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5시 2016.9.8.
제목: 정선 구미정(九美亭)
1. 오늘은 구미정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구미정이라 하면 아름다운 정자 같은데, 어디에 있는 정자인가요?
구미정은 말 그대로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정자라는 뜻입니다. 주변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렇게 지었습니다. 소재지는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입니다. 이곳은 남한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골지천이 흐르고 있는데요. 정선 자체가 워낙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정선 중에서도 강을 끼고 있는 구미정 주변의 기암 절승이 더욱 눈에 띕니다.
2. 구미정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나요?
정선군 임계면은 정선, 강릉, 삼척, 태백의 중간기점에 있는 곳입니다. 교통이 사통팔달로 이뤄져 있습니다. 임계면에서 약 4km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임계면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임계면에서 봉산리로 가서 바위안이라는 마을로 접어들어 강을 따라 곧장 가다가 보면 눈에 들어옵니다. 구미정 가까이 갈수록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얼른 들어와서 이곳에 구미정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지난 4일에 다녀왔습니다. 가족들과 임계 문래리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친척들을 찾아뵙고,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이곳에 들렀습니다. 정자에 올라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서 그랬습니다. 우리 가족이 오늘 일일 신선이 되었다고요. 그러면서 정자 현판에 써진 구미의 미를 하나씩 살피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전날 비가 온 터라 물이 많아서 모두 찾을 수는 없었지만,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은 쉽게 다가왔습니다.
3.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자라. 정말 말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요?
항상 물고기가 많이 모여 있어 통발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하여 어량(漁梁)이라 하는데 정말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또 정자 뒤편 길 위에는 널따란 밭이 위치해 있는데요, 이자는 이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고 하여 전주(田疇)라 했고요. 또 강의 옆과 강바닥을 할 것 없이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물속에 잠길 듯 말 듯 밥상을 올려놓은 듯 섬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반서(盤嶼)라 표현했고요. 정자 앞에는 마치 일부러 쌓아올린 듯 돌층대가 아름답게 있다고 해서 층대(層臺)라 했습니다. 정자 바로 뒤편에 바위 사이에 자연히 생긴 연못이 있는데, 바위가 둥그렇게 파여 연못을 이룬 것이라 하여 돌 석자에 못 지자를 써서 석지(石池)라 했고요. 정자가 지어진 바위도 그렇지만 물 속에 드러난 바위 한 개의 넓이가 100평 이상 될 정도로 크고 평평하다고 하여 붙여진 평암(平巖)이 있고요. 정자 앞으로 강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연못의 물같이 항상 맑고 잔잔하다고 하여 맑을 징자에 못 담자를 써서 징담(澄潭)이 있고요. 정자 맞은 편의 기암절벽이 바위에 옷을 푸르게 입혀 놓은 듯 이끼로 항상 덮혀 있어 푸를 취자에 멱 벽자를 써서 취벽(翠壁)이라 했고요. 정자 주변에 멀리서 가까이로 뻗어 있는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다고 해서 벌릴 열자에 산 수자를 써서 열수(列峀)라 한 것이 아홉 가지 아름다움입니다.
이 아홉 가지 아름다움 말고도 18경이라 하여 18가지의 경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4. 18경이라면 그곳 구미정에서 보는 18가지의 경치를 일컫는 것이잖아요?
아홉 가지의 아름다음 외에 세부적으로 18경을 또 읊은 것입니다. 물론 이 18경은 감상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당시 수고당 이자가 볼 때는 이처럼 많은 절경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8경은 이렇습니다.
御風臺(어풍대), 承躍淵(승약연), 迷源渡(미원도), 障瀾岩(장란암), 喚醒石(환성석), 爛柯石(난가석), 飮虹橋(음홍교), 抽潛磯(추잠기), 招舟遷(초주천), 風雷灘(풍뢰탄), 舂雲碓(용운대), 避雨壁(피우벽), 混沌石(혼돈석), 嗽玉泉(수옥천), 避暑崖(피서애), 笻鳴沙(공명사), 杯飮樽(배음준), 藏書窟(장서굴)
이렇게 18가지의 경치를 읊고 있는데, 모두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5. 그럼 구미정은 언제 누가 지은 것인가요?
조선 숙종 때 수고당(守孤堂) 이자(李慈, 1652~1737)가 이 지역에 은거하면서 인재양성과 피서와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건립한 것입니다. 이자는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 때 당파에 질려서 공조참의의 관직을 버리고 임계면 봉산리에 은둔하였습니다. 봉산에 그가 지은 수고당과 안채 등 여러 건물이 있습니다. 현재 400년이 넘은 유물이 있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미정 또는 구미정사라 일컫는 정자는 1692년에 지었는데, 크기는 12평이고, 두 칸의 온돌과 툇마루를 부엌을 갖춘 정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정자는 그 당시에 지어진 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물어진 것을 나중에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상당히 허름한 모습인데, 또 그 나름 주변의 경치가 워낙 좋아서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문짝은 없지만 온돌방과 툇마루 등이 골격을 이뤄 이자가 있을 당시 옛 정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6. 그럼 구미정은 단순히 선비들의 풍류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군요. 잠도 잘 수 있고, 밥도 해 먹을 수 있고, 공부도 하는 그야말로 다목적 정자였네요?
원래 정자는 기본적인 숙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네 벽에 문을 달아 바람도 막고, 아궁이가 있어서 불도 때고, 누워 잘 수도 있는 그런 곳입니다. 물론 단순히 시인묵객들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며 음주가무와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사면이 툭 티인 정자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마다 루정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서 뭐라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구미정의 경우는 다목적용이었습니다. 이것은 갑작스런 비바람이나 눈비 등을 피할 수 있어야 하니 당연한 것이었지요.
7. 아까 구미 중에 첫 번째가 어량(漁梁)이라 해서 고기 반 물 반이라 했잖아요. 정말 통발을 놓으면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나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정말 보기드믄 청정지역입니다. 물도 맑을뿐더러 물의 양도 풍부해서 물고기가 살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 때문에 물고기의 번식률이 엄청납니다. 게다가 이곳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서 불법어획을 하지 않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돌 틈 사이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저녁노을이 질 때 물살을 헤집고 뛰어오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기의 비늘이 햇살과 노을에 비춰서 찬란한 색상을 비추거든요.
8. 이런 천혜의 자원이라면 특히 여름철에는 이곳을 찾는 피서객이 많을 것이잖아요?
여름에는 특히 많은 사람이 찾습니다. 다만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아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제가 가 보니까, 여름 뿐 아니라 사계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봄에는 절벽에 피어난 진달래와 철쭉이 형형색색 수를 놓았고요,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또 다른 풍광을 만들었습니다. 겨울에는 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쌀쌀하면서도 한적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이 하얗게 얼어 기암괴석과 어울린 풍광도 아주 좋았습니다. 연인끼리 차를 몰아 이곳을 지난다면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이 배가할 것입니다.