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난 한참 방황하고 있었다. 전공 공부는 잘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길로 가지도 못했다. 한창 어정거릴 때 내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5년 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방금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봤다. 영화 내용보다는 법대생인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나도 야간 법대였지만, 법학을 공부했다. 저학년 때만 공부에 집중해 법은 잘 모른다. 그런데 진로 고민을 할 때 항상 난 법학 공부냐 아니면 다른 방향이냐를 망설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것 같다. 대학 때 법무사 합격을 준비하며 1학년 시절을 보냈다. 참 열망이 뜨거웠던 시기였다. 그때 잘 풀렸으면 난 결혼도 했을 것 같고, 아이도 낳았을 것이다. 후회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몇 년 후 어머니가 올라오며 내 생활은 엉망이 됐다. 그래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내게는 아직도 많다.
중후한 중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법대생의 꿈은 사라졌다. 1학년 때 법서를 읽다가 지루해지면,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를 빌려 읽곤 했다. 그때가 가장 법률가로서 꿈을 크게 키우던 시기였다. 난 집중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법 공부를 했어도 아마 법률가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껏 잘 풀렸어 봐야, 법률사무소 직원이 적당하다.
지금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아쉬운 것은 가지 않은 길처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잔상이다. 이것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다만, 내가 하나 정말 아쉬운 것은 나의 원망과 분노 때문에 삶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흐르게 된 것이다.
청춘의 꿈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젊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소낙비를, 그것도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맞아야 한다. 그렇게 젊음은 고뇌의 시절이고, 방황하는 시간이다.
내 인생은 지금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삶에 안정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살아오다 보니 지금 내 감정은 많이 불안정한 편이다.
큰 고통을 겪으면, 즉 삶의 짐이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큰 힘이 쌓인다. 인생은 역설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신화에서 말하는 영웅도 남들이 풀지 못하는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영웅으로 불리는 법이기도 하다. 이제 이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인정 욕구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을 그저 살아갈 뿐이다.
생각해 보고 싶은 내용은 내 삶을 남은 기간 동안에 치유적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난 정신과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꽤 오래 받고 있는데, 결국 온전히 치유될 것이다. 원망과 분노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그럼으로써 치료된 내담자이자, 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되고 싶다.
중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이제 고민하게 된다. 청운과도 같은 젊은 시절 제대로 길을 갔으면 지금 삶이 보편화 됐을까? 남들과 비슷한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난 너무 엇갈린 길을 걷고 있다. 내 인생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한다.
지금 삶도 나쁘지 않다. 충분히 자유롭고, 번잡하지 않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인생 속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사람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후회없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면 좋다.
지나간 시간은 그만 돌아보고 싶다. 그저 앞으로 내 인생을 짜임새 있게 살아가면 된다. 남은 중년의 기간인 20년 동안은 한번 실컷 사는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 실컷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산다.
김신웅 행복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