었습니다. 거기에 닭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만 들으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아주 전략적이십니다. 숯불을 피워놓고 그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어 주님과 함께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발작 버튼은 무엇입니까? 그 상황을 주님과 함께 지나가면 그것이 치유의 버튼이 됩니다.
6. 소명의 회복과 사명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이렇게 회복시키십니다. 소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회복입니다. 상처받고 무너진 사람들에게 회복이 필요합니다. 어떤 이가 "주님, 저는 평신도로서 가정 먹여 살리며 살겠습니다" 하면 주님은 그 선택을 존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각자의 인생에 맞는 소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저도 내남에 와서 성도님들을 보며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증명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고, 제자들 마음 하나하나를 회복시키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주님이 주시는 이 온전한 회복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고, 아버지의 그 뜻만 이루어가며, 아버지의 그 의만 이루어가며, 아버지의 그 마음만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은혜가 있게 우리 하나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온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