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서의 의미화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한상렬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문학, 예술, 음악, 건축, 무용, 사진, 공연예술, 연극, 영화
등 모든 장르는 그 창조적 행위 속에 인생에 대하여 그 나름의 해석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을 쏟게 마련이다. 따라서
예술활동은 그 나름의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통하여 의미를 부여받고자 한다. 예를 들어 문학은 언어로, 미술은 색으로, 음악은 음률로, 건축은
기하학적 도형으로, 그리고 무용은 율동과 선을 형식적 바탕으로 하여, 그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를 구현한다. 여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예술적인 미(美)를 창조함에 있다 하겠다. 따라서 수필이 문학인 이상 수필문학은 언어예술이 지닌 미를 창조하고자 함에 힘써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문학적이지 못한 수필들이 너무도 횡행하기 때문이다. 소재를 통한 의미의 부여,
이를 우리는 의미화라고 한다. 수필가는 수필적 현실에서 하나의 충격을 받는다. 이런 충격이 전제된 후에 이를 작가 나름의 문학적 재능과 기교에
의해 의미화 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의미화는 수필 속에 어떤 철학을 담느냐함에 있다.
물론 분량상 거의 제한을 받는 수필의 경우 철학을 담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철학과 사상이 작품 속에 얼마나 농축되어 있으며, 그 바탕 위에서 어떻게 주제를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수필에서는 관건이 된다. 때문에
본격수필일수록 작가 나름의 인생관과 결부된 철학적 사유의 사상이 정서와 함께 작품 속에 녹아있기 마련이다. 수필을 쓰는 이는 마땅히 이런 수필을
쓰고자 노력해야 할 일이겠다.(필자의「문학 21」1996-9월호 수필월평에서)
사물에다 형식을 부여하여 새로운 사물을 아름답게 창조해 놓은 것이 예술이다. 이런
예술은 어떤 종류이건 그 안에 인생에 대한 해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수필에서의
의미화 과정은 어떤 것일까? 이는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연관된다. 다음과 같이 '충격→의미화→통합'의 과정을 밟는 것이 좋다.
가) 충격
문득 일어나는 가슴 안의 동요가 충격이다. 외부의 사물과 내부의 순수가 만났을 때
충격은 일어난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친구와의 대화에서 독서 또는 사색에서 충격은 예고 없이 가슴에 온다. 그것은 하나의 기쁨일
수도 있고 가슴 안의 동요일 수도 있고, 어둠에 던져진 광명일 수도 있다. 충격은 글을 쓰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의 폭발이 있을 때라야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발동한다.
충격은 단순하지만 수면에 던져지는 돌의 파문처럼 차차 넓어져서 그것과 관계되는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모여들게 한다. 그 생각이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주제가 추출되기도 한다.
십여 년 전 ㄱ씨는 '바둑판'을 두고 글 하나를 쓴 적이 있다. 비자나무로 다듬은
일본식 바둑판―단면의 무늬가 고르고, 모든 조건에 합격한 일급품은 30년 전 값으로 2천 원, 요즘 시세로는 30∼40만 원은 간다. 이 일급품
위에 또 하나 특급품이란 것이 있다. 용재(用材)며 치수며 연륜의 무늬며 어느 점에도 일급품과 다른 데가 없으나, 반면(盤面)에 머리카락만한
가느다란 흉터가 보이면 이것이 '특급품'이다. 물론 값도 일급품보다 10퍼센트 정도 비싸다. 흉이 있어서 값이 내리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비싸진다는 데 진진(津津)한 흥미가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들여서 기른 나무가 바둑판으로 완성될 직전에 에측하지 않은 사고로
금이 가 버리는 수가 있다. 일급품 바둑판이 목침 감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후는 아니다. 금 간 틈으로 먼지나 티가 들지
않도록 헝겊으로 고이 싸서 손 가지 않는 곳에 간수해 둔다. 1년, 이태, 대로 3년까지 그냥 두어 둔다. 추위와 더위가 몇 차례 없이
반복되고, 습기와 건조가 여러 차례 순환한다. 그 새 상처 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디대로 유착(癒着)해 버리고, 금갔던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 번 금이 간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바둑판은 열에 하나가 어렵다.
일어(日語)로 '가야방'이라는 이 비자목 바둑판은 연하고 부드러운 탄력성이 특질이다.
한두 판만 두어도 돌자국으로 반면(盤面)이 얽어 버린다. 그냥 두어 두면 하룻밤 새 본디대로 다시 평평해진다. 돌을 놓을 때의 그 부드러운
감촉, '가야방'이 진중(珍重)되는 것은 이 까닭이다. 한 번 금이 갔다가 다시 제 힘으로 붙어진 것은 그 부드럽고 연한 특질을 증명해 보인,
이를테면 졸업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감이 될 뻔한 비자목 바둑판이 이래서 특급품으로 승격한다. ㄱ씨가 말하는 인생의 묘미(妙味)란 이런 것이다.
실패나 불행은 환영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실패와 성공을
몇 차례 없이 거듭하면서 쓴맛 단맛을 골고루 겪어 가면서 살아가는 인생―만일에 쓰러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실패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막가는
실패요 불행일 수밖에 없다. 금이 간 채 제 힘으로 아물지 않는 바둑판 맞잡이이다. 그러나 ㄱ씨는 믿고 있다. 때로는 그 불행, 그 실패로 해서
한결 더 깊어지는 인생이 잇고, 정화(淨化)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생이 바둑판만 못하다고 해서 될 말인가?" 옛날 쓴 ㄱ씨의 글에는 이런 끝맺음이 붙어 있다.
―김소운, <특급품>에서
김소운의 수필은 주변의 사소한 일들을 인정 어린 눈으로 보고, 이를 깊이 있게 성찰해
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수필은 과연 인생의 행복을 어떤 잣대로 재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작가는 행복한 인간, 실패한 인간을 누누는
잣대가 다로 있을 수 없음을 '바둑판'이라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목침감이 될 반면에 흉터 있는
바둑판이 특급품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충격'적이다. 이 충격이 이 수필을 쓰게 된 동기가 되고 있다. 금이 간 바둑판의 상처가 아물어 오히려
특급품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화자는 인생의 불행을 극복하는 지혜를 들려준다.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다.
나) 의미화
여기서 사물은 있는 그대로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한낱 사실이고 현실일 뿐이다.
그에 해석을 가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사물 안에 의미가 내재되고 있다해서 그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무의미할 뿐이다. 즉 의미화
작업이다.
앞의
김소운의 수필 <특급품>을 예로 들어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비자목
------------------------------------------------→일급품 바둑판
바둑판 ---→상처 치유 --------→특급품 바둑판
--------→ 사고에 의한 금 --→상처 치유하지 못함→목침감
인생 ----------→ 실패·불행 ----→극복
-------------깊어지는 인생
즉 비자목 바둑판의 예를 통해 인생의 묘미를 찾아내고 있는 이런 과정이 곧 의미화의
과정이라 하겠다. 적절한 예화를 삽입하여 구체성이 살아나고 의미 또한 선명해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성찰해 낸 깨달음을 독자에게 직설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자신을 'ㄱ씨'라고 말하는 서술법도 글에 참신함과 객관성을 더해준다. 또한 이 글은 여운이 길다. 그것은 아마 인생의
묘미를 여러 각도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독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작가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불행, 실패로 인해 한결 더 깊어지는
인생이 있고 정화되는 사람이 있다."를 핵심 문장으로 삼으면서 상처를 제 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탄력을 예찬하는 내용에서, 작가의 인생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의미화 작업은 곧 수필 속에 어떤 철학을 담아 넣느냐와 관계가 같다. 짧은 한
편의 수필에 사상이나 인생관이 담겨질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에 따라 사상이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약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본격수필일수록 그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사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상과 철학이 설탕을
물에 녹였듯이 어떻게 녹아 있느냐에 따라, 문학이 되기도 하고, 철학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의미화 작업은 충격의 다음에 올 때가 많다. 어떤
때는 충격과 동시에 의미가 다가오지만 그것은 폭이 좁고 깊이가 얕다. 충격을 받은 후에 작품으로 옮기려 했을 때 의미화 작업은 활발해진다.
"경험은 무의미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은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다. 포괄적인 예술은
인생 전체를 생생하게 만들어 놓는다."고 어윈 에드먼은 '예술과 인간'이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또 일본의 시인, 이토오 게이이치(伊藤桂一)는 그의 '서정시입문'이라는 책에서
시를 쓰기 위한 방상 차원을 다음과 같이 예로 들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 그 차례를 적은 것이다.
①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 본다.
②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⑤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⑦ 나무를 흔들고 있는 그 본질을 본다.
⑧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의 ①부터 ④까지는 나무를 눈에 비치는 그대로 보고 있지만,
⑤에서 ⑧까지는 보이지 않는 데까지도 보고 있다.
①에서 ④까지의 객관적인 관찰도 내부의 준비에 따라 비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
⑤에서 ⑦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를 보고 있으니까 바로 의미화 작업이
된다.
시의 경우이지만 수필에도 거의 비슷한 관찰이 일어날 수가 있다.
다) 통합
작품이 될 여러 가지 요소를 한자리에 모아서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통합이다.
구성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소재와 의미와 주제가 하나의 끈에 엮어져서 통일된 완성품이 되는 과정이다.
수필의 문장은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솔직성, 그리고 상징과 비유, 암시와 상상적
수사기능을 생명시하며, 문장은 주제를 의미화 하기 위한 생명적 요소이므로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수필의 문장은 정밀, 구체적이어야 한다.
둘째, 수필의 문장은 정서를 지성화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서의 지성화에는 감정의 과다노출을 제어하는
다음 몇 가지 금기 사항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① 대화가 변변하거나 길어서는 안 된다.
② 한정어나 수식어, 의태어나 의성어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③ 관념어나 시어로 의식의 비약을 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수필의 문장은 때로 지성을 정서화해야 한다.
넷째. 수필의 문장은 주제를 상상화 시켜야 한다.
다섯째, 수필의 문장은 간결, 선명하면서도 정적이어야 하고,
비유 함축이면서도 지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한 편의 수필은 그저 마음먹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 의미화의 과정을 거친 글일 때에
비로소 문학 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다.
다음은 김경숙의 <아침을 위하여>의 전문이다. 이 수필에서
충격→의미화→통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살펴 보자.
'반짝'. 그리고 정적의 끝에서 또 다시 '반짝'. 그러나 그 빛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은 바다 저 편에서 어둠의 자락을 들어올리는 여명의 탓이리라. 마지막 숨을 쉬듯 깜박이는 불빛. 작은 섬 사이를 흐르는 옅은 안개가 흰머리 같다. 문득 가슴이 젖어온다. 며칠 전 뵈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물안개 속에서 흩어졌다 다시 모이곤 한다. 몹시도 수척해지셨다. 건강을 묻는 딸에게 이 나이에 무슨 건강을 바라겠느냐고 대답하시던 힘없는
목소리가 오래도록 가슴을 적신다. 팔순을 넘기신 지도 서너 해가 지났다. 그저 오래 사시기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 부모의 80은 남의
부모 70보다도 적어 보인다고 했던가.
40년도 더 앞서의 일이다. 내 나이 열세 살 때. 어머니의 소복은 잘 벼른 칼날처럼
푸른빛을 띄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던 고운 옷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푸르도록 흰 소복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